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01-10 15:38:26 ]
요한계시록에 담긴 메시지
주님 오실 때까지 인내하며 마귀역사와 싸워 승리하라
-진행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담임)
-박성민 목사(한국대학생선교회 CCC 대표)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윤석전 목사: ‘사랑의 사도’ 요한에 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요한 사도가 핍박받아 밧모 섬에 유배되었을 때 매우 외롭고 고독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사도 요한을 만나 주셨고, 종말에 관한 말씀을 예언 해 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말씀을 통해 본 모든 것을 기록해 ‘요한계시록’을 작성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머물렀던 밧모 섬으로 가 보시겠습니다.
<사진설명> 에베소 남서쪽 약 80km 지점, 에게 해(海) 해상에 있는 아름다운 작은 섬, 밧모. 이 섬에는 거주자 2500여 명 외에도 타지 순례객이 늘 붐빈다. 순례객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밧모 섬이 2000년 전 사도 요한의 유배지였기 때문이다.
에베소 남서쪽 약 80km 지점, 에게 해(海) 해상에 있는 아름다운 작은 섬, 밧모. 이 섬에는 거주자 2500여 명 외에도 타지 순례객이 늘 붐빈다. 순례객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밧모 섬이 2000년 전 사도 요한의 유배지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교회와 수도원이 가득한, 아름다운 ‘복음의 섬’ 밧모. 그곳에는 사도 요한과 관련한 중요한 성지가 있다. 바로 계시동굴, 일명 ‘아포칼립스(신의 계시)’다. 사도 요한이 성령의 계시로 요한계시록을 쓴 장소로 알려졌다.
로마 시대 정치 중범죄자들에게 생지옥과 같았던 유배지 밧모 섬. 사도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이곳에 유배됐고, 채석장에서 중노동을 했다고 한다. 그때 탄생한 서신이 요한계시록이다. 요한은 이 동굴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본 모든 것을 기록했다. 요한은 세상 끝날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승리한 교회들이 천국에 들어가 부르는 승리의 찬양을 목격했다. 그 빛나는 환상 속에서 성도들에게 재림을 준비케 하는 요한계시록을 썼다.
윤석전 목사: 사도 요한 당시 밧모 섬은 어떤 곳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홍순화 원장: 밧모 섬은 그리스령(領)입니다. 터키 바로 앞에 있는 섬이어서 터키 땅이라고 오해하는 분이 있습니다. 아테네에서 동쪽으로 270km, 에베소에서 남서쪽으로 80km, 유명한 밀레도 항구에서는 남서쪽 56km 지점에 있습니다. 우리가 밧모 섬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로마 시대에 유배지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유배지로 쓴 이유는 분명치 않습니다. 교통은 비교적 편리하지만, 그 지역 상황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지금도 지중해 많은 섬은 환경이 좋지 않은데, 사도 요한 당시에도 열악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 요한이 밧모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요?
