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7-12 15:14:29 ]
다리우스 왕이 조공 사절 접견궁으로 사용
조공 바치기 위해 통과한 ‘만국의 문’과
20여 속국 조공 사절 묘사한 벽면 부조도
성전 재건 칙령 다시 내리고 자금도 지원
만국 호령 권세도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
윤석전 목사: 다리우스 왕은 성전 재건을 지시한 고레스 왕의 칙령이 악메다 궁에서 발견되자 예루살렘 성전 재건 사업을 신속히 진행하도록 지원해 줬습니다. 다리우스 왕이 살던 곳, 대를 이어 바사제국이 확장한 수도 페르세폴리스로 가 보겠습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약 650km를 달리면 페르세폴리스(Persepolis)가 있다. 쿠이라맛(Kui-i-Rahmat, 자비의 산) 산기슭에 자리 잡은 왕국 입구의 111개 계단을 오르면 아하수에로 왕이 세운 만국(萬國)의 문이 나타난다. 바사제국이 세계를 지배할 때 만국이 조공을 바치기 위해서 이 문을 지났기에 만국의 문이라고 한다. 바사제국의 조공국들은 이곳에서 열리는 신년 행사 노르주(Noruz) 축제에 참가해 선물을 바쳤다. 당시 바사제국 왕의 강력한 권세를 묘사한 부조(浮彫)가 남아 있는데 각 나라 군대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만국이 왕을 떠받드는 부조를 남겨 자신의 권세를 영존하게 하려 했던 야망의 산물(産物)이 페르세폴리스다. 그 도시의 화려한 왕궁에서 다리우스 왕은 만국을 호령했으나 그 권세는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했다.
윤석전 목사: 페르세폴리스는 어떤 도시인가요?
홍순화 교수: 고레스 왕은 파사르가다에를 수도로 정했지만, 다리우스 왕 때부터는 여러 궁을 만들어 업무를 봤습니다. 겨울철에는 날씨가 따뜻한 수산에서, 여름철에는 시원한 악메다에서 지냈습니다. 그 외 또 다른 궁이 바로 페르세폴리스인데, 주로 노르주라는 신년 행사 때 외교 중심으로 사용했습니다. 쿠이라맛 산기슭을 깎아 길이 455m, 폭 300m에 달하는 직사각형 기단 위에 인공적으로 세운 궁입니다.
윤석전 목사: 다리우스 왕은 성경에 어떤 인물로 기록돼 있나요?
차준희 교수: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 왕이 다리우스의 아들입니다. 구약에서 다리우스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과 관련이 깊습니다. 학개와 스가랴에 “다리우스 왕 2년 때 성전 재건을 시작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다리우스 왕은 고레스 칙령을 악메다 궁에서 발견하자 B.C. 520년 성전 재건에 관한 칙서를 다시 내리고 자금도 지원합니다. “하나님의 이 전을 건축함에 대하여 너희가 유다 사람의 장로들에게 행할 것을 알게 하노니 왕의 재산 곧 강 서편 세금 중에서 그 경비를 이 사람들에게 신속히 주어 저희로 지체치 않게 하라”(스6:8). 즉 자신에게 들어올 세금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한 것입니다. 부유한 유다인에게도 헌금에 참여하라며 강제 기부금 납부 압력을 내립니다(스6:11). 유대인들은 다리우스 왕의 칙서에 따라서 성전을 재건해 5년 뒤인 B.C. 515년 스룹바벨 성전을 봉헌합니다.
윤석전 목사: 일반 문헌에는 다리우스에 관해 어떤 기록들이 남아 있나요?
차준희 교수: 다리우스 1세에 관해서는 베히스툰 비문(碑文) 등 문헌이 많습니다. 다리우스 왕의 선왕인 캄비세스가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죽어 캄비세스의 친척 다리우스 1세가 권력을 이어 반란 세력을 진압해 불안을 잠재웁니다. 그 후 제국의 화폐와 도로망을 만들고, 우편 제도를 확립하고, 왕실 건설 사업을 합니다. 다리우스 왕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영토 확장입니다. 파키스탄 남부, 유럽 남동부, 그리스 일부까지 영토를 확장합니다. B.C. 490년 소아시아 도시국가들이 아테네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고, 아테네를 치고자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이 전쟁이 유명한 제1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인데,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에 패배한 후 재침공하려 준비하던 중 B.C. 486년 다리우스는 죽고 아들 아하수에로가 왕위를 잇습니다.
