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24) l 레바논 편(1)] 풍요의 신 ‘바알’ 섬겼던 고대 레바논 ‘두로’와 ‘시돈’항

등록날짜 [ 2018-11-15 14:10:04 ]

성서 시대 이스라엘-레바논 관계 좋았지만
레바논 지역은 풍요·다산의 신 ‘바알’ 숭배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에도 큰 영향
거대한 신전 유적이 우상숭배 성행을 대변
현재 모슬렘 인구 많지만 기독교인도 40%
 
윤석전 목사: 레바논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성경에서 상당히 중요하고 이스라엘 신앙에 많은 영향을 끼친 국가입니다. 이 지역을 지리와 연결하여 현대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 시돈항 시돈은 레바논에서 셋째 큰 도시로 두로에서 북쪽으로 40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수도 베이루트에서 남쪽으로 45km 지점에 있다. 자주(紫朱) 물감 산업으로 번성한 고대의 대표적인 무역도시였다.


고대 역사를 담은 평화로운 항구 도시였던 시돈(Sidon). 자주(紫朱) 물감 산업이 발달해 고대 레바논의 대표 무역 도시였던 시돈 항구는 2006년 7월 12일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을 받았다. 레바논 테러단 헤즈볼라(시아파 이슬람 무장투쟁 조직)가 이스라엘 군인을 납치·살해하자 보복 공습한 것이다. 민가에 숨은 헤즈볼라 색출을 도모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에 레바논 시민 1000여 명이 사망했고 건물들은 파괴됐다. 



▲ 시돈 십자군 성채 시돈은 12~13세기 십자군 전쟁의 주요 격전지였다. 시돈에 있는 이 성채는 1228년 제6차 십자군 전쟁 중에 십자군이 지었다.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을 기독교 성도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차준희 교수: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2006. 7.12.~8.14.)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해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측에서는 자국 안보를 지키려는 긴급조치며 정당방위입니다. 하지만 헤스볼라와 아랍 언론은 이스라엘의 무력 행위이자 전쟁 범죄라고 말합니다. 성서 신학자 입장에서 성경적으로 전쟁 원칙만을 말하면, 구약에서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삼상17:47).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싸워 주시는 일을 거룩한 전쟁, 여호와의 전쟁이라 합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전쟁은 모세가 출애굽 한 후부터 다윗 이전까지 전쟁을 말합니다. 다윗의 전쟁은 생존권 확보 차원이 아니라, 영토 확장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연약해 생존권이 위협받을 때 관여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힘을 가지고 연약한 나라를 괴롭히는 침략은 하나님이 함께하신 전쟁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다윗 이후 전쟁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적으로 이 땅의 전쟁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당한 전쟁, 원하시는 전쟁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무력(武力)을 무력화(無力化)하실 때까지 ‘너희는 잠잠하라. 내가 직접 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예수님도 검(劍)으로 일어선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마26:52). 칼로 평화를 부를 수 없습니다. 칼을 내려놓아야 진정한 평화가 시작됩니다. 


히람왕의 석관 히람왕(B.C. 980~947)이 통치한 34년간 두로는 시돈의 위성도시에서 페니키아의 가장 중요한 도시, 무역대국으로 성장했다. 히람왕은 다윗, 솔로몬과 친밀한 교제와 동맹을 맺었으며 다윗이 궁전을 지을 때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목재, 석재, 기술자를 제공했다. 특히 솔로몬과 함께 이집트, 아라비아,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무역로와 홍해를 가로지르는 무역루트를 열어 왕국을 부유하게 만들었다.


 
윤석전 목사: 성서 시대 이스라엘과 레바논 관계를 말씀해 주세요.
 
