[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57)] 사도 도마가 남긴 예수 복음의 흔적

등록날짜 [ 2016-12-14 15:31:22 ]

의심 많은 도마라고 알려졌지만
알고자 하는 지적 욕구가 강한 인물로 보는 것이 옳아
인도에서 당당히 복음 전하다 브라만의 창에 맞아 순교해


-진행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담임)
-박성민 목사(한국대학생선교회 CCC 대표)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윤석전 목사: 도마는 모르면 확실히 알려고 했고 알면 담대하게 행동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성(理性)적인 사람이었던 도마는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을 충만히 받고 나자 이성을 넘어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도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도마가 생애 마지막까지 복음을 전했다는 인도로 가 보시겠습니다.


<사진설명> 인도 4대 도시인 마드라스(현재명 첸나이)에 있는 도마기념교회. 첸나이에는 도마가 피신했던 기도처와 순교한 언덕 그리고 도마의 무덤이 있다는 도마기념교회가 있다.

히말라야 산맥 남쪽에 있는 인도 공화국. 세계에서 불교 문화가 가장 발달한 이곳에 도마가 복음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우리가 찾는 도마의 흔적은 ‘마드라스’(Madras, 인도의 네 번째 도시로 타밀나두 주의 주도인 ‘첸나이’의 옛 이름)에 있었다. 의심 많던 제자 도마가 가장 멀리까지 선교했던 것이다.

마드라스에 있는 도마기념교회는 도마의 동굴 기도처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 전승에 따르면, 도마는 동굴에 숨어서 기도생활을 했다. 인도에서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한 까닭에 도마는 토착 종교를 믿는 브라만(불교 승려)들에게 미움을 샀고, 결국 죽음의 위협에 놓이게 됐다. 도마는 동굴로 피신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 손자국이 바위에 새겨졌다고 한다. 전승에 따르면 적들이 들이닥치자 하나님은 천장에 구멍을 뚫어 도마를 구출하셨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적을 보여 사랑을 입증하셨다고 전한다.


<사진설명> 땅끝까지 가서 복음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다른 사도들은 서쪽으로 갔으나, 도마는 동쪽으로 가서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 인도에서 복음을 전했다.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하다 이교도의 미움을 샀고 그들이 던진 창에 찔려 순교했다고 한다.


윤석전 목사: 도마가 도착했을 때 인도는 어떤 상황이었나요?

홍순화 원장: 인도 동쪽 지역은 개방되지 않아서 침략을 받지 않았지만, 서쪽은 자주 공격받아 통일 왕국을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도 다행히 제국이 없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인도라는 나라가 갖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이 유럽 쪽으로 복음을 전하러 가서 기독교인의 관심이 서쪽에만 쏠려 있습니다. 도마의 전도는 사도에 의해서 동쪽 나라에까지 복음을 전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또 성경에는 고대 4대 문명 중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등장하는데 도마가 ‘인더스 문명’에까지 복음을 전파했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도마가 인도에 간 일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아 전승을 따라 추측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도마에 관한 전승들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홍순화 원장: 시리아어로 기록된 ‘도마행전’에 도마의 전승이 많이 있습니다. 3세기경 시리아 지역에 알려진 전승이라고 추측합니다. 문제는 그 전승을 비중 있게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래전부터 학자들은 도마 관련 전승을 ‘황당한 에피소드’라고 격하하였으나 최근 들어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1세기 당시에는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도마가 시리아까지 갔다는 전승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시리아-인도’를 잇는 1세기경 고대 교통로가 있었다는 증거를 찾았습니다. 로마 사람들이 후추를 수입하려고 인도 쪽 무역로를 열었기 때문이지요. 고대 통로가 있었다면 로마 사람의 복음 전도가 가능했겠지요. 또 도마가 인도에서 선교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첫째, 인도 지역에 도마파 기독교인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첸나이 교외 밀라포르(Mylapore)에 도마의 무덤이 있는데, 무슨 근거가 있으니까 무덤이 있을 것이라고 해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봅니다.

윤석전 목사: 도마는 ‘의심하는 자’로 알고 있는데, 그런 판단이 정당한지 말씀해주세요.

박성민 목사: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도마에게서 의심 많은 성향이 보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도마는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제자 열 명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제자들의 얘기를 듣자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라고 말합니다. 그 후 다른 제자가 초청한 장소에서 도마도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봐라” 하시자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최고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도마를 의심쟁이라고 하기보다는, 의심을 바탕으로 가장 수준 높은 신앙고백을 한 인물로 봐야 합니다. 이런 점을 봤을 때 요한복음에서는 도마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 곳곳에 드러난 도마의 성격을 말씀해 주세요.

박성민 목사: 공관복음에서는 도마의 존재가 제자 목록에 언급된 정도에 그치지만, 요한복음 11장에는 도마의 독특한 성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예수님께서 이틀을 더 머무시더니 “나사로는 잠들었다 우리가 나사로에게 가자” 하니까 제자들이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8장 끝부분에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니까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치려고 했으니까요. 그다음 10장에 가면 수전절에 예수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하자 유대인들이 또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이어서 11장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로 간다면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은 ‘이젠 죽었구나’ 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도마가 말합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11:16). 사실 도마는 의심 많은 성향을 띠지만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가치 있는 일에는 목숨을 버릴 만큼 용감한 성격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현재 인도에는 도마기념비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도마가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곳으로 가 보시겠습니다.

