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175)] 주님께 칭찬만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교인들 삶 전체가 믿음

등록날짜 [ 2020-01-27 14:46:33 ]

이교도 우상숭배 성행했던 척박한 땅에서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섬기면서
소아시아 교회에 주의 만찬용 포도주 공급
지진으로 묻힌 자리엔 요한교회 기둥만 남아



A.D. 17년 대지진 후에도 계속 지진이 발생해 빌라델비아 지역은 대부분 땅속에 묻혔다. 비잔틴 시대에 사도 요한의 이름을 따서 지은 ‘요한교회’도 다 파괴돼 파묻혔다. 현재는 요한교회 기둥 3개만 남아서 천 년이 넘는 긴 세월을 버티고 있다.


빌라델비아 지도. 현지에서는 빌라델비아보다 알라셰히르(Alasehir)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버가모 왕 아탈로스 2세가 건립했는데 로마로 가는 길목에 있어 도시가 형성되었다. 잦은 지진으로 현재는 다른 마을이 들어섰고 돌과 포도밭만 남아있다. 


요한교회 터 앞에 선 윤석전 목사와 침신대 교수들.

윤석전 목사: 지금은 폐허가 된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한국 교회도 언젠가 복음의 열정이 식어 독일이나 영국 혹은 호주처럼 기독교가 과거 역사로만 남을까 우려됩니다. 이번 호부터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순례하려고 합니다. 먼저 빌라델비아(Philadelphia) 교회로 가 보겠습니다.

라오디게아(Laodicea)에서 북쪽으로 80km를 달리면 빌라델비아에 다다른다. 길가에 즐비하게 펼쳐진 포도밭이 순례자의 눈길을 끈다. 지금도 고급 포도주를 생산하는 이곳은 과거에 주의 만찬용 포도주를 생산해 소아시아 교회들에 공급했다. 빌라델비아는 B.C. 33년에 로마 영토가 됐고, 이후 비잔틴제국에 속했다. A.D. 17년 대지진 후에도 계속 지진이 발생해 빌라델비아 지역은 대부분 땅속에 묻혔다. 비잔틴 시대에 사도 요한의 이름을 따서 지은 ‘요한교회’도 다 파괴돼 파묻혔다. 현재는 요한교회 기둥 3개만 남아서 천 년이 넘는 긴 세월을 버티고 있다. 한편, 교회 유적에도 남아 있는 우상숭배의 흔적은 이곳에서 이교(異敎) 풍속이 얼마나 성행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바로 이 척박한 땅에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신앙을 꿋꿋이 지켰고, 주님께 칭찬받는 교회로 후대에 이름을 남겼다.

윤석전 목사: 저도 빌라델비아에 갔을 때, ‘과연 저곳이 실제로 교회가 있던 곳인가’ 의심할 정도로, 교회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먼저 빌라델비아 교회 위치를 상세히 소개해주세요.

홍순화 교수: 빌라델비아는 터키 3대 도시인 ‘이즈미르’의 서머나(Smyrna)에서 동쪽으로 120km 지점, 사르트(사데)에서 동남쪽으로 50km에 있습니다. 현지에서는 빌라델비아라는 이름보다 알라셰히르(Alasehir)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원래 트모로우스(Tmolous) 산맥 기슭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버가모 왕국 영향권 내에 들어가면서 로마로 가는 길목에 자리했기에 그 중요성이 인정돼 도시가 형성됐습니다. 과거에는 성경에서 언급할 정도로 중요했지만, 잦은 지진 탓에 지금은 포도밭만 즐비한 작은 농촌 마을이 됐습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 속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께 큰 칭찬을 받으며 부흥·성장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어떻게 그런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나요?

박영철 교수: 빌라델비아 교회를 보면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3:8)라고 주님께 칭찬받았습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하나님 말씀을 잘 지켰다는 말은 ‘믿음 대로 생활했다’는 뜻입니다.

또 교회를 현혹하고 속이려던 몇몇 사람을 정확히 집어내서 굴복시키는 영적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믿음을 가지고 복음 앞에서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랬기에 주님께서 크게 칭찬한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빌라델비아 교회가 주님께 칭찬받는 건강한 교회를 이룬 비결은 무엇일까요?

박영철 교수: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영적 분별력이 뛰어났는데, 이는 하나님 말씀에 충실했고, 말씀에 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진 데서 옵니다. 그뿐만 아니라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생애를 바치고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사랑하고, 교회를 섬겼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 믿는 것을 삶의 한 부분으로만 여기지만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삶 전체가 예수 믿는 믿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에 서로서로 도전과 격려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건강한 교회의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빌라델비아 같은 교회가 오늘날 한국에 많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오늘날은 그만큼 신앙의 타협 없이 하나님 말씀을 지켜나간다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데 믿음을 우선하기보다 믿음 밖의 것을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같은 건강한 교회를 만들지 못하면 믿음 안의 것이 믿음 밖의 것보다 작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에게 깨어있으라 경종을 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건강하고 견고한 믿음을 가졌기에 주님께 칭찬받은 빌라델비아 교회로 다시 한번 가보겠습니다.

