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8-01-23 11:27:24 ]
사해사본, 사본 역사 천 년이나 앞당겨
물이 풍부하고 동굴 많은 엔게디 계곡
다윗이 사울 왕 피해 은신처로 사용해
윤석전 목사: 종말을 기다리는 경건한 공동체가 모여 살던 장소 쿰란은 그들이 남긴 문서로 유명합니다. 20세기 성경 역사의 위대한 발견인 사해사본은 구약성경 사본 역사를 천 년이나 앞당겼습니다. 이번 호는 사해사본을 알아보겠습니다.
쿰란 공동체 유적지에는 B.C. 8세기에서 7세기에 벽돌로 세운 도시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 필경사들은 성경 사본을 남겼다. 성경 사본을 두루마리로 말고 꼬리표를 달아 보관한 필사실, 정결예식을 한 구성원 천여 명이 음식을 먹고 휴식을 취한 식당, 원활한 식수 공급을 위한 수로(水路) 등, 은둔생활을 돕는 각종 시설 흔적이 발굴됐다. 특히 사해(死海) 부근 동굴 안에서 이천여 년 만에 발굴된 사해사본은 B.C. 3세기에서 A.D. 2세기에 기록된 것들로 기독교 역사 발굴 모델 중 백미(白眉)로 꼽힌다. 성지 보고(寶庫)인 예루살렘 록펠러 도서관에 있는 ‘책의 전당’에 사해사본 원본이 보관돼 있다. 책의 전당에는 당시 사본을 담았던 항아리, 구약성경 사본, 외경과 주석서, 공동생활 지침서 원본 등이 전시돼 있다.
<사진설명> [‘책의 전당’ 외부(위)] 예루살렘 록펠러 도서관 안에 있는 ‘책의 전당’은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사본이 보관돼 있던 항아리 모양을 본떴다. 흰색 돔은 빛의 자녀를 상징하고, 검은색 대리석은 어둠의 자녀를 상징한다. 쿰란 공동체는 예루살렘에 사는 타락한 유대인에 비교해 스스로 빛의 자녀라고 생각했다. [‘책의 전당’ 내부(아래)] 박물관 내부에 들어가면 쿰란 사본을 발견한 동굴 혹은 사본을 보관한 항아리 안에 들어가 있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윤석전 목사: 사해사본은 20세기 고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20세기에는 일반 고고학이나 성서 고고학에서 위대한 발견이 많았습니다. 그중 일반 고고학의 가장 큰 발견은 투탕카멘(이집트 제12대 왕, 재위 B.C. 1361~1352) 묘의 발견이고, 성서 고고학에서는 사해사본의 발견입니다. 사해사본이 발견되기 전에는 A.D. 1008년에 기록된 레닌그라드 사본(구약 39권을 전부 갖춘 히브리어 성경 사본), 그 후에 발견된 A.D. 9세기 알레포 사본(히브리어 성경 사본)이 가장 오래된 사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해사본은 B.C. 3세기~A.D. 70년 사이에 기록된 사본입니다. 사본 역사에서는 백 년 전 사본도 가치가 큰 데, 그 역사를 천 년이나 앞당긴 것은 정말 대단한 발견입니다. 사해사본의 발견 덕분에 구약성경과 사본 연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을 번역한 글이나 사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설명해 주세요.
왕대일 교수: 단편적인 것을 제외하면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구약 전체 말씀을 담고 있는 사본 또는 성경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사본입니다. 에스더서를 제외한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 전체를 기록했습니다. 또 하나는 A.D. 10세기 이후에 발견된 사본인데 바로 우리가 지금 읽는 성경의 사본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B.C.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구약성경입니다. 칠십 인이 번역했다고 해서 ‘칠십인역 성경’이라고 합니다.
