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04)] 모세가 최후 맞이한 느보산

등록날짜 [ 2018-04-20 19:00:04 ]

가데스 므리바에서 혈기 부린 모세
하나님 거룩함 드러내지 못한 죄짓고
가나안에 발 못들이고 생을 마감

윤석전 목사: 모세는 광야생활 40년을 마치고 가나안 복지로 가던 중 느보산에 도착했습니다. 가나안 복지가 눈앞에 펼쳐졌지만, 모세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모세가 생애 마지막 순간을 보낸 느보산으로 가 보겠습니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남서쪽으로 가면 완만한 경사를 이룬 해발 835m 느보산에 이른다. 모세는 가나안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모압 땅 느보산에서 최후를 마쳤다. 산 정상에는 모세와 관련된 중요한 상징물이 있다. 이탈리아 조각가 지오바니 판토니(Giovanni Fantoni, A.D. 1755~A.D. 1807) 작품 ‘놋뱀십자가’에는 “하나님, 독사에 물려죽는 백성을 살리소서” 외치던 모세의 애절한 기도가 담긴 듯하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최후를 맞은 모압 땅에서, 광야생활 중에 태어난 신세대와 함께 전열을 가다듬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진군할 채비를 갖춘 것이다.


<사진설명> 놋뱀십자가  모세가 최후를 맞이한 느보산 정상에 세워져 있다. 이탈리아 조각가 지오바니 판토니의 작품. 모세가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사람들을 살려주려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들어 올린 ‘놋뱀’ 형상(민21:5~9)과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이 세상에 오셔서 못 박히신 십자가를 조합한 모습이다.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형상화했다. 건너편에 보이는 땅은 모세가 그토록 가고자 했으나 들어가지 못한 가나안 지역이다.

<사진설명> 느보산 주변 지도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남서쪽 방향에 있는 느보산. 느보산 정상 동쪽으로 모압 평지, 서쪽에는 요단강 계곡, 그 너머 맞은편에는 가나안 평지가 펼쳐진다. 아래쪽으로 사해가 있고 그 서쪽으로는 감람산과 여리고성이 있다.


윤석전 목사: 느보산은 어디에 있나요?

오택현 교수: 느보산은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35km 떨어진 지역에 있습니다. 자동차로 30분 걸리는 가까운 곳이고 경사가 완만해서 산 정상 입구까지 차로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느보산을 사랑하는 이유는 모세가 최후를 맞이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전 목사: 느보산은 구약성경에 언제 등장했나요?

오택현 교수: 구약성경에서 ‘느보’는 모압에 있는 도시를 나타낼 때 서너 번 등장합니다. ‘느보산’은 두 번 나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산에 올라 느보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네가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말씀하실 때 나옵니다(신32:49~52). 둘째, 모세가 느보산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며 최후를 맞이할 때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매”라는 구절에 등장합니다(신34:1).

윤석전 목사: 성경에는 모세가 느보산에서 죽은 이유를 무엇이라고 했는지 소개해 주세요.

정중호 교수: 모세는 위대한 지도자였지만, 하나님을 앞세우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잘못을 저질렀기에 약속의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 광야 므리바(Meribah, ‘다툼’의 뜻)에 도착했을 때 마실 물이 없자 모세에게 불평불만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민20:8). 모세는 다시 백성에게 돌아갔지만 백성을 책망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이 솟아날 때도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이 나왔다는 말을 백성에게 하지 않았습니다. 백성의 눈에는 마치 모세의 힘으로 이적을 일으킨 듯 보였을 터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저지른 잘못이었습니다. 그 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했기에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죽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모세는 느보산에 올라 가나안 복지를 바라만 봤을 뿐, 그 땅을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바라본 가나안 복지 전경은 어떠한지 소개해 주세요.


<사진설명> 방향판  느보산에서 보이는 이스라엘 주요 성지의 지명·거리·방향이 표기돼 있어 조망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오택현 교수: 느보산 정상 동쪽으로 모압 평지가 나타납니다. 서쪽을 바라보면 깎아지른 듯한 요단강 계곡이 보이고 그 너머 맞은편에는 가나안 평지가 펼쳐집니다. 느보산 정상에 올라가면 방향표지판이 있는데 가나안 각 도시 지명(地名)과 방향을 표시해주어 조망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아래쪽을 보면 사해 북쪽 끝 지점이 보여 요단강이 사해로 유유히 흘러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여리고성을 볼 수 있는데 종려나무 숲이 장관을 이룹니다. 날씨 좋은 날 유대중앙산악 지역을 바라보면 예루살렘 동쪽 감람산까지 조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나안 전망을 살펴보면 당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모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모세가 죽은 장소와 시신을 둔 지점을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중호 교수: 모세 묘지의 행방을 모른다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당시 고대사회는 죽은 자를 숭배하는 종교 관습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만일 모세의 묘지가 어딘지 알려졌다면 그곳을 성지(聖地)로 만들어 참배객이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신으로 숭배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예상하셨기에 모세의 묘지를 아무도 모르게 하셨고 그 일을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모세를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할 수 있지만 신으로는 숭배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다시 한 번 느보산으로 가 보겠습니다.

