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90)]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헤브론

등록날짜 [ 2017-11-28 10:38:03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처음 정착한 지역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갈렙이 믿음으로 정복한 땅
통일 왕국 이룬 다윗왕의 정치적 고향


윤석전 목사: 모세는 정탐꾼 열두 명을 가나안에 보냈습니다. 정탐꾼 열 명은 “가나안에는 너무나 힘센 족속이 있어서 대항할 수 없다”며 부정적으로 보고했습니다(신1:28).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이니 우리가 들어가서 정복하자고 믿음으로 보고했습니다. 그때 모세는 갈렙에게 약속했습니다. “네가 밟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모세 시대가 끝나고 여호수아 시대가 오자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했습니다. 모세가 약속한 땅을 달라고 말입니다. 바로 헤브론입니다. 헤브론으로 가 보겠습니다.

헤브론은 요단강 서안(西岸)의 대표 도시다. 이곳은 이스라엘에서 분쟁이 가장 심한 지역이다. 그래서 거리엔 인적이 드물고 검문소 보초병은 긴장감을 더한다. 검문 초소를 나오면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이 펼쳐진다. 팔레스타인 자치구는 겉보기엔 평화로워 보이지만 이주를 거부하는 유대인 정착자들과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분쟁 지역이다. 이곳에서 예루살렘 방향으로 4km 지점에 있는 마므레로 향했다. 성경에 나오는 ‘마므레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이다. 드디어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으러 갔던 길을 걸어 보았다. 상수리나무는 버팀목에 기대어 세월의 무게를 가까스로 견뎌 내고 있었다. 촬영팀이 간곡히 부탁하자 관리인이 마음을 움직여 상수리나무 조각 하나를 주었다. 아브라함은 이 나무 아래서 여호와께 단을 쌓았고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언약을 받았다.

<사진설명> 헤브론.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35km 떨어진 도시. 현재 16만 명이 거주한다. 1997년 헤브론 협정에 따라 전체 면적 중 80%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관할하고 나머지 20%는 이스라엘군이 관할한다. 


<사진설명> 아브라함의 마므레 상수리나무. 아브라함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여호와께 단을 쌓았고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언약을 받았다(창13:18;18:1~15).



윤석전 목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다윗에 이르기까지 관련이 있는 헤브론은 어떤 특징을 지닌 도시였는지 궁금합니다.

오택현 교수: 헤브론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35km 떨어져 있습니다. 현재는 요단강 서안 지역에 있는 유대인 점령 지구입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790m인데 비해 헤브론은 927m여서 더 높습니다. 땅이 척박해 사람 살기 어렵다고 여기겠지만 헤브론은 높은 지역인데도 물이 풍부해 살기가 좋습니다. 토질도 비옥해서 과일과 채소를 많이 재배합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보낸 정탐꾼들에게 그 땅 실과를 가져오라고 한 명령에 따라 헤브론의 에스골 골짜기에 있는 거대한 포도를 가져왔다는 사건은 아주 유명합니다(민13:23). 이처럼 헤브론은 비옥한 땅으로 많은 이에게 알려졌습니다.

윤석전 목사: 헤브론은 구약 역사에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 궁금합니다.

