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09-19 18:50:03 ]
요단강은 하나님의 이적이 가득한 현장
믿음의 사람 모세·엘리야·엘리사 앞에서 홍해가 갈라지듯 반으로 갈라져
하나님만 철저히 믿음으로 배경 삼을 때
우리 앞에 놓인 요단강 같은 어려움도 능히 해결하고 넘어갈 수 있어
윤석전 목사: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자연의 섭리를 모순시켜 가면서 이적을 일으킨 사건이 많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왕 바로의 압제에서 풀려나 가나안 복지를 향해 나아가다 홍해를 만났을 때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건너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을 위해 홍해를 가르시고 물속에 있던 대로(大路)를 드러나게 하셔서 그들을 건너가게 했습니다. 누구든지 이 사건을 대할 때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복지로 입성하기 전 요단강이 그들을 막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그 강 역시 가르셨습니다. 홍해와 요단강은 이렇게 하나님이 자연을 모순시키고 이적을 나타내신 장소입니다. 오늘은 요단강을 만나 보겠습니다.
헬몬산에서 시작해 갈릴리 호수를 거쳐 사해로 들어가는 요단강. 전체 길이 320km이며, 이스라엘에서 가장 긴 강이다. 잉어와 지중해 연안 담수어 등 어류 36종이 서식하고 있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셨기에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침례를 받고 싶어 한다. 이렇게 요단강은 예수 그리스도 공생애의 출발점이다. 요단강은 신구약의 대역사를 발원시킨 위대한 강이다.
<사진설명> ① 요단 계곡 지대를 흐르는 요단강은 굴곡이 심한 사행천이다. 헬몬산에서 사해까지 직선 길이는 200km, 강의 전장은 130㎞이지만 구불구불한 굴곡을 모두 측정하면 320㎞다. ② 요단강 침례 터에서 윤석전 목사(좌)와 임동진 목사(우). 임 목사는 성지순례 당시에(2002년) 장로이자 탤런트였다.
윤석전 목사: 요단강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택현 교수: 헬몬산에서 발원해 갈릴리 호수를 지나 사해까지 흘러가는 요단강은 지리학상 특징이 많은데,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요단강은 굴곡이 심한 사행천(蛇行川)입니다. 헬몬산에서 사해까지 직선 길이는 200km입니다. 강의 전장(全長)은 130㎞이지만 뱀이 지나가는 것처럼 구불구불한 굴곡을 모두 측정하면 320㎞입니다. 둘째, 요단강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역을 흐릅니다. 중앙 산악지대와 모압 산악지대 사이에 있는 요단 계곡을 흐르는데, 요단 계곡 높이는 해수면보다 200m 낮고, 제일 낮은 곳은 해수면보다 400m가량 낮은 지역을 흘러갑니다. 셋째, 요단강은 개울 정도 규모이지만 물이 부족한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생명수와 같은 존재입니다. 현재는 상류에 댐을 세워서 이전보다 훨씬 더 적은 양이 하류로 흘러갑니다. 요단강에 가 본 사람들은 실망하는데 규모로 볼 것이 아니라 의미를 봐야 합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 속에서 요단강이 어떤 의미와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왕대일 교수: 요단강의 신학적 의미를 생각할 때 문명 발달과 연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세계 4대 문명은 대개 큰 강을 끼고 발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물 주변에서 문명을 일으켰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점에서 예외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거쳐 요단강까지 왔습니다. 요단강 주변에 자리잡고 정착할 수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가르신 요단강을 거슬러 가나안 땅 중앙 산악지대로 올라갔습니다. 물을 등지고 오히려 험한 산간지대를 개척해 올라갔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여호수아뿐만 아니고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과 롯도 그렇게 했습니다. 서로 가축이 많이 번성해 먹일 물이 부족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9)”고 아브라함이 롯에게 제안했습니다. 그때 롯이 선택한 곳이 요단강을 끼고 있는 들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남쪽까지 이르는 곳을 바라보니 에덴동산 같다고 했습니다(창13:10). 롯이 푸른 초원을 선택한 반면, 아브라함이 선택한 곳은 가나안의 척박한 산간지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름져서 농경생활이 풍요로운 강가보다는 척박한 곳을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선택했다고 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사람은 땅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요단강은 언제부터 성경에 등장했는지요?
