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15)]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고향 길르앗 지역

등록날짜 [ 2018-08-07 12:37:47 ]

길르앗 산악지대 정상 ‘텔 마르 일리아스’
선지자 엘리야의 고향 ‘디셉’으로 추정


가뭄 때 엘리야가 숨어 지내던 ‘그릿 시내’
엘리사의 고향 ‘아벨므홀라’도 매우 인접


윤석전 목사: 엘리야는 구약 시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선지자입니다. 엘리야는 가뭄에 먹을 것이 없어 고통을 당하다 그릿 시냇가로 갔고, 하나님은 까마귀의 입에 떡과 고기를 물려 그곳에 가져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든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먼저 엘리야의 고향 디셉으로 가 보겠습니다.

디셉(Tishbite)은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의 고향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디셉 사람 엘리야는 바알을 섬기던 아합왕에게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3년 반이 지난 후, 엘리야가 기도하자 가뭄이 끝나고 큰비가 내렸다. 엘리야는 이 사건으로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는 ‘물의 주관자’는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이심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확인시켰다.

<사진설명> 그릿 시내  현재 지명 ‘와디 알 야비스’. 엘리야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수년간 우로(雨露)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후 이곳에 숨어 가뭄의 세월을 보냈다. 하나님께서는 이곳에 숨은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시켜 떡과 고기를 갖다주셨다.

<사진설명> [텔 마르 일리아스.] ‘엘리야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엘리야의 고향 디셉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현재 바닥이 모자이크로 장식된 회당 터 유적 약 198m²(60평)가 남아 있다.

윤석전 목사: 엘리야의 고향 디셉은 어떤 곳인가요?

오택현 교수: 성경은 엘리야를 소개할 때 ‘길르앗에 거하는 디셉 사람 엘리야’라고 합니다. 디셉이 길르앗에 포함된 점은 분명하지만, 그곳이 시골이었기에 현재 그 지역을 정확하게 아는 학자는 없고, 길르앗 산들을 연구하면서 찾은 디셉 추정지는 몇 곳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추정지는 길르앗 야베스(Jabez)에서 동쪽으로 약 8km 떨어진 리스팁(Listib)입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아직까지 엘리야와 관련한 유적을 발견하지 못해서 리스팁이 엘리야의 고향 디셉이라고 하는 의견은 힘을 잃고 있습니다. 대신 길르앗 산악지대 정상에 있는 텔 마르 일리아스(Tell Mar Elias)가 유력한 디셉 추정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198m²(60평) 정도 되는 모자이크가 있는 회당 유적이 있는데, 이름 자체가 엘리야를 기념하고 있어 이곳이 엘리야의 고향 디셉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엘리야는 이곳에서 가나안 지역에서 벌어지는 우상숭배를 마음 아파하고 하나님의 소명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열왕기상 17장에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수년 동안 우로(雨露)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로는 비와 이슬을 의미하는데, 이슬이 안 오는 것이 왜 큰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우택주 교수: 고대 팔레스타인은 건조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는 계절’과 ‘비가 오지 않는 계절’로 나뉩니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와는 전혀 다릅니다. 보통 그 지역의 우기는 10·11월부터 그다음 해 3월까지 이어지는데 이때 내리는 비를 받아 일 년을 삽니다. 길르앗 지역에 내리는 이슬은 팔레스타인 중앙산간지대, 특히 베들레헴, 예루살렘, 헤브론 등에 내리는 이슬비와 맞먹는 양이라고 합니다. 길르앗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슬이 얼마나 중요한 식수원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엘리야가 ‘수년간 우로가 없을 것’이라고 한 선언은 바알 숭배자들에게 저주를 퍼부은 말인데,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구약을 대표하는 선지자 엘리야의 일생은 한마디로 ‘바알과 바알 숭배자들에 대한 투쟁’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제일 먼저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17:1)라고 선언한 일도, 당시 모든 사람이 믿고 있던 우상에 철퇴를 가한 말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바알이 비·이슬·샘·강을 주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또 그들은 농사를 주관하는 신이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이라고 믿었습니다. 엘리야는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신은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 한 분뿐이시다”라는 사실과 “바알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비와 이슬을 내리지 않으신 것이다. 바알이 정말 신이 아니라는 것을 너희가 체험해 봐라”는 내용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언했던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엘리야가 가뭄을 피해 갔던 ‘그릿 시냇가’와 엘리사가 태어났던 ‘아벨므홀라(Abel-Meholah)’로 가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가뭄을 피하고 아합왕의 추격을 따돌리도록 요단강 동쪽 ‘그릿 시냇가’로 몸을 숨기라 말씀하시고, 까마귀의 입에 떡과 고기를 물려서 엘리야의 주린 배를 채워 주셨다(왕상17:3~6).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엘리야도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 주신 떡과 고기로 연명했다.

그릿 시내 부근에는 또 다른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의 고향으로 추정하는 ‘아벨므홀라’가 있다. 이곳에서 밭을 갈던 엘리사에게 엘리야는 자기 외투를 던졌고,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라서 그의 제자가 됐다(왕상19:19~21).