이원희 목사: 성서 시대에는 관계가 좋았습니다. 지형상 레바논은 남북으로 높은 고지대에 있습니다. 오늘날은 이스라엘 국경에서 많이 폭격하지만 그 당시엔 넘어가기 힘든 지형이라 침략하기 어려웠습니다. 다윗 때 실시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영토가 많이 확장되었는데도 레바논 지역만은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다윗 당시 레바논의 두로 왕 히람이 백향목을 건네주는 등 원만한 관계를 맺었고 이는 솔로몬 대까지 지속됐습니다.
 
윤석전 목사: 현재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성경 역사와 무관한가요?
 
차준희 교수: 그렇습니다. 성경의 역사와 무관한 전쟁입니다. 관계가 좋았던 레바논과 이스라엘은 유다가 망할 당시 마지막 왕 시드기야 시절에 주변 국가에 같이 억압받으면서 국제 정세에 보조를 맞췄다는 기록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인자야 두로가 예루살렘을 쳐서 이르기를 아하 좋다 만민의 문이 깨어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그가 황무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였도다”(겔26:2)라고 나옵니다. B.C. 587년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할 때 레바논 사람들이 무역 경쟁국이 없어졌다고 기뻐한 것입니다. 이때 이미 국민 감정이 멀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 나온 선지서에 보면 레바논을 두고 한 비판적 심판 예언이 많습니다. B.C. 4세기 알렉산더 대왕 때 성경 예언대로 레바논은 심판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성경 역사이고, 그 이후 역사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기에 오늘의 역사와 성경 역사를 직접 연관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윤석전 목사: 레바논으로 다시 가 보겠습니다.
 

▲ 두로항 수도 베이루트에서 85km 남쪽에 있는 두로는 고대 페니키아 도시였고, 오늘날 레바논의 넷째 큰 항구 도시다. 바다를 중심으로 주변에 대국도를 연결하는 교통과 교역의 요지였던 두로는 구약 시대 시돈과 더불어 레바논 부(富)의 상징이었다.


레바논 고대 항구 두로(Tyre)로 가는 길에 히람왕의 석관(石棺)이 있다. 히람왕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도록 두로 항구를 통해 일꾼과 백향목을 보내 주었다. 구약 시대 시돈과 더불어 레바논 부(富)의 상징이었던 두로는 바다를 중심으로 주변에 대국도를 연결하는 교통과 교역의 요지였다. 그러나 무역도시가 불러들인 부(富)는 가나안 바알 신의 중심지 바알벡(Baalbek)을 탄생시켰다. 바알벡의 거대한 신전 유적은 당시 이 땅에서 바알숭배가 얼마나 성행했는지를 대변해 주고, 이는 가나안에 들어온 이스라엘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윤석전 목사: 레바논의 지형적 특색이 성경의 역사와 어떤 관계성이 있나요?
 
이원희 목사: 레바논은 지형적 특성으로 많은 부를 축적했고 그 부가 이스라엘에까지 미쳤습니다. 레바논은 남북으로 높은 두 지대가 있습니다. 하나는 레바논산맥이고 또 하나는 안티레바논산맥인데 그 사이 넓은 평야에 베카 계곡이 있습니다. 레바논은 ▲평야 지대에서 산출한 막대한 농산물 ▲높은 산맥이 내륙 진출을 가로막은 탓에 발달한 생존형 해상무역 등으로 풍요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바알 신앙 같은 이방 신이 들어오고 우상숭배에 빠지게 됐습니다. 
 

바알벡에 있는 거대한 바알 신 유적 바알벡은 ‘바알의 도시’라는 뜻. 로마는 이곳을 ‘헬리오 폴리스’라 불렀다. 베이루트에서 북동쪽 85km, 시리아 다마스쿠스(다메섹)에서 북쪽 75km 떨어진 베카 계곡에 있는 도시다. 바알벡에 있는 거대한 신전 유적은 당시 이 땅에서 바알숭배가 얼마나 성행했는지를 대변해 주고, 가나안에 들어온 이스라엘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윤석전 목사:
레바논 지역의 중심 종교는 무엇이었나요?
 