<사진설명> 현존하는 대표 성경사본 ① 알레포 사본 A.D. 9세기에 기록된 히브리어 성경 사본 ② 레닌그라드 사본 A.D. 1008년에 기록된 구약 39권을 전부 갖춘 히브리어 성경 사본 ③ 사해사본 B.C. 3세기~A.D. 70년 사이에 기록된 사본(에스더서를 제외한 구약 전체 사본)
윤석전 목사: 많은 사본 중 사해사본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왕대일 교수: 신약성경에서 ‘성경에 일렀으되’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신약성경 복음서나 사도바울 서신을 보면 구약성경을 인용합니다. 인용한 구약성경을 비교해보면 표현과 토씨가 다릅니다. 한글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고, 신약성경에 나와 있는 구약성경은 헬라어로 번역된 것을 우리말로 한 번 더 번역한 것입니다. 쿰란 사본은 구약성경에 있는 히브리어 말씀과 신약성경에 있는 구약성경 말씀 중 어느 것이 원본에 가까운지를 따져볼 수 있는 제3의 증언으로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윤석전 목사: 쿰란 공동체 유적에서는 사해사본 외에 어떤 문서를 발견했는지요?
<사진설명> [쿰란 공동체의 회중규칙이 적힌 문서] 공동체 생활과 구성원 관계 등 지침을 잘 기록했다.
오택현 교수: 쿰란 공동체는 성경을 많이 읽고 다른 문서도 함께 읽어 신앙심을 돈독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종말을 대망한 묵시적 공동체여서 주로 ‘묵시 문학’을 읽었습니다. 쿰란 공동체를 중심으로 발견된 사해문서 중 그들의 묵시 성향이 담긴 문서가 많았습니다. 그 문서들은 구약 다니엘서나 신약 요한계시록과 같이 묵시 성향을 띤 글들에 관한 해석에 명쾌한 전기(轉機)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일례로 요한계시록이나 다니엘서 같은 묵시문서는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을 예언한 예언서로만 알았는데, 사해문서 발견을 통해 현재 고난당하는 공동체에게 ‘순교할지언정 배교하지 말 것’도 강조하고, 공동체에 희망을 전하는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해사본을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의 외관이 색다르다고 합니다. 소개해 주세요.
왕대일 교수: 사해사본 박물관은 ‘책의 전당(Shrine of the Book)’이라 부릅니다. 겉모습이 항아리나 솥단지 뚜껑 같은 흰색 돔인데 빛의 자녀를 상징합니다. 맞은편에는 검은 대리석으로 된 벽이 세워져 있습니다. 검은색 대리석은 어둠의 자녀를 상징합니다. 쿰란에 사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사는 타락한 유대인에 비교해 스스로 빛의 자녀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연상시킵니다. 검은색 대리석 옆에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어 그곳을 따라 항아리 뚜껑 모양의 박물관 내부로 들어갑니다.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는 아치 모양으로 그 통로는 쿰란 사본을 찾으러 들어갔던 동굴을 연상하게 합니다.
윤석전 목사: 박물관을 그렇게 설계한 이유가 있나요?
왕대일 교수: 사해사본은 쿰란 공동체 동굴 안에 은밀히 보관해놓은 항아리에서 발견됐습니다. 사본을 보존하는 박물관도 당시 항아리 모양을 본떴습니다. 박물관 내부에 들어가면 항아리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합니다. 또 성경 말씀이 보존된 숨겨진 장소를 찾던 여러 성경 학자의 정성을 연상시킬 만한 도움 장치가 박물관 안에 마련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 필사는 어떤 사람이 했나요?
왕대일 교수: 요즘은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아무나 볼 수 없었습니다. 성경이 그만큼 고귀했기 때문이죠. 성경을 필사하는 사람은 전문가였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고 감독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그런 사람을 서기관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을 통해 하나님 말씀이 보존되고 전수되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쿰란 남쪽에 있는 엔게디는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길 때 숨어 있던 곳입니다. 한 번 가보겠습니다.
‘새끼 염소의 우물’이라는 뜻의 엔게디(En Gedi)는 쿰란 남쪽, 사해 서쪽 해변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이다. 거대한 아루곳 협곡(길이 40km, 헤브론 산악지역에 큰 비가 내릴 때 그 물이 모여 사해로 흘러가는 협곡)에 자리 잡은 이곳은 사해 주변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 역할을 하는데 그 양이 1년에 300만㎥나 된다. 1953년 이스라엘이 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키부츠(kibbutz)를 세워 엔게디에 아름다운 국립공원을 만들었다.
