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02-28 16:52:41 ]
아브라함이 하나님 명령 듣고 달신을 섬기던 하란을 떠남으로
하나님의 인류 구속사 시작돼
앞길이 불확실해도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책임지셔
-진행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담임)
-오택현 교수(영남신학대학교 구약학)
-유윤종 교수(평택대학교 구약학)
윤석전 목사: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인류 구속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하였고 주저 없이 하나님 말씀을 좇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의(義)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그 땅, 하란을 알아보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란은 어떤 곳이고, 지리상 어떤 특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택현 교수: 하란(Haran)은 구약 성서에 나타난 믿음의 조상 시대부터, 이스라엘 왕궁의 멸망과 포로시기에 이르기까지 성서 역사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도시였습니다. 하란의 다른 이름은 ‘아람 나하라임(Aram-Naharaim)’입니다. ‘두 강 사이에 있는 아람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인데, 하란의 지리적 특징을 명확히 보여주는 명칭입니다. 두 강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말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곳에 정착하고 이곳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자리매김을 합니다.
현재 하란은 터키 지역에 속해 있고, 시리아와 가장 근접한 국경지대에 있습니다. 산느우르파에서는 차를 타고 남쪽으로 45km 정도 내려갑니다. 하란에 가면 대개 두 가지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우선 굉장히 넓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호남평야보다 훨씬 더 넓은 평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농산물은 터키 사람들이 자급자족하고 남아 수출할 정도로 엄청난데, 지금까지도 그렇게 풍족합니다. 하란 지역의 둘째 특징은 무척 덥다는 점입니다. 터키에서 가장 더운 지역입니다. 그 이유는 여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동풍이 불어오기 때문인데, 평균 온도가 섭씨 40~45도에 이릅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그늘 한 점 없는 곳에서 생존하고자 ‘트롤리’라고 부르는 벌집 모양 진흙집을 만들어서 살았습니다.
<사진설명> 아브라함 제2의 고향 하란은 여름철에 섭씨 45도를 웃도는 매우 더운 지역이라 흙으로 원뿔형 지붕을 지닌 집 ‘트롤리’를 짓고 살았다. 지붕 끝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더운 공기를 내보내 실내는 그리 덥지 않다. 아브라함은 이 안온한 거처를 떠나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정처 없이 나섰다.
윤석전 목사: 하란이 성경에 어떤 도시로 등장하는지 궁금합니다.
유윤종 교수: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남으로 이스라엘과 온 인류 구원 역사가 시작됩니다. 따라서 하란은 하나님의 구속사가 시작된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모두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에스겔서 27장 23절을 보면, 하란은 중요한 상업 도시로 나옵니다. 따라서 교통 요지로 자리를 잡고 대상(隊商)들이 상업을 활발하게 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창세기 24장 10절에 따르면, 하란을 ‘메소포타미아’라고 기록했는데, 이는 ‘아람 나하라임’의 그리스어입니다. 또 창세기 25장 20절에 보면 ‘밧단 아람’이라고 기술됐는데, 이것도 하란과 동일한 지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서(聖書) 속 ‘하란’은 ‘아람 나하라임’ 또는 ‘밧단 아람’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등장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역사가들은 ‘아람’이라는 나라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던 시기에 등장했다고 보는데, 그보다 훨씬 오래 전 시대를 기록한 성경 구절에 ‘아람’이라는 명칭이 나옵니다. 하란의 다른 이름인 ‘아람 나하라임’, ‘밧단 아람’이 그 예입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유윤종 교수: ‘아람’이 역사 무대에 등장한 것은 주전 1200년경입니다. 이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2천 년경에 나타났던 아무르(서양인)인과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아람’은 ‘시리아’ 혹은 수도의 이름을 따서 ‘다메섹(다마스커스)’이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에서 아람은 제국을 형성할 만한 힘은 없었지만, 이스라엘을 호시탐탐 위협하며 지배와 종속 관계를 반복하는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창세기에서 나타나는 ‘아람 나하라임’, ‘밧단 아람’에서 쓰인 ‘아람’은 후대 성서 기자들이 자료를 정리하면서 고대에 쓰인 ‘나하라임’ ‘밧단’이란 지명을 명확하게 하려고 ‘아람’이라는 민족명을 첨가한 결과라고 보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구약 땅 하란으로 가보겠습니다.
산느우르파 남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하란 평야. 이곳은 당시 터키 지역 무역로를 오가던 대상(隊商)들의 중간 거주지였다. 아시아나 아프리카로 무리지어 다니던 아라비아 상인 ‘카라반(Caravan)’은 하란 국경 부근에 그들의 근거지를 남겨 놓았다.
지금은 폐허만 남아 있고, 내부로 통하는 낡은 계단만이 이곳이 거주지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현재 카라반 거주지 주변은 유목민 후예들이 동네를 이루고 있다. 과거의 삶을 고수하며 이 땅을 지키는 주민 한 가정에 초대를 받아 잠시 방문했다. 낯선 이방인을 위해 안주인은 솜씨를 발휘했다. 그들이 건넨 빵은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음식이라고 한다. 요리 방법은 여전히 과거와 다름없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지만 이곳에도 문명의 이기는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냉장고, 가스렌즈도 있고, 스테인리스 식기도 있다. 하지만 그 문명의 힘도 흙바닥에 거적을 깔고 자는 유목민들의 생활 습관만큼은 밀어 낼 수 없었다.
몇천 년 전 옛날 집인데 그 안은 현대 문명이 깃들여 있었다. 하나님은 하란 땅에 뿌리내렸던 한 사람 아브라함을 통해 인류 구원 대역사의 문을 열고 계셨다. 그리고 그 문을 아무도 닫을 자가 없었다.
