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66)] 구약성서의 숨결이 살아 있는 하란 땅

등록날짜 [ 2017-03-13 13:54:09 ]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 만난 우물 야곱이 라헬 만난 우물 모두 하란에
오늘날 성도도 하나님의 큰 섭리 이루는 영적인 장자가 되고자 갈망한다면
이삭과 야곱처럼 순종하는 신앙생활 해야


-진행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담임)
-오택현 교수(영남신학대학교 구약학)
-유윤종 교수(평택대학교 구약학)


윤석전 목사: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에게는 대를 이을 후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다시 만나서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 다시 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나이가 많아 아이를 생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었기에 이삭이라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이삭이 성장해서 아내 리브가를 얻은 장소가 하란입니다. 이삭과 관계 깊은 하란 땅으로 가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구해 오라고 위임한 늙은 종 엘리에셀. 그는 하란 땅으로 향했다. 마침내 하란 땅에 도착해 성곽 우물가에 다다랐을 때, 리브가가 물 항아리를 메고 왔다. 그녀는 매우 아름답고 정결한 소녀였다. 엘리에셀은 물을 길러 온 리브가를 하나님이 예비하신 여인으로 확신했고, 그녀는 아브라함의 며느리가 되었다. 리브가가 엘리에셀에게 물을 떠 준 그 우물을 ‘이삭의 우물’이라고 부른다.

<사진설명> 하란에는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처음 만났던 우물이 현재까지도 전해 내려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성문 밖 대로변에 있다. 리브가가 물동이를 이고 지하로 내려가서 다시 물동이를 이고 계단을 올라오는 형태인데, 현재 우물의 구조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윤석전 목사: 이삭이 하란에서 실제 살지 않았지만 그의 인생에서 하란은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이삭과 관련해서 하란을 설명해 주세요.

택현 교수: 창세기를 보면, 이삭은 실제로 하란에 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란에 거주하던 아브라함의 친척 중에서 아내를 맞이했는데, 그가 바로 리브가입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하란에 자기 종을 보내 이삭의 아내를 택하라고 합니다. 이때 종은 아브라함에게 맹세하고 길을 떠나는데 개역 성경에는 바로 그곳이 ‘메소포타미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창24:10). 히브리어 성서로 보면 ‘아람 나하라임’으로 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곧 하란 땅으로 갔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곳에서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택하여 가나안으로 데려갑니다. 하란은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통해 믿음의 조상들의 역사에 다시 등장합니다. 계속해서 그 지역에 거주하던 리브가의 오빠 라반을 통해서 믿음의 조상과 다음 관계도 이어 나갑니다.

윤석전 목사: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만났던 우물의 구조는 어떠했는지요?

오택현 교수: 하란에는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처음 만났던 우물이 현재까지도 전해 내려옵니다. 우물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성문 밖 대로변에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우물의 구조는 리브가가 물동이를 이고 지하로 내려가서 다시 물동이를 이고 계단을 올라오는 형태입니다. 현재 그 자리에 있는 우물의 구조는 성서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얼마 전까지 이곳을 우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아브라함은 친족에게로 가서 아들의 결혼 상대를 찾았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금지하고 있는데, 고대 사회에서는 친족 결혼을 어느 선까지 허용했는지요?

유윤종 교수: 이삭은 평생 가나안 땅을 한 번도 떠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어렵게 얻은 약속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이고, 이삭은 약속의 아들이기에 한 번도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단순하게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의 딸이 싫어서 며느리를 친족에서 얻으려고 종을 떠나보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신앙과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려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친족 결혼은 고대 세계에서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이하게 엄격히 허용되지 않지만, 오늘날에도 사촌 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국가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복동생과 결혼했는데, 이것은 성경에서 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 시대는 모세 율법 이전 시대이므로 그 법을 적용받지 않았다고 봅니다. 어쨌든 친족 결혼은 인류의 보편사적인 사회적 관습으로 봤을 때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본문을 이해할 때는 아브라함이  신앙의 순수성을 위해 이런 친족결혼을 허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전 목사: 야곱은 장자권을 소유하려고 태에서부터 형 에서와 엄청나게 투쟁했습니다. 결국 야곱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아 장자권을 소유했습니다. 당시 장자권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나요?

유윤종 교수: 우리나라에서도 장자권은 중요합니다. 어느 사회나 장자의 기득권은 대부분 인정합니다. 성경에서는 야곱이 장자 르우벤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을 보면 “너는 내 기력의 시작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자손을 낳는 능력의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신21:17). 따라서 인간 입장에서 장자권은 특권이자 책임이라고 볼 수 있고, 하나님 입장에서는 ‘창조적 섭리에 의한 인정’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농사꾼의 첫 수확’과 ‘한 아버지의 첫 자식’을 기력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소중한 것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면 장자로 태어난 사람은 이를 감사하고, 창조 섭리에 순응해 장자권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에서는 그런 점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장자권 자체를 경솔히 이해했고, 팥죽 한 그릇에 팔아넘기는 부분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대한 불경스러움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족장 사회에서 장자권이 바뀌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에서와 야곱, 이스마엘과 이삭, 요셉과 그의 형제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모두 장자권이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장자권은 하나님 앞에 그 인식을 소홀히 했을 때 바뀔 수 있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번에는 야곱의 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가 보겠습니다.

