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07-04 14:29:43 ]
300년 전 다윗이 통일왕국 수도로 정한 후 발전 거듭했지만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 할 때마다 철저하게 파괴되는 역사 반복해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 땅 예루살렘을 살펴보겠습니다.
기독교 역사의 살아 있는 보고(寶庫)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3000년 전, 다윗 왕이 통치할 때 예루살렘은 주민 2,000가량의 작은 도시였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라는 전성기를 거친 후, 주전 587년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무참히 파괴되고 성전도 무너졌다. 그 후 헤롯 대왕이 황금 예루살렘 성을 재건했다(B.C.20~A.D.64). 하지만 로마의 디도(Titus)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은 완전히 폐허가 된다. 현재는 115km²규모의 대도시지만, 이 도시에서 기독교인의 가장 큰 관심사는 1km²규모의 구(舊) 예루살렘이다. 그 중 마가다락방 아래층에 있는 다윗의 무덤은 가장 중요한 성지 중 하나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통일 왕국의 수도로 정했다. 그는 로마의 핍박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시야 대망(待望)의 모체(母體)로 군림했던 위대한 왕이다. 예루살렘 성지 중 또 다른 거룩한 역사적 장소는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지고 걸어가셨던 길, ‘비아 돌로로사’다. 성묘(聖廟)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로 가는 길과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은 인간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는 완전한 사랑의 길을 걸어가셨다. 예수님은 외롭게 골고다로 향하셨다. 그 후 예루살렘은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담은 거룩한 현장이 되었다.
<사진설명> 예루살렘 올드시티 전경(위). 기독교 역사의 살아 있는 보고(寶庫)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처음으로 성전을 건축하여 예배드린 후, 중앙 성소(聖所) 역할을 했기에 ‘거룩한 도시’가 됐다. 헤롯대왕이 지은 예루살렘 제2성전은 주후 70년경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 파괴됐다. 통곡의 벽(아래)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서쪽 벽이다.
윤석전 목사: 예루살렘이 언제부터 성경 전면에 등장했는지 궁금합니다.
오택현 교수: 예루살렘은 여부스 족속(Jebusites)이 다스리던 도시였습니다. 사사시대까지는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 헤브론(Hebron)에 도읍을 정할 때까지만 해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역사와 별 관계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다음 사울의 남은 세력과 긴 전쟁을 벌입니다. 결국 사울의 남은 세력은 다윗에게 항복하고, 통일왕국은 완성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남북의 지역감정이 문제였습니다. 사사시대 이전부터 유다 지파와 나머지 열한 지파 사이에 지역감정이 뿌리 깊었습니다. 그 때문에 남쪽 도시인 헤브론을 통일왕국의 수도로 남겨 둔다면 북쪽 사람들이 반발할 것이 눈에 보듯 뻔했습니다. 예루살렘은 남과 북 어느 지역에도 소속하지 않았기에 다윗이 통일왕국의 수도로 택합니다. 남과 북이 힘을 합해 예루살렘을 점령해서 명실상부한 통일왕국의 수도로 만들자는 의도를 밝힌 것입니다. 주전 1004년, 여부스 족속이 다스리던 예루살렘을 함께 침략해 점령해서 통일왕국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루살렘’ 하면 ‘거룩한 도시’ ‘신성한 도시’를 떠올리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오택현 교수: 예루살렘을 거룩한 도시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과 다윗 사이에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7장 이하에 나타나는 언약은 두 가지 기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기둥은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를 영원한 왕조로 선택해주신다’는 약속이고, 둘째 기둥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예루살렘을 거룩한 도시로 만드신다’는 약속입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 왕조는 영원한 왕조가 되고, 예루살렘은 모든 이가 흠모하는 거룩한 도시가 됐습니다. 다윗 시대에는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었습니다. 이후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여 예배드린 후 중앙 성소(聖所) 역할을 하면서 거룩한 도시로서 면모를 갖춰나갔습니다. 이후 역사에서 예루살렘은 중앙 성소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현재 예루살렘은 67만 명이 사는 큰 도시인데, 다윗 왕 시절에는 어느 정도 규모였나요?
왕대일 교수: 예루살렘은 주전 1000년경 역사 무대에 처음 등장합니다. 그때는 2,000명가량이 거주하는 2만 평 남짓한 좁은 도성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려고 북쪽에 성전 터를 마련하면서 예루살렘이 확장됐습니다. 히스기야 왕 때는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서쪽을 확장하면서 예루살렘 규모가 커졌습니다. 느헤미야 시대를 거치면서 조금 작아졌지만, 주전 1~2세기경 구약과 신약 중간 시대에 있던 하스모니아 왕조(Hasmonean, B.C.142~B.C.63)가 북서쪽에 궁전터를 마련하면서 네 배로 크게 성장합니다. 그러다 예수님 당시에 현재 예루살렘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당시로는 엄청난 크기인 55만 평 규모에 인구 8만 명가량 거주하는 대도시였습니다.
한 민족이 자유를 회복했다는 것은 전란(戰亂)의 역사를 극복하고 본연의 민족정신을 되찾았다는 의미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이스라엘도 전란의 역사로 얼룩졌다. 그 증거물이 ‘통곡의 벽’(Wailing Wall)이다. 주후 70년 이스라엘은 디도 장군에 의해 처참히 무너지고 성전은 서쪽 벽만 남았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전 세계 유대인은 뼈아픈 과거의 장소인 통곡의 벽에 소망의 쪽지를 남기면서 과거는 잊지 말고 반복하지도 말자는 결의를 다진다. 통곡의 벽을 지나면 이슬람 모스크인 황금 돔 사원(Dome of the Rock)이 위엄을 과시한다. 솔로몬의 성전 터이자 아브라함의 생생한 역사가 살아 있는 곳이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 명하신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는데 그때 사용했다는 바위 제단이 남아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행하신 믿음의 시험을 순종하여 통과했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그런 곳에 이슬람 모스크가 세워져 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바친 성전 터에 이방 신전이 서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은 아직 진정한 자유를 회복하지 못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 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시편125:1~2)
윤석전 목사: 다윗이 이룩한 통일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어디인가요?