<사진설명> 트롤리는 당시 대상(隊商)들의 숙소로 쓰였다. 트롤리 내부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침신대 교수들과 윤석전 목사.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12:1~2).
윤석전 목사: 아브라함 당시 하란에 살던 민족은 누구였나요? 또 성경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유윤종 교수: 당시 하란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후르족’ 성경에는 ‘호리 족속’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족속은 가나인 지역에 진출해 가나안 7족속 중 하나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 사람들이 주로 남긴 기록은 티그리스 강 누지(Nuzi, 주전 15세기경 티그리스 강 변에 있던 도시) 토판문서(the clay tablets)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 문서에 의하면 창세기에 나타난 사회적인 관습들, 즉 자식이 없을 때 양자로 삼아서 대(代)를 잇는 관습, 결혼해서 자녀가 없을 때 신부(新婦)의 종을 통하여 자녀를 대신 낳게 하는 규정 등은 창세기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입니다. 호리 족속들이 하란에까지 걸쳐서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란에 거주했으며 ‘달신’을 섬겼습니다.
윤석전 목사: 고대 하란 지역에서는 어떤 역사적인 일들이 일어났는지 궁금합니다.
오택현 교수: 하란은 먼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살았던 제2의 고향으로, 이스라엘 역사에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이후 하란은 강대국 앗시리아 제2의 도시로 서진(西進) 정책 교두보 역할을 감당합니다. 또 앗시리아 멸망기에 수도 니느웨가 바벨론에 멸망당하자 하란에 최후 교두보를 만들고 최후 격전을 벌이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 이집트 사람들이 앗수르를 도우러 올라와 바벨론에 대항했지만 결과적으로 패배하자 앗시리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하란도 당시 커다란 파괴를 당합니다.
이후 바벨론 시대에는 역사 속에서 한동안 나타나지 않다가 바벨론 마지막 왕이었던 ‘나보니두스’ 재위기에 역사에 다시 등장합니다. 왜냐하면, 나보니두스 고향이 하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보니두스는 하란 출신이기에 ‘달신’을 섬겼는데, 바벨론의 주신은 ‘말뚝(Marduk) 신’이었습니다. 나보니두스는 말뚝을 없애고 달신을 섬기게 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그러자 많은 바벨론 사람이 반기를 들었고, 페르시아 고레스 왕에게 바벨론이 멸망하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이후 로마 시대에는 하란에서 커다란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첫째 사건은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 주전 115년경~주전 53년)’ 황제가 주전 53년에 이곳에서 파르티아와 벌인 전쟁에서 4만 4천 명이나 되는 군사를 잃는 대패를 한 것입니다. 주후 217년에는 로마 황제 카라칼라(186~217년, 제21대 황제)가 달신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다 암살당합니다. 황제가 암살당하는 사건은 세상이 뒤집어질 만한 일입니다. 이렇듯 하란은 고대 세계 중심에서 중요한 도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아브라함 당시 하란은 어떤 국가에 속한 도시였나요?
유윤종 교수: 만약 아브라함이 ‘우르’ 또는 ‘우르파’를 떠난 연대가 일반적 견해대로 주전 2천 년경으로 본다면, 하란 지역의 정확한 국가명을 알 수 없습니다. 당시는 고대 근동 전체가 대공황 상태여서 특별히 지배적인 나라가 없었습니다. 하란이라는 도시 자체도 고고학적인 증거자료를 따르면 주전 2500~2000년 사이에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현재 기록을 따르면 당시 하란이 어떤 국가에 소속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도시국가 형태로 여기저기 흩어져서 살았던 도시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은 카시트(Kassites), 나중에는 히타이트(헷 족속) 등의 국가 통제 속에 모이게 됩니다.
윤석전 목사: 하란에 현재 남아 있는 고대 유물은 어떤 것이 있나요?
오택현 교수: 하란은 오랫동안 고대 근동 전체에 퍼져 있던 달신인 ‘신(SIN)’을 섬기던 성전 터가 남아 있습니다. 십자군이 이곳에 들어와 파괴하기까지 달신 숭배가 횡행했다고 합니다. 당시 파괴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또 믿음의 조상들과 관련한 유적도 많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신붓감을 찾아 하란까지 온 아브라함의 종에게 리브가가 물을 길러주었다고 해서 ‘이삭의 우물’이라 이름 붙은 우물이 남아 있습니다. 또 야곱이 라헬을 만났다고 추정되는 곳에 야곱의 우물이 남아 있습니다. 또 유명한 고대 유적지로 대학 터가 있습니다. 세계 최초 대학으로 천문학, 의학, 수학을 가르치며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학이 1259년 칭기즈칸의 손자인 훌라구가 침략해 기둥뿌리까지 뽑힐 정도로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곳을 이슬람이 다시 재건하면서 대학이 아닌 거대한 이슬람 사원을 지어 놓았습니다. 그 사원 역시 지진과 침략 때문에 파괴되어 현재는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하란에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믿음의 조상에 관한 기원이 담긴 많은 유적이 있어서 현재 성지순례객들이 연중 끊이지 않고 발길을 잇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란 땅은 기온이 40~45도나 되는 더운 지역인데 어떻게 고대의 문명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 참 경이롭습니다.
오택현 교수: 이스라엘을 비롯한 성지들이 대부분 그렇듯, 하란의 날씨는 무척 덥습니다. 그러나 습도가 낮아서 그늘에 들어가면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넓은 평원과 진흙을 토대로 벽돌을 제작해 고대 문명을 탄생시켰습니다. 오히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같이 고온다습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걱정합니다.
윤석전 목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앞길을 정확하게 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좇아간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복 받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우리를 책임지십니다. 오늘날도 하나님 말씀은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고, 그 약속을 따라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평생 약속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살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1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