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46)] 페르시아 제국 ‘고레스 왕의 칙령’이 발견된 ‘악메다 궁’

등록날짜 [ 2019-06-17 13:48:39 ]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백성에게
‘본국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하라’고 명령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을 포함해
아하수에로와 다리우스 왕의 비문 등
수많은 유물이 있는 페르시아의 보물 창고



윤석전 목사: 이방 땅 페르시아(바사) 제국에서 객으로 지내면서 죽음 위기에서 민족을 구한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역사 현장인 이란 땅 악메다로 가 보겠습니다.

이란 남쪽에 있는 악메다(Achmetha)에는 원형으로 발견된 도시 발굴터가 있다. 악바타나(악메다의 헬라어) 박물관에는 이곳에서 발견된 고대 바사 제국부터 B.C. 300년대까지 각 시대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역대 제국들이 사용한 토기와 그릇들은 2000년에 걸친 수많은 문명을 담고 있다. 다리우스(구약성경의 다리오) 왕이 남긴 비문(碑文)에는 이들이 믿었던 배화교(拜火敎·조로아스터교)의 신(神) 아후라 마즈라(Ahura Mazdah)에게 왕권을 위임받아 다스린다는 내용이 당시 공용어인 아람어, 아카드어(바빌로니아어), 고대 페르시아어 세 가지 언어로 기록돼 있다. 왕은 이렇게 왕권의 절대성을 강조했다. 바사 제국의 다리우스 왕은 철제 무기들로 당대 최고의 제국을 이뤘다. 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됐다.

윤석전 목사: 악메다는 어떤 도시인가요?

홍순화 교수: 악메다는 바사 제국 수도 네 곳 중 하나입니다. 수산, 페르세폴리스, 악메다는 이란 땅에 있고, 나머지 한 곳인 바벨론은 이라크에 있습니다. 현재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373km 내려가면 지금의 하마단(hamadan)인 악메다가 있습니다. 악메다는 여름철 궁입니다. 바사 제국 수도 중 제일 북쪽에 있고, 해발 1850m에 자리해 여름철에도 시원합니다. 이곳은 메데 왕국 때 세워져 사용된 곳으로 고레스 왕이 점령한 뒤부터 궁궐로 썼습니다. 알렉산더도 이곳을 장악한 적이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에는 악메다가 어떤 곳으로 기록돼 있나요?

차준희 교수: 악메다라는 지명은 에스라 6장 2절에서 언급됩니다. 열왕기하 17장 6절에는 “호세아 9년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취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할라와 고산 하볼 사숫가와 메데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메데 사람의 여러 고을’이라고 언급되는 곳을 악메다로 추정합니다. 바사 제국 고레스 왕이 B.C. 539년에 바벨론을 합병한 후 이스라엘 백성에게 본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지으라 명합니다. 그런데 성전을 지으러 간 사람들이 그곳에서 살던 사마리아 공동체와 부딪힙니다. 사마리아 공동체는 이미 이방인의 피로 혼잡해졌고, 혼합주의 종교정책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하게 지어야 한다며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공동체가 조직적으로 방해해 20년가량 성전 건축이 중단됩니다. 그 후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다리오 왕에게 가서 “전에 우리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라 했던 칙령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에스라5:17)고 요청합니다. 다리오 왕이 국고(國庫)를 조사하여 악메다에서 고레스 왕 칙령을 발견합니다(에스라6:1~2). 고레스 왕의 칙령에 따라 예루살렘에서 성전 건축을 허락하여 B.C. 515년 제2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을 완성합니다. 성경에 ‘악메다’라는 지명은 한 번 나오지만 성전 건축과 직결된 장소입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 역사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홍순화 교수: 악메다는 작은 도시지만 중요한 유적이 발견돼 성경 역사가 사실임을 객관적으로 증명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역사를 증명할 다른 증거가 없어 성경 말씀을 추상적으로 옛날이야기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증거들이 나오면 우리의 믿음을 구체화하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 다리우스 왕이 실존 인물임을 보여 주는 증거가 있습니다. 하마단에서 5km 정도 가면 아바드 계곡에 비석 두 기(基)가 있습니다. 왼쪽 것이 다리우스 왕의 비문, 오른쪽이 아들 아하수에로 왕의 비문입니다. 또 악메다 궁터가 외곽 지역에서 발견돼 다리우스 1세라고 새겨진 쟁반과 아닥사스다 2세 때의 기둥뿌리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발굴 터 옆에 세운 박물관에 유적이 전시돼 있습니다. 또 악메다 궁터에서 발굴한 돌사자상 하나를 시내에 있는 공원에 옮겨 두고 하마단의 상징처럼 떠받들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악메다 최고 유물로 여겨지는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으로 가 보겠습니다.

