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91)] 갈등과 분쟁의 땅 헤브론

등록날짜 [ 2017-12-13 14:20:28 ]

다윗의 정치적 고향 헤브론 여호수아 시절 도피성 역할 하기도
현재 이 지역 소유권 놓고 유대인-아랍인 간 첨예한 갈등 이어져
 
윤석전 목사: 헤브론은 한때 이스라엘의 수도였지만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도읍지를 옮기면서 변방도시로 전락했습니다. 헤브론은 도피성(逃避性)이기도 했습니다. 억울한 일로 고난당한 사람들이 헤브론으로 도피해서 삶을 영위했습니다. 이번에는 헤브론으로 가 보겠습니다.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숲은 수확률이 높다. 3900년 전, 아브라함도 상수리 열매를 거두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열매로 가족의 식탁을 풍성하게 했으리라. 아브라함과 사라와 후손이 묻힌 막벨라 굴로 향했다. 막벨라 굴의 이슬람 쪽 통로를 지나면 모슬렘 예배 장소가 나온다. 사라는 담을 사이에 두고 서로 적대시하는 두 후손의 경배를 동시에 받고 있다. 

막벨라 굴 한쪽은 이슬람 지역이고 다른 쪽은 유대인 지역이다. 양쪽에서 사라의 무덤을 볼 수 있지만 서로 교통하지 못하게 막아 놨다. 믿음의 조상이 묻힌 막벨라 굴은 갈등의 담이 높지만, 순례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성지다.
 
윤석전 목사: 헤브론은 다윗 시대에 수도(首都)로 사용된 후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오택현 교수: 헤브론은 다윗왕정 시대에 중심 도시로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다윗은 7년간 사울 왕의 잔존 세력과 대립하는 동안 유다 지파 중심지 헤브론을 도읍지로 삼았습니다. 헤브론을 중심지로 삼은 이유는 기브아(사울왕이 부름받은 곳, 이스라엘 왕국 초기 정치 중심지)와 멀리 떨어져 있고, 927m 고지대에 세운 도시여서 방어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오랜 대립 끝에 다윗은 흥하고 사울왕의 잔존 세력은 망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헤브론에 있는 다윗을 찾아와 항복하였고 마침내 다윗은 통일왕국을 이룹니다. 이때 다윗은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헤브론을 수도로 삼아 나라를 통치하면 남과 북을 통합해 평화로운 정치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윗왕은 헤브론을 과감히 포기하고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여부스 족속의 땅이었던 예루살렘을 택합니다. 다윗왕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했으나 헤브론으로서는 역사의 중심에 설 기회를 놓친 셈이 됐습니다.

윤석전 목사: 창세기와 여호수아서를 보면 헤브론을 기럇 아르바(Kiriath Arba)라고 불렀습니다. 기럇 아르바를 도피성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왕대일 교수: 창세기 23장 2절, 여호수아 20장 7절에서 헤브론을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이라고 말합니다. 기럇 아르바는 ‘사중(四重)으로 둘러싸인 도성’을 뜻합니다. 이곳은 높아서 요새로서 기능을 갖췄습니다. 여호수아 20장 7절에는 헤브론이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 세겜과 더불어 유다 산지 서쪽에 구별된 도피성 중 하나’라고 기록됐습니다. 여호수아 21장 13절을 보면 “제사장 아론 자손에게 준 것은 살인자의 도피성 헤브론과 그 들이요”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에게 주었기 때문에 헤브론과 목초지가 대제사장의 도성이 됐습니다. 대제사장들의 성 중 하나를 도피성으로 구별했는데 헤브론이 그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헤브론은 전형적인 요새였고 다윗왕이 정한 수도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억울한 자를 보호해 준 은혜의 장소였습니다.

윤석전 목사: 헤브론은 여호수아 시대에는 도피성, 다윗 시대에는 수도 역할을 했습니다. 헤브론으로 다시 가 보겠습니다.

B.C. 20년경 헤롯왕이 막벨라 굴을 막고 그 위에 웅장한 건물을 세웠다. 이 건물은 길이 56m, 세로 33m, 높이 15m다. 현재 이곳은 유대인과 모슬렘의 공동 예배 장소로 사용된다. 헤롯왕이 세운 건물에 있는 방 3개 중 가장 큰 곳은 이삭과 리브가를 기념하는 장소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180세에 죽자 그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막벨라 굴에 안장했다. 아브라함의 무덤을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게 해 놓은 통로가 있다. 지하 깊은 곳에 있는 아브라함의 무덤에서 올라오는 불빛이 구멍 사이로 새어 나온다. 굴 입구는 기존 돌바닥과 달리 콘크리트로 막혀 있다. 헤브론은 두 자손 간의 치열한 분쟁지인 동시에 믿음의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성서의 땅이다.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성문에 들어온 헷 족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한지라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창23:17~19).