<사진설명> [아벨므홀라] 선지자 엘리사의 고향이다. 그릿 시내 서쪽 산 중턱에 있는 이곳에서 엘리사는 소로 밭을 갈다가 엘리야가 나를 따르라고 하자 바로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랐다.

<사진설명> ‘성서의 땅을 가다’ 촬영차 ‘아벨므홀라’를 순례하며 선지자 엘리사를 소개하는 윤석전 목사.

윤석전 목사: 그릿 시내와 엘리야의 관련성을 말씀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수년간 우로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후 그릿 시냇가에 숨어 가뭄의 세월을 보냅니다. 이곳의 현재 지명은 ‘와디 알 야비스(Wadi al Yabis)’입니다. 그릿 시내에 가면 엘리사의 고향 추정지 ‘아벨므홀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릿 시내와 엘리사의 고향이 상당히 가까이 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곳에 숨은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갖다주셨고, 엘리야는 시돈 땅 사르밧으로 가기 전까지 이곳에 머뭅니다.

윤석전 목사: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서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 주시는 떡과 고기로 먹고살았습니다. 이 이적 사건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우택주 교수: 이 사건의 놀라운 점은 하나님께서 짐승을 시켜 엘리야에게 음식을 주어 그가 굶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아무리 신령하다 할지라도, 먹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을 하나님께서 먹이고 살리신 점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원천을 유지해 줄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왜 그렇게 먹이시는가’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수년 동안 우로가 ‘내 말이 없으면’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기에 그 말씀을 성취하기까지 엘리야를 보호해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하신 말씀의 권위를 보호하고 입증하려고 이 같은 이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엘리사의 고향 아벨므홀라에 관해 말씀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그릿 시내 서쪽 산 중턱에 엘리사의 고향 ‘아벨므홀라’가 있습니다. 당시 엘리야가 엘리사를 처음 만났을 때 엘리사는 소를 앞세워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아벨므홀라가 산 중턱에 있지만 계단식으로 경작한 비옥한 땅이어서 충분히 밭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성경에 나온 지형이 현재까지 동일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아벨므홀라는 성경에 언제 처음 등장하나요?

우택주 교수: 아벨므홀라가 처음 등장한 것은 사사 기드온이 미디안과 전투를 벌일 때입니다. 기드온이 300용사를 이끌고 이스라엘 평원 지역에서 미디안을 격퇴하고, 패배한 미디안이 요단강을 건너서 아벨므홀라를 지나 도망간 이야기가 성경에 나옵니다(삿7:22). 또  호렙산에서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 “너는 아벨므홀라에 가서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신 명령에도 나옵니다(왕상19:16).

윤석전 목사: 엘리사가 한 사역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우택주 교수: ‘예후’ 장군에게 기름 부어 하나님 일을 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누군가에게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그 사람을 통해 이룰 것을 약속하고 확증하는 일입니다. 당시 예후 장군은 아람과 전쟁을 벌이던 길르앗 라못의 최전방을 지휘했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그는 즉시 이스르엘 평야로 회군(回軍)해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던 요람왕을 살해합니다. 또 모후 이세벨을 2층에서 떨어뜨려 죽게 하고, 동맹국 유다 왕 아하시야도 살해합니다. 그뿐 아니라 당시 북이스라엘에서 바알을 섬기던 사람과 제사장을 다 도륙(屠戮)했습니다(왕하10:18~25).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바알을 섬겼기에 바알 신앙을 깨끗이 청산하고, 하나님 신앙을 새롭게 하려는 목적을 이루고자 엘리사가 예후 장군에게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엘리야가 이세벨에게 추적당할 때 두려워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택주 교수: 열왕기상 18장에는 승리한 엘리야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는데, 19장에서는 두려움에 떨며 도망치는 엘리야의 모습이 나옵니다. 우리는 상반된 엘리야의 모습에서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이적을 나타낸 사람일지라도, 그 자신에게 능력이 있어서 이적을 일으킨 것은 아니라는 점, ▲이세벨이 군대를 이끌고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쫓아오는데, 맞서 싸울 용기가 없는 모습을 보니 ‘엘리야 역시 위기 앞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850명을 죽인 후 호렙산 동굴 앞에서 ‘모든 사람이 바알에게 무릎 꿇었고 저만 홀로 남았습니다.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오니 하나님께서 지금 내 생명을 취해 주세요’ 하고 기도했습니다(왕상19:4~10). 그만큼 하나님만 섬기는 일이 고독하고 힘든 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 [엘리야와 엘리사 당시 이스라엘 지도.] B.C. 8세기 분열 이스라엘 왕국이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활동무대였다. 당시 북 이스라엘의 아합왕은 페니키아에서 왕비를 맞아 경제적·정치적 유익을 얻었으나, 바알과 아세라를 받아들여 온 나라가 우상숭배의 극치에 이르렀다. 이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만들고자 엘리야와 엘리사는 평생을 투쟁했다.

윤석전 목사: 엘리야는 평생 바알과 싸웠습니다. 후계자 엘리사도 예후를 왕으로 세우고 바알을 섬기는 모든 이를 쳐부수고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는 망합니다. 우리 모두 엘리야, 엘리사와 같이 우상과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큰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8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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