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45)] 에스더, 페르시아 왕비 된 후 유대인 말살 계략 막다

등록날짜 [ 2019-06-11 17:44:04 ]


이란 수사에서 ‘성서의 땅을 가다’ 촬영을 하고 있는 윤석전 목사.

‘수산 궁전’은 구약 에스더서의 배경 도시
하만의 계략에 동족 몰살 위기에 처하자
‘죽으면 죽으리라’ 왕 앞에 나아가 애원
죽음 불사하고 기도하며 나아갔던 현장


윤석전 목사: 바사 제국에서 식민지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총리대신 하만의 시기와 질투로 몰살 위기에 처했습니다. 위기 속에서 동족을 구원하고자 에스더는 하나님 앞에 금식기도를 하며 매달렸습니다. 또 바사 왕에게 동족을 살려 달라 애원했습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기도하며 나아갔던 에스더의 역사가 담긴 수산 궁으로 가 보겠습니다.

고대 바사 제국의 흔적은 이란 땅 곳곳에 흩어져  있다. 한 발굴지에서 에스더 왕후가 살던 수산궁 터를 찾아냈다. B.C. 521년, ‘수사’라고 부르던 ‘수산(Shushan)’에 다리오 왕이 세운 수산 궁은 화려함과 사치가 극에 달했다. 이곳에서 에스더는 왕후 생활을 했다. 고레스가 메대(Medes)를 점령해 통일하고 바벨론을 쳐 바사 제국을 이루자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바사로 강제 이주하게 됐다. 에스더도 이 시기에 바사에 왔다. 현재는 돌덩이만 남았지만 당시엔 눈부시게 화려했을 정원에서 에스더는 하만의 음모로 멸족 위기에 빠졌던 유대민족을 구해 내는 위대한 일을 해냈다. 이곳 어딘가에서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으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갔다. 그 역사가 살아 있는 곳이 바로 수산 궁터다.

윤석전 목사: 수산 궁이 있던 수사는 페르시아에서 아주 중요한 도시였다는데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고레스 왕이 수도로 정한 파상가대(파사르가다에)와 페르세폴리스는 이란 남서쪽에 치우쳐 있습니다. 또 파상가대가 있던 지역 대부분이 산악지대였고 기후도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기존 수도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또 다른 수도와 궁을 건축했습니다. 겨울 궁전이 수사 지역에 세운 수산 궁이고, 여름 궁전이 악메다 궁입니다. 이 외에도 바벨론에 지은 궁까지 합하면 바사에는 수도가 총 네 곳 있었습니다. 수산 궁이 있는 수사는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가 있던 유서 깊은 곳이어서 바사 제국의 수도가 되었고, 인도 원정에서 돌아오던 알렉산더가 머물면서 결혼하고 자신의 부하들을 정착시킨 곳이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에는 수산 궁이 어떻게 기록돼 있는지 소개해 주세요.

차준희 교수: 바사 제국의 수도 네 곳 중에서 왕들의 겨울 거주지였던 수산 궁. 성경에는 수산을 두 번 언급합니다. 느헤미야 1장 1절에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왕 제 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더니”라고 느헤미야가 직접 수산 궁에 머물렀다고 언급합니다. 또 에스더 1장 2절에 “당시에 아하수에로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라고 언급합니다. 유대사람들은 바벨론 시대에 포로로 붙잡혀 왔었는데, 바사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지도자가 되면서 속국의 종교와 문화의 자유를 인정해 주는 포용정책을 폈습니다. 이때 유대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짓도록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사람 대부분은 바벨론 땅에서 수십 년을 지내면서 뿌리를 내리고 정착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여러 차례 귀환했지만 다수 유대인이 바사 제국에 남았습니다. 바사에서 고위 관료가 된 사람도 있었고, 상당한 부를 축적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특히 성경에는 수산 궁의 중요한 세 사람을 왕비 에스더, 에스더의 사촌이자 고위 관료였던 모르드개와 느헤미야라고 말합니다.

윤석전 목사: 에스더가 왕비였던 때 이스라엘 백성이 하만의 시기와 질투로 위기에 처하게 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에스더서 사건은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권력자와 어리석은 통치자가 만들어 낸 비극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막은 일이라고 평가합니다. 하만은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자 건방지다며 개인적인 분노를 발했고(에3:5~6) 이 때문에 유대인 전체를 멸족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또 아하수에로 왕은 사건 전말을 파악하지 못한 채 어인(御印)을 내어 주어 하만의 계획을 윤허했습니다. 이 사실은 전국에 하달됐고 수산 궁에 가장 늦게 알려졌습니다. 집행 날짜에 다다라서야 하나님의 개입으로 죽음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에스더 왕비를 소개해 주세요.

