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185)]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시작한 바울의 전도여행 출발점 ‘실루기아’

등록날짜 [ 2020-03-28 11:27:19 ]

당시 수리아 안디옥의 중요한 항구 도시

하나님 은혜 갚는 길은 복음 전도라 생각

‘빚진 자’의 사상으로 죽음 각오하고 길 떠나

매 순간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 보여줘



 배를 정박하기 위해 밧줄을 묶었던 바위 앞에 서 있는 윤석전 목사와 이명희 교수. 



바울이 출항한 곳으로 알려진 실루기아 해변의 조각상. 



 바울의 1~4차 선교여행 지도. 



실루기아 항구 현재 모습. 실루기아는 알렉산더왕의 부하 셀류쿠스 1세 니카토르 장군이 자신의 이름을 따 건설한 도시. 수리아 안디옥에서 내륙으로 24km 들어가 있어 당시 이 지역의 제일 중요한 항구였다. 



윤석전 목사: 바울은 바다의 거친 파도를 헤치며 어느 곳이든 영혼이 있다면 복음 들고 갔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생애를 바쳐 복음 증거한 바울. 그가 제일 처음 전도여행을 출발한 실루기아로 가보겠습니다.


실루기아(Seleucia)로 가기 위해 안타키아(Antakya,옛 수리아 안디옥)에서 남서쪽으로 향했다. 십자군의 2차 원정 때 상륙 기지였던 실루기아는 1248년 이슬람이 안디옥을 점령한 이후 쇠락했다. 하지만 당시 구브로(Cyprus)로 전도하러 가려던 사도 바울에게는 더 없이 요긴한 출항지였다. 이방 땅을 향해 바울을 나서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성령이 주신 구령의 열정이다. 이 구령의 열정은 바울의 마음속에 바다 건너 이방 땅에 버려진 영혼들을 품게 했고, 덕분에 실루기아는 세계 전도의 역사를 여는 거룩한 출발지가 됐다.


윤석전 목사: 실루기아의 옛 항구 흔적을 보면서 그곳에서 배를 타고 전도여행을 출발한 사도 바울의 각오와 결심을 제 가슴에도 담았습니다. 실루기아는 어떤 곳이며 어디에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홍순화 교수: 실루기아가 국경선 가까이 있어서 시리아 땅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터키 땅입니다. 바다에서 내륙으로 24㎞나 들어가 있는 항구여서 당시 수리아 안디옥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항구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실루기아를 항구로만 기억하는데, 그곳은 단순한 항구가 아닌 도시였습니다. B.C. 3세기 알렉산더의 부하 셀류쿠스 1세 니카토르(Seleucus I Nicator, B.C. 312~281) 장군이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 실루기아를 건설했고 이후 큰 도시가 됩니다. 항구 뒤쪽 산에 도시 유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기독교인에게는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첫 전도여행을 떠났기에 특별한 항구입니다.


윤석전 목사: 실루기아에서 제가 탄 배가 혹시 파선(破船)하지 않을지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바울 당시는 지금처럼 파도를 이길 만한 대책이 없기에 배보다 큰 파도를 만나면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목숨을 내던질 각오로 전도여행을 한 바울의 복음 열정을 보면, 가슴이 찡합니다. 사도 바울이 실루기아를 선교의 첫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행13:4)라고 말했는데 이때 성령의 강권하심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김호경 교수: 사도행전은 바울의 전도와 함께 바울의 행위를 이끄시는 성령을 강조합니다. 사도행전 초반부에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열두 사도와 바울의 사건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모든 것을 움직이는 배후가 누구인지 소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보기에는 사람이 한 일 같지만, 역사를 움직이고 주관하고 끊임없이 간섭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고, 이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이자 하나님의 인류 구원을 이끌어가는 역사임을 사도행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 전도여행부터 여행을 마칠 때까지 매 순간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그와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3:8). 나무가 흔들릴 때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나무를 움직이듯,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강권하심에 따라 성령이 어떻게 그를 인도하는지 보여줍니다. 사도행전은 사람이 움직이기 전에 그 사람을 일하게 하는 성령님이 계신다는 내용입니다. 바울의 세계 전도여행 배후에는 성령님의 인도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울을 보기 전에 성령께서 바울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 뜻을 먼저 알면 큰 은혜가 될 것입니다. 바울의 전도여행을 통해서 그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진 실루기아 항구로 다시 한번 가보겠습니다.