왕대일 교수: 당연히 성전(聖殿)입니다. 우리가 예루살렘을 찾아가는 이유는 정치, 경제, 사회 중심지이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하늘에 닿기 쉽다는 의미로 성전을 높은 곳에 지었습니다. 종교학자는 성전을 ‘하늘에 이르는 통로’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경우엔 음부의 세계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으로 여겨 산속 동굴에도 성전이 있었습니다. 종교학자가 성전을 하늘에 이르는 통로로 여긴 시각에서 본다면, 예루살렘 성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찾아가는 관문(關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실 때 그 이름을 두려고 선택하신 곳이 성전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셔서 자기 이름을 주시고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하신다는 의미가 ‘성전’입니다. 그 뜻이 예루살렘을 가장 고귀한 장소로 만드는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계21:2). 이는 말세에 일어날 일을 기록한 성경 말씀입니다. 이렇게 묘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오택현 교수: 예루살렘은 왕정시대까지 중앙 성소(聖所)로 위치를 굳건히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던 중에 큰 위기가 닥칩니다. 다윗 언약은 커다란 두 기둥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왕조 다윗을 선택했다’와 ‘하나님의 이름을 주시려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쳐들어왔을 때 다윗 왕조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두 눈을 뽑힌 후 결박돼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임을 당합니다. 또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예루살렘 성이 처참하게 무너집니다. 과연 아직도 하나님의 언약이 유효한지, 아니면 하나님의 힘이 약해 바벨론의 신에게 진 것인지 의문을 품으면서 다윗 언약에 대한 신앙이 위기에 처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사장과 예언자와 서기관은 위기의 역사에 대응해 다윗 언약을 재해석합니다. 눈에 보이는 다윗 왕조는 망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다윗 왕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다윗 왕조에서 한 사람을 선택해 기름 붓고 이스라엘을 회복해 주실 것이라는 메시야 기대 사상으로 다윗 왕조의 신앙이 발전합니다. 또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은 붕괴되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예루살렘을 예비하여 마지막 날에 새 예루살렘이 도래할 것이라는, 예루살렘을 종말론적 대망(待望)의 장소로 승화(昇華)시킵니다.
윤석전 목사: 예루살렘이 겪은 수난의 역사를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왕대일 교수: 예루살렘 수난의 역사는 정치와 사회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 신앙의 각도에서 새겨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있는 지리적 환경을 살펴보면, 남쪽엔 애굽, 북쪽엔 히타이트의 땅 터키, 또 북동쪽엔 앗수르와 바벨론이 있었습니다. 주위에 열강이 포진해서 예루살렘은 정치, 사회로 볼 때 전란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듯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지만 예루살렘은 절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온은 구원의 산성(山城)’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주전 587년에 예루살렘은 바벨론 느부갓네살 군대에 패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유대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가 주전 515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을 증축했습니다. 그 예루살렘이 느헤미야 시대를 거쳐서 계속 이어지나 했는데 곧 로마 시대가 시작되고 로마가 전 세계를 장악하면서 주후 70년에는 예루살렘이 완전히 무너지고 맙니다. 정치, 사회 면에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점령해야만 전 세계를 통일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아픈 역사를 겪은 도성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앙 면에서 예루살렘의 수난을 생각해보면 정치적인 까닭 말고도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자기 이름을 두시려 이 땅에 세운 성전인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는 저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셔서 일깨워 주셨는데도 계속 불순종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깨우치게 하시려 채찍과 막대기로 사용하신 것이 아픈 역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레미야가 바벨론 제국 느부갓네살 왕을 ‘하나님의 종(렘27:6)’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역사 속에 많은 아픔을 겪어 ‘신앙을 깨우치라’는 뜻이 예루살렘 수난의 역사 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찬송가 606장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뜻은 예루살렘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오택현 교수: 우리에게 ‘요단강을 건너간다’는 것은 죽음의 선(線)을 건너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 만나는 장소는 영원한 천국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형으로 보면 요단강을 건너서 만나는 장소는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루살렘’은 눈에 보이는 장소가 아니라 종말론에서 말하는 대망(待望)의 장소로 승화된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우리는 다윗 언약의 의미를 알고 이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이 오늘날 전쟁 화약고가 된 이유는 무엇인지요?
왕대일 교수: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예루살렘 역사를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기독교인에게도 성지(聖地)이고, 유대교인과 이슬람교도에게도 성지입니다. 서로 자기만의 성지라고 우기다 보니 그 땅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 탓에 전쟁을 일으키고 종파 간에 분쟁합니다.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마다 적어도 우리만큼은 화해와 평화를 이루고자 애쓰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뿌리에서 나오셨다(마1:1)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가로막힌 죄를 사해주시려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돌아가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 증거로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임하셔서 우리와 하나 된 것을 보증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습니다(행13:2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피의 공로로 구원받은 자로 하나님과 하나 됐기에 성령님이 우리 안에 와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신령한 관계를 맺고, 이웃과도 화목하게 지내야 합니다. 남과 북이 화목을 이루어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복음 전도의 도시가 된 예루살렘처럼 아름다운 복음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3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