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171)] 초대 교인들이 박해 피해 만든 카파도키아 지하 도시 ‘데린구유’

등록날짜 [ 2019-12-24 13:11:22 ]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현장

지하 20층 깊이까지 뚫어 거대 도시 건설

교회·침례터·신학교까지 갖춰 복음 전파

쉽게 믿음서 멀어지는 우리들 돌아봐야


윤석전 목사: 카파도키아에 있는 ‘데린구유(Derinkuyu)’는 20층 깊이의 거대 지하 도시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믿음을 지키다 박해를 받던 당시 기독교인들이 초인적인 힘으로 만든 피신(避身) 도시입니다. 복음을 사수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초대 기독교인의 자취가 서려 있는 데린구유로 가보겠습니다.


터키 중부 1,000m 높이 지역에 카파도키아가 있다. 이곳에서 A.D 1세기에서 13세기까지 1200년간 기독교 역사가 지속됐다. 지하 도시 데린구유는 기독교 핍박의 역사를 생생하게 입증한다. 지하 20층까지 뚫어 만든 이 지하 도시는 현재 8층까지만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지하 도시 중간에는 핍박자가 침입할 때 막기 위한 방어 장치인 미닫이 바위 문이 장착돼 있다. 한번 닫히면 외부에서 좀처럼 열 수 없다. 초대 교인들은 지하 동굴에서 일상생활을 이어가고자 여러 시설을 만들었다. 그중에 수직 환기 통로와 보조 환기 동굴 수십 개가 있다. 땅속에 흐르는 지하수가 통풍 역할을 하여 지하 공기를 정화했다면, 지상의 외부 환경을 지하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나사 모양의 환기 통로를 만들어서 연기 배출은 물론 약간의 빛을 끌어들인 것이다. 환기 통로 끝은 지상으로 뚫려 있다. 땅속과 땅 위를 연결하도록 바위를 뚫어 만든 나사 모양 환기 통로는 초대 교인들의 하나님께로 향한 믿음의 거룩한 증표였다.


윤석전 목사: 데린구유를 자세히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데린구유처럼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곳은 없습니다. 거의 평지 같아서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곳에서 엄청난 지하 도시가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역사상 기록이 없어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1963년 한 주민이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데린구유 외에 그 주변 지역에 수십 개의 지하 도시가 있다고 합니다. 데린구유와 다른 지하 도시들은 9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놀랍게도 지하 통로로 연결돼 있다고 합니다. ‘깊은 우물’이라는 뜻인 데린구유에는 약 2만 명이 거주했고 신학교, 교회, 침례터 같은 신앙공간과 창고, 식당, 주방 같은 생활공간도 갖추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장비가 열악했을 텐데 어떻게 이런 도시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홍순화 교수: 첫째, 지형적인 이유입니다. 카파도키아는 화산재가 엉켜 굳어진 응회암(凝灰巖) 지역입니다. 둘째, 신앙과 생존의 이유입니다. 카파도키아가 지리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땅을 파거나 돌을 다루기 쉬웠던 점도 있지만, 기독교인의 열정과 충성이 뭉쳐진 신앙의 힘과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기에 거대한 지하 도시 건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초대 기독교인들이 거대한 지하 도시를 파서 피난처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선배 교수: 데린구유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소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독교 역사는 순교와 박해와 핍박의 역사였습니다. 스데반의 죽음부터 시작해 네로황제의 핍박은 얼마나 잔인했습니까? 네로는 기독교인을 방화범이라고 누명을 씌워 참혹하게 죽였습니다. 초기 기독교인은 그런 잔인한 박해를 피하려 지하로 숨어들었고, 그곳에서 신앙공동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서 일상을 모두 포기하고 들어간 곳이 바로 ‘데린구유’입니다. 박해를 받으면 변절자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 때문에 공동체(共同體) 생활이야말로 나와 가족과 친구를 지키는 ‘신앙의 보금자리’였습니다. 또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장기간 받을 것을 예상하고 끝까지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데린구유 같은 지하 도시를 만들어서 생활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데린구유에서 생활한 초기 기독교인들의 신앙 정신을 말씀해 주세요.


