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8-19 12:47:41 ]
배화교는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를 숭배
바사제국이 유대교에 관대했던 이유는
유일신 믿고 악이 세상에 들어온 경로 등
자신들 종교와 닮은 점 많았기 때문 추정
동방박사가 조로아스터교 사제라는 설도
윤석전 목사: 조로아스터교는 바사제국의 고레스 왕과 다리우스 왕을 통해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끼친 종교라고 합니다. 바사제국의 조로아스터교가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 어떤 관련이 있는지 조로아스터교 사원을 돌아보며 알아보겠습니다.
이란 수도 테헤란 남쪽 이스파한에 있는 조로아스터교 사원에서 바사제국을 이끌었던 신앙세계를 만날 수 있다. 사원 입구에 있는 반인반수상(像)은 조로아스터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나타내는데, 짐승의 몸에 인간의 얼굴을 붙임으로써 사람의 지혜와 짐승의 힘·용맹을 상징한다. 조로아스터교 경배 의식에 사용하는 향 내음이 가득한 사원 내부 벽면에는 종교 창시자인 조로아스터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조로아스터는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h)에게 점지돼 약 40년간 활동했다고 전해 내려온다. 불은 선신(善神)의 상징이며, 신도들은 불을 통해 신(神)의 본성을 깨닫는다고 믿는다. 조로아스터교의 영향력 안에 있었던 나라가 바사제국이다.
윤석전 목사: 바사제국의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조로아스터교 창조신에 관해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조로아스터교는 흔히 배화교(拜火敎)로 알려졌습니다. 조로아스터(Zoroaster)는 고대 바사제국의 종교 지도자 자라투스트라(Zarathustra, B.C. 660~553년경)의 영어식 이름입니다. 그가 아후라 마즈다의 계시를 받아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했는데 이 종교에는 특이한 창조 설화가 있습니다. 창조의 신 아후라 마즈다가 세계를 만들자 악의 신이 복수하려고 악을 들여와 세상에 악이 계속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종교는 성경 역사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성경의 배경이 되는 아케메네스 왕조에서 조로아스터교가 국교 수준으로 공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윤석전 목사: 조로아스터교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요?
홍순화 교수: 조로아스터교에서 불을 숭배하는 종교 의식을 행하기 때문에 하급 종교로 여기는데, 그 나름대로 종교관을 갖추고 있습니다. 몇 가지 특징을 말씀드리면 첫째, 철저한 일신교로서 아후라 마즈다 신을 믿습니다. 둘째, 아후라 마즈다 신은 시기 질투와 거리가 먼 관용적이고 선한 신입니다. 이런 특성이 고레스 왕 같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유대교에 관대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셋째, ‘바른 생각을 가지고 바른 마음을 가지고 바르게 살자’로 풀이되는 교리입니다. 간단한 교리 덕분에 전도에 열심을 냈다고 합니다. 넷째, 영혼과 육신에 대한 이원론적 태도입니다. 영혼은 좋은 곳으로 간다고 믿지만 육신은 하찮은 것으로 여겨 조장(鳥葬)이라는 장례 풍습을 지켰습니다. 조장은 육신을 잘게 썰어 놓아 새들이 와서 먹게 하는 특이한 풍습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지만 그 터가 남아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종교는 어떻게든 그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데요. 조로아스터교는 어땠나요?
