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182)] 사도 요한이 유배 가서 기도하다 계시를 받은 밧모섬 계시동굴

등록날짜 [ 2020-03-10 14:44:38 ]

로마 황제 숭배 거부하고 핍박받다 유배
유배 기간 중 「요한계시록」 기록한 곳
기독교 핍박 끝까지 견뎌 승리하도록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가 계시록


윤석전 목사: 사도 요한은 누구보다 예수님께 사랑을 많이 받았고, 그도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주님이 온갖 고통을 당한 가야바의 뜰에도 어김없이 함께 있었습니다. 모진 매를 맞을 때도 같이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는 최후의 순간에 예수님이 요한에게 ‘내 어머니를 네게 부탁한다’(요19:27)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밧모섬에 유배된 요한은 기도하던 중 계시(啓示)를 받습니다. 이 계시의 말씀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밧모섬, 요한이 계시를 받은 동굴이 있는 곳으로 가 보겠습니다.


터키 에베소에서 90km가량 떨어진, 현재 그리스령(領)인 밧모섬(Patmos)엔 주민 2000여 명이 살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백색 집을 즐겨 짓는다. 이 아름다운 섬에 있는 사도 요한(John the Apostle)의 계시동굴은 늘 순례자로 붐빈다. 요한의 제자 브로고로(Procorus) 집사가 요한이 받은 계시를 기록했다는 동굴 입구는 방문자를 위해 이곳에 있는 채석장 돌로 장식을 했다. 이 돌길을 따라가면 지하에 있는 계시동굴에 닿는다. 사도 요한은 로마 도미티아누스(Titus Flavius Domitianus, A.D.81~96) 황제 때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죄목으로 밧모에 유배돼 동굴에 갇혀 지냈다. 그러나 요한의 유배는 신약성경의 말미를 거룩하게 장식한 『요한계시록』이 탄생하는 터전이 됐다. 사도 요한이 기도하고 일어날 때마다 손을 짚어 파였다는 홈에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요한의 사랑이 담겨 있어 천년 넘는 세월 동안 감동의 열기를 더해 주고 있다.


윤석전 목사: 우리가 성경을 읽어서 밧모섬에 관해 알 수는 있어도, 직접 밧모섬을 순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많은 성도가 밧모섬이 어디 있는지 궁금해합니다. 자세히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성경에 나오는 로도(Rhodes), 고스(Cos), 사모(Samos), 기오(Kios), 미둘레네(Mitylene)라는 섬들은 현재 모두 그리스(Greece) 영토입니다. 그리스에서 250km 떨어진 밧모섬도 터키가 아니라 그리스에 속한 섬입니다. 에베소를 중심으로 말씀드리면 에베소에서 남서쪽으로 약 90km 떨어진 조그마한 섬입니다. 밧모섬은 길이 16km, 폭 9km로 우리나라 울릉도의 절반 크기입니다. 로마시대에 이 섬을 유배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의 사람 사도 요한의 유배지였기에 유명해진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사도 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 됐다는 기록은 있지만, 유배를 가게 된 이유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박영철 교수: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됐을 당시 로마에는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상당히 고조됐습니다. 특히 그 시대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기독교를 박해하도록 명령했고, 그런 맥락 속에서 요한이 체포돼 밧모섬으로 유배를 갑니다. 당시 극형(極刑)인 사형 못지않은 중죄를 지은 사람을 유배한 곳이 밧모섬이었습니다. 지금은 터키 쿠샤다시 항구에서 4시간 남짓 걸리는 뱃길이지만, 당시에는 한 달이 넘게 걸렸다고 합니다. 사도 요한이 유배된 지역은 단순히 격리되는 고통을 넘어 채석장에서 돌을 캐는 노역(勞役)을 해야 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기독교 박해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 부활을 전한 이들에게 고생하다가 죽으라고 보낸 밧모섬 유배는 사형에 버금가는 극형(極刑)인데요, 그 극심한 고통과 노역의 장소 밧모섬에서 요한이 어떻게 살았는지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사도 요한의 밧모섬 유배 생활에 관해 두 가지 설(說)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도 요한이 광산에서 노동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때 요한의 나이가 88세라는 설(說)이 있어 고령의 노인에게 강제 노동을 시킬 수 있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다른 전승(傳承)에는 사도 요한이 그 섬으로 가면서 특별한 이적을 일으켜 오히려 대우를 받고 자유롭게 다녔다고 합니다. 유배 기간에 관해서도 이견이 있습니다. 유명한 초기 교회의 교부(敎父) 이레나이우스(Irenaeus, A.D.140~203)는 5년 있었다고 했지만, 다른 기록에는 18개월 있었다고 합니다. 오래전 사건이라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점은 예수님 때문에 그 노인이 고통과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몸소 겪었다는 사실입니다.


윤석전 목사: 역사적 문헌에 따르면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석방되었다고 하는데 그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박영철 교수: 요한을 유배한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즉위 1년 8개월 후 살해를 당합니다. 뒤이어 황제가 된 이는 트라야누스(Marcus Ulpius Trajanus, A.D.98~117)였습니다. 트라야누스는 기독교 박해를 중지하고 유배한 요한을 석방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의 사역 본거지인 에베소로 돌아가서 활동했다고 전합니다.