순례팀은 바울이 실제 출항한 것으로 알려진 옛 항구 터를 찾았다. 수리아 안디옥에서 성령의 강권하심에 따라 선교사로 파송 받은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구브로의 살라미(Salamis)로 가려고 실루기아 항구로 왔다. 배를 정박시키려 밧줄을 묶었던 바위, 쇠기둥을 박았던 홈 등 과거에 번화했던 항구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미지(未知)의 땅에 구원의 복음을 전하러 가는 길은 분명 죽음을 각오한 위험한 항해였다. 그 길을 가기 위해 바울은 실루기아 땅을 밟았고, 세계 복음화는 시작됐다. 그래서 이 바닷가는 거룩한 땅으로 남아 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을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1차 전도여행은 거리가 짧고 많은 곳을 들르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수리아 안디옥에서 실루기아 항구로 갔고, 거기서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가 살라미 항구에 도착합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을 보면 늘 당시에 있던 도로를 이용했는데 아마 바닷가 도로를 이용해 살라미에서 바보(Paphos) 항구로 갔을 것입니다. 바보 항구는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서기오 총독을 전도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전도한 후 구브로를 떠나 지금의 터키로 갑니다. 맨 먼저 도착한 곳에 항구 도시 앗달리아(Attalia)이고 이어 버가(Perga)로 갑니다. 여기까지는 평탄한 해안지방이었지만, 이후 해발 1000m 넘는 내륙지방으로 가서 비시디아 안디옥(Antioch of Pisidia)으로 갑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당시 지리·정치적으로 터키 내륙의 중심 도시였는데 바울이 이곳 회당에서 설교하다가 쫓겨났습니다. 그다음, 바울은 이고니온(Iconium)으로 갑니다. 그리고 루스드라(Lystra) 지역에 갔는데 이곳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 바울을 신처럼 떠받들려는 일이 있었습니다(행14:11). 이후 사도 바울은 더베(Derbe)까지 갑니다. 그 후 바울은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 등 자신이 전도했던 위험한 곳을 다시 거쳐 항구 도시 앗달리아로 간 뒤 배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2·3차 전도여행과 비교하면 상당히 짧은 거리를 여행합니다.


윤석전 목사: 전도여행을 보면 바울의 각오와 결심이 담겼을 텐데 이를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김호경 교수: 1차 전도여행을 떠난 바울은 죽음을 각오했을 터입니다. 지금도 낯선 곳에 가기가 쉽지 않지만, 그 당시 배를 타고 길을 걷고 산을 넘는 여행은 언제든지 돌발 상황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바울에게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바울이 전한 복음은 이방세계 사람들이 접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방세계는 다신교(多神敎)를 받아들였는데, 이에 반해 바울은 유일신(唯一神)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지금까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을 그들에게 줄 때,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바울에게 두려움일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리·공간·환경의 여건과 이방인이라는 복음의 대상 그리고 디아스포라 유대인까지 여러 방면으로 위험에 둘러싸여 복음 전했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여행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은 동족과 이방인 중 누구를 만나도 위험한 상황이었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 복음을 전해 한 영혼이라도 더 살려내겠다는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전도여행을 하면 죽을 가능성이 큰데 왜 저렇게 무모한 짓을 하나?’ 싶었을 것이고, 그 시대 왕과 유대인도 바울을 그렇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성령의 감동에 따라 전도여행을 출발했다는 기록을 보면, 믿음의 비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 관해서 말씀해 주시겠어요?


김호경 교수: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바울의 고백 중 하나가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라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보통 좋은 일이 있으면 ‘아, 이 일이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말하는데 바울은 “현재 있는 내 모습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 은혜를 갚는 일이 하나님의 복음을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롬1:14)라고 말합니다. 어려움이 뻔히 보이는데도 바울이 세상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빚진 자’ 사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울 사역에서 ‘빚진 자’에 관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나아가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박해한 그의 이력을 사역 내내 짐처럼 짊어지고 다녔을 것입니다.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아도 아깝지 않다 여기며 남은 삶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오늘날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빚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감사로 끝냅니다. 하지만 바울은 ‘나만 구원받아서 되느냐, 많은 사람에게 전해주어야 한다’며 하나님께 진 은혜의 빚을 감사와 순종과 이웃 영혼 살리는 전도로 갚으려 합니다. 또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한 일을 빚으로 여겨 ‘내가 박해받을지라도 빚을 갚기 위해 출발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성령님이 주신 정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울의 발걸음 소리, 숨소리, 맥박 뛰는 소리가 현장에서 들려오는 것 같아 가슴에 와 닿는 게 많았습니다. 우리도 일평생 성령으로 살아 성령행전을, 사도행전 29장을 쓰는 바울 닮은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6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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