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07-19 07:24:52 ]
예수님이 나귀 타고 입성하신 황금문 16세기 이슬람에 의해 굳게 닫혀
이스라엘-아랍 6일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시온문
윤석전 목사: 사람이 왕래하는 곳에는 언제나 문이 있습니다. 문을 통과해야 들고 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도 문이 여덟 개나 있었는데 각각 어떤 의미와 역사를 지지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구예루살렘의 대표 성지 성전산(聖殿山)으로 향했다. 이곳은 세계 3대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에서 자기들의 성소(聖所)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산 동편에는 통로를 막은 ‘황금문(Golden Gate)’이 자리 잡고 있다. 유대인은 메시아가 올 때 현재 막힌 황금문이 열린다고 믿고 있다(겔44:1~2). 그때 가장 먼저 부활에 참예하고 싶은 유대인의 소망이 황금문 일대를 묘지로 가득하게 했다. 근처 아랍 마을 사람들도 마지막 심판 날에 황금문 근처 무덤부터 열릴 것을 굳게 믿고 있다.
예루살렘 성문들은 적의 침입 시 방어할 수 있게 ‘나’자 형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런 문 여덟 개가 성벽을 따라 연결돼 있다. 여덟 개 문 중 ‘분문(糞門, Dung Gate)’은 예루살렘 성문 중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문이다.
분문을 통과하면 통곡의 벽이 나온다. 주후 70년경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일하게 남은 서쪽 성벽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 이 서쪽 성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1967년 요르단과 6일 전쟁을 일으켰고, 6일 만에 이곳에서 한을 풀어냈다. 성벽을 따라 예루살렘 남쪽으로 가다 보면 전쟁 상흔을 생생하게 담은 시온문(Zion Gate)을 만난다. 6일 전쟁 당시 이 문은 최고 격전지였다. 성벽에 난 총탄 자국은 그날의 아픔을 생생히 말해 준다.
<사진설명> ① 황금문: 종려주일에 예수님이 이 문을 통과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다. 예루살렘 여덟 문 중 유일하게 닫혀 있는데, 유대인은 메시아가 오실 때 이 황금문이 열린다고 믿고 있다. 이미 오신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때 가장 먼저 부활에 참예하고 싶은 유대인의 소망이 황금문 일대에 대규모 묘역을 형성했다.
② 욥바문: 예루살렘 성 서쪽에 난 유일한 문이다. 지중해 연안에 있는 욥바항으로 가는 길목이다. 1918년 영국 에드먼드 알렌비 장군이 오스만 터키와 싸워 예루살렘 성지를 수복한 후 이 문으로 들어와서 유명해졌다.
③ 시온문: 예루살렘 성 남쪽에 있다. 1967년에 벌어진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6일 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다. 지금도 성문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다. 아르메니아 지역 주변에 있고, 베드로통곡교회 등 유적이 있다.
④ 다메섹문: ‘다메섹을 향하고 있다’ 해서 이름 붙은 문이다. 예루살렘 여덟 문 중 가장 크다. 사울이 바울 되기 전, 예수 믿는 유대인을 잡으려고 이 문을 통과해 다메섹으로 갔다. 바울의 새 역사가 시작되는 통로인 셈이다.
윤석전 목사: 구 예루살렘에 있는 여덟 문 중에서 예수님이 종려주일에 입성하셨다는 ‘황금문’의 특징과 성경에 나타난 의미를 말씀해 주세요.
왕대일 교수: 예수님이 종려주일 입성하실 때 황금문을 통해서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16세기 전까지만 해도 성지순례 하는 사람들은 종려주일에 황금문을 통과해 성전으로 갔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 있는 겟바게에서 출발해 감람산을 넘고 기드론 계곡을 거쳐 황금문을 통해 성전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 길이는 2km 정도입니다. 예루살렘의 여덟 문 중 일곱 문은 열려 있는데 황금문만 유일하게 닫혀 있습니다. 문의 흔적은 있으나 다 메워 놓았기에 제구실을 못 합니다. 16세기 오스만 터키가 그곳을 장악하면서 그 문을 막았다고 하는데, 유대인은 자기들이 신성모독죄로 죽인 예수가 그 문을 통해 다시 들어올까 봐 영원히 오지 못하도록 그 문을 막아 버렸습니다. 황금문은 종려주일에 예수님이 지나가신 문이면서, 유대인에게는 메시아가 들어올 관문이기도 합니다.
