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208·下)] 사해문서 발견된 ‘쿰란’

등록날짜 [ 2021-06-01 13:13:40 ]

로마 군에 멸망당한 에세네파
쿰란 동굴에 ‘구약필사본’ 감춰
2천 년 긴 시간 동안 성경기록
변하지 않고 일치함을 보여줘


여리고 남쪽의 유대광야에는 유다 지파의 여섯 성읍 중 하나인 염성(鹽城)이 있다. 염성은 ‘키르벳 쿰란(Khirbet Qumran)’ 또는 ‘쿰란’으로 불렸는데, 다가올 종말을 기대하며 금욕생활을 하던 사람들의 공동 거주지이자 기도를 통한 경건 훈련을 하고 성경을 연구하던 곳이었다. ‘쿰란공동체’는 넓은 식당에 1000여 명이 모여 함께 식사했는데 이를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만 참여하는 천국잔치의 모형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B.C. 167년경부터 A.D. 70년까지 쿰란 주변 가파른 절벽에 동굴을 만들어 생활했다. 당시 흔적을 짐작할 수 있는 사해사본이 지난 1947년 이곳에서 발견되어 눈길을 끌었다. 쿰란을 따라 형성된 길과 역사는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인 아골 골짜기에 있는 성읍들과 연결된다.



<사진설명> 사해 북서쪽 해변에 있는 쿰란 유적지 전경. 쿰란 사람들은 B.C. 167년경부터 로마 군에 멸망당한 A.D. 70년까지 유대광야에서 공동체를 이뤄 생활했다. 유대교 에세네파의 한 부류인 쿰란공동체는 수도원적인 생활을 하며 종말이 오기를 기다렸다.



<사진설명> 쿰란 주변 지도. 쿰란에서 남서쪽으로 9km 떨어진 곳에 닙산이 있다.



<사진설명> 쿰란에서 거의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이사야서’는 현대 구약성경 내용과 완벽한 일치를 보여 무려 2000여 년 긴 시간 동안 성경의 기록이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윤석전 목사: 유다 지파의 땅인 닙산과 염성(쿰란)을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닙산은 염성에서 남서쪽으로 9km 떨어진 유대광야의 아골 골짜기 안에 있어 찾아가기 어렵습니다. 닙산은 성경에 한 번 등장합니다(수15:62).


많은 순례객이 쿰란공동체가 살던 쿰란에 꼭 들릅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성읍은 앞에 ‘언덕’을 뜻하는 ‘텔(Tel)’이라는 단어가 붙는데, 염성에는 ‘폐허’라는 뜻의 ‘키르벳’이 붙습니다. 그만큼 이 지역이 열악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성읍은 다 언덕에 자리 잡았지만, 염성은 언덕 기슭에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염성은 쿰란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 쿰란공동체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권혁승 교수: 예수님 당시 유대교는 크게 네 종파로 나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교단입니다. 첫째로 사두개파(Sadducees)는 제사장이 중심이 된 당시 성전을 책임지는 지배계층이었습니다. 둘째로 바리새파(Pharisees)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대중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받던 사람들입니다. 셋째로 열심당(Zealot)은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국수주의자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에세네파(Essenes)는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 중 한 부류가 쿰란에서 수도원적인 생활을 하며 종말이 오기를 기다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직전, 로마 군대가 쿰란도 파괴합니다. 그때 쿰란 사람들은 자신들이 두루마리에 기록한 문서들을 주변 동굴에 숨겨 놨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모르다가 이스라엘이 독립하기 1년 전인 1947년, 한 목동이 항아리에 담긴 일부 문서를 발견했습니다. 이후 대대적으로 발굴해 엄청난 양의 문서를 찾았습니다. 이를 사해문서라고 합니다. 그중에 성경 사본도 있었습니다. 당시까지 발견한 가장 오래된 성경 사본은 1000년경 것이었는데, 그보다 1000년 더 앞선 사해문서에서 오래된 사본이 나와 쿰란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윤석전 목사: 아주 감동적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서 2천 년 전 성경이나 오늘날의 성경이 진리의 말씀으로서 변하지 않고 일치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보여 주는 고증입니다. 예수님은 유다 지파에서 출생했고, 또 유대광야에서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습니다. 유다 지파 땅에 영적인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권혁승 교수: 유대광야는 사막입니다. 이스라엘 초기 역사는 사막과 깊은 관련을 가집니다. 먼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시내산(Mount Sinai)은 사막에 있는 산입니다. 그 후 가나안에 들어오기 전까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신앙 때문에 40일간 가나안을 정탐한 것을 햇수로 계산해 40년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막에서 방랑하게 됩니다. 곧 사막은 이스라엘 민족이 태어난 곳이고 성장한 곳입니다.


또 예수께서 유대광야에 오셔서 기도하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영적 고향으로 돌아가 출발점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시작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침례요한도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광야로 나오라고 합니다. 뜨거운 광야로 나오라는 말은 광야가 이스라엘 역사의 시발점이기 때문에 초심을 잃지 말라는 교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사마리아 인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던 중 강도를 만났습니다. 두 도시 사이 지역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권혁승 교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는 당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두 도시 사이 지역은 정확히 유대광야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동쪽 편 감람산에 올라서면 눈앞에 유대광야가 펼쳐집니다. 거기서부터 여리고까지 계속 내리막길이고 그 길 주변 전체가 유대광야입니다. 강도 만난 자가 쓰러진 곳도 광야입니다.


광야는 건강한 사람도 오래 있으면 일사병에 걸려 죽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강도를 만나 옷이 벗겨지고 얻어맞은 사람은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 자를 돌보지 않고 가 버렸는데 그들은 단지 불쌍한 사람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죽을 사람, 즉 생명을 외면한 것입니다. 그저 불쌍한 사람을 지나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을 외면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지리와 함께 예수님의 비유를 살펴보면 좋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유대광야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의미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후 40년을 광야에서 생활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마4:4)이라는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40년간 훈련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평지처럼 건너고 여리고 성을 파괴시켰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작은 규모의 아이 성을 얕잡아보고 인간의 수단을 부리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아 전쟁에 참패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광야에서 40일 금식을 하셨습니다. 그때 마귀가 나타나 “이 돌을 명해서 떡 덩어리가 되게 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시는 일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을 잘 이루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이루면 축복이요, 이루지 못하면 저주뿐입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있는 축복이 말씀으로 이루어지고 여러분에게 복이 더하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70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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