구약의 영웅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해서 엔게디 골짜기에 숨어들었다(삼상 23:26,29). 사울 왕이 휘두르는 죽음의 칼날을 피해야 했던 다윗에게 물이 풍부하고 숨을 동굴이 많은 엔게디 계곡은 하나님이 주신 푸른 초장이었다. 죽음을 피해 다니던 고독한 도망자 다윗, 그는 하나님이 늘 곁에 함께 하셔서 행복했다. 엔게디는 피곤한 다윗의 육신을 품어줬고, 이스라엘은 위대한 왕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사진설명> [엔게디] 물과 동굴이 많아 은신처로 좋다. 다윗도 사울 왕을 피해 이 동굴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
윤석전 목사: 엔게디에 갔을 때 푸른 들풀을 보니 무척 신기했습니다. 엔게디의 ‘엔’은 히브리 어로 ‘샘’을 뜻합니다. 엔게디에 정말 물이 많이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히브리어에서 ‘엔’이 들어간 지역은 모두 샘이 있습니다. 엔게브, 엔케렘, 엔아브닷이 그렇습니다. 엔게디는 쿰란에서 남쪽으로 35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주변은 모두 황무지인데 이곳은 물이 엄청나게 솟아서 건기(乾期)에 가도 폭포수 같은 큰 물줄기가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광야 한가운데 물이 많아 행인이나 짐승이 목을 축이는 장소로 유명했습니다. 아가서는 아름다운 포도원이 있는 장소로 소개합니다(아1:14).
윤석전 목사: 엔게디는 다윗 왕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는데 자세히 소개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다윗은 골리앗을 죽인 후에도 여러 공을 세웁니다. 그 덕에 다윗의 인기가 백성 사이에서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자 사울 왕은 자기 자리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느낍니다. 그래서 사울은 나라를 다스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다윗을 쫓아다니며 죽이려 합니다. 다윗은 유다 지파였기에 사울 왕을 피해 유다 황무지 지역으로 다녔습니다.그 중 동굴이 많은 엔게디는 숨기에 매우 좋은 곳이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다윗이 엔게디에 숨은 것은 지형적인 특징과 관련 있을 텐데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사울의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다윗이 엔게디에 숨은 이유는 물이 많고 산과 동굴로 이루어져 숨기 편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따르는 군사는 400명이었는데 이들이 생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물입니다. 폭포수가 흘러 물 걱정이 없고 동굴이 많아 은신처로서 최고의 장소였습니다. 반대로 추적자 입장에서는 미로같이 동굴이 많아 추적하기 힘든 장소였습니다. 사울 왕은 이런 지형 특성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다윗이 동굴 안에 숨어 있는데 사울 왕이 이를 알지 못한 채 거기서 낮잠을 잤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하나님이 기름 부으셨던 자를 죽일 수 없어서 그의 옷자락을 베고 복수는 하나님께 돌렸습니다(삼상24:1~6).
윤석전 목사: 엔게디 계곡의 역사 속에 담긴 특별한 메시지를 말씀해 주세요.
왕대일 교수: 엔게디에서 일어난 다윗과 사울 이야기는 사무엘상 24장에 나옵니다. 저는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이지 않고 옷자락을 벤 후에 했던 12절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삼상24:12). 적을 해할 절호의 찬스가 왔는데도 하나님이 일하시기만을 바라는 다윗의 믿음이 드러납니다. 동굴이나 폭포수 같은 지리적 환경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는 다윗의 믿음을 엔게디 동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엔게디의 지형적 특징이 다윗시대 이후에도 사용된 적이 있는지요?
오택현 교수: 엔게디는 소수의 무리를 이끄는 사람들이 게릴라 작전을 펴기에는 최고의 거점이었습니다. 1차 유대인 반란 거점이 마사다였다면 2차 유대인 반란(A.D. 132~135)에서 끝까지 저항한 최고 거점은 엔게디였습니다. 최후 격전지 엔게디는 현재 국립공원으로 자리 잡아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해사본은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이 얼마나 확실한 하나님 말씀인지 증명해줍니다. 성경은 그 말씀을 믿는 자에게 체험을 주고 그 믿음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 말씀이 사실인 것을 알려줍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말씀이 사실로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체험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엔게디가 되어 우리를 보호하는 능력의 역사가 날마다 넘치기를 원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6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