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173)] “차갑든지 뜨겁든지 하라” 주님께 책망만 받은 ‘라오디게아교회’

등록날짜 [ 2020-01-09 12:45:19 ]

교통의 요지인지라 크게 번성했지만

물질의 풍요함 때문에 영적으로는 벌거벗어

썩지 않는 부를 쌓고, 영적으로 정결하라

일곱 교회 중 사데교회와 함께 책망 들은 교회

 


<사진설명> 라오디게아교회. 지진으로 폐허가 된 곳을 옛 도시 모습으로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외부적인 큰 핍박이나 내부적인 이단이나 부도덕한 행위로 인한 문제가 없었는데도 사데교회와 더불어 책망만 받은 교회였다. 신앙은 미지근했고 영적 생명력을 잃어 무기력했다.  



<사진설명> 라오디게아교회 유적터 위에서 윤석전 목사(분홍 셔츠)와 침례신학교 김승진 교수.



<사진설명> 소아시아 일곱 교회 지도. 라오디게아는 골로새교회에서 서쪽으로 16km, 히에라볼리에서 남쪽으로 13km 지점 계곡에 있다. 군사·경제의 요지이자 금 거래로 은행이 많았고 대부업이 활발했다. 또 흑양모 최고 수출지로서 최고급 모직물과 면직물을 생산했다. 

 





윤석전 목사: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하신 주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그중 라오디게아교회는 주님께 강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라오디게아(Laodicea) 지역은 에베소와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교통 요지여서 교역량이 많아 경제적으로 풍족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물질의 풍부함 때문에 주님을 잊고 살면서도 자기들이 여전히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오해했습니다. 물질문명이 최첨단으로 발전한 오늘날의 기독신앙인에게도 깊이 생각할 바를 주는 라오디게아로 가 보겠습니다.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은인자 같은 이가 발끝에 끌리는 옷을 입고 오는 이상(異象)을 보았다. 요한이 그분을 볼 때, 강렬한 빛이 비쳤고, 그 자리에서 요한은 그 발 앞에 엎드리고 말았다. 이후 나팔 소리와 같은 큰 음성이 들렸다.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1:11). 그 명령대로 요한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를 썼다.


B.C. 3세기에 셀레우코스 왕조가 세운 라오디게아는 군사와 경제의 요지였고, 당대 최고 의료 도시였고, 흑양모(黑羊毛) 최고 수출지였다. 로마 속주(屬州)였던 라오디게아는 풍부한 재물로 신전을 지어 제우스와 아스클레피오스를 섬겼다. 이 속에서 라오디게아는 부유의 진정한 근원을 망각한 채 세속화했다. 이런 영적 불구 상태에서 회복시키고자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교회에 회개를 명하셨다.

 

윤석전 목사:몇 년 전만 해도 라오디게아교회에 가면 돌무더기 하나만 보고 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많이 발굴되어 당시 라오디게아 경제가 이룩한 풍부한 문명을 볼 수 있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의 지리적 특징을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라오디게아는 골로새교회 서쪽으로 16km, 히에라볼리(파묵칼레) 남쪽으로 13km 떨어진 계곡에 있는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라오디게아에서는 금 거래가 활발해서 은행과 대부업자가 많았습니다. 또 생산품도 대단했습니다. 최고급 모직물과 면직물을 생산했는데, 로마 상원의원들이 라오디게아산() 직물로 만든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히에라볼리에서 내려오는 온천수가 오염돼 눈병과 귓병이 많다 보니 의학도 발달했습니다. 또 바바산에서는 냉천수가 내려왔는데, ·온수 지역이라 치료차 사람들이 모여들어 의료 중심지가 됐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원래 B.C. 3세기 무렵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 안티오커스 2세 주도하에 만들어졌고, 도시 국가 버가모(Pergamum)가 다스리다 이후 로마의 속주가 됐습니다. 이 근방에서는 가장 번성한 도시의 대명사로서 모든 것을 갖춘 도시가 되었습니다.

 

윤석전 목사:모든 조건을 다 갖춰 풍요로울 수밖에 없는 도시였군요. 그렇다면 라오디게아의 풍요로운 도시경제와 문화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요?

 

홍순화 교수:물질 면에서 풍요하면 신앙생활이 나태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부유함 때문에 육신으로는 넉넉하게 살았지만, 신앙 면으로는 오히려 쇠퇴했습니다. 안 믿는 것도 아니고 믿는 것도 아닌, 이른바신앙의 회색지대로 변해 안타까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윤석전 목사:라오디게아교회에 내린 책망은 오늘날의 교회에 주시는 책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당시 라오디게아교회가 안고 있던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김선배 교수:라오디게아 지역의 화려함과 풍부함에서 파생한 게으름, 나태, 영적으로 무감각해진 생활 탓에 라오디게아 교인이 신앙 본질을 잃자 예수님께서는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촉구했습니다.

