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23) l 시리아 편(6)] 사도바울을 통한 하나님 역사 흔적이 강한 ‘다메섹’

등록날짜 [ 2018-11-14 11:56:16 ]

회심의 현장엔 ‘바울회심교회’ 세워져 기념
눈먼 사울이 안수받고 눈 뜬 유다 집터엔
‘아나니아기념교회’ 있고 ‘직가’ 유적도 남아

바울이 광주리 타고 도망친 곳엔 ‘광주리교회’
‘침례요한기념교회’ 터엔 ‘우마이야 모스크’
 
윤석전 목사: 사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해 바울이 됐고, 하나님의 사도로 복음 증거하다 순교하기까지 생애를 바쳤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하나님께서 바울을 향해 “이는 내가 택한 그릇”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바울 회심 현장인 다메섹으로 가보겠습니다.

 
▲ 다마스쿠스 요새   1076년 세운 중세 시대 요새화된 궁전이다. 1979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요새와 도시는 십자군과 이슬람 군대가 여러 번 포위했고, 몽골에 점령당하기도 했다. 요새는 발굴과 보수가 시작된 1986년까지 병영과 감옥으로 사용됐다.


시리아 수도 다메섹으로 가는 길목에서 사울은 빛 가운데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나 복음 증거자가 됐다. 현재 ‘카우캅’에는 사울의 회심을 기념하는 교회가 있다. 바울처럼 한 번 뜨겁게 회심해서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는 종으로 살다 생을 마치면 얼마나 좋을까. 예수를 만난 청년 사울은 이후 세계 복음화의 기수(旗手)로 변화된 삶을 살았다. 예수를 만나 눈이 먼 사울을 사람들은 다메섹으로 데리고 갔다. 하나님께서는 제자 아나니아를 예비해두셨다. 아나니아의 안수로 사울은 눈을 떴다. 현재 아나니아 집터엔 프란체스코 수도회 예배당이 있다. 아나니아가 순교한 후, 그 집은 기독교인의 예배당이 됐다. 집터엔 바울의 역사가 선명하다. 예수님을 만난 후 수많은 몽둥이와 삶의 풍랑을 견뎌내며 나아갔던 바울의 10,000km 세계 전도 대장정, 그 출발에는 시리아 다메섹이 있었다.
 
윤석전 목사: 다메섹에 바울과 관련한 유적이 있나요?
 

◀ 바울회심교회 사울이 그리스도인을 체포해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 길 위에서 하늘에 나타나신 주님을 만나 눈이 멀었던 지점이다. 이곳에 시리아 정교회에서 2001년 바울회심교회를 지었다. 사울이 당시 말 위에서 떨어졌다 해서 ‘바울낙마교회’라고도 한다.


오택현 교수: 다메섹은 사도바울과 관련 있는 중요한 도시입니다. 사도바울이 사울일 때 예수를 믿는 기독교 부흥에 화가 나서 살기(殺氣) 등등하여 대제사장의 공문을 들고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던 중, 밝은 빛과 함께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메섹 도상에 2010년 ‘바울회심교회’가 세워져 사도바울이 주께 쓰임받은 생애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인 바울의 회심 사건이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우택주 교수: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은 우리의 인생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실지 모릅니다. 우리가 가는 삶의 길이 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이라야 의미가 있습니다. 사울은 잘못된 진리를 바라보고 맹목적으로 걸어갔습니다. 우리는 ‘사울’처럼 그릇된 일에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믿어 하나님의 일에 힘쓰며 살아가는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윤석전 목사: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에게 하신 예수의 질책과 사울이 앞을 못 보게 된 사건을 소개해주세요.
 
