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232·下)] 교만 탓에 무너진‘느보’

등록날짜 [ 2022-05-19 17:42:34 ]

르우벤 지파가 모압에 뺏은 ‘느보’

비옥하고 부유한 환경 탓에 교만 

죄악의 성읍은 결국 멸망해 버려

주님 앞에 겸손해야함 교훈 얻어



르우벤 지파의 영토 안에 있는 ‘느보산(Mount Nebo)’. 이곳에서 남동쪽으로 가면 르우벤 지파의 성읍 ‘느보(Nebo)’가 있다. 느보는 르우벤 지파가 모압 족속에게서 빼앗아 재건한 르우벤 지파의 성읍이다. 이곳에는 비잔틴 시대의 마을과 교회 네 곳 그리고 수준 높은 모자이크 작품이 지금도 남아 있어 당시의 비옥한 토양과 함께 풍요롭던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을 짐작케 한다.


<사진설명> 성읍 ‘느보’ 전경. 요르단 마다바주에 있는 ‘키르벳 무카야트’라는 마을을 르우벤 지파의 성읍 느보라고 추정한다. 느보산에서 남동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있고, 비스가봉이라 추정하는 ‘시야가’만큼 가나안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을 제공한다.


<사진설명> 비잔틴 시대의 교회 터. 옛날에도 성경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수도원이나 교회를 건축해 후대 사람들이 그 흔적들을 통해 성경 속 지명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사진설명> 느보 주변 지도.사해에서 북동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느보산이 있고, 느보산 자락에 성읍 느보가 있다.



윤석전 목사:  ‘느보산’이나 ‘느보’나 같은 곳이지 않겠느냐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성읍 느보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성지 순례를 가면 가장 많이 들르는 곳이 바로 느보산인데, 그 느보산에서 남동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느보가 있습니다. 느보산과 거의 같은 지역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해에서 북동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느보산이 있고, 느보산 자락에 성읍 느보가 있습니다. 성읍 느보는 해발 790m 정도 되는 봉우리에 있고, 현지어로 ‘키르벳 무카야트(Khirbet al-Mukhayyat)’라고 불립니다. ‘키르벳’이라는 단어는 고고학에서 ‘사람이 살던 폐허’나 ‘옛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이곳은 느보산 지역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 중 하나입니다.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은 ‘비스가’봉(峰)이라고 하는 모세기념교회가 있는 ‘시야가(Ras Siyagha)’이고, 성읍 느보가 있는 곳도 이에 못지않게 가나안 땅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입니다. 과거에는 이곳을 ‘비스가(Pisgah)산’(신34:1)이라고 추정했으나, 성읍 터가 발견되면서 성경에 나오는 느보 성읍으로 확정했습니다. 키르벳 무카야트 마을은 지금도 좋은 지역이지만,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성경 시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비옥해서 고산지대인데도 목초가 잘 자랐고 농경도 할 수 있었던 지역이라고 합니다.


성읍 느보가 있는 곳을 다녀 보면 믿음의 선배들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바로 비잔틴 시대의 믿음의 선배들입니다. 그분들은 그 옛날에도 성경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수도원이나 교회를 건축해, 후대의 사람들이 그 흔적들을 발견하고 성경 속 중요 지역을 찾아내도록 했습니다. 성읍 느보 인근에는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교회가 여러 곳 있고 오래 전에 제작된 모자이크도 간직하고 있어서 역사의 흔적을 느끼게 합니다.


<사진설명> 교회 바닥의 모자이크 작품. 성읍 느보가 있는 마을에는 교회 네 곳이 있고, 교회 바닥에 수준 높은 모자이크 작품도 남아 있어 당시의 풍요롭던 사람들의 삶을 짐작케 한다.



윤석전 목사: 성지 순례하는 분들을 위해 느보산과 느보를 정확하게 구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홍순화 교수: 저도 처음에는 느보산이나 느보나 비슷한 곳이리라 여겼으나, 성경을 더 연구하다 보니 ‘느보’는 완전히 다른 곳임을 발견했습니다. 느보산은 ‘산’을 말하는데 넓은 지역을 총칭해 이르는 것이고, 느보는 정확하게 ‘성읍’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디본(Dibon)’에서 발굴한 메사 석비에도 느보 성읍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서 모압에 대한 심판을 예언할 때 느보가 공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렇게 성읍 느보가 심판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천사무엘 교수: 느보라고 하는 도시는 “모압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한 이사야와 예레미야 선지자들의 심판 대상에 나옵니다.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루 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루 밤에 모압 길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 그들은 바잇과 디본 산당에 올라가서 울며 모압은 느보와 메드바를 위하여 통곡하도다”(사25:1~2). “모압이 패하여 수치를 받나니 너희는 곡하며 부르짖으며 아르논 가에서 이르기를 모압이 황무하였다 할찌어다 심판이 평지에 임하였나니 곧 홀론과 야사와 메바앗과 디본과 느보와…”(렘48:20~22).


두 예언자가 멸망의 이유로 지적하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죄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모압은 땅이 기름지고 가축을 키워서 대단히 부유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교만했습니다. 부자가 되면 쉽게 마음에 교만이 생겨나는 것처럼 이들 역시 그랬습니다. 자기들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으나 결국에는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 탓이라고 두 예언자 모두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에도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4:6)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인류는 하나님 앞에 교만한 탓에 하나님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겸손함 덕에 하나님에게 사랑받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압의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천사무엘 교수: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겸손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도 하나님 앞에 겸손할 것을 가르쳐 왔습니다. 겸손은 남을 존중해 주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해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섬김을 행할 수 있습니다.


겸손의 반대가 교만입니다. 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남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또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회개할 줄 모르고 반성할 줄 모르는 것을 교만이라고 합니다. 부자였던 모압이 교만하다는 것은 주변 국가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을 과대 포장해서 높이 평가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죄악된 모습이었고,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결국 심판의 길로 걸어가도록 하셨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도 잘살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도 대단히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풍요로운 여건에서 교만할 것이 아니라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말아야 하고, 잘사는 성도들은 형편이 어려운 성도들을, 또 믿음이 큰 사람들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오늘 느보에 대한 메시지가 개인과 교회에 좋은 교훈을 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4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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