차준희 교수: 에스더는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고아(孤兒) 처녀였습니다. 사촌인 모르드개의 손에서 딸처럼 컸습니다. 에스더는 하만의 계략으로 유대인이 전멸당하는 위기 가운데 목숨을 걸고 모험을 감행해 동족을 살려 낸 여인이라고 성경에 기록됐습니다. 당시는 왕비라도 왕의 부름 없이 왕 앞에 나아가는 일은 목숨을 담보해야 했습니다(에4:11). 에스더는 유대인들에게 금식을 부탁하고 자신도 금식하며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라는 각오로 왕에게 갔습니다. 성경은 에스더를 ‘기도할 때와 행동할 때를 아는, 결단력을 갖춘 신앙의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에스더의 역사가 살아 있는 수산 궁. 그곳은 하만과 모르드개의 사건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위기도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다시 가 보겠습니다.
1850년대에 발굴된 수산 궁터를 통해 다리오 왕의 지시로 만든 안뜰 세 곳과 성문 두 곳, 접견실 등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다리오의 아들 아하수에로는 각국의 건축 기능공들을 모아 레바논의 백향목, 이집트의 은과 흑단 등으로 궁을 장식했다. 이 궁터에는 유대 민족을 멸족시키려 했던 하만의 음모가 담겨 있다. 하지만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 세웠던 장대에 자신이 매달려 생을 마치고 만다.

윤석전 목사: 바사 제국이 볼 때 유대인들은 포로였는데 아하수에로가 어떻개 해서 에스더를 왕비로 맞이할 수 있었나요?

차준희 교수: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였던 와스디가 왕명을 거절해 폐위되자 새 왕비를 들이고자 왕이 조서를 내려 수사에 있는 아리따운 처녀들을 소집했는데, 그 가운데 에스더가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하나님의 은혜로 궁녀를 주관하는 궁중관리 헤게의 눈에 들었습니다. 이후 헤게의 도움으로 왕의 총애를 받는 왕비가 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에스더에게 헤게를 붙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경 인물들은 하나님의 일을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붙여 준 사람과 동역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아하수에로 왕과 관련된 유적은 무엇이 있나요?

홍순화 교수: 다리오 왕이 시작한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라는 엄청난 도시를 완성한 왕이 다리오의 아들 아하수에로 왕입니다. 페르세폴리스에 ‘크세르크세스 문(門)’이라는 아하수에로 문이 있고, 아하수에로 왕의 궁궐이 따로 있습니다. 낙쉐 로스탐(Naqsh-e Rostam)에 가면 아하수에로 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 무덤이 있습니다. 악메다의 아바드 계곡 바위에 비석이 있는데, 하나는 다리우스 왕의 비석, 또 하나는 아하수에로 왕의 비석입니다. 매우 중요한 유적입니다. 이란에 남은 대다수 유적이 아하수에로 왕과 관계가 깊습니다.

윤석전 목사: 모르드개는 분노를 살 줄 알면서도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홍순화 교수: 두 가지로 추측합니다. 첫째, 하나님 외에는 절하지 않겠다는 신앙입니다. 세상 권력자에게 절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둘째, 하만이 아각 사람, 즉 아멜렉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진멸하라 하셨던,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인 아멜렉 족속이었기에 하만에게 절하는 것은 신앙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에스더서를 보면, 바사 제국에서는 부르지 않았는데도 왕에게 다가가면 남녀를 불문하고 현장에서 죽였는데요, 당시 왜 그런 법을 만들었을까요?

차준희 교수: 당시 바사 제국에 복속한 다양한 민족에게서 국가 최고 통치자를 보호하기 위한 ‘경호법’입니다. 바사 제국은 여러 나라를 정복했기에 포로 문제도 많았고, 정치적인 암투가 심했습니다. 암살과 투쟁이 심해 정권이 바뀌는 등 위기가 많았습니다. 누구 하나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왕을 지키고자 이런 엄격한 경호법이 필요했던 겁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전 목사: 하만의 음모로 이스라엘 백성이 다 죽게 되었을 때 에스더는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자기도 금식 기도하며 왕에게 갔습니다. 죽음이라는 최악의 경우를 맞이하게 될지 모르지만 기도했기에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 갖고 왕에게 들어갈 때 왕은 에스더 왕후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죽음을 면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고통과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기도하세요. 질병도, 고통도 환경도 이기시고 기도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2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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