오택현 교수: 헤브론은 아브라함 때 처음 구약에 등장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롯과 함께 이곳 가나안 땅에 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머무니까 거주지 때문에 하인들 사이에 분쟁이 생깁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9)고 선택권을 줍니다. 롯은 소알 쪽, 즉 이집트 땅을 택하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쪽을 택합니다. 롯은 좋은 땅을 택했고, 아브라함은 척박한 땅을 택했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선택한 땅은 가나안 땅인 헤브론 마므레 숲 근처였습니다. 당시 헤브론은 비옥한 땅이었으므로 아브라함이 거한 땅도 좋은 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그 외에도 아브라함과 헤브론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오택현 교수: 헤브론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정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중요한 곳입니다. 게다가 이곳에 대대로 믿음의 조상들의 묘지가 있어서 이스라엘 역사와 뗄 수 없는 곳이 됐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헷 족속에게 은 400세겔을 주고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굴을 샀습니다(창23:16~20). 그곳에 사라와 아브라함이 묻히고, 그의 아들 이삭과 이삭의 아내 리브가, 이삭의 아들 야곱, 야곱의 아내 레아가 묻혔습니다. 3대에 걸친 믿음의 조상들 묘지가 있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성지입니다. 막벨라 굴 묘지 위에 있는 건물은 헤롯이 지은 것입니다.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믿음의 조상 묘 위에 커다란 건물을 지어 유대인에게 예배 처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헤브론은 다윗과도 연관이 깊다고 하는데 상세히 말씀해 주세요.

왕대일 교수: 사울은 블레셋과 싸우다가 길보아 산에서 전사합니다(삼상31:6). 블레셋은 자신들의 요새 벧산 성벽에 사울의 시체를 못 박아 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을 점령했다는 것을 세상에 과시하려는 의도였습니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길보아 산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대가 전멸한 것은 블레셋이 요단계곡까지 세력을 뻗쳐 영토를 확장할 절호의 기회였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블레셋은 그럴 힘이 있는데도 그 좋은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사무엘하 2장 4절 이하 말씀을 보면 사울이 죽고 난 다음 다윗은 헤브론에서 왕이 돼 7년 6개월간 통치합니다. 그 후 시온성(현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33년간 다스립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됐기에 블레셋의 영토 확장을 물리칠 수 있었고, 예루살렘으로 진출할 수 있었으며, 나중에 통일왕국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다윗에게는 헤브론이 정치적 고향이며, 정신적 터전이고, 믿음의 바탕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구약 성경의 역사와 관련된 헤브론으로 다시 가 보겠습니다.

팔레스타인 번호판이 달린 택시를 타지 않으면 이방인의 출입이 불가능한 헤브론. 헤브론에 있는 아브라함 가계(家系)의 무덤인 막벨라 굴에 도착했다. B.C. 20년경 헤롯왕이 막벨라 굴을 막고 그 위에 세운 건물은 현재 유대인과 모슬렘의 공동 예배 장소다. 검문소를 세 군데나 거친 후 아브라함 묘에 도착했다. 지하에 아브라함의 무덤이 있다. 남편을 주(主)로 섬기던 사라는 죽어서도 아브라함을 마주 보며 자리 잡고 있다. 부부의 외아들 이삭의 무덤이 그 사이에 있다. 두꺼운 철문만큼이나 아브라함 자손 사이 갈등의 무게는 버겁다. 분쟁 터 위에서 막벨라 굴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믿음의 조상들의 주검을 담고 있다.

“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창25:9~10).

<사진설명> 막벨라 굴. 아브라함 가계의 무덤이다. B.C. 20년경 헤롯왕이 막벨라 굴을 막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웠는데 그 안에서 현재 유대인과 이슬람이 각각 예배를 드리고 있다.(좌)  ‘성서의 땅을 가다’ 촬영차 막벨라 굴을 찾은 윤석전 목사(좌)와 한인수 장로(우).  

윤석전 목사: 헤브론의 역사와 사회의 변화를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왕대일 교수: 헤브론은 현재 유대인의 점령지입니다. 그 지역을 방문하면 이슬람교도인 팔레스타인 사람이 거주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헤브론을 두고 이스라엘 사람과 팔레스타인 사람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합니다. 헤브론은 마므레 상수리나무와 연결하여 아브라함의 영적 고향입니다. 이곳에서 아브라함이 아들이 탄생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기에(창18:1~14) 유대인은 이곳을 성지로 여깁니다. 이처럼 유대인은 족장의 신앙을 정리할 때 특정한 장소와 연결해 생각합니다. 그러니 헤브론은 유대의 정신적 고향이 틀림없습니다. 막벨라 굴은 그 땅에 거주하는 이슬람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도 성지입니다. 그들은 막벨라 굴도 성지 순례 장소로 여깁니다. 한 지역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보입니다. 팔레스타인에게 물어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믿는다고 하지만 ‘이삭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은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헤브론 한 곳만 봐도 신앙과 역사가 격동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헤브론과 관련한 유적지가 있나요?