우택주 교수: 이 사건은 세 가지를 의미합니다. ▲첫째, 빛 가운데 음성으로 사울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을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세상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신 것과 같습니다. ▲둘째, 눈이 먼 사울과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눈을 뜨게 된 바울, 이 모습은 신앙인에게 바로 듣고, 바로 보는지를 분간하며 살아가라고 일러줍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왜 날 핍박하느냐?’라고 하신 말씀은 믿는 자와 예수님이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믿는 자 가운데 함께하시기에 하나님은 믿는 자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다른 신앙인을 섬기는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약한 자, 갇힌 자, 주린 자에게 한 일이 내게 한 것이라고 마태복음 25장에 말씀하셨듯이, 믿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일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이 회심한 후에 다메섹 직가(直街) 유다의 집에 머문 흔적이 현재 남아 있나요?


◀다메섹 직가(直街) 예수님을 만나 눈이 먼 사울은 직가에 있는 유다의 집에 머물고 있던 아나니아에게 안수받고 눈을 떴다. 사도바울 당시 직가는 너비 15m에 이르고 길 양편에는 석주(石柱)들이 늘어선 로마식 대로였다. 지금은 시장으로 변한 직가 일부분만 남아 있다.



오택현 교수:
우리는 바울의 회심 사건에서 아나니아만 기억하지만 그 아나니아의 기도로 바울이 눈을 뜬 장소는 유다의 집입니다. 다메섹 중앙에는 폭 15m, 길이 300m 정도 되는 ‘직가(Straight Street)’라는 곧은길이 있었고, 그 길은 다메섹의 상징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서쪽 지역은 시장이 됐고, 주변에 많은 건물이 들어서서 직가는 극히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주변 로마식 건물들이나 기둥이 직가였다는 흔적을 보여줍니다.
 
윤석전 목사: 직가(直街) 유다의 집에 유명한 교회가 세워졌다면서요?
 

◀아나니아기념교회 눈 먼 사울이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복음 증거의 사명을 맡은 자 ‘바울’ 된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아나니아교회’를 직가 옆 유다 집터에 세웠다. 이슬람 세력 중앙에서 기독교 심장부 역할을 하며 기독교의 숨결을 지켰던 장소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오택현 교수: 눈이 먼 사울이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복음 증거의 사명을 맡은 자 ‘바울’이 된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아나니아교회’를 직가 옆 유다 집터에 세웠습니다. 몇 평 안 되는 조그만 규모지만, 이슬람 세력 중앙에서 기독교 심장부 역할을 하며 기독교의 숨결을 지켰던 장소라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장소의 규모보다는 하나님이 역사한 장소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공부했습니다. 다메섹은 사도바울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신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침례 요한의 잘린 머리가 보관돼 있다고 전해지는 곳도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보겠습니다. 
 

바울광주리교회  직가 끝에 있는 동문에서 남쪽으로 300m쯤 성벽을 따라 걸으면 마주하는 석문 옆에 있는 교회다. 유대인에게 쫓기던 바울을 제자들이 광주리에 실어 성벽에서 내렸다는 지점에 세웠다.


직가 끝에 있는 동문에서 남쪽으로 300m쯤 성벽을 따라 걸으면 마주하는 석문 옆에 ‘바울광주리교회’가 있다. 이곳은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을 피해 사울이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간 곳이다. 하나님은 매 순간 위험에서 바울을 지키셨다. 예수님을 만난 유대 청년 사울은 유대교를 위협하는 예수님의 참제자로 변했다. 바울광주리교회에서 얼마를 달리면 시리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 우마이야 모스크와 만난다. 이곳은 비잔틴 시대엔 침례요한교회였다.
 
윤석전 목사: 사도행전 9장에 사도바울이 예수 전하는 사람을 잡으려는 일당에게 쫓기다 광주리를 타고 도망친 사건이 나옵니다. 그 일을 기념하는 교회를 소개해주세요. 
 
