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62)] 순교자의 피로 물든 로마의 카타콤과 콜로세움

등록날짜 [ 2017-02-14 15:23:21 ]

기독교 핍박 시대 순교자의 무덤 카타콤과 평화의 상징 콜로세움에도
초기 기독교인의 피 흘린 흔적 넘쳐나
순교는 과거 사건 아닌 현재도 진행형
지난 100년간 2700만 명이 순교당해


-진행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담임)
-박성민 목사(한국대학생선교회 CCC 대표)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윤석전 목사: 기독교는 수많은 핍박을 받으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후손에게 복음을 전해 주려고 몸부림치다 순교한 현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로마 아피아 가도(街道)에 있는 카타콤(Catacomb)은 로마인들의 가족묘로 시작되었고, 점차 로마 기독교인의 지하 매장지로 확대됐다. 그중 '칼리스토 카타콤'은 길이 19km나 되는 로마 카타콤 중 최대 규모다. 1~4세기 사이에 이곳에 묻힌 그리스도인이 5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지하 5층 중 4층까지 발굴되었다. 시신은 벽면에 직사각형이나 반원형 벽감(壁龕)을 파서 넣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생명처럼 따르려 한 초대교인의 몸부림은 오늘도 카타콤을 찾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사진설명> 카타콤(Catacomb)은 로마인들의 가족묘로 시작되었고, 점차 로마 기독교인의 지하 매장지로 확대됐다.

윤석전 목사: 카타콤이란 어떤 곳이며 기독교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 카타콤의 어원(語原)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헬라어 코에메테리아(coemeteria)라는 말에서 유래했고, '휴식처'라는 뜻입니다. 원래는 기독교 유적이 아니고 로마 지역에서 지하에 파서 만든 '가족묘지'였습니다. 로마 사람 중에서도 가족묘지로 쓴 사람이 있었고, 또 로마에 사는 유대인과 특별한 종교인까지 지하에 가족묘지를 썼습니다. 특히 기독교인은 화장(火葬)하지 않고 매장하는 풍속이 있어서 순교자의 시신을 카타콤 안에 많이 매장했습니다. 그래서 오해가 생겼습니다. 기독교인 묘지가 아닌 카타콤도 있었는데 카타콤 하면 모두 기독교인의 무덤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영화(映畵)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카타콤에 기독교인들이 은밀히 모여서 예배를 드리다 로마 군인들이 오면 도망친다는 내용인데 실제 기록에는 이런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카타콤은 두 종류입니다. 핍박 시대 카타콤은 순교자의 무덤으로 쓰였고, 기독교 공인 후의 카타콤은 순교자들이 많이 묻힌 성스러운 곳이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황들도 카타콤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그 후 어떤 순교자의 무덤은 카타콤에서 교회로 옮겨졌습니다. 차츰 카타콤의 존재를 잊고 있다가 16세기부터 발굴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기독교 상징인 십자가는 예수님 시절에 최고 흉악범들을 처형할 때 사용했습니다. 십자가를 언제부터 구원과 하나님 은혜의 상징으로 사용했나요?

박성민 목사: 십자가는 모양이 매우 다양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십자가의 도를 얘기하면서 이방인들은 이를 미련하게 여긴다고 했습니다. '미련하다'에는 단순히 '어리석다'는 뜻만 아니라 '미쳤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미친 사람이 칼을 들었을 때 드는 느낌처럼,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이들이 너무나 무시무시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유대인들한테는 '거리끼는 것', 헬라인과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표현을 쓰는 점으로 봐서 십자가가 기독교 상징이 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세월이 걸렸을 것입니다. 실제로 주후 313년에 기독교가 공적 종교로 공인되면서부터 서서히 십자가가 받아들여졌고, 787년 제2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정식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리스 지역 동방 세력들이 쓰는 십자가는 가로와 세로가 똑같습니다. 서방 쪽에서 쓰는 것은 세로가 더 깁니다. 이 두 가지 십자가가 다양한 모습으로 변천해 왔습니다.


윤석전 목사: 그리스도인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순교 현장이라고 널리 알려진 로마 콜로세움으로 가 보겠습니다.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의 상징 콜로세움. 장대한 타원형 콜로세움(원명,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은 아치(Arch)와 볼트(Vault, 아치형으로 쌓은 것에 지붕을 올린 건축 구조)를 구사한 로마 건축기술의 결정체다.

지금은 지진 탓에 손상된 이 격투장에서 검투사와 맹수가 생사를 가르는 격투를 벌였다. 이 와중에 수많은 기독교인이 사자에게 뜯어 먹혀 죽어 갔다고 한다. 칸칸이 나뉜 철창 안에는 굶주린 사자들이 문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배고픔에 극도로 사나워진 야수들은 끌려 나온 사람들을 덮쳤고 격투장은 기독교인들이 흘린 숭고한 피로 물들었다. 80여 개 입구로 올라온 로마 관중 5만여 명은 그 피의 광경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한다.

콜로세움 곳곳에 있는 유적 속엔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나라를 부여잡고자 목숨을 내놓았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숭고한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고, 대형 십자가를 세워 그 역사를 기념하고 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생명을 걸고 복음의 씨를 뿌렸고, 초기 기독교인들의 순교로 열매 맺었다. 그것은 어둠과 빛의 세계를 이어 주는 생명의 다리가 되었다.


<사진설명> 고대 로마 사람들이 즐기던 최고의 오락시설 콜로세움. 이곳에서 수많은 기독교인이 사자에게 뜯어 먹혀 순교했다.