오택현 교수: 가장 중요한 유적은 막벨라 굴입니다. 현재 헤롯이 세워 놓은 거대한 건축물이 있습니다. 굴 안에 들어가면 조상들의 묘에 들어가는 위치를 알려 주는 조그만 건물들이 있습니다. A.D. 14세기에 아랍인이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봉해 현재는 위치만 알려 줍니다.

그 외 에스골 골짜기가 있습니다. 모세가 보낸 정탐꾼이 지나갔던 장소로 유명하지만, 당시 헤브론의 위치와 주변 배경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곳입니다. 에스골 골짜기에서 생산되는 포도와 포도주는 이스라엘의 유명상품입니다. 또 헤브론은 사울의 군대 장관인 아브넬이 다윗의 장수 요압과 대결하다가 죽은 장소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헤브론이 아브라함이 머물렀던 장소라는 점입니다. 특히 마므레 상수리나무 옆에 장막을 쳤던 지점이 유명합니다. 원래는 상수리나무 수풀로 우거졌는데 성지 순례객들이 뜯어 가서 현재 나무가 많이 줄었고 가장 큰 나무는 철조망으로 감싸 보호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여호수아서 14장, 15장을 보면 “갈렙이 헤브론을 차지했다”고 기록됐습니다. 헤브론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요?

왕대일 교수: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수14:12)라는 갈렙의 기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헤브론을 정탐할 당시 갈렙은 40세였습니다. 정탐꾼 열둘을 보냈는데 돌아와서 여호수아와 갈렙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저 땅을 차지할 수 있겠다”라고 긍정적으로 보고했습니다. 모세는 그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신1:36). 그 후 갈렙이 85세 됐을 때 헤브론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때 여호수아에게 말합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찌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수14:12). 그래서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유업으로 받습니다. 헤브론은 갈렙의 믿음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인류 구속 역사가 깃든 땅입니다.



<사진설명> [헤브론 지도] 헤브론은 요단강 서안 지구의 대표도시다. 팔레스타인 자치구와 유대인 정착촌 사이에 끊임없이 충돌이 일어나는 분쟁 지역이다.


윤석전 목사:
팔레스타인 자치구 헤브론에는 성지 순례객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나요?

오택현 교수: 헤브론은 성지 순례가 불가능하지 않지만, 권해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리고나 베들레헴과는 달리 헤브론은 강경파 팔레스타인 사람이 머물고 있어 유대 지역에서 분쟁이 가장 심한 지역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순례하려면 목숨을 걸고 들어가야 합니다. 현재도 분쟁이 계속돼 여행을 목적으로 간다면 절대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윤석전 목사: 헤브론에 입성할 때 갈렙은 85세 노인이었는데 어떻게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나요?

왕대일 교수: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점령하고 차지하겠다는 의기에 찬 말을 들으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의 나이 85세인데도 요즘 노인과 같지 않았습니다. 당시 지도자인 모세는 120세에(신34:7), 여호수아는 110세에(수24:29) 죽었습니다. 노인인데도 젊은이로 사는 사람이 있고, 젊은이인데 노인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안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서 삶의 행로가 달라집니다. 갈렙에게는 하나님이 계셨기에 85세에도 여호수아에게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역사를 볼 때 갈렙이 헤브론 땅을 달라고 함으로써 아름다운 축복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축복이 오면 내 몫으로 삼아야 하고, 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해서 갈렙처럼 내 소유로 삼는 믿음의 정복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5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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