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70)] 구약의 역사성을 보여 주는 누지(Nuzi) 문서

등록날짜 [ 2017-04-20 12:49:07 ]

창세기에 ‘힛데겔’로 기록된 티그리스 강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원지이자 구약성서와도 관련 깊어
강 중류 ‘누지’ 지역에서 발굴된 문서들
구약 족장 시대의 역사적 배경 입증해
성경은 허구가 아닌 역사적 ‘사실’이자 ‘진리’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 풍성히 넘치기를


윤석전 목사: 물은 인간의 삶에서 뗄 수 없는 절대 요소입니다. 물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 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에덴동산에도 4대 강이 흘러 아담과 하와가 풍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 강 중에서 지금도 유유히 흐르는 티그리스 강으로 가 보겠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젖줄 티그리스 강으로 향했다. 유프라테스 강을 사이에 두고 비옥한 메소포타미아 땅을 탄생시킨 티그리스 강은 길이가 1899km에 달할 정도로 장대하다. 티그리스 강 유역 사람들은 고대(古代)부터 물을 이용해 농경과 목축을 발전시키며 생업을 이어 왔다. 티그리스 강은 창세 시대부터 강줄기를 따라 펼쳐진 복음의 역사를 담고 흐르는, 여전히 위대한 강이다.

<사진설명> 티그리스 강 부근 키르쿠크 남서쪽에 있는 고대 도시 누지(Nuzi).

윤석전 목사: 티그리스 강은 4대 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생지입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젖줄인 티그리스 강을 자세히 안내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티그리스 강은 터키에서 발원하여 이라크를 지나 페르시아 만(灣)으로 들어갑니다. 터키어로 ‘디즐레’ 강이라고 부릅니다. ‘화살’이라는 뜻인데 유량(流量)이 풍부하고 물살 빠른 티그리스 강의 특성을 잘 드러냅니다. 티그리스 강 유역에는 고대부터 많은 도시가 발전했습니다. 대표적인 도시는 니느웨·누지 등인데, 고대 문명을 일으켰던 거대한 도시들입니다. 성서에 기록된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발원지가 오늘날 터키 지역과 일치하고, 두 강이 에덴동산에서 발원되었다고 믿기에 터키 사람들은 티그리스 강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현재 터키 티그리스 강에는 홍수를 대비해 많은 댐을 건설하고 있어 예전과 같은 풍부한 강의 위력을 볼 수 없지만, 여러 군데 남아 있는 고대 유적의 흔적에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장소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티그리스 강은 구약 시대 ‘힛데겔 강’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성경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유윤종 교수: 창세기 2장 10~14절에 언급했듯, 에덴동산에서 발원한 강은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입니다. 티그리스 강은 구약성서에서는 ‘흐르는 강’이라는 의미를 지닌 ‘힛데겔’로 나오고, 강 중에 세 번째로 이름이 등장하며, 앗수르 동편으로 흐른다고 기록됐습니다.

유프라테스 강은 천천히 흘러 침전 현상이 많이 발생하는 반면, 티그리스 강은 유속이 빨라 ‘흐르는 강’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합니다. 창세기 2장에서 티그리스 강이 에덴동산에 흐르는 강 중 하나였다고 기록된 사실은 당시 사람들이 이 강을 세계 중심 가운데 하나로 이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티그리스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가가 앗수르(현대 시리아)입니다. 이처럼 티그리스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들을 성서 속에서 친숙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티그리스 강 부근에는 ‘누지(Nuzi)’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누지는 구약성서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그곳에서 어떤 민족이 어떤 문화를 누리면서 살았는지 궁금합니다.

오택현 교수: 누지는 티그리스 강 중류에 있는 도시이며, 대략 기원전 15세기에 많은 사람이 거대한 도시를 형성하고 살았습니다. 그 후 3000여 년 정도 폐허 속에 묻혀 있던 이 지역은 1925년 미국 고고학자 ‘에드워드 키에라(Edward Chiera)’에 의해 발견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곳을 통해 구약성서의 비밀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누지의 현재명은 ‘요르간 테페’이고, 후루족이 살았습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찬란한 문화와 문명을 꽃피웠던 발전상은 토판(土版) 문서를 사용한 데서 알 수 있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후루어, 아카드어를 사용해 자신들의 삶과 역사를 토판 문서에 기록했습니다. 3500년 전에 이미 자신들의 삶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상당한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킨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지 문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믿음의 조상들이 살아온 모습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누지’라고 하는 장소는 구약성서 중 특히 믿음의 조상들의 행적을 말하는 데 중요합니다.

티그리스 강 부근 키르쿠크 남서쪽에는 고대 도시 누지(Nuzi) 유적이 있는데 1925년 미국 고고학자가 발견한 후 지금까지 계속 발굴되고 있다. 그 화려함의 빛을 여전히 담고 있는 각종 유물은 당시 이 지역 문화 수준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곳을 지배하던 미탄니 왕국은 주전 15세기에 강성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기록한 토판 문서 3500여 점을 남겼다. 누지 문서는 같은 시기에 그 부근에 살던 아브라함 등 구약 속 인물들의 행적을 입증하고 있다. 누지의 토판 문서는 성서 역사와 인간 역사가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리는 하나님의 메시지다.

<사진설명> 티그리스 강 부근 키르쿠크 남서쪽에서 발견된 고대 도시 누지(Nuzi)의 유적. 1925년 미국 고고학자가 발견한 후 지금까지 계속 발굴되고 있다. 이곳을 지배하던 미탄니 왕국은 주전 15세기에 강성하였는데 자신들의 삶을 기록한 토판(土版) 문서 3500여 점을 남겼다. 누지 문서는 같은 시기에 그 부근에 살던 아브라함 등 구약 속 인물들의 행적을 입증하고 있다. 누지의 토판 문서는 성서 역사와 인간 역사가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리는 하나님의 메시지다.

