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245·上)] 북이스라엘의 수도‘사마리아’

등록날짜 [ 2022-12-26 19:02:30 ]

오므리왕이 ‘사마리아 산’ 사서

성곽을 짓고 새로운 수도 삼아

이후 우상숭배 본거지 된 탓에

하나님이 ‘진노의 막대기’ 들어

앗시리아에 비참하게 멸망당해



윤석전 목사: 아합왕 당시 북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Samaria)’였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사마리아에 대해 “들판의 폐허처럼 만들리라” 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습니다(미1:1~7). 이는 당시 사마리아가 우상숭배의 본거지가 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마리아는 앗수르에게 공격받아 멸망했고, 사마리아인은 신약 시대까지 유대인들에게 개 취급을 받으면서 비운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므낫세 지파의 성읍 사마리아로 가 보겠습니다.


세겜(Shechem)에서 북서쪽으로 약 12㎞ 떨어진 곳에 있는 교통의 요지 사마리아. 북이스라엘의 6대 왕인 오므리(Omri)는 사마리아를 북이스라엘의 새로운 수도로 세웠다. 이후 로마가 사마리아를 파괴했으나, 기원전 30년 헤롯 대왕이 세운 신전, 야외극장, 탑 등은 지금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구약 시대에 사마리아는 앗수르에게 지배를 받았는데, 당시 사마리아 주민들은 추방에서 벗어나려고 그들과 혈통적으로 혼합되었다. 그 탓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같은 민족으로 인정하지 않게 되었고, 그 후 사마리아에 바알 신당이 세워져 이방 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진설명> 사마리아 폐허 근처의 언덕.  미가 선지자가 사마리아에 대해 “들판의 폐허처럼 만들리라”고 예언한 것처럼 우상숭배의 본거지가 된 사마리아는 앗수르에게 공격받아 멸망했고, 이후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에게 같은 민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사마리아 역시 비운의 도시가 되었다.


<사진설명> 오므리 왕조가 지은 사마리아의 궁전 유적. 북이스라엘의 6대 왕인 오므리는 사마리아를 북이스라엘의 새로운 수도로 세웠다. 



<사진설명> 사마리아 주변 지도. 북이스라엘의 수도는 세겜이었다가 디르사로 옮겨졌다. 이후 오므리왕 때 그가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고 거대한 성을 건축했다.



윤석전 목사: 므낫세 지파의 성읍인 사마리아는 어떤 곳인지 설명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이스라엘 땅의 서쪽에는 지중해가 있고 지중해를 따라 해안 평야지대가 남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해안에서 동쪽 내륙으로 들어오면 산악지대가 시작되는데 이곳을 중앙산악지대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동쪽으로 더 가면 요단강(Jordan River)이 지나가는, 지중해보다 더 깊이가 낮은 요단계곡, 일명 요단 지구대가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국토의 정중앙에 있습니다. 거리를 재 보면 사마리아에서 서쪽의 지중해까지 약 32km이고, 사마리아에서 동쪽의 요단강까지 약 35km입니다. 또 사마리아는 도단(Dothan)에서 남쪽으로 12km 정도 떨어져 있고 세겜과도 가까이에 있습니다.


사마리아에 가 보면 한 나라의 수도가 될 만한 곳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사마리아 가까이에 중요한 도로와 조그마한 산들이 있고, 그중 요새처럼 제일 높은 곳을 수도로 삼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현재 ‘세바스티아(Sebastia)’라고 부르며, 알렉산더가 공격할 정도로 아주 중요한 성읍이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였고, 예루살렘(Jerusalem)은 남유다의 수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분리되었는데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려 주세요.


김윤희 교수: 왕국이 분열된 원인은 솔로몬왕에게 있습니다. 솔로몬이 우상숭배를 한 탓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선대 왕인 다윗 덕분에 솔로몬이 살아남지만 솔로몬의 아들 대부터는 왕국이 분열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유다 지파’ 하나만 차지하고, 나머지 지파들은 북이스라엘을 형성합니다. 솔로몬왕 때 건축 담당자이던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사마리아는 처음부터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아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는 세겜에서 디르사(Tirzah)로 옮겨졌다가 오므리왕 때 그가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고 거대한 성을 건축했습니다. 이후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100년 동안 정치·군사·종교·외교 중심지가 되었고, 우상숭배의 본거지가 되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점은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지배하면서 사마리아도 멸망합니다. 이어 앗수르는 식민지에 있던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키고 또 사마리아인들을 자기의 식민지로 이동시키면서 흩어 버려 자연스럽게 사마리아인들은 혼혈족이 되어 버립니다.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저희가 사마리아를 차지하여 그 여러 성읍에 거하니라”(왕하17:24). 그 결과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혼혈족이라며 무시당하게 되고, 느헤미야 때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도와준다고 하지만 그마저도 거절당합니다.


이후 헤롯 대왕 때는 로마 황제 아구스투스(Augustus)의 이름을 따서 헬라어 표기로 도시 이름을 ‘세바스티아’라고 바꿉니다. 사마리아인들은 혼혈족, 또 이교도나 분파주의자로 취급받았고, 그들의 사는 곳도 사마리아 지방이라고 부르면서 철저히 무시받는 장소가 됩니다.


윤석전 목사: 사마리아를 비롯해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앗수르에게 침략을 받아 불행한 사건을 많이 겪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앗수르에게 비참하리만큼 당한 것인데,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면 무엇일지 궁급합니다.


김윤희 교수: 이사야서 10장 5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진노의 막대기’로 사용하신 것은 단순히 정치적·군사적 이유가 아니라 영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서 앗수르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국제 정치에 관여하시고 그 안에 섭리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를 단순히 심판의 도구로만 사용하고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 10장 12절에서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하신 것처럼 앗수르도 교만한 탓에 하나님께 심판받을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이런 점을 보면, 한 국가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성도들이 대한민국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고, 도덕적인 국가가 되도록 기도하고, 국격 있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주신 복에 감사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사마리아라는 지명은 어떻게 지어졌는지 알려 주세요.


김윤희 교수: 북이스라엘의 오므리왕이 세멜(Shemer)이라는 사람에게 은 두 달란트를 주고 사마리아산을 삽니다. “저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 이름을 그 산 주인이 되었던 세멜의 이름을 좇아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왕상16:24). 산 위에 성읍을 건축한 후 세멜의 이름을 따서 성 이름을 짓고, 이후 히브리어 ‘세멜’이 헬라어와 라틴어로 표기되면서 사마리아로 변천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마리아가 멸망하기까지를 지켜보면서 우리나라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셔야 함을 뜨겁게 느낍니다. 1000번 넘게 외침을 받으면서 우리나라가 오늘까지 이어져 온 것은 우리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어떤 사명과 소명 속에서 역사하고 싶으신 뜻이 있다고 봅니다. 그 뜻을 우리가 잘 찾아 겸손하게 사용당한다면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보호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므낫세 지파의 또 다른 성읍 다아낙(Taanach)으로 가 보겠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780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