하란에 있다는 야곱의 우물로 향했다. 야곱의 우물로 알려진 장소는 여러 곳인데 그중 신빙성 있게 여기는 곳이 있어 방문했다.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그의 오빠 라반이 있는 하란 땅으로 보냈다. 야곱은 이곳에서 라반의 딸 라헬을 만난다. 그곳을 ‘야곱의 우물’이라고 한다. 지금은 입구가 열려 있어 오염됐지만, 당시 이곳은 입구를 돌로 막아 두고, 양들에게 물을 먹일 때만 돌을 옮겨 놓았다. 가나안의 도망자 야곱은 이 우물가에서 라헬을 만났다고 한다. 야곱은 우물과 함께한 삶을 살았다. 20년간 양을 치며 들판에서 사는 동안 아내 넷과 자식 열한 명을 얻고 큰 부자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란은 역시 떠나야 할 땅이었다(창31:17~20).

<사진설명> 야곱의 우물 터를 돌아보는 침례신학대학교수진과 윤석전 목사. 장자권을 가로챈 야곱은 살기등등한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이 사는 하란으로 도주했고, 이 우물에서 라헬을 만났다. 18세기만 해도 야곱의 우물이 예전 모습 그대로 실존했으나 아쉽게도 현재는 그 우물이 남아 있지 않고 비슷한 우물이 위치만 지키고 있다.

윤석전 목사: 야곱과 하란의 관계를 말씀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야곱은 믿음의 조상 중 하란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챈 후 살기등등한 형을 피해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하란 땅으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야곱은 우물에서 라반의 딸 라헬을 만납니다. 야곱이 라헬을 만났던 우물은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처음 본 우물과는 구조상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종을 만난 우물은 대로변에 있었습니다. 우물의 구조도 물동이를 이고 밑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물을 길어 올라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우물은 들판에 있고, 평상시에는 큰 돌로 그 입구를 막아 놨다가 양들이 모이면 돌을 치우고 물을 먹이는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우물가에서 야곱은 라헬을 만나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 들어가 하란에서 기나긴 생활을 시작합니다. 야곱은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삼아 14년을 봉사하고 라반의 양 떼를 돌보며 6년간 하란에서 봉사합니다. 모두 20년을 하란 땅에서 보내게 된 셈입니다. 또 하란에서 두 아내와 두 아내의 몸종을 통해 막내아들 베냐민을 제외한 아들 열한 명을 낳았고 많은 재물을 얻었습니다.

석전 목사: 야곱은 실제로 하란에서 얼마나 살았을까요?

유윤종 교수: 야곱은 20년 동안 하란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렇다면 20년 동안 뭘 하고 어떻게 살았을까요? 라반의 집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이고, 생활 방식은 유목민이었던 같습니다. 토지를 찾아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닌 순수한 유목민은 아니었고, 정착하면서 양과 가축을 키우는 생활을 했습니다. 20년이 지나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땅을 떠나기 쉽지 않습니다. 자식 낳고 살다 보니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을 즈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가 느껴져서 자기 할아버지 아브라함처럼 하란 땅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란은 머물 장소가 아니라 항상 떠나야 하는 장소로 이해됩니다. 야곱은 성경에서 얍복 강을 건너는 과정,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 놀라운 신앙 경험을 하면서 죄 많고 허물 많은 인물이지만, 궁극적으로 열두 지파(支派)의 아버지,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始祖)가 되고, 하나님의 구원사적인 약속의 계보를 잇는 인물로 거듭나게 됩니다.

윤석전 목사: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은 모두 하란 우물가에서 그들의 아내를 택합니다. 사실 예수님도 수가 성 우물가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여인을 만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우물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유윤종 교수: 구약성경에 우물가에서 아내를 만나는 사건이 하나 더 나옵니다. 모세가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갔을 때 ‘십보라’를 만나는 장면도 역시 우물가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물가’는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는 곳이기에 자연스럽게 많은 사건이 일어나는 공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수가 성 우물에서 목마르지 않은 영원한 생수를 말씀하십니다. ‘우물’과 ‘결혼’의 유대 관계를 보면, 우물은 생명의 근원을 제공하는 장소입니다. 결혼도 마찬가지로 부부라는 관계를 통해서 목마를 때 갈증 나지 않도록 생수를 주고, 생명을 탄생시킵니다. 결국 생명의 근원이라는 의미에서 결혼과 우물이 영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란에는 야곱이 20여 년간 살았으니 야곱과 관련한 유적이 많을 듯합니다.

오택현 교수: 대표적이고 유명한 유적은 야곱과 라헬이 만난 우물입니다. 주후 18세기에 여행자 중 한 명이 하란에서 그린 삽화를 보면, 야곱의 우물이 그때까지도 예전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현재는 그 우물이 남아 있지 않고, 비슷한 우물이 위치만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윤석전 목사: 아브라함, 야곱, 이삭이 모두 하란과 관련돼 있는데요, 고대에 발견된 자료나 고고학적 문헌에 이들에 관한 자료가 있나요?

유윤종 교수: 하란이나 고대 근동 지역 자료에서 족장 사회를 증명할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는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 후대의 전승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발굴된 기록으로 봤을 때 말이라든지 에볼라에서 나온 개인의 이름들 중에서 놀랍게도 ‘아브라함’, ‘야곱’, ‘에서’라는 이름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름의 발견은 고대 근동 사회에서 창세기 족장들이 살았다는 역사적인 개연성을 높여준다고 봅니다.

윤석전 목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들은 이스라엘 믿음의 조상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장자는 혈통상 된 것 같지만,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섭리로 장자가 되고, 하나님이 쓰시는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어떻게든 장자가 되려고 노력했고, 실제 혈통의 장자가 아닌 사람을 세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세우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든 성도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이 신앙생활을 바로 하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자녀들이 그것을 본받고 승리를 가져오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1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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