윤석전 목사: 다리우스 왕의 권위와 바사제국의 영광이 스며 있는 페르세폴리스로 가 보겠습니다.
고대 중·근동 사람들이 ‘페르시아 도시’로 칭했던 페르세폴리스. 바사제국의 위세를 상징하는 이곳에 ▲접견궁 ▲만국의 문 ▲국고(國庫) 등을 세웠다. 고레스 왕이 위치를 정하고, 다리우스 왕이 건축하고, 후계자들이 완성했다. 그 때문인지 이곳엔 바사제국 왕의 무덤이 많다. 세계에 군림한 바사제국 다리우스 왕은 사절단을 접견하는 궁인 아파다나(Apadāna) 건축에 관심을 기울였다. 페르세폴리스에서 가장 웅장한 아파다나는 기둥 72개가 있다고 하여 백주궁으로 알려졌는데, 현재는 13개만 남아 있다. 이곳에 있던 다리우스 왕의 궁전은 그나마 온전히 보전됐다. 하나님께서 바사제국을 강대국으로 만든 데는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귀환시키고 성전과 성벽을 재건케 하려는 깊은 뜻이 있었다. 다리우스 왕의 삶은 이스라엘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속해 있었다.
윤석전 목사: 페르세폴리스 특징을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페르세폴리스는 이란의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이 도시는 다리우스 왕부터 아하수에로 왕까지 약 150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지었습니다. 수산 궁이 정치·상업 면에서 실제 수도(首都) 역할을 했다면, 페르세폴리스는 외교 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외교 사절단을 모아 신년 축제를 벌이면서 인사를 받는 도시 역할을 했기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이 도시는 고대 동방의 예술, 일반 예술 수준을 보여 주는 뛰어난 건축 예술의 집합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들은 그리스와 전쟁하던 중에 지었는데, 그 당시 바사제국의 국력과 왕권이 얼마나 강했는지 보여 줍니다.
윤석전 목사: 이곳에는 어떤 유적이 있나요?
홍순화 교수: 페르세폴리스의 궁 입구는 양쪽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구조로 되어 있고, 그 위에는 ‘아하수에로 문’이라 칭하는 ‘만국의 문’이 있습니다. 이 문을 통과해야 접견궁으로 들어가도록 특이하게 설계됐습니다. ‘아파다나’라는 알현궁은 높이 20m 정도 되는 72개 기둥이 있었다고 하는데, 일부분이 남아 있어 화려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곳엔 다리우스 왕 궁전과 에스더의 남편인 아하수에로 왕 궁전과 왕비들이 거한 궁도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다리우스 왕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요?
차준희 교수: 하나님은 고레스 왕과 다리우스 왕을 통해 유다 공동체의 영적 중심인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합니다. 고레스 왕 때 터를 닦았다면 다리우스 왕 때 이를 성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다리우스 왕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20년 가까이 중단한 사역을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고레스 칙령을 발견하게 인도하시고, 다리우스 왕이 성전 건축을 독려하고 유다 부자들에게 성전 건축 헌금을 하도록 명령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리우스 왕의 권력으로 성전 건축을 이루어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던 다리우스 왕이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윤석전 목사: 다리우스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 과정을 설명해 주세요.
차준희 교수: 당시 백성은 성전을 지을 형편이 안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선지자 학개는 달리 말합니다. 성전을 황폐한 상태로 내버려 뒀기에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황폐케 됐다며, 일의 우선순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형편이 안 돼서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했기에 형편이 나빠진 거라고 합니다.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학1:9). 그 말을 듣고 유다 백성이 회개하고 결국 성전을 재건해 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우선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일을 책임지십니다.
윤석전 목사: 고레스 왕은 바벨론을 점령한 후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완공한 성전을 구심점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믿음이 견고해졌으니 이방인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고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신 것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역에 일하게 하시려는 섭리입니다. 이방인을 통해 섭리를 이루신 하나님께서 이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우리를 사셨으니 우리도 평생 하나님의 뜻을 이뤄 가는, 섭리의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3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