김선배 교수: 당시 제자들은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 곧 재림하실 줄 알았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곧바로 재림하신다면, 박해를 아무리 심하게 받아도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시지 않고 박해만 가중되는 긴장과 갈등 속에 생활해야 한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절명(絶命)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를 신학적으로 ‘지연되는 재림’이라 표현하는데, 데린구유의 초기 기독교인은 ‘신앙이 목적’이고 ‘삶은 신앙의 수단’에 불과했기에 견딜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초대 교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한 ‘예배 생활’과 복음을 지키기 위한 ‘영적 정신’이 철저했습니다. 데린구유 안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데린구유 안에 십자가 형태로 굴을 파서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예배로 가득 채웠다. 데린구유를 이룬 이 경이로운 신앙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지닌 카파도키아 성도들은 서로 힘이 되었다. 이들은 공동체의 사랑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데 앞장섰다. 초대 교인들의 거룩한 욕망은 데린구유 주위에 지하 도시를 30개나 더 만들었고각각 지하 터널로 연결했다. 모든 통로와 방은 미로(迷路)처럼 얽어놓아 핍박자가 갑작스럽게 침입할 때 도주로 역할을 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신앙을 지키고자 한 믿음의 표현이었고 그 결정체가 침례터 유적이다. 그들은 지하 침례터에 서서 하나님의 거듭난 백성 됨을 선포했다. 지하 도시에서도 신앙교육은 필수 항목이었다. 신학교 터에 서면, 피난 기간까지 신앙교육을 놓지 않았던 그들의 발자취를 보면서 순례자들은 깊은 감동을 한다. 땅속에 있는 이 믿음의 현장들은 카파도키아를 하나님의 땅으로 보전한 원동력이었다.


<사진설명> 침례터.



<사진설명> 신학교 앞에서 기도중인 윤석전 목사(가운데 흰 옷)와 일행들.


윤석전 목사: 데린구유라는 지하 동굴에서 어떻게 장기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을까요?


홍순화 교수: 데린구유는 사람이 사는 데 주요 요소인 물, 공기, 빛, 식량을 갖췄고 외부인 침입도 방어할 수 있었습니다. 지하에 있는 우물은 식수 공급과 환기(換氣) 역할을 했습니다. 또 지상으로 연결된 구멍을 뚫어서 빛이 들어오게 하고, 아주 어두운 곳에서는 등잔불을 이용하거나 손잡이를 만들어 두어 길을 찾아가도록 했습니다. 농사는 외부에서 지었지만, 그을린 자국이 있는 것을 보아 데린구유 내부에서 식생활까지 해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잡한 통로 중간중간에 돌문을 두어 외부 침입에 대비했습니다. 또 다른 지하 도시로 이어진 도피로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데린구유 내부에 예배당, 침례터, 신학교까지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 행한 신앙생활을 소개해 주세요.


김선배 교수: 데린구유 공동체는 학연·지연·혈연으로 뭉친 것이 아니라 오직 신앙으로 뭉쳤습니다. 그 때문에 신앙을 위한 공간을 많이 두었습니다. 특히 신학교가 있었다는 점은 대단히 충격적입니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인 교육을 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다음 세대까지 신앙을 이어줬습니다. 이는 박해가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 예측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이 재림하시리라는 소망을 놓지 않았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침례터는 이곳이 기독교인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개종자(改宗者)가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데린구유 공동체는 환난과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했고, 개종자들을 데려와서 침례를 베풀어 신앙공동체를 키워 나갔습니다. 현대 교회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 예배와 전도와 신앙교육을 당시 데린구유 공동체도 동일하게 신학교와 침례터에서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데린구유 교인들과 오늘날 교인들을 비교해 주시겠어요?


김선배 교수: 데린구유 교인들은 ‘지하’라는 어려운 여건과 환경에 있으면 소극적으로 변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복음의 열정이 활화산처럼 폭발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하 생활을 했던 데린구유 교인들은 지상 생활을 하는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윤석전 목사: 카파도키아 초대 교인들이 어떤 박해를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김선배 교수: 데린구유라는 최악의 상황은 최악의 박해를 반영합니다. 가장 좋은 증거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그들이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11:37~38). 이 구절이 바로 데린구유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핍박과 고통을 그리스도인들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데린구유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가슴에 품고, 배신할 수 없는 절대적인 주님과 관계를 맺은 인격적인 사람들입니다. 숨어서는 복음을 사수하며 주님 앞에 신앙 양심을 지키고, 나가서는 복음을 증거해 예수 믿게 한 자를 데려와 침례를 받게 해서 자기들의 공동체로 편입시켰습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볼 때 정말 감동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회에서 감정, 기분, 환경, 조건이 조금만 안 맞아도 시험 들고, 이 사람과 충돌하고 저 사람에게 상처 받았으며 얼마나 많이 믿음에서 멀어집니까.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서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여 죽으신 만큼 나도 죽기까지 주님을 사랑하다 최고의 상사점에서 신앙생활해 승리의 작품을 내길 바랍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5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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