이성적 판단 능력이 강했기에 매사 쉽게 믿지 못하고 의심 많았던 도마. 그가 동굴에서 기도 중에 적들의 창에 맞아 흘린 피는 바위를 가르고 개울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인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성스러운 물로 여기고 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구출되었지만, 기도 중에 브라만의 창에 맞은 도마는 피를 많이 흘렸다. 상처를 입은 채 자신이 양육한 제자들을 만나려고 마지막 힘을 쏟아 지금 ‘도마 산’이라 부르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목숨이 다한 상태였고 예수님의 명령으로 땅끝 인도로 왔던 도마의 선교 여정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그렇게도 알고 싶어 했던 ‘예수님의 길’. 그 길을 도마는 완주했던 것이다.

윤석전 목사: 전승을 따르면 도마 사도는 인도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도마와 인도교회는 어떤 연관이 있나요?

박성민 목사: 도마는 바벨론에 복음을 전했고 나중에 인도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인도에 교회를 많이 세웠는데, 인도 국교가 힌두교였기에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도마의 순교에 관해서는 다양한 전승이 있습니다. 천민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설과 돌에 맞아 죽어 가는데 브라만 승려가 창으로 죽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설은 도마가 동굴에서 기도하는데 브라만 승려들이 와서 창을 던져 죽였다는 내용입니다. 인도에 ‘도마’라는 이름이 알려졌는데 ‘사도 도마’라는 설이 있고, 5세기 중반 ‘네스토리우스파 선교사 도마’라는 설도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도마행전을 보면 도마가 인도에 갈때 목수로 갔다고 합니다. 도마의 실제 직업은 무엇인가요?

홍순화 원장: 도마행전을 보면 목수였다고 합니다. 인도 상인이 왕궁을 지으려고 기술 좋은 목수를 찾아서 예루살렘에 왔고, 도마는 하나님의 섭리로 목수 일을 하려고 그 지역에 갔는데, 노예로 팔려 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 지역에 가서 왕궁 짓는 일을 하던 중에 하나님의 이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이적을 “상상이다” “황당한 얘기다”라고 일축해 버립니다. 하지만 1세기에 군다프로스 왕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밝혀 주는 동전이 나왔다고 합니다. 따라서 도마 전승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근거가 있다고 봅니다.

윤석전 목사: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과 말씀을 나눌 때 도마가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어떻게 그 길을 알겠삽나이까?”(요14:5)라고 묻습니다. 도마의 질문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박성민 목사: 대개 도마를 의심하는 성격이라고 보고, 그런 성격 탓에 질문을 많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도마가 어떤 상황에서 질문했는지 살펴보면, 질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께서 세족식을 마치신 후 세상을 떠나야 할 것을 얘기하셨고, 베드로는 죽어도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하니까 “네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14장을 펼치자마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요14: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이 떠나신다고 하자 두렵고, 게다가 수제자가 배신할 것을 예언하시자 침통해진 제자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는데, 그때, 도마는 용감하게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라고 질문합니다. 제가 보기에 도마는 의심하는 자가 아니라 알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자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도마는 용감하게 자기가 모르는 점을 드러내서 답을 찾고자 한 사람이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 도마는 인도 외에 어떤 지역에서 전도했나요?

홍순화 원장: 전승을 보면 먼저 바벨론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바벨론은 지금 이라크 지역인데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거기서 동쪽으로 가면 카스피 아래쪽에 파르티아 왕국이 있는데 지금 인도권입니다. 이란과 인도 사이에 있던 파르티아 왕국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안디옥에서부터 인도까지 연결된 고대 무역로가 있었는데 그 무역로를 따라 갔으리라고 추측합니다. 그다음 당연히 인도에도 갔겠지요. 그런데 여러 가지 전승을 보면 1세기경에 이 지역에 기독교인 공동체가 있었다고 합니다.

도마가 복음을 전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들이 인도 영역까지 복음을 전한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윤석전 목사: 도마행전에는 도마를 어떻게 소개했는지 궁금합니다. 또 도마행전에 대한 평가도 알고 싶습니다.

박성민 목사: 외경을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역사적 사실도 있지만, 그 사실에 더해진 얘기들도 있다고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예를 들면, 도마에 관해서 요한복음 21장 2절에 “디두모라고 하는 도마”라고 기록했습니다. 도마는 히브리어고, 디두모는 헬라어로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도마행전을 보면, 도마는 예수님과 쌍둥이였고 이름은 유다였다고 합니다. 근거 없는 말입니다. 도마행전도 어느 정도 사실이 있겠지만 선별해서 읽어야 할 책입니다.

윤석전 목사: 당신에게는 어떤 장점이 있습니까? 주님 앞에 나와서 도마처럼 마음껏 쓰임받아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복음 증거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훌륭한 기독교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0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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