박성민 교수: 계시록이 언제 쓰였는지 알면 유배 간 동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학자들 사이에서 계시록이 쓰인 시기를 네로(5대 황제, 재위 54~68) 때냐, 도미티아누스(8대 황제, 재위 81~96) 때냐, 이견이 있으나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가 유력하다고 봅니다.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을 신적 존재로 부각하고 자신의 형상을 동전에 새겨 황제 숭배를 강조했습니다. 그런 상황과 아울러, 계시록 1장 9절에 사도 요한이 자신을 소개할 때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라고 말합니다. 특히 ‘증거’라는 단어를 계시록에서 살펴보면, ‘목숨을 각오한’ ‘순교’라는 의미가 담겼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증거한다’는 ‘증인이 된다’라는 의미였는데, 계시록에서는 순교의 의미와 연결돼 있습니다. 특히 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예수님에 대해 말하기를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계시록 상에는 돌아가신 분입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점은 ‘황제 숭배의 압력’과 ‘여러 가지 혼합 종교의 압력’ 속에서 순수하고 참된 삶을 살고자 했던 사람들, 그 중 지도자 격인 요한이 그런 이유로 밧모 섬에 유배됐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윤석전 목사: 요한계시록은 ‘묵시(默示) 문학’이라고 합니다. 유대민족에게는 ‘묵시 문학’이 자기들을 한데 묶는 좋은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묵시 문학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박성민 교수: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지속해서 선지자를 통해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5세기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말씀이 갑자기 끊깁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암흑 시절을 겪게 됩니다. 그때 등장한 것이 묵시론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안 하시니까 인간이 하늘로 올라가 보는 수밖에 없겠지요. 묵시 문학의 특징은, 우리가 살고 있지 않은 다른 세상, 계시록에 있는 ‘하늘성전’ 같은 데를 가서 다른 세상을 여행하게 되는데, 여행하면서 설명이 필요하므로 천사가 해석을 줍니다. 그런 모든 것을 ‘서술적 서사’라고 하는데, 보통 학자들은 ‘내러티브(narrative)’라고 합니다. 그런 내러티브 형식을 취해 말씀을 전해 준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언서’와 연결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예언서’는 ‘특정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회개하면 다른 세상이 주어진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반면 ‘묵시 문학’은 이 세상과 다음 세상의 연계성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인간이 어떻게 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간섭이나 새로운 세상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는, 마지막 때 하나님의 간섭이 담긴 것이 묵시 문학의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많은 사람이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전체적인 특징이 무엇인지 궁금해 합니다.
박성민 교수: 요한계시록의 특징을 알아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묵시 문학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요한’ 본인이 저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구조상 편지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1~3장까지는 서신 형태를 취하고, 끝부분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를 ‘예언서’라고 지속해서 밝히고 있는 점도 특징입니다.
또 묵시 문학은 ‘하나님이 마지막에 무슨 일을 하실지’에 초점을 맞추는데, 요한계시록은 이와 달리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마지막 때와 연결되게 한 점이 특징입니다. 즉 과거 사건이 현재와 미래에 연결됐다는 점은 다른 묵시 문학과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입니다.
밧모 섬 주민들이 거주하는 호라 마을에는 사도 요한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동네 한 교회에 마을 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사도 요한의 유적지가 있어 찾아갔다. 채석장에서 중노동을 하던 사도 요한은 틈만 나면 바위에 서서 복음을 선포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 바위를 ‘사도 요한 설교바위’라고 부른다. 산 정상에는 요한수도원이 있다. 주후 900년경에 수도사 크리스토둘로스가 사도 요한을 기념하여 세운 이 수도원은 해적을 막는 방어 요새 역할도 했다.
윤석전 목사: 밧모 섬에는 왜 교회가 많은지요?
홍순화 원장: 밧모 섬에는 교회와 수도원이 300개 정도 있습니다. 섬 인구를 3000명 정도로 볼 때, 교회나 수도원이 무척 많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해 조사해 봤더니, 첫째 그리스 정교회가 밧모 섬을 자기들의 정신적 보루(堡壘)로 여기고 정성을 기울여서 교회와 수도원을 지켜 왔다고 합니다. 바로 앞에 이슬람 국가 터키가 있어서 수도원을 지키기에 몹시 어려웠습니다. 700년 정도 터키의 지배를 받을 당시에는 토지 사용료를 내면서까지 수도원을 지켰습니다. 수도원이 많은 또 한 가지 이유는 그리스 사람들이 수도원 운동으로 신앙을 버텨 간다는 점입니다. 그런 이유로 밧모 섬에 수도원이 많습니다. 유럽에 가면 대부분 교회가 쇠퇴해 가는데, 그리스는 어디를 가든지 교회 건물을 새로 짓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신앙이 가장 살아 있는 곳이지요. 어쨌든 밧모 섬 전체에는 온통 교회가 널렸습니다.
<사진설명> 사도 요한이 성령의 계시로 요한계시록을 쓴 장소로 알려진 계시동굴 앞. 윤석전 목사와 침례신학대학교 교수진이 함께했다.