<사진설명> B.C. 20년경 헤롯왕은 아브라함을 비롯해 믿음 조상의 무덤이 있는 막벨라 굴을 막고 그 위에 길이 56m, 세로 33m, 높이 15m 웅장한 건물을 세웠다.

<사진설명> 에서의 후손인 모슬렘이 자기 조상에게 경배하는 모습이다. 헤롯왕이 세운 건물은 유대교 회당(좌)과 이슬람교 모스크(우)로 구역이 나뉘었다. 이슬람 모스크에는 이삭과 리브가의 무덤이 있다. 또 아브라함의 무덤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구멍이 있다.

<사진설명> 유대교 회당에는 아브라함, 사라, 야곱, 레아의 기념무덤이 있다. 모스크에는 이삭과 리브가 무덤이 있다(위). 막벨라 굴로 향하는 지하구조. 현재 굴 입구는 콘크리트로 막혀 있다(아래).

<사진설명> 도피성은 실수로 살인한 사람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곳이다. 이스라엘에는 도피성 6곳이 있었다. 지도에 표기된 검은 점이 도피성.(좌)    헤브론에서 발견된 물 37ℓ를 담는 거대한 항아리. 그 손잡이에 ‘헤브론 왕의 소유’라는 인장이 새겨져 있다. 현재 이스라엘 고대 유물 박물관에 있다.(우)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은 솔로몬 사후에 남과 북으로 분리돼 남유다왕국과 북이스라엘로 나뉩니다. 유다왕국이 바벨론에 패망한 후, 헤브론에 찾아온 비극의 역사를 말씀해 주세요.

왕대일 교수: 유다왕국이 패망한 후, 헤브론 역사는 에돔 족속과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에돔 족속이 유다왕국의 지역을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에돔 족속은 에서의 후예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에돔은 이스라엘과 관계가 원만치 않았습니다.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안겼습니다. 남쪽 유다가 바벨론의 침입을 받았을 때, 유다 사람들은 북쪽에서 밀려오는 침략자를 막기에 급급했습니다. 이때 에돔 사람들이 바벨론의 사주를 받아 남쪽 유다 사람들을 침략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는 바벨론 옆에서 손뼉 치며 좋아했습니다. 포로가 된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에는 원수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이후 에돔 족속은 유대 예언자나 시인에게서 ‘반드시 멸망해야 하는 족속’으로 불리며 저주와 항의에 시달렸습니다. 시편 137편 7절을 보면 “예루살렘이 해(害)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라고 합니다. 그 정도로 에돔 족속에게 한이 맺혔던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4장 22절에는 “처녀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라고 말하면서 에돔의 멸망을 소망합니다. 에돔이 바벨론에서 헤브론을 넘겨받아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스모니안 왕조(B.C. 142~B.C. 63)가 에돔을 몰아낼 때까지 500년 동안 에돔 족속의 통치는 계속됐습니다. 헤브론 사람들에게는 에돔 족속이 다스리던 때가 가장 비극의 시기였습니다.