윤석전 목사: 로마 대표 유적인 '콜로세움'에서 수많은 기독교인이 순교했다고 하는데, 당시 전승이나 전설은 이를 어떻게 말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 콜로세움은 순교 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극은 당시 로마 사람들이 즐기던 최고의 오락시설이 순교 터로 알려졌다는 점입니다. 콜로세움에서는 오락거리로 동물과 동물을, 동물과 사람을, 사람과 사람을 서로 싸우게 해서 죽게 했습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들을 골라서 죽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검투사와 싸우게 하고, 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고, 짐승과 싸우도록 한 그 사람들의 성분 때문에 순교 터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 사람들은 노예, 금지된 종교를 믿는 사람, 전쟁 포로, 정치범 등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로마 정권에 반(返)하는 사람이었기에 그 시대 상황에서는 정치범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희생된 수많은 검투사, 동물과 싸운 노예 중에서 기독교인이 많았으리라 추정하기에 기독교인이 콜로세움에서 많이 순교당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순교를 통하여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오늘날의 순교는 어떤 상황인지 알려 주세요.

박성민 목사: '증인이 된다'는 말과 '순교'라는 단어는 묘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증인이 되다 보니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증인'이라는 단어가 '순교'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됐습니다. 영어 '순교(martyr)'는 '증인'이라는 헬라어 '마르투스(martus)'에서 나왔습니다.

교회 역사가들도 말하고, 실제로 핍박당하던 사람도 말했습니다. "저희를 죽이십시오. 저희를 죽이는 것은 영광스럽습니다." "우리를 죽였을 때 기독교인들이 성장할 것입니다."

역사가 한 분은 "교회 성장의 역사는 순교의 피의 역사"라고 말할 정도로 증인과 순교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까지 순교자가 매우 많을 줄 예상하지만, 실재 기록이 불충분해서 그런지 순교자가 많아야 1000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서 4000만 명이 순교 당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20세기에 그중 2700만 명이 죽었습니다. 3분의 2 정도가 지난 100년 동안 다 죽었다는 말입니다. 1999년에는 인도에서 호주 의료선교사 그레엄 스텐스가 두 자녀와 함께 집에 세워 둔 지프 안에서 자다가 힌두 과격분자가 와서 불을 질러 그만 불타 숨진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뉴스를 보지 못해서 그렇지 현재에도 세계적으로 엄청난 순교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종말이 가까운 시대와 선교는 상당히 깊은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중에서 특별히 대학생들의 선교 상황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CCC 대표로서 현재 대학생들의 캠퍼스 선교상황은 어떠한지 말씀해 주세요.

박성민 목사: 잭 골드스톤이라는 학자는 말했습니다. "역사를 연구했을 때 청년층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사회가 바뀌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청년층은 15세부터 24세까지를 말합니다. 청년층 마음이 향하고, 그들이 20% 넘게 힘을 가질 때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도 그랬고, 모슬렘 혁명도 그렇고, 모든 중요한 시기마다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그중에서 모든 학문적인 배경을 주는 사람이 대학생이었습니다. 세계에는 대학교가 2만 5000여 개 있다고 합니다. 그중 중요한 대학은 8000여 개입니다. 그 8000여 개 중에서 대학생 사역이 있거나 교회의 영향을 받은 곳은 4분 1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서구와 같이 거의 기독교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곳이 많습니다. 사실 대학은 앞으로 우리 한국교회가 염두에 두어야 할 선교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현재 선교사역 중심 패러다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세계 선교 동향은 어떤지 말씀해 주세요.

박성민 목사: 지금 세계 선교의 판도가 많이 바뀌었다는 점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만 해도 일반적으로 기독교는 서구 중심이었습니다. 현재 교인 수가 가장 많이 늘고 있는 교회는 남미와 아시아 쪽에 있습니다. 선교가 더는 서구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선교 방향에도 큰 변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유럽을 선교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선교지로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유럽에 가 보면 기독교는 제1의 종교가 아닙니다. 모슬렘이 가장 강한 종교입니다. 선교학에서는 21세기는 포스트모던 사회이기에 그에 걸맞은 선교 전략이 나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거 모더니즘 속에 있던 '이성(理性) 중심' 신학에서, 이제는 경험을 중시하고 믿음의 가치가 부과된 선교 정책이 나오고, 함께 가야 한다는 공동체의식이 더욱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한편 전임 선교사들이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점점 제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평신도 선교사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하고, 또 좁은 의미의 선교보다는 폭넓게 보면서 서구 지역의 선교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살펴 그들에게 배울 점은 배우고 지양(止揚)할 점은 지양하면서 우리 나름대로 한국적인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서구 선교사가 갈 수 없는 곳이 많은 시점에 한류(韓流) 열풍이 불어 우리에게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교수, 비즈니스맨 등 다양한 모습으로 가서 선교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선교 상황은 어떤가요?

박성민 목사: CCC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활동합니다. 대학생은 젊은이의 축(軸)이고, 그들이 어디에 어느 정도 마음을 쏟느냐에 따라서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 열두 제자에 관해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순교할 신앙을 지닌 젊은이가 많이 생겨날 때, 한국교회의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을 어떻게 훈련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선교를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젊은이들의 문화를 접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복음을 전할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한국 CCC는 계속 성장하고 있고, 더욱 많은 젊은이가 훈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도 희망이 있다고 보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세계 선교를 위해 훈련받는 뜨거운 젊은이들이 있을 때 한국교회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지금까지 교수님들이 신약 성경과 지리를 해설해 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구약 성경과 성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첫 시간에는 노아 방주가 있다는 아라랏 산을 함께 만나 봅니다. 제가 직접 다녀온 성지를 토대로 현장감 있게 보여드릴 것입니다. 성지는 멀리 있지만 방송을 통해 여러분 눈앞에 친근감 있고 은혜롭게 다가서기를 기대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1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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