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오시는 대로(大路) < 7·上>] 이삭의 믿음

등록날짜 [ 2024-07-24 11:20:27 ]

이삭은 죽임당해 번제물이 될지라도

‘하나님께 순종의 제물 되리라’ 작정

이는 아버지의 신앙을 보고 자라며

절대 순종하는 믿음을 지녔기 때문



▶윤석전 목사: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이어 그의 아들 이삭에게도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신다”라고 언약하셨습니다(창26:24). 그리고 많은 복을 주시면서 그가 거부(巨富)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우물을 팔 때마다 그 지역 사람들이 시기하고 욕심을 부려 항상 우물을 빼앗겼습니다. 그런데도 이삭은 그들과 다투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우물을 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의 삶에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실지 귀 기울여 들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삭은 번제물이 되는 줄도 모른 채 아버지 아브라함을 따라 하나님께서 번제 제단으로 명령하신 모리아산(Mount Moriah)으로 떠났다. 브엘세바(Beersheba)에서 출발한 이삭이 아브라함과 함께 산길을 걸어 도착한 곳은 현재의 예루살렘(Jerusalem) 성전산이다. 당시의 성전은 허물어졌고 현재는 안타깝게도 모스크가 자리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이삭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선택되었고 예수가 오시는 대로가 열리기 시작했다.


<사진설명>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모리아산(성전산) 전경.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 그대로 행한 번제 바위를 중심으로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고, 현재 예루살렘 성전산에는 모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사진설명>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영토. 이스라엘의 영토를 말할 때 흔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라고 말하며,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85km 지점에 있는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리아산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윤석전 목사: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이삭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축복받은 사람일 듯한데, 그가 처음 겪은 시련은 아마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바쳐질 상황에 놓인 일일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요 아픔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삭과 모리아산 사건에 관해 말씀해 주세요.


▶권혁승 교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번성케 하고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있어 이 두 가지 약속 모두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먼저 자식을 낳지 못하는 불임인 아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얻은 이삭을 하나님께서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 제물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모순된 말씀처럼 보입니다. 번성한 민족을 이뤄야 할 이삭을 제물로 바친다면 그 약속의 통로가 끊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생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생명을 거둬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생사관의 신앙고백일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라고 한 사건과 관련해 히브리서 11장 19절에는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을 믿는 부활 신앙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이삭이 번제물로 드려질 당시 아브라함과 이삭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아브라함이 젊은 이삭을 혼자서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삭이 아버지를 밀쳐 버리고 도망갈 수도 있었으나, 아버지 아브라함의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순종한 이삭의 절대 순종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 가정의 신앙 교육이 결실을 맺은 순간입니다. 자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키웠기에 아브라함이 제물을 드리려고 할 때 이삭도 믿음으로 순종하며 받아들였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빌립보서 2장 6~7절을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삭의 모리아산 번제 사건처럼 우리 주님도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류를 속죄할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또 이삭이 제단에서 풀려난 것처럼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지만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이는 그가 의로우시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면 제단을 쌓을 나무가 필요하고 번제에 사용할 불과 칼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리아산 중턱에 이를 때까지 아들 이삭은 자신이 제물인 줄도 모른 채 “아버지 여기 불도 있고 칼도 있는데 제물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께서 준비하셨다”라며 ‘여호와 이레’라고 말하는데 그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모리아산의 산길은 인간적으로 볼 때 지구상의 부자에게 일어난 가장 고통스러운 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브엘세바부터 모리아산에 이르기까지 여정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홍순화 교수: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의 최남단 중심지였고, 아브라함과 이삭은 모리아산이 있는 좀 더 북쪽의 예루살렘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브엘세바는 해발 300m 지점이고 예루살렘은 해발 700m 부근입니다. 브엘세바와 예루살렘 사이의 헤브론(Hebron)을 지나야 하는데 헤브론도 해발 900m 지점에 있는 산지입니다. 훗날 이 지역을 유다산지라고 합니다.


또 브엘세바에서 헤브론까지 약 30km 거리이고, 헤브론에서 예루살렘까지 약 30km 거리입니다. 그러므로 산등성이를 계속 지나는 길을 대략 70km 걸어야 하니 꽤 험한 여정입니다. 훗날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 같은 이들이 지나갔기 때문에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을 거쳐 벧엘(Bethel)과 세겜(Shechem)까지 올라가는 산등성이 길을 ‘족장들의 길’이라고 명명했습니다.


특히 브엘세바는 교통의 요지이며, 브엘세바 남쪽에 있는 수르광야(Wilderness of Shur)는 이집트로 향하는 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집트에서 오는 길이 수르광야를 거쳐 브엘세바까지 이어지고, 이 길이 예루살렘과 세겜을 거쳐 해변길이나 요단계곡 길로 이어집니다.



<사진설명> 오늘날 족장들의 길 모습.



▶윤석전 목사:  족장들의 길’이라고 하셨는데, 인류 역사의 참 족장이신 한 분은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을 만들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삭의 믿음이 좋았다고 하지만 자신이 제물로 바쳐질 것을 깨달은 후 아버지에게 큰 상처를 받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권혁승 교수: 상처라고 하는 것은 수용성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과 여건에서도 그것을 믿음으로 잘 받아들이면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반면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더라도 일말의 어려움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상처받게 되는 것입니다. 상처란 환경이 좋냐 나쁘냐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삭은 어떤 상황도 수용할 수 있는 순종의 자세와 수용의 자세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헬라적 사고’와 ‘히브리적 사고’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헬라적 사고는 인간 중심적 사고이며 내가 중심이 되는 사고입니다. 히브리적 사고는 하나님에게 초점을 두는 신앙적 사고입니다. 이삭이 헬라적 사고를 했다면 그는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아버지에 대한 깊은 상처로 평생 우울증에 고통받았을 것이나, 하나님 중심의 히브리적 사고를 가졌기에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며 상처가 아닌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85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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