하마단에는 A.D. 1067년 무렵 유대인이 5만여 명 거주했다고 한다. A.D. 13세기에 세워진 신성한 성지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한다. 또 낮고 좁은 입구로 들어가려면 겸손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여야 한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매장지에 세웠다는 작은 건물은 현재 그들의 관을 둔, 가장 유명한 유대교 성지와 기독교인 순례지로 자리 잡았다. 에스더 왕후와 모르드개는 유대 민족을 위기에서 구원한 영웅으로 지금까지 후손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이방 땅에서 신앙을 지켜냈던 이스라엘의 믿음이 담긴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은 세상 사건들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게 한다.

윤석전 목사: 에스더와 모르드개 무덤 속 관은 매우 큰데 왜 그런가요?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중동지방에서 설명하기 어렵고 난감한 것이 무덤입니다. 여호수아의 관은 5m 넘어서 여호수아의 키가 5m라는 얘기가 있고, 어떤 선지자의 무덤은 서너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무덤에 관해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이라는 곳도 유대 페르시아 전승에 따른 것이고, 이스라엘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A.D. 1067년 벤저민이라는 사람이 기록한 여행기를 보면, 당시 하마단에 유대인 5만 명이 살았고 회당이 세 곳 있었으며, 그 회당 앞에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전 근거는 없지만, 1067년이면 성경시대와 가까운 연대입니다. 기록을 보면 1040년 이 자리에 건물을 작게 세웠다고 합니다. 1309년에서 1310년 사이에 보수한 후 여러 번 개축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1805년 이곳에서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을 보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사건에 담긴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차준희 교수: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사건은 유대인이 이방나라에 살면서 항상 위협받았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유대인은 어디를 가든지 자신들만의 전통 종교방식을 고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이방사람에게 반발과 적개심을 일으켜 민족 몰살의 위기를 불러왔습니다. 과연 이 작은 민족에게 구원의 희망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일이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사건입니다. 에스더서를 보면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안 나옵니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이면(裏面)에서 역사하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것이 바로 에스더서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에스더가 왕비가 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사건에 관해 일반 역사가들은 의외의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유대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적인 섭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사건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가 반드시 있다는 점을 보여 줘 힘을 주십니다.

윤석전 목사: 왜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이 수산 궁이나 페르세폴리스가 아닌, 악메다에 있나요?·

홍순화 교수: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어디서 죽었는지에 관한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여름 궁전에 있을 때 죽었다는 가설이 있어 악메다에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이 있다고 봅니다. 다른 의견은 어디에서 죽었든지 많은 유대인이 살던 악메다에 무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에스더가 구약성경 역사 가운데 현재와 가깝고 유대인 공동체가 최근까지 악메다를 지키고 있는 점을 보면 마지막 가설이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윤석전 목사: 에스더서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한 것 말고 또 다른 의미는 무엇이 있을까요?

차준희 교수: 유대인이 지금도 지키고 있는 부림절(purim)이라는 절기가 있습니다. 이날은 유대인이 전멸당할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구원받은 일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이 부림절 유래를 알려 주는 것이 에스더서의 의도입니다. 또 다른 섭리는 하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박해를 주도한 자에게 그 박해가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이려 준비한 23m 높이 장대에 목이 매달려 죽었습니다. 스스로 판 무덤에 파묻히고 만 셈이죠. 인생은 뿌리는 대로 되돌려 받게 돼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다니엘을 시기한 사람들이 사자 굴에 넣어서 죽이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들이 사자 굴에서 최후를 맞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자에게 승리가 있다는 점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어떤 위기에 처할지라도 하나님만 경배하고 하나님 말씀에만 순종하고 믿음을 굳게 하며 에스더와 모르드개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2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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