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00)] 하나님 떠나 쇠락의 길 걸은 ‘실로’

등록날짜 [ 2018-02-28 09:56:09 ]

사사시대 이스라엘 정치·종교 중심지 실로
제사 실패하고 하나님 영광 떠나자
가차 없이 파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윤석전 목사: 실로(Shiloh)는 40년 광야 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처음 장막을 치고 하나님의 법궤를 두었던 곳입니다. 실로는 믿음의 족장들의 아름다운 역사가 서려 있었지만 백성이 타락하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심판과 축복이 엇갈린 장소, 실로로 가보겠습니다.

실로는 벧엘에서 세겜으로 가는 동쪽 길 부근에 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정복 후에 하나님의 법궤를 처음 둔 장소다. 당시 실로는 성막과 법궤가 있던 중앙 성소(聖所)여서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이끄는 생활 중심지가 됐다.

성막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장소로 향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의 성막을 세우고자 법궤를 메고 이 길을 올랐으리라. 들판 위에 하나님이 머무시는 성막을 세웠고 사람들은 거룩한 성막 안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성막 주변에 거주했다. 현재도 당시 생활을 고수하려는 유대인은 성막 터 부근에 동네를 형성하고 있다. B.C. 1050년경 실로는 블레셋에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고 파괴된다. 이스라엘 백성의 배교(背敎) 탓에 실로의 영광은 끝이 났다.


<사진설명> [실로 유적지] 실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처음 장막을 치고 하나님의 법궤를 둔 곳이다. 당시 이스라엘 중앙 성소 역할을 담당해 정치·사회·신앙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실로는 이후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패역 하자 블레셋에 패한 이후 쇠잔의 길을 걸었다. 

<사진설명> (왼쪽)실로 전역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오른쪽)사사시대와 사무엘 시대의 성막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터.

<사진설명> (왼쪽)실로에 있었다는 성막 복원도.   (오른쪽)‘성서의 땅을 가다’ 촬영차 실로를 찾은 윤석전 목사(우)와 한인수 장로(좌).


윤석전 목사: 실로는 어디에 있고, 어떤 도시였나요?

오택현 교수: 실로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33km 떨어진 중앙 산악 지역에 있는 도시입니다. 실로는 가나안 정복의 명장 여호수아가 소속한 에브라임 지파에 할당된 땅입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다른 지파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정치와 신앙 중심지로 가나안 정복 때부터 떠오르는 도시였습니다.

윤석전 목사: 실로가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한 것은 언제인가요?

오택현 교수: 실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하나님의 법궤를 안치할 성막을 세운 곳입니다(수18:1). 하나님은 신명기를 통해서 ‘모압 평지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 한 곳에 모여 예배드리라(신12:14)’고 말씀하십니다. 실로가 그 시작 장소였습니다. 실로 지역의 신앙적 위상은 매우 컸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소(聖所)가 세워진 실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 분배를 시작한 장소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수18:10). 가나안 정복기 중엽부터 실로는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됐습니다.

<사진설명> [이스라엘 12지파 지경도] 실로는 가나안 정복의 명장 여호수아가 소속한 에브라임 지파에 할당됐다. 실로는 12지파에 분배된 땅 가운데 지점에 있어서 중앙 성소 역할을 했다.

윤석전 목사: 사사시대에 실로의 위상은 어땠나요?

오택현 교수: 실로는 정치 중심지였고, 하나님의 법궤가 있어 중앙 성소(聖所) 역할을 실제로 감당했습니다. 사사시대에도 신앙 면에서 중요했습니다. 사사시대 말기 엘리 제사장 때까지 내려옵니다. 그 당시 사무엘의 부모 엘가나와 한나도 실로에 와서 예배드렸다고 기록됐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없을 때여서 실로가 중앙 성소 역할을 감당하면서 법궤를 모신 장소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윤석전 목사: 실로가 이스라엘 사회의 중심지인 성소(聖所)가 된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왕대일 교수: 성경에는 여호수아 시대에 여호와의 법궤가 있는 회막(會幕), 혹은 성막을 실로에 세웠다고 나옵니다(수18). 민수기 1장~4장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장막 치는 순서와 위치가 나옵니다. 중앙에 여호와의 법궤가 있는 성막을 세우고, 동남서북으로 세 지파씩 열두 지파가 진을 칩니다. 이 모양새는 성막을 보호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장막치고 자리 잡은 중심에는 늘 하나님의 성막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이런 시각에서 여호수아 18장 이후 사사시대에 실로가 감당한 역할을 살펴볼 때, 여호와의 성막과 법궤가 있는 장소가 온 이스라엘 사회의 중심이라는 고백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정착하고 사사시대가 지속하는 동안, 실로는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중심지였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오늘날 교회도 그런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있는 곳이 사회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실로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가나안 정복 후, 이스라엘의 중심지 역할을 한 실로는 사무엘이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실로로 가보겠습니다.


실로 언덕 북서쪽 성막이 있던 주위에는 웅덩이가 많았다. 구약 시대 웅덩이로 여겨지는 곳 안에 돌이 가득 있다. 성막 부근에 아직도 남아 있는 웅덩이들은 당시 실로 언덕에 수많은 거주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당시에는 이 웅덩이에 채워진 물로 농사를 짓고 짐승도 키웠으리라. 실로 언덕에서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역력한 동굴을 발견했다. 구약 시대의 것으로 여겨진다. 실로는 한때 하나님이 머무신 번영의 땅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곁을 떠나자 실로도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다.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냄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찌니라”(렘7:12,15).