모압 북쪽 여리고 맞은편에 해발 835m 느보산이 있다. 산 정상에는 모세기념교회가 있는데 모세 죽음 터라 여기는 자리에 교회를 세웠다. 이곳은 모세의 신앙을 본받고 싶어 하는 순례자들로 늘 붐빈다. 사람들은 A.D. 4세기 비잔틴시대에 세운 교회에 느보산에서 서식하던 동식물의 모습을 벽화로 남겨놓았다. 모세기념교회를 둘러본 순례자들은 발걸음을 옮겨 느보산 유물 전시관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느보산 일대 역사 유물이 구석기 것부터 잘 보존돼 있다. 유물관의 가장 귀중한 전시품은 이스라엘과 모압 사이 전쟁(왕하3장)을 기록한 ‘메사 비문(碑文)’ 탁본이다. 선사시대 진열대에는 각종 석기(石器)를 볼 수 있는데 구석기에서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 느보산 일대 거주민이 사용한 도구의 파편들이다. 사람들은 유물 전시관에서 모세가 죽기 오래 전부터 살아온 느보산 일대 인간 역사를 확인한다. 느보산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낸 모세의 생애 역시 실제 역사였음을 확인해준다.


<사진설명> 모세기념교회 모자이크  느보산에 서식하던 각종 새와 동물 모습이 모자이크에 새겨져 있다.


<사진설명> 모세기념교회  느보산 정상, 모세 죽음 터라 여기는 자리에 세워 놓은 교회다. 이스라엘 백성이 므리바에서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불만 했을 때,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 했다. 당시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이 나왔다는 말을 하지 않은 채 백성에게 화내며 책망하기에 급급했고 그 죄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 곳 느보산에서 숨졌다.


윤석전 목사: 모세가 고령에도 기력이 쇠하거나 눈이 흐리지 않고 왕성하게 광야 생활을 했다는 것이 느보산을 통해 증거된다고 하는데 이를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정중호 교수: 모세는 죽을 때 홀로 느보산에 올라갈 결심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때문에 죄를 더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느보산은 835m 고산입니다. 많은 이가 120세 노인 모세가 홀로 느보산을 오르기에는 무리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모세가 느보산에 오른 성경 기록을 볼 때 모세의 기력이 쇠하지 않았고 눈이 흐리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그때까지 건강하게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오택현 교수님은 느보산이 평지라고 했는데, 정중호 교수님은 835m 고지라고 했습니다. 왜 달리 말씀하시는지 설명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암만 동쪽 지역에서 느보산에 오를 때는 완만한 평지에서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 맞은편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가려면 깎아지른 절벽을 타야 합니다. 모세가 신명기 말씀을 외쳤던 장소는 모압 평지입니다. 모압 평지에서 신명기 말씀을 마치고 하나님의 명을 받아 죽기 위해 느보산에 오를 때 깎아지른 절벽을 올랐습니다.

윤석전 목사: 현재 느보산 교회에 가면 옛날에 세운 기둥도 있는데 느보산 교회는 언제 발굴됐는지 궁금합니다.

오택현 교수: 현재 우리가 찾아가는 느보산은, 모세 최후를 간직한 곳으로 알려진 초대교회시절부터 많은 성지순례객이 찾아와 은혜받는 장소입니다. 이후 비잔틴 시대에 접어 들어 기독교가 느보산 지역을 다스리면서 교회를 여럿 세웠고 많은 성도가 예배드렸습니다. 이후 이슬람교가 느보산 지역을 지배할 때는 교회가 자연스럽게 사라졌는데 그 상태가 20세기 초반까지 지속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위임통치 하면서 느보산 근처에서 옛 교회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프란체스카 수도회를 중심으로 1932년부터 느보산 지역을 대대적으로 발굴했습니다. 그 결과 1935년과 1937년에 교회 흔적인 교회 바닥 모자이크와 기둥들을 발견해서 보존하게 됐습니다.

윤석전 목사: 현재 있는 교회는 언제 건축됐나요?

오택현 교수: 현재 교회는 옛 교회 자리에 건물을 세워 놓은 것입니다. 1932년 프란체스카 수도회에서 건축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교회 바닥이 어느 시대에 세워진 교회 흔적이냐입니다. 교회 바닥 모자이크를 분석해 본 결과 A.D. 4세기경에 세운 건축물로 추정됩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재위 A.D. 306~337)가 기독교를 공인한 시기여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세워진 교회라고 추정합니다.

윤석전 목사: 아론이나 모세 같은 지도자들이 산 정상에서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중호 교수: 모세도 위대한 지도자였지만 아론도 대제사장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후에 백성이 자신들을 신으로 숭배하지 않게 하려고 산 정상에서 죽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지도자다운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백성이 올바르게 신앙생활하게 하려고 숨지는 순간까지 염려하고 사랑한 모세와 아론은 정말 위대한 지도자라 하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느보산 정상에 있는 십자가 조형물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오택현 교수: 사람들이 십자가 조형물을 ‘느보산 상징’이라고 합니다. 이 조형물은 세계적 조각가 이탈리아 지오바니 판토니 작품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사람들을 살려주려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들어 올린 ‘놋뱀’ 형상과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이 세상에 오셔서 못박히신 십자가를 조합한 모습입니다.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형상화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 온유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했습니다(민12:3,7). 하지만 모세도 때로는 자기를 이기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느보산에서 생을 마치면서 최후에 보여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사랑은 우리를 감동시키며 목회자에게 큰 교훈을 안겨줍니다. 하나님 말씀에 끝없이 순종해서 마지막 최후의 영광을 바라봅시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7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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