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18)] 신·구약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성서의 땅 시리아

등록날짜 [ 2018-08-29 13:28:08 ]

구약 시대 ‘아람왕국’으로 수도는 ‘다메섹’
사도 바울도 이곳에서 예수님 만나 회심
성경 속 유적 많아 나라 전체가 ‘박물관’

윤석전 목사: 구약 시대 ‘수리아’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 영토에 속했던 시리아. 신약 시대 수많은 사건이 일어났던 도시 다메섹의 나라 시리아. 그 나라가 성경 속 하나님의 역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강(江)은 하나님께서 세계 문명사를 이루시는 통로였다. 유프라테스강을 북쪽 국경선으로 하나님께서는 시리아 문명을 태동시키셨다. 시리아는 B.C. 1000년경 다메섹을 수도로 ‘아람 왕국’을 건설하고 육로 무역을 개방해 중근동 일대 부의 중심지가 됐다. 2000년 전,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오던 청년 사울은 다메섹 언덕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심했고, 사도 바울이 됐다. 다메섹 입구에서 만나는 바르발강.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엘리사의 말에 기분이 상한 아람의 나아만 장군은 “이스라엘의 강보다 다메섹의 바르발강이 낫지 아니하냐?”라고 말했다(왕하5:12). 시리아의 가장 큰 도시 다마스쿠스(Damascus)는 신·구약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성서의 땅이다.


<사진설명> [십자군 성채 크락 데 슈발리에] 중세 시대 십자군 성채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유적이다. 1170년에 확장공사를 한 뒤 단 한 번도 군사적으로 함락된 적이 없었던 난공불락의 성채다. 십자군 전쟁에서 ‘이슬람의 수호자’로 명성을 떨쳤던 ‘살라딘’조차 이 성을 공략하지 못했다.


윤석전 목사: 시리아를 전반적으로 소개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시리아는 동과 서, 남과 북을 연결하는 교역의 중심지입니다. 다메섹은 시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시리아는 인구 90%가 모슬렘, 10%가 기독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시리아는 호적에 종교를 기재하게 되어 있고, 부모의 종교가 자신의 종교가 됩니다. 다시 말해, 종교를 바꿀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슬람 사람에게 선교하기 매우 어려운 나라가 시리아입니다.

윤석전 목사: 시리아와 구약 시대 ‘아람’은 어떤 관계입니까?

우택주 교수: 성경에서 ‘아람(Aram)’ 나라는 현재 시리아 남쪽 지역에 자리 잡았던 고대국가를 말합니다. 아람 나라는 B.C. 11세기부터 8세기에 번창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아람’으로 표기하는데 영어 성경에는 ‘시리아’라고 표기합니다. 아람 족속은 북부 셈족어를 사용한 사람들로,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사진설명> [기원전 9세기경 고대 시리아 지도] 분열왕국 시대 이스라엘과 고대 시리아인 아람 왕국의 영토를 잘 보여 준다.

윤석전 목사: ‘아람’을 부르는 말은 성경에 다양하게 나오는데 소개해 주세요.

우택주 교수: 아람 족속을 일컫는 표현들은 어느 지역, 어느 도시에서 살았느냐에 따라서 아람이라는 단어를 붙여 여러 명칭으로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서, 아람 벳르홉, 아람 마아가, 아람 소바, 아람 다메섹, 밧단 아람 등으로 사용합니다. 대부분 시리아 지역을 일컫는 표현인데 ‘아람 마아가’는 헬몬산 근처에 요단 동편 지역을, 아람 다메섹은 다메섹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살았던 아람 나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람 나하라임이란 말은 유프라테스강 상류 지역을 일컫는 말입니다. 또 이 말은 밧단 아람을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고대 ‘하란’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이 같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신명기 26장 5절에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은 아람 사람이었나?’ 하는 의문을 품게 되는데 무슨 뜻인가요?

우택주 교수: 이스라엘이 혈통상 아람 족속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조상들이 한때 거주했던 지역이 아람 지역’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야곱이 20년 동안 살았던 외삼촌 라반의 집이 하란인데, 하란이 밧단 아람입니다. 야곱의 아내인 라헬과 레아도 아람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이주해 살았던 곳도 아람 지역인 하란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 역시 메소포타미아 나홀의 딸이었기에 아람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상이 아람 사람이라는 고백이 나온 것이지 혈통상 아람 족속의 피를 이어받은 것은 아닙니다.

윤석전 목사: 시리아에 남아 있는 구약 시대 유적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오택현 교수: 시리아에는 구약과 신약에 관련된 유적이 많습니다. 시리아의 수도 ‘다메섹’, 그리고 구약 해석에 도움을 준 문서를 발견한 도시 ‘에블라(Ebla)’가 있습니다. 또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짐승을 쪼개고 계약을 체결한 장면을 해석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문서를 발굴한 도시 ‘마리(Mari)’가 남아 있습니다. 구약성서 속에 번성했던 ‘바알 종교’를 보여 주는 ‘우가리트’도 현존합니다.

<사진설명> [우가리트 유적지] 우가리트는 오늘날 시리아의 ‘라스 샴라’다. 우가리트에서 발견된 문서 덕분에 당시 가나안 사람의 신과 종교를 알 수 있었고, 알려지지 않았던 셈족 언어로 기록되어 같은 계통의 히브리어 연구에 큰 도움을 주었다.

윤석전 목사: 왕정 시대 다윗과 솔로몬 관련 유적도 있나요?

