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33)] 이집트 신전들이 모여 있는 곳 룩소르 ‘카르낙 신전’

등록날짜 [ 2019-02-07 20:13:38 ]

1500년에 걸쳐 지어진 복합신전 유적
아몬 신전과 사각기둥 탑 오벨리스크는
당대 최고의 신으로 모신 태양신을 상징


이집트 왕들 권위 과시하려 온갖 신전과
우상 세웠지만 결국 그들의 시대 사라져
하나님은 교만한 자 아닌 겸손한 자 쓰셔



<사진설명> 이집트 카르낙 신전에서 ‘성서의 땅을 가다’ 촬영하고 있는 윤석전 목사와 탤런트 한인수 장로.


윤석전 목사: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 다른 신은 섬기지 말라’ 하셨지만 인간들은 자신이 의지하고 섬길 신들을 만들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돕고 사랑하는 신이십니다. 고대 이집트에는 자연도, 사람도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런 이집트에서도 신전이 모여 있는 곳 룩소르(Luxor)의 카르낙 신전(Temple of Karnak)으로 가보겠습니다.


룩소르 카르낙 신전은 고대 이집트의 대표적 신전이며 12~26왕조까지 14대에 걸쳐 1500년간 건축된 신전이다. 당시엔 당대 최고 신 아몬(Amon)신전 입구에 그를 상징하는 양머리 스핑크스가 900여 개 있었다고 한다. 또 움직임은 ‘삶’이고 멈춤은 ‘죽음’을 상징하는 고대 이집트인의 세계관을 나타내는 상(像)이 있다. 이곳에 있는 아몬신전은 돌 숲이라고도 부르는데 높고 두꺼운 돌기둥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인은 이렇게 해서 아몬신의 최고성을 나타냈다. 또 수천 년간 보존된 천장 문양 색채는 신을 향한 변치 않는 진심을 담고 있다. 카르낙 신전 중 투트모세 3세(ThutmoseⅢ)의 신전 안에 있는 바로의 용맹성과 업적을 기리는 수많은 벽화는 18왕조 투트모세 3세의 30년 통치를 기념하고 있다. 이 우상의 숲에도 기독교인의 흔적이 있다. 이슬람이 이 지역을 점령해 기독교를 핍박할 때 왕의 무덤이나 폐허가 된 신전에서 기독교인들이 예배드렸다고 한다.


윤석전 목사: 카르낙 신전은 어떤 신전인가요?


권혁승 교수: 카르낙 신전은 상부 이집트 중심지 룩소르에 있는 대표적인 신전이며, 무려 1500년 동안 지어진 신전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윤석전 목사: 카르낙 신전의 기술력이 놀랍습니다. 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신전만의 특색은 무엇인가요?


권혁승 교수: 카르낙 신전은 하나의 신전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만들어진 복합신전입니다. 현재 카르낙 신전에 있는 세 신전 중 가장 큰 것은 태양신을 섬기는 아몬신전이며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한 신전이 차지하는 면적만 해도 대략 10만 평이고, 들어가면 거대한 돌기둥 134개가 늘어선 장관을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카르낙 신전 비문(碑文)을 보면 성경과 이집트의 관련성을 알 수 있다는데 그 내용이 궁금합니다.


김은호 교수: 카르낙 신전 안에는 여러 가지 벽화 중에 히타이트와 조약을 맺는 람세스의 그림이 있고, 우측에는 점령한 팔레스타인 도시가 적혀 있는데 그중 성경에 나오는 지명인 ‘아스글론’이 나옵니다. 또 투트모세 3세의 전쟁 노획물이나 ‘시누헤’라는 팔레스타인으로 망명했던 자가 남긴 글을 보면, 당시 가나안 지역의 자연환경을 말했습니다. “무화과들이 그곳에 있었고 포도주가 있었다. 포도주는 물보다 더 많았고 꿀이 풍부했다. 올리브도 풍부했고 모든 종류의 과일이 나무에 달려 있다.” 이런 표현을 보면 신명기 8장 7~8절에서 언급한 것과 같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라는 말씀을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 백성은 요셉이 총리로 있을 당시만 해도 고센 땅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어떤 이유로 노예로 전락했나요?


김은호 교수: B.C.19세기부터 출애굽 하는 15세기까지 왕이 여러 번 바뀝니다. 12왕조 때는 왕 14명이 빠르게 바뀌었고, 출애굽이 있기 전에 있었던 17왕조는 1세기 동안 왕이 15명이나 바뀌었습니다. 맹렬한 정권 쟁탈로 왕은 계속 바뀌면서 나라는 불안정한데, 이방인인 이스라엘 민족은 점점 번성해 그들의 증가가 정치적 위협으로 다가와 이스라엘을 압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카르낙 신전에 있는 이집트 당대의 강력한 바로 람세스 2세 석상과 오벨리스크를 보겠습니다.