우택주 교수: 조로아스터가 살던 때는 불법이 난무하고 살인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그때의 깨달음과 가르침에 근거해 생겨난 종교가 조로아스터교입니다. 지혜롭고 선한 아후라 마즈다와 그에 대립하는 앙그라 마이뉴라는 악한 신이 있습니다. 이 두 신이 대립해서 결국 아후라 마즈다가 승리하는 이원론적 종말론은 선한 신이 세상의 모든 악을 제거하고 아름답고 선한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것이 조로아스터교의 궁극적 목적이자 우주의 통일관입니다. 바로 이런 신앙관이 바사제국이 다른 국가들을 점령하고 제국을 확장하면서도 관용을 베풀던 방식에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구약시대 말미의 패권국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가 성경시대 상황과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군요. 다시 조로아스터교의 현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조로아스터교 발원지 야즈드(Yazd)는 이스파한 남동쪽 260km 지점에 있다. 이곳에는 이 종교의 장지(葬地) ‘고요의 탑’이 있다. 이들은 인간의 시체가 땅과 화합할 수 없다고 믿어 시신을 새 먹이로 내놓는 조장(鳥葬)을 했다. 불을 통해 신의 본성에 닿는다고 믿었던 이 종교는 신약의 동방박사와도 연관이 있다. 마태복음 2장에 등장하는 동방박사는 ‘마기(Magi)’라는 단어로 표기하는데, 이는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를 뜻한다. 동방박사들이 조로아스터교의 사제였다는 것이다. 그때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한 것은 진리를 찾는 자에게 진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아후라 마즈다는 다리우스를 바사의 왕으로 점지했다고 하며, 이후 다리우스는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복원하는 데 큰 힘을 기울였다.
윤석전 목사: 예수 탄생을 축하하러 온 동방박사가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라는 설은 근거가 있나요?
홍순화 교수: 동방박사에 관해서는 조로아스터교 사제, 네베에서 온 점성술사, 지중해 지역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등 여러 설이 있으나 어떤 것이 가장 근거가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호칭을 볼 때 뛰어난 사람들이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윤석전 목사: 아후라 마즈다를 믿었던 바사제국의 왕들은 이스라엘에 관대했습니다. 조로아스터교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신앙이 국가와 사회 등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치듯, 바사제국이 유대교에 관대했던 것도 하나님의 역사와 더불어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바사제국 입장에서 볼 때 유대교가 유일신(唯一神)을 믿는다는 점, 악이 세상에 들어온 경로 등 여러 면에서 자신들의 종교와 비슷한 점이 많았고, 당시 종교들이 지저분하고 부패한 반면, 유대교는 깨끗하고 정결한 종교였기에 공감대를 가져서 관대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조로아스터교가 포로 후기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우택주 교수: 유대인들은 포로 상태로 바벨론을 거쳐 바사제국 시대를 맞이합니다.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의 귀환을 허락한 후, 팔레스타인에 남아 있던 사람들과 이스라엘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유대인들은 자연스럽게 바사제국의 삶, 문화, 종교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겼지만 오랜 기간 포로생활을 거치면서 종교적 틀을 명확히 갖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로아스터교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유일신으로서 하나님께서 세계의 모든 피조물, 선과 악을 창조하셨기에 하나님 앞에 대항할 만한 악한 세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포로 후기 유대교 신앙과 그 이후 신앙 양태를 보면, 선과 악이 대립하는 세계관이 등장합니다. 이와 같이 선과 악이 대립하는 이원론적 종말론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또 조로아스터교는 불을 숭상하면서 정결한 삶에 관심이 컸습니다. 레위기에 기록된, 사람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조심하고, 조절하고, 격리하는 규례 역시 조로아스터교가 정결법을 강조했던 것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페르시아 총독이던 느헤미야가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여러 가지 종교개혁을 실시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안식일 준수를 강조하고, 제사장 규례 같은 것을 중요시하면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잠언을 보면 ‘지혜’라는 하나님의 속성 자체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예언자처럼 길거리에서 연설을 합니다. 지혜가 사람처럼 묘사된 것은 구약성경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지혜나 물질 등을 인격으로 표현하는 것 역시 포로 후기의 속성이자 조로아스터교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런 것들이 조로아스터교가 포로국인 유대인들의 신앙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역사에서 수많은 왕국이 생겼다 멸망하고 수많은 문화가 생겼다 사라지기도 합니다. 또 많은 종교가 왕성했다 쇠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창조 이래 오늘까지 진행돼 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신이요, 하나님만이 천지 역사 섭리의 주인이십니다. 최후 마지막 때 인류 역사는 사라지고 하나님 나라만 영원히 남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그 위대한 역사를 바라보며 사라지지 않는 믿음을 가진 영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3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