오택현 교수: 요단강이 성경에 처음 등장한 것은 창세기이지만, 가장 중요한 사건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건너가는 대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에 40년간 광야생활을 하고 요단강 여리고 맞은편 모압 평지에 이릅니다. 이곳에서 모세는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렇게 살아라’라고 설교를 세 번 하는데 그 설교가 신명기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한 후에 모세는 하늘나라로 가고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라 요단강을 건넙니다. 그때 우기가 끝나서 요단강에는 물이 굉장히 많아 건너기 힘들었습니다. 제사장을 앞세운 법궤가 요단강에 들어갔고 그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이적을 베푸셔서 요단강이 한쪽으로 물이 막히고 하류 쪽으로 물이 다 내려가서 마른 땅이 나타났고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갑니다.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이적을 나타낸 것이 아닌, ‘요단강을 건넜다’는 사실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40년간 괴로운 광야생활을 끝내고 요단강을 건너서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복지 땅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후에는 힘들고 고단한 삶을 끝내고 하나님께서 예비해주신 아름다운 천성(天城),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천국으로 가는 삶을 지칭할 때 ‘요단강을 건넌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우리도 신학적 의미로 ‘요단강을 건넌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양에는 요단강을 신학적으로 승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 있는 요단강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요단강은 굴곡이 심한 사행천(蛇行川)이며 요단 계곡 지대를 흐른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으로 이끈 이스라엘 민족은 요단강가에 와서 진을 쳤다. 지금은 비록 초라한 지명판이 붙은 보잘것없는 지역이지만 당시 이 강은 우기 때면 큰 강물로 돌변했다. 하나님은 이렇게 넘쳐흐르던 물줄기를 끊고 강을 갈라 이스라엘 민족이 강바닥을 밟으며 건너가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온 땅의 주관자임을 선포하신 대사건이다. 이렇게 요단강은 하나님이 열어 가시는 인류 구원의 대역사와 밀접하게 닿아 있다.
<사진설명> 구약성경 여호수아 3:1~4:24에 기록된 요단강 이적의 현장 위치도. 물이 끊어지고 마른땅이 된 지점을 표시했다(위).
요단강을 중심으로 한 동서 지형 단면도(아래).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쌔”(수3:15~16)
윤석전 목사: 성경을 보면, 홍해는 한 번 갈라졌는데 요단강은 세 번이나 갈라지는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요단강이 유독 세 번씩이나 갈라진 이유는 무엇인지요?
오택현 교수: 요단강이 갈라진 이적 자체보다 더 큰 신학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사건 외에도 엘리야, 엘리사 당시에 요단강이 또 한 번 갈라졌습니다.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겉옷을 벗어 요단강을 치니 강이 갈라졌고 엘리야와 엘리사가 함께 걸어갑니다. 엘리야가 여리고 맞은편에 있는 모압 평지에서 승천하자 그가 떨어뜨린 겉옷을 가지고 엘리사가 요단강을 쳤을 때 요단강이 갈라져서 그 길을 건너갔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다시 요단강을 건너갈 때 배를 타도 되는데 왜 겉옷을 벗어 요단강이 갈라지는 역사를 일으켰을까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곳은 엘리야와 엘리사 행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평생 싸웠던 것은 바알신, 즉 바알 종교였습니다. 가나안에서 바알신은 물을 주관하는 신으로 알려졌습니다. 많은 사람은 바알이 물을 주관하고 생명수와 같은 요단강도 주관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요단강이 갈라지는 역사를 보여 ‘물을 주관하는 신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했습니다. 평생 싸워 왔던 것을 승천하기 전에 다시 한번 보여 주었던 것이지요. 엘리야의 사역을 승계했던 엘리사 역시 요단강을 엘리야의 겉옷을 가지고 쳐서 갈라지게 해 자신도 바알과 싸울 것이며 바알은 참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경고했습니다. 여호와만이 ‘참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메시지였지요.
윤석전 목사: 문둥병에 걸린 아람의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를 찾아왔을 때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하고 가라고 말했고 실제로 그렇게 해서 치료받았습니다. 요단강은 이처럼 이적이 일어난 강이었는데요. 이 강에서 일어난 이적이 주는 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왕대일 교수: 요단강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이적이 일어난 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장면에는 나아만 장군을 깨끗하게 하신 사건이 있습니다. 현재 요단강은 상류에 건설된 댐 영향을 받아 개천같이 줄어들었는데요. 250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는 수량이 훨씬 풍부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나아만 장군의 입장에서 보면 요단강은 자신의 고향에서 본 강과는 달리 형편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아만에게 몸을 일곱 번 씻게 해서 치료되는 이적을 보이셨고 그것을 통해 말씀에 순종하는 도리를 가르쳐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는데,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참 보잘것없는 요단강이지만 말씀에 순종해서 그 강을 도구로 삼았을 때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 그것을 나아만이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단강의 신학적 의미를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지금은 요단강이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선이 되었는데, 그 점에 관해 말씀해 주세요.
왕대일 교수: 현재 요단강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경계선 내지 국경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서 시대에는 그런 국경선이 없었습니다. 요단강 서편이나 동편이나 모두 성지에 들어가는 땅이었습니다. 사실 요단강은 좌측에 팔레스타인 중앙산맥, 우측에 요르단 산맥이라는 큰 산맥이 형성되어 있고 그 사이에 요단강이 협곡 모양을 하고 있기에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요단강은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인데, 하나님의 구속사가 펼쳐진 은혜로운 장소가 사람들의 욕심으로 일개 국경선으로 전락해 버린 현장이라는 점도 생각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을 방문할 적에도 요단강 유적을 보여 주고, 요르단에서도 자기들이 주장하는 요르단 성지를 보여 줍니다. 한 요단강을 두고 두 나라가 서로 자기 성지가 진짜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품을 인간의 욕심과 탐욕이 갈라놓고 있는 상황이 국경선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요단강에서 일어난 수많은 이적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 주고,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냈습니다. 우리 모두 신앙의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배경으로 살면서 능력 안에 축복 받고, 요단강이 갈라지는 역사로 사용되듯 우리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사용되는 ‘섭리의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4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