오택현 교수: 왕정 시대에 이 지역을 이스라엘이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윗이 다메섹을 점령하고 다윗과 솔로몬 당시 ‘하맛 어귀’까지 다윗이 진출했다고 합니다(대상18:3). 하맛 어귀는 다메섹보다 훨씬 북쪽에 있는 장소이므로 하맛 어귀를 점령했다는 말은 북쪽 소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뜻입니다. 하맛 어귀는 현재 수차(水車)로 유명한 ‘하마(Hamah)’라는 도시입니다. 또 솔로몬 때 사막 거점 도시로 ‘다드몰(Tadmor)’을 만들었다고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대하8:4). 다드몰은 로마 시대에 사막의 항구 도시로 육성했던 현재 ‘팔미라’라는 도시입니다.

<사진설명> [왕정 시대 이스라엘과 시리아 지도] 다윗과 솔로몬의 왕정 시대에 이스라엘은 다메섹과 하맛(Hamath) 어귀까지 진출하며 번영을 누렸다. 특히 하맛 어귀를 점령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북쪽 소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솔로몬은 사막에 거점 도시 ‘다드몰(Tadmor)’을 세웠는데, 신약 시대 로마가 사막의 항구 도시로 육성했던 ‘팔미라(Palmyra)’다.

<사진설명> [팔미라] 솔로몬이 광야에 건축한 도시 ‘다드몰’인 ‘팔미라’는 일찍이 오아시스가 발전해 부유했지만, 대지진이 일어나 폐허가 되었다. 다음은 폐허 속에서 발굴해 낸 옛 흔적들이다. ① [바알샤민 신전] A.D. 17년에 바알을 위해 세워졌으나 5세기 무렵에는 기독교 교회로 사용됐다. 2015년 IS가 파괴했다. ② [벨 신전]  A.D. 32년에 바벨론의 주신인 ‘벨’의 신전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 신은 바벨론의 멸망과 동시에 수치스럽게 망할 것이 예언되었다(사46:1). 2015년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 IS가 파괴했다.


윤석전 목사: 기독교와 시리아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구약 시대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지중해 지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던 시리아의 제2 도시 알레포. 근동(近東) 일대 강대국들의 끊임없는 지배를 받은 이 땅은 다윗왕의 속국이기도 했다. 알레포를 통과해 마주하게 되는 성서의 땅 에블라. 이곳 왕실 문서 보관소에서 발견된 토판문서 2000여 점은 구약성서 난해(難解) 구절 해석에 큰 도움을 주었다. 구약성경에선 하맛이라 기록된 하마.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보냈던 열두 정탐꾼이  하맛 어귀까지 정탐했다고 성경은 전한다.

윤석전 목사: 시리아에 남아 있는 구약 이후 시대 유적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오택현 교수: 시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기독교 사건은 사도 바울의 회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 신약 시대를 이끄는 위대한 사도로 성장합니다. 시리아는 사도 바울을 변화시킨 중요한 역할을 한 도시이기에 바울과 연관한 유적이 많습니다. 다메섹 도상에 사도바울회심교회가 있고, 다메섹 중앙에는 당시 사도 바울이 머물렀던 장소인 로마 시대 도로 ‘직가(곧은 길)’가 남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회개시키고 눈을 뜨게 해 줬던 아나니아의 기록이 남아 있는 ‘아나니아교회’와 다메섹에서 핍박을 받았을 때 사도 바울이 창문을 통해 광주리를 타고 피신했던 장소도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또 마케루스 요새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침례요한의 목을 가져다가 묻었다는 자리가 있는데 그 위에 비잔틴 시대에 세운 ‘침례요한의 목 무덤 교회’가 옛모습을 지키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그 밖의 유적도 소개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시리아에는 그 밖에도 기독교 유적이 많이 있습니다. 구약 사본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알레포 사본이 발견된 장소인 ‘알레포’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알레포는 시리아의 제2 도시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쓰시던, 현재 사어(死語)가 된 ‘아람어’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용하는 ‘마룰라’에 가 볼 수 있습니다. 마룰라는 아람어를 현재 언어로 사용하고 있어 아람어 연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 십자군 성채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세계 유일한 장소인 ‘크락 데 슈발리에’라는 유적이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시리아 기독교의 기원을 말씀해 주세요.

우택주 교수: 시리아는 기독교가 초창기부터 자리 잡았다고 알려졌습니다. 시리아에 교회가 생긴 과정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의견은 시리아 주요 도시들이 로마제국과 동쪽의 중국, 인도, 파르티아 제국들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에 위치했기에 많은 사람이 오가며 상업하던 중 복음도 전파됐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윤석전 목사: 고대 시리아어로 번역된 ‘페쉬타’라는 성경 외에 시리아에서 사용된 다른 번역 성경도 있나요?

우택주 교수: 신약 시대 이후 시리아에 기독교인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그 지역 사람들을 위해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그 지역의 언어인 고대 시리아어로 번역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고대 시리아어로 번역된 성경을 ‘페쉬타(Peshitta)’라고 합니다. 그 이후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성서’를 시리아어로 번역한 ‘시리아번역성경’도 나왔습니다. ‘페쉬타’는 구약성경의 긴 문장을 짧게 요약하면서 번역했기에 고대 서기관들이 성경을 어떻게 읽고 이해했는지 연구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고대 시리아어, 즉 아람어로 번역된 ‘페쉬타’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성경과 같은 내용인가요?

우택주 교수: ‘페쉬타’는 히브리말로 된 구약성경을 짧게 정리·요약한 것 외에 내용상 차이는 없습니다.

윤석전 목사: 우리는 모두 내 안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면 다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축복으로, 은혜로 옛날에 행했던 모든 능력과 이적이 우리에게도 그 하나님으로 언제나 나타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속에 그 하나님을 모시고 언제나 성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고통과 어려움을 그의 능력으로 해결하면서 항상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8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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