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1-02-16 22:08:34 ]
<사진설명> 예루살렘 통곡의 벽. 서기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참혹하게 불타버린 예루살렘에 오늘날 이슬람 사원이 자리 잡았고, 사원 서쪽에 성전의 옹벽 일부만 남아 있다. 이를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많은 유대인의 죽음을 기억하며 지금도 눈물의 기도는 이어지고 있다.
<사진설명> 감람산에 올라 ‘눈물교회’를 뒤로한 채 맞은편의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있는 윤석전 목사와 탤런트 정애리 권사.
<사진설명> 위성사진으로 바라본 예루살렘 전경. ‘통곡의 벽’과 ‘바위의 돔’이 눈에 띈다. 오른쪽 감람산에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보면서 통탄하셨다는 것을 기념해 ‘눈물교회(Dominus Flevit)’를 세웠다.
윤석전 목사: 신구약 중요 사건의 현장이 가득 들어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예수님의 역사가 담겨 있는 예루살렘. 그곳에서 주님이 역사하신 일들과 주님께 쓰임받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파가 분배받은 성읍 26개 중 하나이며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곳이다. 안타깝게도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맞은편 감람산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아무리 전해도 듣지 않고 아무리 일러 줘도 믿지 않는 예루살렘을 향해 통한의 “예루살렘”을 불러 가며 우신 것이다.
결국 로마에 의해 참혹하게 불타 버린 예루살렘에 오늘날 이슬람 사원이 자리 잡았고, 사원 서쪽에 성전의 옹벽 일부만 남았다. 유대인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많은 이가 통탄의 눈물을 흘린 이곳을 ‘통곡의 벽(Wailing Wall)’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눈물의 기도는 이어지고 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이 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부터 예수의 무덤까지 이어지는 슬픔의 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걷는 순례자의 마음속에 예수님의 사랑이 담긴다. 예루살렘은 여전히 거룩한 성지로 불리고 있다.
윤석전 목사: 예루살렘의 위치와 특징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이스라엘의 영토를 보통 ‘단’에서 ‘브엘세바’라고 말합니다. ‘단’은 갈릴리 호수 북쪽 부근이고, ‘브엘세바’는 남쪽으로 내려가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국토의 중간에서 조금 내려온 산악지대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서쪽 해안지역은 해변로가 있어 교통은 편리했으나, 여러 나라의 각축장으로 연결하는 도로였기에 이곳에서 적을 방어하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반면 예루살렘은 해발 700~800m인 산악 지역으로 소규모 전쟁은 피해 갔고 방어할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또 예루살렘 산악지대에 있는 ‘족장들의 도로(Patriachs’ Road)’가 이스라엘 내륙지방을 남북으로 관통했고, 동쪽 여리고에서 올라오는 길이 서쪽을 관통해 예루살렘은 동서남북 어디나 연결된 중심지가 됐습니다.
예루살렘은 세계적으로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의 성지인 대단한 도시입니다. 예루살렘을 도읍으로 정한 이유는 첫째, 땅 밑에서 물이 올라오는 기혼샘 덕분에 물 공급이 해결됐습니다. 둘째, 기드론 계곡과 힌놈의 아들 골짜기 그리고 성경에 나오지 않는 또 하나의 골짜기까지 세 개로 둘러싸여 있어 당시 중요한 전쟁에서 한쪽만 방어해도 되는 요새였습니다. 셋째, 다윗이 이스라엘 왕국 수도를 정할 당시 예루살렘은 어느 지파에 소속된 땅이 아니라 여부스 족속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지파에게 할당된 땅을 수도로 징발할 필요 없이 다른 족속에게 빼앗아 새로운 땅에 수도를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됐습니다.
윤석전 목사: 많은 반대도 있었겠지만, 다윗은 과감하게 수도를 옮겼습니다. 그 지역에 왕궁을 세운 것은 다윗의 뿌리에서 예수님이 나신다고 하셨으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준비를 한 역사와 연관돼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대역사가 나타난 곳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나사렛에서 자라신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중요한 사역은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홍순화 교수: 예루살렘에서 중요하신 일을 하신 가장 큰 이유는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전 세계 어디에나 교회가 있지만, 당시 하나님께 직접 제사하는 성전은 예루살렘에만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은 예수님 시대보다 1000년 전부터 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예수님 때 이스라엘의 수도도 예루살렘이었고, 산헤드린 공의회 같은 지도자들이 그곳에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재판해야 십자가를 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역사와 신앙에서 제일 중요한 도시인 예루살렘에서 일하시고, 인류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루살렘은 순례객이 혼동할 만큼 신구약의 많은 역사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분기점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박영철 교수: 구약과 신약의 정확한 분기점은 역시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죽으심과 부활’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언급된 유적지가 예수님이 오시면서 그 의미가 분명해지고, 구약의 물건을 예수님이 만지시면서 진정한 의미를 발휘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탄생하신 말구유는 냄새나는 곳이지만 예수님이 거기 누이셨으니 전 세계 사람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흉악한 살인범을 처형한 십자가도 예수님이 우리 죗값을 대신해 달리셨으므로 교회 건물마다 십자가 첨탑을 세웠습니다. 예루살렘에 구약과 신약이 혼재하지만, 예수님이 분기점이 되신 것은 분명합니다.
윤석전 목사: 우리를 구속하신 주 예수께서 사신 예루살렘은 이름만 들어도 은혜가 넘치고, 생각만 해도 성경 속 현장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나타납니다. 중요한 역사 속에 있는 예루살렘을 비켜 가면 갈릴리 바다(Sea of Galilee)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고 많은 일을 하셨던 중요한 장소, 갈릴리로 가 보겠습니다. <계속>
<사진설명> 감람산에 있는 눈물교회.
<사진설명> 비아 돌로로사. 십자가의 길이라는 뜻이다. 예수께 사형 선고를 내린 빌라도 법정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골고다 언덕을 비롯해 예수님을 장사 지낸 무덤까지 길을 14지점으로 나누어 놓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68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