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87)] 광야 위에 세워진 고대 중요 도시 여리고

등록날짜 [ 2017-10-24 17:42:38 ]

광야 한복판에 위치하지만
따뜻한 기후와 풍족한 물 덕분에 큰 도시로 성장해
고대 ‘해안도로’와 ‘왕의 대로’ 잇는 교통 요충지로
예수님 시대에도 헤롯왕의 별장으로 사용돼


윤석전 목사: ‘여리고’를 생각하면 많은 것이 떠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절대적 능력과 이적을 믿고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자 이중 성벽인 여리고는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여리고는 유대 광야 고원 한복판에 자리 잡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여리고를 무너뜨린 하나님의 이적을 다양한 표현으로 드러내고 찬양합니다. 이번 호에는 고대 도시 여리고를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유대 광야 속 ‘종려나무 성읍’인 여리고로 향했다. 19세기 이후 발굴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발굴터는 여리고가 수준 높은 고대 도시였음을 말해 준다. 발굴 작업을 통해 주전 수천 년 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화려한 유물들이 깊게 파인 수직갱에서 출토되고 있다. 여리고가 황량한 광야에서 대도시로 발전한 데는 ‘시험산’이 큰 역할을 했다. 예수께서 마귀의 유혹은 받으셨다는 시험산. 중앙 산악지대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는 시험산 계곡을 흘러 여리고의 겨울 들판을 풍성하게 적셔 준다. 이처럼 시험산은 여리고의 겨울을 책임지는 물 저장고였다.

<사진설명> [현대 여리고 전경] 팔레스타인 지역은 겨울이 우기(雨期)이지만 여리고는 겨울에 비가 전혀 오지 않으면서도 시험산이 물 저장고 역할을 해 살기 좋아 주전 수천 년 전에 세계 최초로 도시가 형성됐다고 전한다.

<사진설명> 예수님이 마귀의 유혹을 이긴 시험산. 현재 수도원이 있다.

윤석전 목사: 여리고는 주전 수천 년 전에 도시가 형성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알려졌는데 당시에 어떻게 큰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사진설명> 남북으로 뻗은 고대 국제도로 ‘해안도로’와 ‘왕의 대로’를  동서로 이어 주는 도로가 예루살렘과 여리고를 지나서 여리고는 일찍 대도시로 발전했다.

오택현 교수: 여리고에 주전 수천 년 전부터 사람이 산 것은 그만큼 살기 좋은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날씨는 주변에 비해 따뜻하고 비가 안 옵니다. 이스라엘 지역은 겨울에 비가 많이 내리는데 여리고는 겨울에 비가 오지 않고 따뜻해서 사람이 살기 좋습니다. 엘리사의 샘을 비롯해 샘이 많아 물이 풍족해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었습니다. 또 여리고 주변을 지나는 큰 도로가 있는 교통 요지라서 대도시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중요한 국제도로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다메섹에서 지중해 해안을 지나서 이집트로 들어가는 해안도로(바닷길, Via Maris)이며, 성경에는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출13:17)’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다메섹에서 에돔, 압몬, 모압을 지나 홍해 쪽으로 가는 ‘왕의 대로’입니다. 이 두 도로는 남북을 잇습니다. 그래서 이 두 도로를 동서로 잇는 도로가 중요했습니다. 지중해 도시였던 욥바를 지나 예루살렘과 여리고를 거쳐 ‘왕의 대로(King’s Highway)’가 지나는 ‘랍바’를 연결하는 동서도로는 고대부터 중요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물건을 싣고 ‘해안도로’에서 ‘왕의 대로’를 오가던 길입니다. 여리고는 그 도로가 지나가는 중심 도시인데 산업이 발전해 큰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당시 여리고가 얼마나 풍요로웠는지 궁금합니다.

왕대일 교수: 도시가 아무리 좋은 위치에 있다고 할지라도 얼마나 풍요로웠는지를 알려면 유물을 봐야 합니다. 고고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들여다보면, 여리고 발굴의 역사는 꽤 깁니다. 고고학자들은 대개 세 가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집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남아 있는 도자기 파편과 유적을 통해 물물교환이나 산업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 공동묘지와 같은 무덤을 통해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보아야 당시 생활상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여리고는 아주 오래된 도시입니다. 고고학자들은 주전 수천 년경부터 형성된 각 문화에서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여리고가 지리적 요충지일 뿐 아니라 문물이 발달한 도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역사학자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ㄹ.D. 37~A.D. 100)의 기록을 보면, 하스모니아 왕조(Hasmonean)와 헤롯왕 시절인 신구약 중간 시기에 헤롯이 이곳에 거대한 건축물을 세웠습니다. 왕궁에는 큰 수영장, 원형 경기장, 마차(전차) 경기장을 지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여리고는 풍요로운 도성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신약성경에도 여리고와 관련한 사건이 나오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왕대일 교수: 누가복음 19장에 삭개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삭개오는 여리고에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에 가셨을 때 키 작은 삭개오는 뽕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세리장 삭개오가 변화된 장소가 여리고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9~34절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여리고를 지나가는데, 소경 두 명이 예수님께 와서 눈을 뜨게 해 달라고 청원합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눈을 만지시자 그들이 앞을 보게 되었고 곧바로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이로 볼 때 여리고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진 현장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풍요로웠지만 영적으로는 빈곤한 곳이었기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문제 있는 자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신 은혜의 자취가 서린 곳입니다.