윤석전 목사: 밧모섬에 가면 계시 동굴뿐만 아니라 소중한 장소가 또 있는데 바로 성경 사본을 보관해 둔 곳입니다. 그곳으로 가 보겠습니다.


밧모섬 주민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호라(Hora) 마을 정상에 사도 요한을 기념하여 세운 요한수도원이 있다. 이 수도원이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견고하게 세워진 이유는 자주 출몰하는 해적을 방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요한수도원에는 유명한 성화(聖畫)가 있다. 한가운데 있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양쪽에 계시록을 든 사도 요한과 교회를 받치는 교황을 그려놓은 성화다. 이곳은 성화를 중시하는 그리스정교회 수도사들이 관리하고 있다. 수도원에는 해상무역으로 돈을 번 상인들이 안전 항해를 기원하며 기증한 매우 많은 보물이 있어서인지, 관람객들은 본당을 관람하기가 쉽지 않다. 밧모섬에 기독교를 정착시킨 요한수도원에는 벽화(사진4)도 있다. 벽화 자체가 요한의 일대기(一代記)다. 또 도서관은 귀한 사본을 보관하고 있는데, 이곳은 요한계시록 말씀뿐만 아니라 성경 말씀을 필사(筆寫)하고 연구하던 곳이다. 말씀의 권위가 살아 있는 요한수도원은 계시동굴과 함께 밧모섬의 복음 빛을 밝혀 주는 거룩한 등대로 자리 잡고 있다.


윤석전 목사: 요한이 그곳에 유배됐기에 요한수도원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상당히 중요한 성경 사본을 보관할 정도라면 그 장소도 얼마나 중요했을지 짐작됩니다. 요한수도원은 언제쯤 생겼으며, 이 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역사를 살펴봤더니 A.D.1088년 크리스토둘로스가 비잔틴 황제 알렉시우스 콤네누스(재위 1081~1118)의 허락을 받아서 이곳에 요한수도원을 건설했습니다. 수도원 자리는 B.C. 4세기부터 아데미(Artemis) 신전이 있던 터였는데 그 곳에 수도원을 지은 점이 흥미롭습니다. 자세히 보면 수도원이 아니라 성(城) 같은데 이는 아랍인과 해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길이 70m, 폭 50m, 높이 15m이며, 아파트 5층 정도 크기 요새처럼 건설됐습니다. 그때부터 성경 사본들과 귀중한 문헌을 보존했습니다. 한때 수도사가 100명까지 있었지만, 지금은 20명 정도 머물고, 관광객이 많이 찾습니다.


윤석전 목사: 요한수도원은 요새 같아 무엇을 두어도 빼앗기지 않겠구나 생각되더군요. 그래서 그곳에 성경 사본을 두지 않았나 싶습니다. 성경은 어떤 내용은 상징적으로, 어떤 내용은 직설적으로, 어떤 내용은 미래지향적으로 기록했는데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지 말씀해 주세요.


박영철 교수: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쓰인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기독교가 엄청나게 핍박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핍박을 끝까지 견뎌 승리하도록 격려하는 내용이 요한계시록의 주제입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그 주제가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골똘히 상고하기보다는 전체를 보면 좋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 요한의 삶과 목회는 현대 목회와 교회에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점에 관해 말씀해 주세요.


박영철 교수: 사도 요한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의 사도’였습니다. 특히 ‘요한이 예수님의 품에 안겼다’(요13:23)는 말씀으로 추측컨대 요한의 얼굴이 예수님의 가슴에 묻혔을 텐데, 요한이 온 세상을 사랑하는 주님의 심장박동을 자신의 귀로 직접 들으면서 그 감격이 얼마나 컸을까 상상해 봅니다. 사도 요한의 삶에서 무엇보다 철저하게 배워야 할 점은 주님을 깊이 사랑하는 것이며, 이는 우리에게도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발광체가 아니고 사랑의 반사체이기에, 사랑을 받아야 그 사랑을 반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주님의 사랑을 받는 데 집중해야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우리 자신이 언제든지 주님만 사랑하고 열망한다면, 주님 때문에 받는 어떤 고통도 사라지고 위로와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주님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지, 아니면 내 잘못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지 깨달으면서 주님 때문이라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최고의 위로가 올 그 날을 기대하면서 큰 승리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설명>


1.  밧모섬. 에베소에서 남서쪽으로 90km, 에게해의 스포라데스에 속하는 작은 섬. 250km나 떨어져있는 그리스와의 거리를 볼 때 그리스 영토가 아닌 느낌이다. 그리스의 작은 섬이지만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유배를 당한 곳으로 알려져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2.  요한 계시동굴 입구에서 윤석전 목사와 성지 순례단.



3. 밧모섬 부근 지도. 



4. 요한수도원 벽화. 사도 요한의 일대기가 그려진 벽화. 



5. 요한수도원. 1088년 크리스토둘로스(Christodulos)가 황제의 허락을 받아 건설한 수도원. 원래는 아데미(Artemis) 신전이 있던 터였다. 아랍과 해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요새처럼 지어졌다.


터키 편 (20)


위 글은 교회신문 <66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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