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05-28 00:52:56 ]
아모리 왕 시혼이 수도 삼을 만큼
전략적 요지이자 풍요로운 지역
르우벤과 갓 지파 경계에 위치해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하던 도시
윤석전 목사: 르우벤 지파의 성읍 ‘헤스본(Heshbon)’은 고대 아모리(Amorite) 왕 시혼(Sihon)이 수도로 삼은 도시였습니다. 이곳은 전략적·경제적인 면에서 매우 풍요로운 곳이었으나, 예레미야와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에게 징계받을 성읍 중 한 곳으로 헤스본을 지적했습니다(렘48:2, 사15:4). 외관이 화려하고 경제가 부강했는데도 그 종말은 비극적이었던 르우벤 지파의 성읍 헤스본으로 가 보시겠습니다.
르우벤 지파의 성읍 헤스본에 가려면 모압 평지를 지나야 한다. 이 모압 평지를 지나 ‘느보산(Mount Nebo)’에서 북동쪽으로 6km를 달리면 현재 요르단의 중요 도시 헤스본이 나온다. 구약 시대 헤스본은 ‘왕의 대로(King’s Highway)’를 지나가는 성읍이었고, 아모리 왕 시혼이 다스리던 도읍지이기도 했다.
헤스본은 현재 요르단에 있는 해발 895m 고지의 ‘텔 히스반(Tell Hisban)’이었으리라 추정한다. 텔 히스반에는 초기 청동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의 주거지로 수로, 저수조 등이 남아 있다. 또 헬라 시대와 로마 시대의 주거지와 신전이 있으며, 비잔틴 시대의 교회 유적지도 남아 있다.
<사진설명> 르우벤 지파의 성읍 헤스본 전경. 헤스본은 르우벤 지파 영토의 북쪽 경계였고, 아모리 왕 시혼이 다스리던 도읍지이기도 했다. 헤스본은 요르단에 있는 해발 895m ‘텔 히스반(Tell Hisban)’일 것으로 추정하고, 이곳에는 헬라 시대와 로마 시대의 주거지와 신전, 비잔틴 시대의 교회 유적지 등이 남아 있다.
<사진설명> 헤스본 주변 지도. 르우벤 지파는 남쪽 경계인 ‘아르논강’에서 북쪽 경계인 헤스본까지 영토를 차지했다. 헤스본은 요단강 하류에서 동쪽으로 25km 떨어져 있고 느보산에서 북동쪽으로 6km 떨어져 있다. ‘아르논강’에서부터 북쪽으로 40km 떨어져 있다.
<사진설명> 텔 히스반에 있는 유적지.
윤석전 목사: 르우벤 지파의 성읍 헤스본은 어떤 곳인지 설명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성서의 땅 제일 서쪽에 지중해가 있고, 이스라엘 민족의 지파들이 살고 있던 땅에서 더 동편으로 오면 요르단이 있습니다. 헤스본은 현재 요르단에 속해 있습니다.
헤스본은 성지순례 가는 이들이 많이 들르는 느보산에서 북동쪽으로 6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르우벤 지파의 남쪽 경계선 ‘아르논강(Arnon River)’에서부터 북쪽으로 40km 떨어져 있고, 현 요르단의 수도 ‘암만(Amman)’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한글 번역으로는 헤스본이라고 하지만 본토에서는 ‘텔 히스반’이라고 부릅니다. 이 헤스본은 성경에 37회나 나올 정도로 중요한 도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지나다니던 대로(大路) 옆에 있으며 그 지역에서 요지인 해발 895m 언덕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헤스본은 이곳을 차지한 나라마다 수도로 삼을 만큼 성경 시대부터 비잔틴 시대까지 매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비잔틴 시대에는 이곳을 중요하게 여겨 교회까지 세워 놓았습니다.
윤석전 목사: 헤스본은 아모리 왕 시혼이 도읍지로 삼은 곳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아모리 족속은 어떤 족속이고 그들은 어떤 신을 숭배했는지 말씀해 주세요.
천사무엘 교수: 함무라비 법전을 만든 함무라비가 바로 아모리족입니다. 함무라비는 바빌로니아 제1왕조 제6대 왕으로서 바빌로니아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제국으로 키운 왕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아모리족은 가나안 족속 전체를 가리키기도 하고, ‘요단강(Jordan River)’ 동편에 살던 특정 민족을 지칭할 때도 사용했습니다. 아모리족은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한 후 서쪽으로 이동해 이스라엘 백성이 오기 전부터 가나안 땅에 살던 유목민이었고 대단히 호전적이고 전쟁을 좋아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신교로 달신을 섬겼는데, 남성 신과 여성 신을 나눠서 섬겼습니다. ‘아무르’라고 하는 남성 신은 ‘바알’과 연관이 있고, ‘아슈다툼’이라고 하는 여성 신은 ‘아세라’와 연관이 있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 탓에 가나안 족속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구약성경을 보면 아모리족은 이스라엘과 좋은 사이가 아니었는데 이것에 관해서도 설명해 주세요.
천사무엘 교수: 족장 시대를 살펴 보면 아모리족이 가나안 땅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 아모리족이 많이 살고 있었고 가나안 땅에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 동편 지역을 지나가려고 했을 때 아모리족이 길을 내주지 않아 그들과 싸워 이스라엘이 승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때 헤스본 왕(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Bashan) 왕 옥(Og) 등이 등장합니다.
또 요단강을 건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 죽여 다섯 나무에 매어 달고…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리어 그들의 숨었던 굴에 들여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수10:26~27)라며 아모리족 다섯 왕을 처형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당시 아모리족이 완전히 멸절된 것은 아니었고, 사무엘 시대를 보면 사무엘이 아모리족과 평화조약을 맺었다는 기록이 간단하게 언급됩니다(삼상7:14). 그때까지도 아모리족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준 백성임은 틀림이 없는 듯합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가 헤스본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경쟁을 벌인 이유도 알려 주세요.
천사무엘 교수: 헤스본은 르우벤 지파 영토와 갓 지파 영토의 경계에 있었습니다. 아모리 왕 시혼이 헤스본을 수도로 삼을 만큼 전략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였기에 두 지파가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을 벌인 것입니다. 아가서에도 사랑하는 이의 “눈(目)이 헤스본 ‘바드랍빔 문(Gate of Bath-rabbim)’ 곁의 연못 같다”(아7:4)라고 비유하는데, 구약 시대의 헤스본에 대단히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지파의 분쟁을 해결하려고 한 것인지 몰라도 헤스본은 결국 레위 지파에게 주어집니다. 제사장 지파인 레위 지파에게 줌으로써 분쟁을 해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아모리 왕 시혼은 어떤 인물인가요?
홍순화 교수: 시혼은 아모리 왕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헤스본 왕이라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모리가 그 당시에 헤스본을 수도로 삼았기 때문에 같은 인물입니다. 시혼은 큰 실수를 저질러 성경에 부끄러운 기록을 남긴 인물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아모리 영토를 지나가기 위해 길만 열어 달라고 했는데 그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에돔(Edom)’ 족속에게도 부탁했으나 역시 거절당했습니다(민20:18). 에서의 자손인 에돔과 달리 아모리는 공격할 수 있는 이방 족속이었기에 모세의 군대가 아모리족을 공격해 시혼은 죽임을 당하고 그의 나라도 이스라엘 차지가 되었습니다(민21:35). 왕으로서 잘못 판단한 탓에 자신과 국가를 멸망시킨 어리석은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르우벤 지파의 또 다른 성읍들로 가 보려고 합니다. 바로 ‘메드바(Medeba)’와 ‘바못(Bamoth)’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75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