윤석전 목사: 누지 문서를 만든 미탄니 왕국은 어떤 나라였는지 말씀해 주세요.

유윤종 교수: 구약성서에는 ‘미탄니 왕국’이나 ‘누지’라는 지명이 나오지 않지만, 그 나라에 살던 후르 민족에 관한 이야기는 나옵니다. 미탄니 왕국 도서관이 발굴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히타이트나 이집트와 같은 다른 나라 문서로 알 수 있습니다. 미탄니 왕국의 지리적인 경계는 카부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동쪽은 티그리스 강, 서쪽은 알레포까지 이릅니다. 이 나라 수도는 ‘마스카니’, 인종은 셈족 계열이라기보다는 인도·유럽인의 특성을 잘 보여 줍니다. 기원전 17~15세기경 막강한 전차와 기마병을 무기 삼아 히타이트와 경쟁 관계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히타이트를 견제하고자 이집트와 동맹을 맺기도 하면서 정치적 관계에도 활발하게 참여합니다. 나중에는 히타이트의 손에 멸망하는데 우리가 주목할 점은 히타이트와 맺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외교문서입니다. ‘수필롤리우마스(히타이트 왕)’와 맺은 조약 문서를 보면 당시 미탄니 왕국이 얼마나 세계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누지에서 발굴된 토판 문서가 구약성서와 관련이 깊다고 하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유윤종 교수: 창세기 15장 2절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종인 엘리에셀을 양자(養子)로 삼았다고 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누지 문서를 보면 자식이 없을 때 양자를 삼아 재산 상속을 하는 규정이 나옵니다.

창세기 16장에는 사라가 자식을 얻지 못하자 자신의 몸종 하갈을 남편 아브라함에게 들여보내 아들을 낳게 합니다. 누지 문서에도 자식이 없을 때는 몸종을 주어 대를 잇게 하는 규정이 나옵니다. 이럴 경우, 후에 본처에게서 자식이 태어나더라도 몸종에게서 태어난 자식을 내어 쫓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기록해 놓았는데 이는 당시 관습법에 반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또 라헬이 아버지의 집에서 나오면서 ‘드라빔’을 가지고 옵니다. 드라빔은 ‘수호신’으로 가족을 단결시키는 중심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징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라헬이 드라빔을 가지고 나온 것은 아버지 라반의 재산을 상속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형이 죽었을 때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는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 유언에 따른 재산 상속 등 다양한 기록이 창세기와 유사합니다. 따라서 누지 문서는 당시 족장 시대의 관습법을 깊이 이해하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누지 문서 발굴이 기독교사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요?

오택현 교수: 1960년대 구약 신학계 양대 산맥인 독일 학자 게르하르트 폰 라트(Gerhard von Rad, 1901~1971)와 미국 학자 G. 어니스트 라이트(G. Ernest Wright, 1909~1974) 사이에 ‘창세기에 나타난 믿음 조상들의 역사성’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폰 라트는 믿음의 조상들 속에서 역사적인 모습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라이트는 믿음의 조상들 속에서 역사적인 핵심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구약 신학계에서는 믿음의 조상들의 역사성 존재 여부가 오랫동안 화두(話頭)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지 문서가 발견되면서 믿음의 조상들의 역사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또 3500년 전 삶의 배경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구약성서 비밀을 여는 데 누지 문서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창세기에 나타나는 믿음의 조상들의 여러 행적은 오늘날의 잣대로는 통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장자권’을 사고파는 문제입니다. 오늘날 내가 동생에게 장자권을 팔았더라도 법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고대 근동에서는 장자권을 사고팔 수 있었고, 그것이 팥죽 한 그릇으로도 가능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계와 구약학계에 누지 문서가 한 역할은 매우 큽니다.

윤석전 목사: 티그리스 강 유역에는 어떤 유적이 있나요?

오택현 교수: 구약성서와 관련한 많은 유적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앗시리아 수도 니느웨 유적입니다. 앗시리아가 이스라엘 역사나 유다 역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고대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의미보다는 나쁜 의미가 많은데, 앗시리아 종교를 강제로 이스라엘에 섬기게 하고, 이스라엘을 문화적으로 종속시키려 했습니다.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를 발굴해 보면, 당시 이스라엘에 영향을 끼쳤던 종교·문화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고 외친 요나 선지자의 무덤이 니느웨에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은 아브라함은 첩을 통해 얻은 자식을 내쫓을 수 없다는 당시 관습법을 깼는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유윤종 교수: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 의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아브라함도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처음부터 자식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지 못했기에 당시 관습법에 따라서 하갈을 첩으로 맞아 아들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일차로 하나님 말씀을 따르기보다 관습법을 따른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후에 이삭이 태어나면서 문제가 발생하자 이번에는 관습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첩과 첩의 자식을 쫓아냈습니다. 신앙인은 관습법과 신앙의 법 사이에서 반드시 신앙의 법을 우선합니다. 아브라함이 그 당시 관습법을 따르거나 어김으로써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 안에서 승리했기에 우리가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누지 문서가 믿음의 조상의 역사성을 드러내 성경을 보증하고 변증하는 데 큰 뒷받침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은 우리에게 정확한 믿음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사신 모든 생애는 구약성경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나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요4:13~14).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물이 되고 생명이 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주의 만찬을 통해서 영원한 음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역사와 믿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풍요로운 생명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2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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