윤석전 목사: 시온산에 있는 시온문이 전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지금 예루살렘 시온산에 있는 문은 16세기 오스만 터키의 술레이만 1세가 다시 만든 것입니다. 시온산에 있는 시온문을 처음 보면 의아할 수 있습니다. 시온산 입구에 있는 문이라면 시온산이 성안에 있어야 하는데 성문 밖에 있습니다. 술레이만 1세도 시온산이 성문 밖에 있는 것에 불만을 품고 문을 설계한 사람을 참수(斬首)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있는 시온산과 구약 시대의 시온산은 다릅니다. 20세기 고고학자들의 발굴 결과, 현재 시온산은 구약 시대 시온산이 아니라고 의견을 모았는데, 구약 시대 시온산은 훨씬 더 남쪽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000 년 동안 시온산을 잘못 불러서 그것이 전설이 된 것입니다. 즉 현재 시온산은 구약 시대의 시온산이 아닌데도 시온산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우리가 부르는 시온산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6일 전쟁이 벌어졌는데, 지금도 그때 쏜 총알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시온문 주변은 아르메니아 지역인데, 베드로통곡교회 등 유적이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루살렘 여덟 문 중에는 쓰레기를 버리는 문이 있다면서요?
왕대일 교수: 예루살렘 여덟 문이 성경에 다 나오지는 않는데 쓰레기를 버리는 문은 나옵니다. 예레미야 19장 2절을 보면 ‘질그릇 조각의 문’이라고 부릅니다. 오지그릇, 항아리, 혹은 생활 속에서 버리고 싶은 것들을 그 문을 통해 나가서 버리는데, 문밖으로 나가면 힌놈 골짜기로 연결됩니다. 여덟 문은 각각 고유의 기능을 합니다. 성전에 들어간다든지, 다메섹으로 들어간다든지 모두 고귀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분문(糞門)’은 유일하게 쓰레기를 버리는 하찮은 기능을 합니다. 고귀한 기능을 하는 것들이 있으면 그 옆에는 낮고 천한 역할을 하는 것도 하나는 있다는 깨달음을 줍니다.
윤석전 목사: 예루살렘 성문으로 다시 한번 가 보겠습니다.
예루살렘 북쪽 성벽 근처에는 토착민이 자주 이용하는 재래시장이 있다. 세겜을 거쳐 고대 상업도시 다메섹(Damascus)으로 가는 길이 시작되는 길목이어서 예부터 물건을 사고팔려는 사람이 늘 붐볐다. 이 시장 입구에 다메섹 문이 있다. 예루살렘 성벽 문 중 가장 크다. 적을 방어하려고 세운 문이다. 이 안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먹거리를 사고팔며 생활을 영위했다. 2000년 전, 바울 되기 전 사울은 예수 믿는 유대인을 잡으려고 이 문을 통과해 다메섹으로 향했다. 다메섹 문은 바울의 새 역사가 시작되는 통로였다.
예루살렘 성벽 서쪽 욥바문(Jaffa Gate)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욥바항으로 가는 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헤롯 안티파스 집 부근에 있는 헤롯문(Herod’s Gate)은 아랍 지구로 연결되는 통로다. 성벽 동쪽에 있는 사자문은 기드론 골짜기로 통한다. 이처럼 예루살렘 여덟 문은 새로운 목적지로 나아가는 관문이었다. 그 문 중 한 곳을 통해 인류 구원의 대역사를 이루시려고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셨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 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 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시편24:7~9).