버가모의 왕 아탈로스 2세(Attalus)가 세운 빌라델비아는 지진 탓에 땅속에 묻혔다. 현재는 그 위에 새로운 마을이 들어섰다. 고대 도시를 짐작할 수 있는 잔해가 남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유적은 땅속에 묻혀 있다. 새로 지은 마을 때문에 더는 발굴할 수도 없다.

이미 발견된 요한교회 유적에도 우상숭배의 흔적이 새겨진 모습을 볼 때, 순례자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겪었을 시련을 떠올리게 된다. 반쯤 땅에 묻혀 있지만 그 모습을 잃지 않은 교회의 기둥은 세속적인 땅에서도 믿음을 지켰던 빌라델비아 교인과 닮았다. 오직 믿음으로 성전의 기둥이 되고자 했고, 새 하늘과 새 땅의 백성이 되고자 했던 빌라델비아 교인들. 그들의 믿음이 살아있기에 이곳은 여전히 성서(聖書)의 땅이다.


윤석전 목사: 빌라델비아 교회 터로 여겨지는 곳에 현재 요한교회 기둥이 남아 있어 많이 혼동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와 요한교회의 관계를 정리해주세요.

홍순화 교수: 성지를 순례할 때 알아야 할 중요한 지식이 있습니다. 바로 역사의 무게입니다. 성경 시대는 대략 2000년 전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끔 최근 시대인 줄 착각합니다. 또 한 가지는 교회(敎會)와 예배당을 혼동하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예배당을 가지고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들이 어디서 모였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교회(敎會)는 ‘믿음의 사람들의 공동체’인데, 기독교가 공인(公認)되기 전까지는 건물 없이 모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 터가 어디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예배당이 있었다 하더라도 2천 년 세월이 흘렀고, 비잔틴 시대에 기독교가 공인됐고 그 시대에 빌라델비아 지역에 요한교회를 세웠는데 그 터만이 현재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교회를 보면서 이 지역에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었다고 깨닫고 돌아온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빌라델비아 교회를 보면 믿음의 공동체인 에클레시아(Ecclesia)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에클레시아란 어떤 모습인지 말씀해주세요.

박영철 교수: 교회를 일컬어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말합니다. 에클레시아는 ‘불러내다’ ‘부르다’ ‘불러냄을 받은 우리’라는 뜻이며, 전치사 ‘ek-(밖으로)’에 동사 ‘caleo(부르다)’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따라서 초대교회 당시 교회는 건물에 연관된 개념이라기보다 ‘믿음의 공동체’라는 개념이 더 타당합니다.

교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가는 두 방향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교회를 몸으로 비유할 때, 두 가지 방향에서 진정한 교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는데요. 몸의 머리를 그리스도라 하고, 교인들이 몸의 각 지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건강한 몸은 머리의 명령을 즉각 알아듣고 지체 없이 그 명령을 수행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영적분별력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목숨도 아끼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런 주님과 관계성이 잘 돼야 건강한 교회인데, 빌라델비아 교회가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건강한 몸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아픔과 즐거움을 함께 나눕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새 계명’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이같이 성도 간에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나를 믿게 된다”는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진 교회가 건강한 교회, 건강한 에클레시아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지금 유럽 교회, 북미 교회, 한국 교회 여러 현실을 볼 때, 상당히 안타까운 점이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현대 교회에 어떤 교훈을 줄까요?

박영철 교수: 유럽 교회는 이미 죽은 교회, 생명력을 잃은 교회라고 합니다. 미국 교회는 쇠퇴에 접어들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역시 성장이 멈춘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오늘날 물질문명이 범람하고, 이단(異端) 사상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언제나 초점(焦點)을 주님과 관계에 맞춰야 합니다. 주님께 충성과 사랑을 드리는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사단이 언제나 우리를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주님과 관계성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많은 사람이 ‘영적 가치의 상실’ 때문에 신앙생활에 좌절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이 끝나는 순간 마귀와 더불어 지옥에 갈 것이냐, 하나님과 더불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냐를 생각하면, 70년, 80년의 문제 때문에 시험 들고 무너지고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떤 핍박과 고통이 올지라도 우리는 빌라델비아 교회같이 승리해서 천국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적 생활을 최고 가치로 여기고 시험도, 핍박도, 환난도, 고통도 모두 이겨 승리하고 그 승리가 바로 내 영혼의 축복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 축복이 여러분에게 넘치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5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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