윤석전 목사: 계시록을 통해 본 요한 신학의 특징을 말씀해 주세요.
박성민 교수: 계시록에서 요한 신학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성부(聖父) 하나님에 대해서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심판이 거의 완성되는 시점인 11장과 15장을 보면, ‘앞으로 오실 분’이 빠지고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으로 바뀌는 양상을 볼 수 있습니다. 심판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장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또 모든 힘과 권력을 ‘누구로부터’ 받았다고 하면서 그 누군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이 암시돼 있습니다. 심지어 사단까지도 하나님의 허용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고 돼 있습니다.
사단의 존재는 강력하지 않습니다. 이미 하늘에서 패배했고, 십자가 상에서 패배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사단은 세상에서 계속 하나님을 흉내 내고 모방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성도들을 방해합니다. 사단은 자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최후에 발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겉보기에는 하나님과 사단의 전쟁 같지만, 이미 하나님의 권한 안에서 이루어졌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이루신 어린양의 승리 속에서 성도들은 그의 피로 이기며 인내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그 모든 것이 ‘예배’라는 틀로 짜여 있습니다. 4장과 5장 핵심도 ‘예배’, 마지막 새 예루살렘이 오기 전, 즉 천년 왕국 전에도 ‘예배’, 끝부분도 ‘예배’입니다. 초점은 ‘두려운 하나님’입니다.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마귀역사에서 승리해서 하나님께 찬양하고 인내하며 싸우자, 두려워하지 마라, 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신학의 초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당시 소아시아에 교회가 많았는데, 계시록에서는 ‘일곱 교회’만 선별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박성민 교수: 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를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입니다. 이 도시들을 지도로 그려 보면, 다들 로마의 도로가 거쳐 가는 도시들입니다. 산세가 험해 다른 도시로는 연결될 수 없습니다. 성경 지리를 연구하는 신학자들은, 이 도시들에 편지가 배달되면 주위 다른 도시로 편지를 전해 주기 쉬웠기에 이 도시들이 ‘중심도시’였다고 봅니다. 이곳이 편지를 나눠 줄 수 있는 교통이 가장 편리한 도시입니다.
어떻게 보면, 계시록은 일곱 교회를 향해서 쓰였을 뿐만 아니라, 이 교회들을 통해서 다른 교회에 메시지가 전파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보면, 모든 교회를 향해서 쓰였다고 하는 의미가 일곱 교회 선택에 담겨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요한계시록은 왜 어려운 상징어로 쓰였는지 궁금합니다.
박성민 교수: 만약 아프리카 정글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일주일을 머물고 돌아갔다면, 처음 본 ‘냉장고’나 ‘마이크로웨이브’ ‘형광등’ 같은 물건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형광등이라는 단어를 쓰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글인에게 친숙한 언어나 비유로 전해 줄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특별한 환상을 보았기에, 그것을 전하려고 그 당시 사람들에게 친숙했던 단어로 설명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렵게 느껴지지만, 그들한테는 이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비로운 것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어렵지만, 상징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계시록을 사도 요한의 제자가 대필(代筆)했다는 설이 있는데,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홍순화 원장: ‘계시록을 어디서 썼느냐’에는 두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밧모 섬에서 썼을 것이다, 아니면 에베소에 와서 썼을 것이다. 만약 밧모 섬에서 썼다면, 사도 요한이 직접 썼을 것으로 봅니다. 혹시 에베소로 돌아와서 썼다면, 연세가 드셔서 대필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리스 정교의 전승을 따르면, 요한의 제자 브로고로가 썼다고 합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 요한은 온갖 고통을 당하며 순교하기까지 사랑을 말했습니다. 우리도 예수께서 베푸신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 앞에, 이웃 앞에 함성으로 전해야 합니다. 요한과 같이 사랑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최후에 사랑을 말하다가 사랑 속에서 천국 가는 모든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1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