카르낙 신전 입구 양쪽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태양신을 상징한다. 햇살을 묘사한 길고 높은 피라미드 기둥에는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고 믿었던 태양신을 찬양한 내용을 상형문자로 기록해 놓았다. 그 오벨리스크를 지나면 신이 되고자 했던 바로 중 대표적 인물인 람세스 2세의 석상이 있다. 그는 제19왕조 셋째 왕이며 66년 통치 기간에 수많은 신전과 도시를 세우고, 자신을 신격화했다. 람세스 2세는 수많은 정복 전쟁 과정에서 이스라엘을 지배했지만, 이집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윤석전 목사: 람세스 2세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권혁승 교수: 람세스 2세(재위 B.C.1279~B.C.1213)가 재위 66년 동안 남긴 대표적 업적은 두 가지입니다. 재위 기간에 끊임없이 정복 전쟁을 벌여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정복 전쟁지 대부분이 가나안 지역과 그 위쪽에 위치한 히타이트였습니다. 또 하나는 각지에 신전과 왕궁 도시 건설에 주력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조각상을 지역마다 세워 세력을 과시했는데 카르낙 신전에 람세스의 조각상이 6개나 있었고 지금은 3개가 남아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강력한 실권을 쥔 바로 람세스 2세가 출애굽 당시의 바로와 어떤 관계인지 궁금합니다.


김은호 교수: 가장 유력한 출애굽 시기는 B.C.15세기입니다. 하지만 람세스는 B.C.13세기 인물입니다. 만약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바로가 람세스 2세라면 그는 홍해 어딘가에 수장돼 있어야 하지만 그의 미라는 박물관에 보존돼 있습니다. 또 1999년에 발표된 바로는 고센 땅 근처 주거층을 조사해 보니 사람이 살았던 고센 땅이 15세기 이후 사람이 살지 않는 비 주거지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15세기 고센 땅에 거주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것들을 볼 때 출애굽과 람세스 2세는 무관합니다.


윤석전 목사: 카르낙 신전에서 특별히 살펴볼 만한 유물에는 무엇이 있나요?


권혁승 교수: 카르낙 신전 여러 유적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오벨리스크(obelisk)입니다. 오벨리스크는 높은 사각기둥이며 좁은 사각면으로 이루어져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고 마지막 꼭대기는 작은 피라미드를 이루는 돌기둥입니다. ‘오벨리스크’라는 단어는 ‘작은 꼬챙이’라는 뜻의 헬라어 ‘오벨리스코피’에서 왔습니다. 꼭대기 부분에 있는 피라미드를 꼬챙이로 인식한 것 같습니다. 원래 오벨리스크는 왕 무덤 앞에 세우는 기념비였는데 후에는 신전 입구 양쪽에 세워놓고 우상으로 삼았습니다. 오벨리스크가 본격적으로 건축된 때는 18왕조이며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는 29.6m로 최고 높이입니다. 아스완에 있는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길이 41m, 무게는 1200t을 넘는다고 합니다.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하게 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나요?

김은호 교수: 창세기 15장 13절에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라는 언약의 연장선에서 봐야 합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의 수(數) 증가가 새로운 정부와 마찰을 일으켜 노예로 전락한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으로 보면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강제노동과 억압정책 탓에 하나님을 찾게 돼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윤석전 목사: 오벨리스크를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권혁승 교수: 오벨리스크는 태양신과 관련 있는데 오벨리스크 네면에 태양신 ‘라(Ra)’의 찬가가 적혀 있습니다. 그걸 보면 높고 곧게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오벨리스크를 보면서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태양신을 연상하여 숭배했을 것입니다. 또 당시에는 이것이 태양을 통해서 시간의 흐름을 측정한 시계 역할을 했을 것으로도 봅니다.


윤석전 목사: 이집트 벽화로 알 수 있는 또 다른 성경 내용은 무엇이 있을까요?


김은호 교수: B.C.15세기 중엽 이집트 총리 레크미레 무덤 벽화에는 이집트 방식으로 짚을 이용하여 벽돌을 생산하는 가나안 사람의 그림이 있는데 이런 것으로 성경을 더 실감 나게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집트의 왕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나타내고자 온갖 신전과 우상들을 세웠지만 결국 그들의 시대는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쓰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을 높이는 성도가 돼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소유하시길 바랍니다.


<계속>


성서의 땅을 가다 133회 시청
http://www.ybstv.com/page/subp.html?cd=BS505&mo=_view&seq=43154&pno=5

위 글은 교회신문 <61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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