윤석전 목사: 유다왕국이 멸망하기 전에 헤브론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왕대일 교수: 헤브론에는 목초지와 포도원이 있습니다. 또 올리브를 재배할 수 있고, 물이 풍부해 번성할 만한 조건을 두루 갖췄습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사는 도성입니다. 지리로만 봐서는 헤브론이 유다왕국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헤브론에 있는 이스라엘 고대 유물 박물관에 물 37ℓ를 담는 거대한 항아리가 있습니다. 그 손잡이에 히브리어로 ‘라멜렉 헤브론’이라는 인장이 새겨 있습니다. ‘헤브론 왕의 소유’라는 뜻입니다. 왕의 소유에 해당하는 거대한 항아리들이 그곳에 보관된 것입니다. 고대학자들은 상용(常用)하거나 세금을 받아들일 때 일정한 양을 확인하는 용기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이런 유물로 보아 헤브론은 유다왕국 시대에 물자를 보관하거나 비축해 두는 곳으로 활용했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윤석전 목사: 헤브론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지만 이스라엘의 거주지가 함께 있어 항상 분쟁이 일어나는데 그 상황을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헤브론은 현재 이스라엘의 요단강 서안(西岸) 지역에 속합니다. 1967년까지는 요르단의 영토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랍연맹과 벌인 6일 전쟁에서 승리한 후 막벨라 굴에서 1km 떨어진 헤브론에 유대인들을 거주시켰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은 수천 년 동안 이곳에 거주해 온 아랍인과 함께 살게 됐습니다. 헤브론에 거주하는 아랍인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이곳은 천년 넘게 우리가 거주한 곳이고 조상 아브라함의 무덤이 있으니 우리 땅이다.” 헤브론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른 지역 아랍인에 비해 강경파여서 투쟁을 치열하게 합니다. 헤브론 대학은 일 년에 6~7개월간 문을 닫을 정도로, 이 지역 사람들은 성격이 난폭합니다. 이들에 맞서는 유대인의 입장도 강경합니다. “막벨라 굴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돈 주고 산 땅이니 절대 양보할 수 없다.” 양쪽 주장 모두 일리가 있지만 서로 양보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들이 함께 거주하다 보니 항상 일촉즉발의 위기를 겪고 오늘날까지도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윤석전 목사: 유대인과 아랍인의 끊임없는 분쟁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왕대일 교수: 성지순례를 할수록 고민에 빠집니다. ‘유대인과 그 땅에 거주하는 아랍인을 어떻게 하면 화해시킬까?’ 이들의 갈등과 긴장이 오래됐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고, 아브라함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이삭의 두 아들 야곱과 에서의 갈등을 살펴봐야 합니다. 오랜 세월 서로 보복해온 악순환이 맞물려 있습니다. 야곱이 에서가 받을 복을 가로채자, 에서는 그 일로 야곱을 죽이려 합니다. 출애굽 후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에돔왕에게 가나안에 들어가도록 길을 대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습니다. 유다에 바벨론 왕국이 침입했을 때 에서의 후예들은 오히려 침략군 편에 서서 형제라 할 수 있는 유다를 약탈했습니다. 그래서 유다 사람에게는 한이 맺혔다고 하겠습니다. ‘너희가 유다 사람에게 어떻게 했냐? 그러니까 우리도 이럴 수밖에 없다’ 하는 성경 내용이 맞물려 있습니다. 에서의 후예 입장에서 보면 다윗이 자기 땅을 침략했습니다. 다윗은 에돔 지역을 침략해서 장악하고, 아들 솔로몬은 무거운 세금을 매겨 그 땅 사람들의 돈을 갈취했습니다. 현대사로 넘어오면서 민족적·사회적 갈등과 겹쳐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철천지원수가 됐습니다. 저는 해결 방법을 이사야 19장 24절에서 찾아봤습니다. 이사야는 ‘메시아가 오는 그 날이 되면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샬롬의 역사를 맛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도록 우리가 성지를 위해서 더 간절히 기도해 하나님 역사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윤석전 목사: 최근 헤브론에서 일어난 분쟁이나 테러 중 가장 큰 사건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오택현 교수: 헤브론은 극단적인 아랍인과 유대인이 모인 곳이라 부딪치며 싸우는 큰 사건이 종종 일어납니다. 1994년 2월 25일 새벽에 극우파 유대인 바루흐 골드스타인이 이슬람 사원에 총기를 난사해 수십 명이 죽은 사건이 있습니다. 테러를 자행한 이유는 ‘왜 너희가 우리 조상의 땅에 들어와 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양쪽이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화해할 방법을 찾기 어렵습니다.

윤석전 목사: 헤브론은 여호수아가 갈렙에게 준 산지인데 왜 도피성으로 정해졌나요?

왕대일 교수: 여호수아 21장 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레위 사람에게 성읍과 주변의 목초지를 줬습니다. 그때 분배받은 성읍들 중 여섯 곳을 도피성으로 지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헤브론입니다. 갈렙이 받은 목초지와 중복돼 나타납니다.

윤석전 목사: 현재 헤브론은 분쟁 지역입니다. 혈통으로 보면 피차 다툴 만한 이유가 충분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헤브론은 이스라엘 땅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믿고, 헤브론을 절대 빼앗길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모두 하나 되는 방법은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한 형제가 되는 길뿐입니다. 많은 사람이 고통과 어려움을 당할 때 헤브론은 그들의 도피성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입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 되는 내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5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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