윤석전 목사: 여리고를 다시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엘리사의 샘을 찾아가는 길가엔 물기를 머금은 푸른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풍부하고 맑은 물줄기는 이곳이 유대 광야 한가운데 있는 도시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한다. 엘리사의 샘물에서 나오는 물줄기는 여리고를 황량한 광야지대에서 발전된 농업도시로 자리  잡게 했다. 엘리사의 샘에서는 하루에 물이 3000ℓ가량 샘솟아 여리고 주민의 식수원이 되고 있다. 구약시대에 엘리사가 쓴물이 나는 샘물에 소금을 뿌려서 지금처럼 단물로 바꾸었다. 이곳을 지니시던 예수께서 이 생수로 갈증을 달래셨다. 이 물은 지금도 여리고 주민의 생명수다.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왕하2:21).

<사진설명>  엘리사의 샘을 방문한 윤석전 목사.

윤석전 목사: 여리고에 있는 엘리사의 샘은 과거에는 마시면 태아를 유산할 정도로 독한 물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 소금을 뿌리게 하신 후에는 마실 수 있는 좋은 물이 됐습니다.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를 말씀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여리고가 ‘종려나무 성읍’이라고 불릴 정도로 풍요로운 도시가 된 이유는 ‘엘리사의 샘’인 오아시스 덕분입니다. 여리고에서 독한 샘물이 나왔다 하면 여리고는 더는 풍요로운 곳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단순히 엘리사가 샘물을 고쳤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사의 일생을 보고 당시 여리고 상황을 봐야 합니다. 엘리사도 그의 선생이었던 엘리야처럼 평생 바알 종교와 싸운 사람입니다. 바알 종교는 가나안 일부만 섬긴 소수 종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 중에 절대다수가 믿은 종교였고,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극소수였습니다. 바알의 위엄은 대단해서 그들은 바알이 비, 강, 샘뿐만 아니라 모든 물을 주관하는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강을 가르고 건너간 역사는 바알 종교에 대한 경고로서 여호와만이 참신이라고 알려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엘리사가 샘물을 바꾼 사건도 물을 주관하는 신은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천명하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엘리사의 모든 행동은 바알에 대한 저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엘리야는 승천할 때 여리고를 지나갑니다. 엘리야의 승천에 대해서 많은 성도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성도들이 오해하는 것은 찬송가 199장 때문입니다. 자주 부르는 ‘나의 사랑하는 책’이라는 찬송인데 2절을 보면 ‘주의 선지 엘리야 병거 타고 하늘에 올라가던 일을 기억합니다’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우리가 자주 불러서 엘리야는 병거 타고 하늘에 올라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2장 11절을 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 나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강을 건너서 그쪽 지역에 서 있었을 때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열하2:11)”고 했습니다. 두 사람을 나누고 병거가 아닌 회리바람을 타고 엘리야가 승천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 이후 엘리사는 여리고로 돌아왔습니다.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도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멀리서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신앙의 눈으로 엘리야가 승천하는 것을 바라봤지만, 여리고의 생도들은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실종됐다고 본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여리고에서는 신앙 면에서 어떤 깨달음과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왕대일 교수: 여리고는 풍요로웠고, 지정학적인 곳에 세워진 오래된 대도시입니다. 구약 여호수아서가 전한 말씀을 보면 여리고는 무너져야 할 도시입니다. 왜 여리고가 무너져야 하는지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역사를 문화의 흐름으로 살펴보면, 나중에 정착한 사람들은 먼저 정착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 문물, 종교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B.C. 3000년경에 고대 아카드 제국(Akkadian Empire)이 메소포타미아 하류에 건설됩니다. 아카드 제국이 나라를 세웠지만 수메르(Sumer)라는 위대한 문명이 있어 앞선 수메르의 문명을 받아들였습니다. 로마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가 제국을 세웠지만 앞서 있던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를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를 통해서 가나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여리고의 문명, 여리고의 문화가 이스라엘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과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문화를 본받거나 영향받을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극복하고 변혁하려고 했습니다. 여리고가 무너진 사건의 상징적 의미는 우리가 세상에 살 때 세상 문화를 본받고 따를 것이 아니라 극복하고 변혁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리고를 찾을 때 그런 점을 염두에 두면 좀 더 의미 있는 성지순례가 될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헤롯왕이 여리고에 별장을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왕대일 교수: 여리고는 예루살렘과 가까워서 오고가기 쉬웠습니다. 추운 예루살렘에서 쉽게 갈 수 있고 물이 많아서 여러 가지 면에서 좋았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여리고에 목축지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환경과 지리 요건이 겨울 별장을 짓기에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윤석전 목사: 세상 문화는 여리고 못지않게 무섭게 타락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갈수록 타락해 가는 세상에 빠질 것이냐 아니면 타락해 가는 세상을 이기고 그리스도를 닮아갈 것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습니다. 이 세상은 광야 같은 곳이요, 타락한 곳입니다. 훗날 하나님이 최후 심판하실 때 죄와 악한 영은 영원한 파멸로 돌아가고,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은 천국에서 영원히 삽니다. 최후는 의와 선을 불의와 악에서 갈라놓습니다. 내가 의롭고 선해서 최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살 자인지, 최후에 멸망할 자인지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타락한 문화에서 빠져나와 이 세상을 타락의 문화 속에서 건져 하나도 멸망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리고에서 아무리 풍요로워도 타락하면 무너진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존하는 축복 속에서 현재도 미래도 축복받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4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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