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01-25 13:58:54 ]
비옥한 갈릴리 지역 차지했으나
이스라엘 최북단에 위치한 탓에
앗수르에 점령당하는 비극 겪어
하솔, 가버나움 등이 주요 성읍
윤석전 목사: ‘납달리(Naphtali)’는 야곱의 여섯째 아들입니다. 야곱은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창49:21)라고 축복했습니다. 그 축복대로 납달리 지파는 암사슴처럼 매우 민첩하고 용맹했기에, 훗날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가나안 하솔의 왕 야빈(Jabin)을 물리치고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또 중동에서 가장 비옥한 땅 ‘갈릴리(Galilee)’ 일대를 차지했고,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납달리 지파의 성읍에서 가장 많은 이적을 보이시며 하나님이 보낸 사람임을 확실히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납달리 지파는 최첨단 전법을 구사하던 앗수르에게 점령당해 백성이 앗수르로 강제 이주를 당한 최초의 지파가 되기도 했습니다(왕하15:29). 축복과 불운을 함께 겪은 납달리 지파의 성읍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납달리 지파의 땅 갈릴리 부근에는 예수님과 관련한 성읍이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긴네렛(Kinnereth)’이다. 긴네렛에 있는 ‘배 박물관(Yigal Allon Museum)’에는 당시 고기잡이를 하던 배의 원형을 발견해 보관하고 있다. 긴네렛 북동쪽에는 ‘가버나움(Capernaum)’이 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수많은 이적을 베푸셨는데, 당시 베드로의 집터가 남아 있어 눈길을 끈다. 가버나움 북쪽에는 ‘고라신(Korazin)’이 있다. 이곳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 책망받은 곳이며, 당시의 회당이 지금도 남아 있다. 현재 이 지역에는 북부 갈릴리의 중심도시 ‘하솔(Hazor)’ 유적지가 발굴되고 있다.
<사진설명> 갈릴리의 남쪽 전경. 납달리 지파는 중동에서 가장 비옥한 땅인 ‘갈릴리’ 일대를 분배받았으나, 이스라엘 영토 최북단에 자리 잡은 탓에 앗수르에게 가장 먼저 침략받아 백성이 강제 이주당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사진설명>납달리 지파가 분배받은 땅. 이스라엘 영토 북쪽에서 중요한 곳이 ‘다볼산’인데, 다볼산은 납달리 지파, 스블론 지파, 잇사갈 지파 등 세 지파의 경계선에 있다. 납달리 지파 영토의 북쪽인 ‘훌라 호수’ 위로는 현재 레바논 영토이고 이스라엘과 잦은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사진설명> 납달리 지파 영토의 주요 지명들. 갈릴리를 중심으로 ‘고라신’, ‘가버나움’, ‘긴네렛’ 등이 해변가에 둘러서 자리하고 있다. ‘디베랴’는 현재 관광도시가 되었고, ‘하솔’은 가나안 정복 시 그 지역에서 중심이 되던 도시였다.
윤석전 목사: 야곱의 아들 납달리는 어떤 사람인지 소개해 주세요.
왕대일 교수: 야곱에게는 레아와 라헬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아내 레아가 아들 넷을 내리 낳자, 라헬은 마음이 아파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시녀 빌하로 하여금 야곱과 동침하게 했고, 빌하가 단과 납달리 두 아들을 연거푸 낳습니다. 라헬은 납달리를 얻은 후 “내가 경쟁하여 이겼다”(창30:8)고 말합니다. 납달리는 자식 없는 어머니의 한을 풀어 준 아들로 기억됩니다.
윤석전 목사: 자녀를 자기 생애의 전부로 알던 시대였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을 이루려는 소중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납달리 지파의 성장과 쇠락에서 야곱의 축복이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왕대일 교수: 야곱은 창세기 49장에서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라고 축복합니다. 하지만 납달리 지파가 역사에 남긴 흔적을 따라가 볼 때는 야곱이 남긴 축복보다 모세가 남긴 축복을 찾아보는 게 더 도움이 됩니다.
모세는 신명기 33장에서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방과 남방을 얻을찌로다”(신33:23)라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서방이라는 것은 아마 호수를 말하는 것 같고, 서쪽과 남쪽을 차지한다는 축복에서 납달리 지파가 비옥한 지역을 분배받고 성장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살펴보아도 납달리 지파가 뿌리내린 땅은 굉장히 비옥한 곳이었습니다. 납달리 지파는 오랫동안 분배받은 땅을 차지했으나, 주전 721년 앗수르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범하고자 왔을 때 ‘디글랏 빌레셀(Tiglath-Pileser)’왕에게 영토를 정복당합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제일 먼저 앗수르에게 땅을 빼앗기는 아픔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납달리 지파의 영토를 지도를 통해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이스라엘 북쪽 영토에서 중요한 곳은 ‘다볼산(Mount Tabor)’입니다. 다볼산은 납달리 지파, 스불론 지파, 잇사갈 지파 영토의 경계선이었습니다, 납달리 지파는 스불론·잇사갈 지파의 북쪽에 있었고 아셀 지파의 동쪽에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납달리 지파는 이스라엘 민족이 차지한 땅의 제일 북쪽을 분배받았습니다. 자연스레 앗수르 군대에게 제일 먼저 공격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습니다.
현재 ‘훌라 호수(Lake Hulah)’ 위쪽은 레바논 땅입니다. 성경에 보면 ‘벧아낫(Beth-anath)’과 ‘엔 하솔(En Hazor)’이 나오는데 지금의 레바논 땅입니다. 즉, 납달리 지파 영토의 북쪽은 오늘날 레바논 영토인데, 이스라엘이 납달리 지파가 분배받은 땅은 되찾지 못한 것입니다. 지난 2006년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전쟁을 벌였고 앞으로도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현재 납달리 지파의 땅은 위험한 분쟁 지역이 되었습니다. 제가 전쟁 직후 레바논 군부대에 특별허락을 받아 납달리 지파의 영토를 다녀왔는데 마을마다 폭탄 맞은 흔적이며 총알 자국들이 많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윤석전 목사: 납달리 지파 영토에 있는 성읍 중 하나님의 섭리와 의미가 깊은 성읍을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납달리 지파의 성읍에서 제일 유명한 곳은 가나안 정복 시 그 지역에서 중심이 되던 하솔을 들 수 있습니다. 하솔은 근방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에 자리 잡은 성읍이었고 훗날 납달리 지파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는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신 가버나움이 중요한 성읍입니다.
윤석전 목사: 현재 갈릴리와 성경 시대의 갈릴리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홍순화 교수: 요즘 갈릴리에 가 보신 분들은 뭔가 의아함을 느낍니다. 갈릴리에는 ‘디베랴(Tiberias)’라고 하는 관광도시 하나만 제대로 있고 그 주위에는 숙소 몇 곳만 있을 뿐 꼭 폐허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갈릴리 바다를 연구한 한 유대인의 연구에 따르면 최소한 어촌 열두 개가 갈릴리 바다에 있었습니다. 그분이 ‘엔 게브(Ein Gev)’에 세워 놓은 조그만 박물관에 가 보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갈릴리 바다를 보면 예수님 당시 모습을 연상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윤석전 목사: 납달리 지파의 성읍 중 예수님의 역사가 가장 많이 담긴 가버나움으로 가 보시겠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73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