 

윤석전 목사:주님은 풍요를 허락하시면서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값지게 쓰길 원했지만, 인간들은 오히려 육체의 기회로 삼고 타락해 갑니다. 라오디게아교회 역시 지금과 같았을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유적지의 거대한 기둥들은 화려했던 옛 도시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현재도 발굴되는 십자가를 새긴 돌들은 A.D. 5세기 이전의 것인데 이곳에 수많은 교회가 있었음을 알려 준다.


그러나 로마와 비잔틴 시대 이후 이곳은 이슬람 땅이 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사도 요한 당시 라오디게아교회는 물질의 풍요함 속에서 신앙을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신앙에 대한 박해를 감당하지 못했다. 폐허의 땅처럼 영적 피폐 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외양의 찬란함이나 무사안일함은 축복이 아니고 가난해도 어려워도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간다면 영적으로는 큰 축복이다. 예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이런 영적 축복을 주고자 닫힌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돌처럼 굳어 버린 영적 나태함에 묶여 라오디게아교회는 주님께 책망 받은 교회가 되었다.

 

윤석전 목사:라오디게아에 몇 번 가 보았는데, 근래에 깜짝 놀란 점은 땅속에 어찌 그렇게 큰 도시가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도시가 어떻게 발굴되었는지, 어떤 유물이 출토됐는지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유적지 중에는 빌라델비아(Philadelphia)처럼 아직 사람이 사는 곳이 있는 반면, 라오디게아처럼 폐허가 된 곳도 있습니다. A.D.13세기에 라오디게아 지역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지진이 덜 일어나는 데니즐리(Denizli)라는 가까운 도시로 이주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관광자원으로 각광받으니까 라오디게아 지역을 집중적으로 발굴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고대 도시가 발굴됐는데, 특히 스타디움이 눈길을 끕니다. 350m 높이 65m 되는 대단한 규모라서 많은 분이 놀랐다고 합니다. 보통 고대 도시의 2배 크기 스타디움입니다. 지금으로 봐도 대도시에나 있을 만한 규모거든요. 당시 어디에나 있던 원형극장과 수로(水路)가 발굴된 것은 물론이고요.

 

윤석전 목사:사람은 때로 자신이 받고자 하는 복이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복이라 오해합니다. 그래서 자기 의미대로 복을 정의하고 하나님께 구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불일치가 생깁니다. 라오디게아교회도 복의 불균형이 있었으리라 생각되는데 이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김선배 교수:동서고금을 막론하고()’은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세상의 부유와 하나님이 주신 복은 다르지요. 그런데 당시 라오디게아교회는 이 두 가지를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지진을 두 번이나 겪었지만 로마의 도움 없이 도시를 재건할 정도로 풍족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자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하지만 풍족함은 영적인 축복을 회복하는 데 큰 장애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준엄하게 경고하십니다. 내가 구하는 바를 얻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바를 얻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는 사실을 라오디게아교회를 통해 경고하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통용하는 금() 대신에 영원히 타지 않는 금을 사라 말씀하시고, 윤리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순결하도록 흰옷을 사서 입으라, 세상의 부유함을 뚫고 주님을 바라보도록 안약을 사서 바르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복을 받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에는사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는주님에게서 받으라는 의미입니다. 신앙에 열심을 내야 이런 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라오디게아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사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교회에너희 풍요로운 물질을 버려라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풍요롭게 살고 영항력 있게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빠져 주님과 관계가 잘못되고, 자기 영적 상태가 잘못되어 망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라오디게아교회가 현대 교회에 주는 교훈을 말씀해 주세요.

 

김선배 교수:복음은 이방 지역으로 확장되면서 이방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하고 이방 토착 문화에 물들어 오히려 변색되기도 합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후자의 모습을 원색적으로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는데, 라오디게아교회는 역으로 이방 사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성경적 생활을 표준으로 삼는 대신에 그 지역 문화를 표준으로 삼다 보니 그런 부작용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교회에 주는 경고는 평안하다, 풍족하다고 하는 모든 시대와 세대를 향한 교훈이라 여겨집니다. 라오디게아교회처럼 스스로 보지 못하지만, 주님의 눈으로 보면 벌거벗었고 온갖 영적인 질병과 부족함에 함몰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썩지 않은 부()를 쌓고, 영적으로 정결하여 흠이 없게 하고, 차갑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윤석전 목사:말씀을 들으면서 나와 우리 가정, 교회, 나아가 한국 교회, 전 세계 교회가 라오디게아교회를 따라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이 바짝 듭니다. 라오디게아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두드리는 음성을 듣고 문을 열고 주로 더불어 먹고 주로 더불어 사는 복된 시간을 속히 만들어야겠다 다짐하게 됩니다. 내 인생이 끝나 주님 앞에 설 때, 무서운 책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부유를 누리길 원합니다. 주님만을 나의 최고의 부유와 생명의 기업으로 삼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5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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