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241·上)] 사울왕이 최후 맞은‘벧산’

등록날짜 [ 2022-10-06 01:00:14 ]

블레셋과 전투에서 패하며

사울왕 비참한 최후 맞고

‘벧산’ 성벽에 시신이 걸려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로

자신도 적에게 조롱당하고

하나님도 욕보이게 만들어         




윤석전 목사: 사울은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던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습니다. 블레셋과 벌인 전투에서 그는 비참한 죽음으로 최후를 맞았고,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신을 성벽에 달아 놓고 만인이 보도록 조롱했습니다. 또 사울의 목을 그들이 섬기던 다곤 신의 묘에, 겉옷은 아스다롯의 집(신당)에 두었습니다. 이것은 블레셋이 섬기는 신이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이겼다고 하는 방자한 행동이 됐습니다. 하나님에게 불순종한 탓에 자신은 물론이고 하나님까지 모욕받게 한 것입니다. 사울의 마지막 전투장이 바로 므낫세 지파의 성읍 ‘벧산(Beth Shan)’입니다. 벧산으로 가 보시겠습니다.


므낫세 지파의 성읍 벧산에 가려면 먼저 요단강(Jordan River)을 지나야 한다. 총 길이가 320km인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긴 요단강에 대한 기사가 많다. 신약 시대에 침례 요한이 활동한 이 강에서 예수님도 침례를 받으셨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많은 이가 침례를 받기 위해 요단강을 찾고 있다.


요단강에서 서쪽으로 4km를 달리면 ‘텔 벧산(Tel Beth Shan)’이 나온다. 이곳은 신약 시대 요단 동쪽의 데가볼리(Decapolis)에 속한 도시였다. 그 때문에 지금도 고대 로마의 여러 유적들이 남아 있다. 또 구약시대 블레셋과의 전쟁 후 자살한 사울왕의 시신이 이곳 성벽에 전리품으로 걸린 일도 있었다. 사울왕의 비참한 최후가 담긴 곳이 바로 벧산이다.


<사진설명> 므낫세 지파 성읍인 ‘텔 벳산’ 전경. 블레셋과 벌인 전투에서 패배한 사울왕은 비참한 죽음으로 최후를 맞았고,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신을 성벽에 달아 놓고 조롱했다. 하나님에게 불순종한 탓에 자신은 물론이고 하나님까지 모욕받게 한 안타까운 일이었다.


<사진설명> 텔 벳산에 있는 로마 유적. 텔 벧산은 신약 시대 요단 동쪽의 데가볼리에 속한 도시였기 때문에 지금도 고대 로마의 여러 유적이 남아 있다.



<사진설명> 벳산 주변 지도. 벧산은 갈릴리에서 남쪽으로 2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고, 요단강에서 서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주변에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옥한 이스르엘 골짜기와 하롯 샘 등이 있을 만큼 물이 풍부하고 비옥한 곳이다.



윤석전 목사: 므낫세 지파의 성읍 벧산이 어떤 곳인지 지도를 통해 설명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벧산은 갈릴리(Galilee)에서 남쪽으로 2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요단강에서 서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들어갈 때 통과하는 국경 지역이기도 합니다.


벧산이 있는 지역은 원래 잇사갈 지파의 땅이었는데 훗날 므낫세(서편) 지파에게 주어졌고, 주변에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옥한 이스르엘 골짜기(Jezreel Valley)와 하롯 샘(Harod Spring), 하롯 골짜기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은 굉장히 물이 풍부하고 우리나라 못지않을 만큼 비옥한 곳입니다. 벧산 역시 물도 많고 비옥할 뿐 아니라 요르단 땅의 ‘길르앗 라못(Ramoth Gilead)’으로 가는 중요한 도로가 지나가던 성읍입니다.


윤석전 목사: 벧산에서 일어난 성경 속 사건들을 설명해 주세요.


김윤희 교수: 벧산은 사울왕의 시신이 달렸던 곳입니다. 사실 벧산은 므낫세 지파에 주어진 땅이지만 블레셋에게서 빼앗지 못해 블레셋 사람들이 그곳에 거하게 됩니다. 사울왕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한 후 명예롭게 죽겠다며 자살을 선택합니다. 대개 왕이 죽으면 그 시신을 보존하려고 하는데, 왕과 그 아들들의 시신까지 다 버려 두고 갔을 정도로 이스라엘이 참패를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이 죽은 다음 날 블레셋 군사들이 ‘길보아산(Mount Gilboa)’에 가 보니까 왕의 시신이 그대로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조롱할 기회이기에 왕과 아들들의 시신을 거둬서 벧산의 성벽에 전리품으로 매달아 놓습니다. 굉장히 비참한 말로를 맞은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사울왕에게 주신 소명은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라”(삼상28:19). 그런데 그 소명을 다하지 못하고 블레셋에게 죽임을 당해 인생을 마감합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가장 후회되고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블레셋을 쳐부수고 이스라엘 민족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데, 사울왕이 그 섭리를 이루지 못하고 그 섭리 앞에서 죽는 모습을 보면서 섭리를 이룰 만한 자격을 하나님 앞에 상실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벧산 성벽에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신을 걸어 놓은 것은 전리품이라는 목적 외에 다른 의미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김윤희 교수: 먼저 성벽에 목 없는 시신을 걸어 둔 것은 전리품이라는 목적 때문입니다. 왕의 시체를 성벽에 걸어 놓으면서 구경거리로 삼고 승리를 자축하기 위함입니다.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욕감을 주고, 우리를 대적하면 험한 꼴을 당한다는 협박과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또 블레셋이 섬기는 신이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이겼다고 하는 것을 알리려는 더 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한 나라가 전쟁에 승리했다는 것은 다른 나라가 섬기는 신의 패배가 됩니다. 사무엘상 31장 9~10절을 보면 사울의 목은 다곤 신의 묘에 던져 놓고, 그 갑옷은 벗겨서 아스다롯의 집(신당)에 두었다고 나옵니다. 아스다롯은 농사의 여신이자 바알 신의 아내입니다. 그런 여신의 묘에 던져 놓고 벌거벗겨 놓았다는 것은 신에게 일종의 감사 표현으로 시신을 헌물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나 여호와께 안타까움을 안겨 준 사건이 사울왕의 죽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 시대 도로와 지금의 도로들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홍순화 교수: 현재도 이스라엘에서는 성경 시대의 도로를 거의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지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기본 코스는 비슷하나 새롭게 만들어진 도로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걷거나 동물을 타고 다녔지만, 지금은 도로 공법이 발달하고 자동차로 이동하기 때문에 성경 시대의 도로 부근에 새 도로를 만들기도 합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성경 시대 도로의 위나 그 부근으로 새 도로를 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동 수단이 달라진 탓에 사용하지 않는 길도 있고, 성경 시대 당시 번성한 도시가 쇠락한 탓에 현재는 없어진 도로도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울왕이 블레셋에게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하나님까지 이방신에게 모욕받게 한 까닭은 결국 하나님이 그를 버려야 할 상황에 이를 만큼 하나님이 보실 때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신을 이겼다고 말할 때, 하나님의 섭리와 의미가 많이 다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이해할 때 이런 부분은 더 잘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므낫세 지파의 또 다른 성읍 ‘도단(Dothan)’으로 가 보겠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76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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