윤석전 목사: 엘리 제사장 이후에 실로가 별다른 역할을 못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택현 교수: 실로는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고 타락할 때, 가차 없이 파괴되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이곳에서 예배를 담당하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들을 여호와를 우습게 알고 예배를 가볍게 아는 불량자라고 말합니다(삼상2:12). 그들은 회막 문 앞에서 수종 하는 여인을 범하고 여호와께 드려지는 거룩한 제물을 가져다가 함부로 먹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방탕하고, 홉니와 비느하스 탓에 실로에서 드려지는 제사가 상달되지 못하자 심판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벌인 아벡 전투에서 패하고 그 와중에 실로는 철저히 파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윤석전 목사: 실로의 쇠락에 담긴 메시지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왕대일 교수: 실로는 B.C. 1050년경 블레셋에 멸망합니다. 당시 여호와의 법궤를 블레셋에 빼앗겨 실로가 망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보면 블레셋이 빼앗아간 법궤가 이스라엘로 100년 후 다시 돌아왔지만 실로의 영광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실로를 버리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로라는 도시가 아무리 신앙의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해도 경건의 모양만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실이 없던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심판하시고 그곳에 있던 영광의 촛대를 옮겨가셨다고 생각합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이 말씀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실로에 있던 하나님의 촛대를 거두어 가셔서 실로가 역사 무대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진설명> [실로가 폐허가 된 아벡 전투도와 법궤 이동 경로]  에벤에셀(아벡)에서 블레셋과 싸울 때 실로에 있던 법궤를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전사했다. 실로에서 그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법궤는 7개월간 블레셋 땅에 있다가 벧세메스로 돌아왔고 기랏여아림에 옮겨져 20년간 보존된 후 다윗성으로 옮겨졌다. 빼앗긴 법궤는 돌아왔지만 실로의 영광은 돌아오지 않았다.



윤석전 목사: 예레미야 7장에 쇠락한 실로가 등장하는데 예레미야는 실로를 어떻게 표현했나요?

오택현 교수: 예레미야 7장에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설교한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가 나옵니다. 당시 바벨론이 쳐들어와 예루살렘을 겹겹이 에워쌌습니다. 당시 유다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믿음이 급속도로 퍼지자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을 대언합니다.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렘7:12).” 또 “홉니와 비느하스 그리고 백성들이 범죄 했을 때 실로를 파괴하더라도 너희들을 회개시켰던 그것을 기억하지 않느냐. 너희들이 회개치 않으면 예루살렘을 무너뜨려서라도 하나님은 너희들을 회개시킬 것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예레미야는 실로에 애착을 가지고 그곳 성소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여주면서 옛날 역사를 되뇌며 회개하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사무엘은 실로 성막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하나님께서 버린 도시에서 어떻게 이런 위대한 선지자가 나타날 수 있나요?

왕대일 교수: 폐허 도시 실로에서 하나님의 사람,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이 등장한 데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실로 성막에서 엘리 제사장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 사무엘은 실로의 실패, 엘리의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것 같습니다. 한 예로 엘리 가문이 끝나는 사건 중에 ‘이가봇(Ichabod)’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가봇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뜻입니다. 아들이 죽고 법궤도 뺏기고 엘리도 죽으면서 엘리 가문은 끝이 납니다. 사무엘이 등장하면서 백성을 미스바에 모이게 해 회개하도록 이끕니다. 그때 블레셋이 쳐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은 큰 우레를 발하셔서 블레셋 사람들을 어지럽게 하여 패하게 하십니다. 승리를 경험한 후 사무엘이 세운 돌이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다는 ‘에벤에셀’입니다. 이가봇의 실패와 에벤에셀의 승리, 이것은 사무엘이 엘리의 실패를 영적으로 되새겨서 하나님의 은혜와 손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삶 속에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죽음이라고 하는 고난의 자리에서 새로운 지도자의 탄생이라고 하는 부활로 가는 역사를 이끌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실로에 있던 성막은 어디에 있나요?

오택현 교수: 실로 성소는 덴마크 고고학 발굴팀이 1926년부터 발굴하고 있습니다. 논쟁점은 성막을 세운 위치입니다. 산꼭대기일까, 산 중턱일까, 고심하면서 여러 차례 발굴을 시도했습니다. 염두에 둔 사실은 이곳이 ‘성전’이 아니라 ‘성막’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동할 목적으로 만든 성막이니 그 흔적이 남지 않습니다. 지금은 더는 논쟁하지 않습니다. 실로에서 발견된 유적 중 가장 최근 것은 비잔틴 시대 모자이크입니다.

윤석전 목사: 사무엘 활동 시기에 실로는 어땠나요?

왕대일 교수: 실로는 엘리 가문이 무너진 후부터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실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온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돼서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는 실로에 매여 있지 않았습니다.

윤석전 목사: 우리는 하나님께 아름답게 사용 받을지라도  버림 받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이라도 하나님께 도전한 백성은 가차없이 버립니다. 주위를 살피고 본인도 살피면서 평생 축복 속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6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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