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1-11-25 07:25:10 ]
하나님이 분배해 준 땅 못 지키고
임의로 최북단 이동한 단 지파
결국 신상 세우고 우상숭배 하다
열두 지파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
‘헬몬산(Mount Hermon)’ 남쪽 기슭. ‘두로(Tyre)’에서 ‘다메섹(Damascus)’으로 가는 길 도중, 남북으로 갈라지는 지역에 ‘텔 단(Tell Dan)’이 있다. 텔 단으로 가려면 먼저 ‘요단강(Jordan River)’ 물 발원지를 찾아가야 한다.
텔 단은 이스라엘 북쪽 경계선이자 이스라엘 민족의 물 공급지로서 중요한 곳이다. 특히 텔 단은 북이스라엘의 중심지로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렴할 초기 단족의 부대가 정렴한 지역이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세운 금송아지 제단과 함께 패망하고 만다.
<사진설명> 텔 단 전경.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70㎞ 떨어진 곳이며 고립무원의 산악지대에 있던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 도시였다.
<사진설명> 단 지파가 처음 분배받은 땅과 이주한 지역. 지중해 연안의 비옥한 해안평야지대를 분배받았지만 이후 이곳을 끝까지 장악하지 못해 북쪽 산악지대로 이주했다. ‘헬몬산’ 남쪽 기슭. ‘두로’에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 가운데, 남북으로 갈라지는 지역에 ‘텔 단’이 있다.
<사진설명> 텔 단 인근에 있는, 여로보암왕이 만든 제단 유적. 북왕국 초대 왕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하지 못하게 가로막으면서 영토 최남단 ‘벧엘’과 최북단 ‘단’에 금송아지 제단을 세운다. 이는 결국 우상숭배의 올무가 되었다.
윤석전 목사: 단 지파의 성읍 단이 어떤 곳인지 궁급합니다.
홍순화 교수: 이스라엘 영토 가운데에는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중앙산악지대가 있습니다. 남쪽에서부터 시작된 산악지대가 ‘갈릴리(Galilee)’ 못 미친 곳에서 중단됩니다. 갈릴리 북쪽에서부터 다시 산악지대가 형성되는데, 단은 그 산악지대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70㎞ 떨어진 곳이며 고립무원의 산악지대에 있던 도시였습니다.
윤석전 목사: 단 지파가 북쪽 경계에 자리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홍순화 교수: 단 지파가 원래 분배받은 지역은 ‘욥바(Joppa)’ 부근의 평야지대였습니다.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 사이의 비옥한 곳입니다. 그러나 단 지파는 이 지역을 장악하지 못한 채 이스라엘의 땅이 아닌 북쪽으로 이동해 ‘라이스(Laish)’라고 하는 마을을 점령해 살게 됩니다. 마을을 점령한 후 ‘단’이라고 이름을 바꿔 버렸습니다.
단 지파가 옮겨 간 곳은 이스라엘 경계선 바깥에 있었기에 위험하고 고립된 곳입니다. 그러나 단 지파는 새로운 터전이 비옥하고 물이 풍부하다며 영토를 넓힌다는 의미에서 살던 곳을 떠난 듯합니다. 이스라엘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보기 드물게 물이 많이 나오고 폭포까지 있는 곳입니다.
윤석전 목사: 단 지파의 이동을 성경적 관점으로 볼 때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왕대일 교수: 단 지파의 이동에 대해 성경은 여호수아 19장 47절, 사사기 18장 등 두 군데에서 말하고 있는데,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하나님께 처음 분배받은 곳에 거하지 않고 자기들 생각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결정에 대해 성경은 아주 안 좋게 보고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보는 사례가 단에 가서 신상을 세운 일입니다. 또 드라빔을 세우고 자기들 임의대로 제사장도 세우게 됩니다. 역대상 7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각 지파를 소개하는데 단 지파가 빠져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보면 성경은 단 지파의 이동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생각해 볼 때 단 지파가 주어진 땅을 지키지 못하고 멀리 이동하면서 결국 신상을 쌓아 놓고 우상숭배 하다가 망하는 결과를 봅니다. 성경 속 단 지파의 사건 중 대표적인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왕대일 교수: 신상을 세우고 드라빔을 모시고 자기들 멋대로 제사장 세운 일을 말씀드렸고, 또 열왕기상 12장 30절을 보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분리되었을 때 북왕국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하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왕상12:28~29). 그러면서 예루살렘을 대체할 성소를 두 군데 세우는데 하나가 ‘벧엘(Bethel)’이고 다른 하나가 ‘단’입니다.
윤석전 목사: 단 지파에 일어난 사건 중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왕대일 교수: 성경은 “북왕국의 왕 여로보암이 금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다”며 “그것은 여로보암의 죄”(왕하10:29)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신앙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대체해 놓으려 한 욕심이나 헛된 야망입니다. 벧엘과 단에 여호와 하나님을 대체할 만한 우상을 세웠다는 사건은 이스라엘 왕국 신앙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우상으로 대체하려고 한 유혹의 올무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의 우리도 어쩌면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무엇으로 대체하려고 하는 잘못된 행동이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우리가 쌓아 놓고 있는 우상이 있다면 확실하게 파괴해 참된 신앙생활을 이어 가야 합니다.
윤석전 목사: ‘성화(聖畫)’라고 하는 예수님의 그림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성화를 방에 걸어 놓고 외출하면서 “예수님, 저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마치 그 그림 속에 예수님이 계신 것처럼 종교적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형상이든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어느 곳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자 하는 종교적 의식을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웠다고 하셨는데 그것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습니다.
왕대일 교수: 벧엘과 단에 세운 우상은 예루살렘성전과 대비됩니다. 예루살렘성전은 남왕국 유다의 성소였고, 벧엘과 단에 세운 성소는 북왕국 사람들을 위한 제단으로 만들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왕은 예루살렘성전과 무언가 차별화하기를 원했습니다. 예루살렘성전에는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지만 평신도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북왕국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확실한 차별주의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타고 다닐 수 있는 송아지를 보라며 송아지상을 세운 것입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우상의 올무가 되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단 지파는 하나님이 분배하신 땅을 임의대로 포기하고 이전해 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살았습니다. 결국 우상숭배 하면서 신상을 섬긴 단 지파는 현재 어디 갔는지 알 수도 없이 패망한 것을 보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움직일 때 아얄론 골짜기 사건처럼 자연 질서를 모순시켜 가면서까지 큰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단 지파의 사건을 돌아보면서 우리에게 큰 교훈과 메시지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72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