오택현 교수: 직가에서 300m 정도 남쪽으로 가다 보면 거대한 성벽을 새로 만든 흔적이 있는데, 그곳이 사도바울이 탈출했던 창문을 복원한 장소입니다. 성벽은 막힌 상태로 남아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사도바울이  탈출했던 사건을 알려주는 광주리가 있습니다. 또 그 일을 기념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능력 있는 사도바울이 창문으로 도망한 장면은 어떤 성경적 시각에서 이해해야 할까요?
 
우택주 교수: 복음을 전하는 데는 전진과 후퇴 전략을 적절히 구사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사도바울이 과감하고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하다가 창문으로 도망하는 모습은 비겁하고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 선교의 효과성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목숨까지 내어놓고 전도하는 중에 어디에 미련이 남아 도망까지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무모한 전도는 피할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윤석전 목사: 우마이야 모스크를 소개해주세요.
 

▲ 우마이야 모스크  메카 다음가는 이슬람 신앙의 중심지이기에 경배자들로 붐빈다. 건물 내부의 모자이크는 아랍 모자이크의 백미로 꼽힐 정도로 예술성을 인정받는다. 아랍인들도 침례 요한을 선지자로 여겨 우마이야 모스크 안에 침례 요한의 머리무덤교회가 아직 남아 있다.  ?아나니아기념교회   눈 먼 사울이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복음 증거의 사명을 맡은 자 ‘바울’ 된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아나니아교회’를 직가 옆 유다 집터에 세웠다. 이슬람 세력 중앙에서 기독교 심장부 역할을 하며 기독교의 숨결을 지켰던 장소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오택현 교수: 우마이야 모스크는 가장 대표적인 모스크입니다. 규모도 가장 크고, 시리아에서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장소입니다. 또 우마이야 모스크 안에 새겨져 있는 모자이크는 아랍 모자이크 예술의 백미(白眉)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예술적인 가치도 충분히 인정을 받습니다. 또 이곳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입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아람인들이 이곳을 다스릴 때 하닷 신전 자리였고, 로마가 다스릴 때는 로마 신 주피터 신전 자리, 비잔틴 시대 기독교인이 시리아를 다스릴 때는 침례요한기념교회가 세워졌던 곳입니다. 지금은 아랍인들이 다스리고 있어 모스크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우마이야 모스크에 참수당한 침례 요한의 머리가 옮겨졌다는 설이 있는데 진위가 궁금합니다. 
 
오택현 교수: 이곳 우마이야 모스크 안에는 현재까지도 침례 요한의 머리무덤교회가 보존돼 있습니다. 비잔틴 시대 마케루스 요새에 있던 침례 요한의 머리를 이곳에 가져와 무덤을 만들고 교회를 세웠다는 전승이 있지만, 진위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아랍인들도 침례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고 있어서 우마이야 모스크 안에 무덤교회가 현재까지 남아 있습니다.


▲ 다마스쿠스 구시가지 지도 로마 시대 성벽으로 둘러싸인 다마스쿠스의 구시가지에는 곳곳에 기독교 유적들이 남아 있다.
 

◀시리아 지도 신·구약 성서의 땅이 넓게 자리한 시리아는 성지순례객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지는 성서의 보고(寶庫)다




윤석전 목사: 성지를 보는 바른 관점을 말씀해주세요.
 
우택주 교수: 성지에 다녀와서 신앙심을 더 굳게 갖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성지(聖地)는 성서(聖書)가 아닙니다. 성지에 가보면 척박한 환경만 목격할 뿐입니다. 참된 신앙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신앙은 평안하고 잘 갖추어진 환경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척박한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현장감 있게 느끼고 돌아오신다면 오늘날 우리가 각박하고 어렵게 여겨지는 삶 속에서 동일하게 일하실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지순례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의미는 과거가 아닌 현재가 될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께서도 돌로 치려고 하는 자들을 피하셨습니다. 척박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은 이적을 보이셨고 그때 역사하신 하나님은 현재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사는 우리와도 함께하십니다. 처지가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우리의 신앙은 성장하고 믿음의 역사를 볼 것입니다. 시리아 땅 성지순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9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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