윤석전 목사: ‘사자문’이라고도 하는 ‘스데반문’을 소개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사도행전에 보면 스데반 집사가 성 밖에서 순교했습니다(행7:58~60). 그 전승을 따라 스데반이 순교한 장소에 문을 세워 스데반문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다른 전승을 따르면, 오스만 터키를 장악했던 술레이만 1세가 꿈을 꾸었는데 사자 네 마리가 나타나 그를 잡아먹으려 했다고 합니다. 그 꿈을 계기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을 재정비하고 주위 성벽을 다시 세우고 네 마리 사자상(像)을 부조로 새겨 사자문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스데반문을 지나면 바로 베데스다 연못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5장 2절을 보면 베데스다 연못이 양문(羊門) 옆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문 자리를 ‘양문’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윤석전 목사: 성문에 관련한 이야기가 많은데 당시 성문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왕대일 교수: 성문에 붙어 있는 성읍 안 광장은 ‘만남의 광장’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누군가를 만나고자 할 때, 성문 안 광장에서 만났고, 이곳에서 물물 교환도 했습니다. 이렇게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모스 5장 15절 말씀을 보면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찌어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문제가 생기면 광장에 가서 거기 있는 장로들에게 판결을 구했고 성읍 안 광장에서 재판했습니다. 성문, 광장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말로는 ‘마당’에 해당합니다. 광장은 큰 마당이 되어서 만나기도 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기도 하고, 서로 정을 주는 장소의 역할을 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 밖에도 예루살렘 성 주위의 여러 문을 소개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다메섹을 향하고 있다’ 해서 이름 붙은 ‘다메섹문(Damascus Gate)’은 가장 큰 문이고, 아랍 지역에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수많은 아랍 사람이 모여 살고 시장이 자주 섭니다. 다메섹문과 황금문 사이에 헤롯문이 있습니다. 문 근처에 헤롯궁이 있어서 헤롯문이라고 불렀는데 꽃을 많이 팔아서 ‘꽃문’ ‘화문’이라고도 부릅니다. 또 새문(New Gate)이 있는데 이 문은 기독교 지역으로 향하는 유일한 문입니다. 1899년에 새로 만들어져서 불렀습니다. 요르단이 이 지역을 다스린 1948년 이후에는 닫혔다가 1967년 6일 전쟁을 일으켜 이스라엘이 이 지역을 회복한 후 현재 자유롭게 오가는 문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문은 욥바문입니다. 욥바문은 예루살렘 서쪽에 난 유일한 문이고, 욥바를 향하고 있어서 욥바문이라 부릅니다. 1918년 영국 에드먼드 알렌비(Edmund Allenby) 장군이 오스만 터키와 벌인 싸움에서 예루살렘 성지를 수복한 후 이 문으로 들어와서 유명해졌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루살렘 성에 문이 여덟 개나 있는 이유와 그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왕대일 교수: 문은 통로 역할을 합니다. 그 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성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성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려면 다메섹 문으로 가듯이, 문마다 고유 기능이 있습니다. 그 문들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의미는 ‘그 문이 아니고는 어느 곳에 다다를 수 없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라고 하신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 여덟 문은 생각보다 작습니다. ‘좁은 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은 말을 타기보다는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고,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좁은 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미문(美門)’을 ‘황금문’이라고 하는데 확실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오택현 교수: 사도행전 3장에 나타난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을 보며 일부 사람들은 ‘황금문’이 아름다운 문이기 때문에 미문(美門)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 문은 다릅니다. 성 밖에서 성전으로 가려면 ‘황금문’을 통과해야 하고, 성전 안으로 들어가려면 ‘미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처럼 두 문은 다릅니다. 앉은뱅이가 구걸한 곳은 성전 앞이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루살렘에는 문이 8개 있습니다. 각자 편리한 쪽에서 들어오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죄의 담에 가로막혀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고 싶어도 들어오실 문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59:1~2)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요10:7)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죄를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고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여셨습니다. 이 문은 인류 모두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엄청나게 큰 문입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시며 “다 이루었다” 말씀하실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갈라지면서 누구나 하나님을 만날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병든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 문제 있는 사람은 이 문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뵙고, 그 능력과 사랑과 은혜로 해결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3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