차준희 교수: 레바논의 중심 종교는 바알입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들였습니다(왕상16:31). 즉, 바알 신 숭배자를 왕비로 들인 것입니다. 아합왕도 그 아내를 따라 바알을 섬기며 하나님과 그 선지자를 핍박합니다. 열왕기상 11장 33절에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이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레바논 대표 도시인 시돈과 두로는 남신(男神) 바알, 여신(女神) 아스다롯과 아세라 신을 섬겼습니다. 남신과 여신이 나왔다는 점은 음란과 연결됩니다. 남신과 여신의 결합은 다산(多産)의 종교의식이고 이것이 바알 종교의 핵심이기에 성경에서는 바알 종교를 음란 종교라고 하고 물질적인 풍요와 연결이 돼 맘몬(부와 재물의 신) 종교라고 말합니다. 
 
윤석전 목사: 현재 레바논의 종교와 기독교 상황은 어떤가요?
 
이원희 목사: 레바논은 아랍 국가인데도 기독교가 허락돼 1970년대엔 기독교가 70%, 이슬람교가 25%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기독교가 40%, 이슬람교는 54%라고 합니다. 기독교 선교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슬람 세력이 확장돼 실제로는 선교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 레바논 지도 고대 페니키아 문명의 중심지인 레바논은 ‘레바논산맥’과 ‘안티레바논산맥’ 사이의 넓은 평야지대인 ‘베카 계곡’에서 산출한 막대한 농산물과 해상 무역으로 물질적인 풍요를 누렸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이방 신이 들어오고 우상숭배에 빠지게 됐다. 오늘날 레바논은 시리아와 함께 공식적으로 이슬람을 국교로 채택하지 않은 아랍국가로서, 여러 종파를 인정한다. 종교는 이슬람교 54%, 기독교 40.5%, 드루즈교 5%다(대한민국 외교부 정보). 모슬렘 수가 많지만, 기독교 정치 세력의 힘이 상당하기 때문에 비이슬람 국가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과 레바논에 전쟁이 왜 일어났고, 이런 전쟁을 기독교 관점에서 어떻게 봐야 할까요?
 
차준희 교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특정 민족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온 인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은 그들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선택받은 자로서 책무를 등한히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럴 때마다 선지자를 통해 책망하셨습니다. 성경에 이스라엘이 약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는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 주셨고, 반대로 이스라엘이 오만해졌을 때는 주변 나라를 들어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이 원칙은 오늘날에도 동일합니다. 오늘날 일부 기독교인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했다 하여 이스라엘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겨 옳다 하고, 이스라엘에 적대하는 나라를 함께 적대시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 사고도, 상식적 사고도 아닙니다. 기독교인은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교만할 때 하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윤석전 목사: 레바논 사람들이 숭배하던 바알을 맘몬이라고 하셨는데, 맘몬을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차준희 교수: 바알은 물질적 풍요를 관장하는 신이자 농경신입니다. 농경 문화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雨), 사람과 짐승의 다산(多産), 풍요입니다. 농경문화권의 절대적인 요소들은 모두 바알이 관장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도 가나안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게 되자 바알을 섬긴 것입니다. 바알은 일종의 물질적인 풍요, 즉 물신(物神)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라는 말이 아람어로 맘몬(Mammon)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나는 하나님도 좋고 돈도 좋다’고 말한다면 바알의 제자이지 예수님의 제자는 아닙니다.
 
윤석전 목사: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게으름·환경·문화·문명과 전쟁합니다. 수많은 육적 환경과 싸워 이겨서 기필코 영적 승리를 얻어야 합니다. 급격하게 기독교인이 감소한 레바논같이 우리 대한민국도 현재 많은 기독교인이 생명력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 충만하여 초대교회와 같이 절대적인 능력과 이적을 보이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축복의 역사가 우리 한국교회에도 넘쳐 났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9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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