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오시는 대로(大路) < 7·中 >] 이삭의 믿음

등록날짜 [ 2024-09-09 00:32:51 ]

이삭은 죽임당해 번제물이 될지라도

‘하나님께 순종의 제물 되리라’ 작정

이는 예수께서 인류의 대속물로 오신

죄 사함의 구속 사역 예표하고 있어



아브라함과 이삭의 삶이 깃들어 있는 브엘세바(Beersheba)에는 이삭 시대의 것으로 여겨지는 우물이 있다. 아브라함이 먹던 우물, 이삭이 먹던 우물 그리고 그 후에 사람들이 먹던 우물. 양이 먹던 우물과 농사를 지을 때 썼던 우물. 이 우물은 이스라엘의 생명이었다. 그 당시 우물이 많고 적음에 따라 더 많은 농지를 적셔 수확을 풍성히 거둘 수 있었고 우물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부자냐 가난하냐가 결정되었다. 이삭이 부자였다는 말은 우물이 많았다는 것이다. 브엘세바 지명이 ‘우물 일곱 개가 넘쳤다’는 뜻을 담고 있으므로 이 지역에 평야를 충분히 적실만큼 풍성한 우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설명>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모리아산(성전산) 전경.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 그대로 행한 번제 바위를 중심으로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고, 현재 예루살렘 성전산에는 모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사진설명> 브엘세바에 있는 고대 우물 유적.



<사진설명>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영토.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85km 지점에 있는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리아산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께서는 브엘세바에서 북동쪽으로 약 85km나 떨어진 모리아산(Mount Moriah)까지 가서 번제를 드리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리아산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홍순화 교수: 모리아산은 성경에 두 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번제 때 나오고, 이후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등장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어쩌면 이렇게 지명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지 감탄하게 됩니다. 역대하 3장 1절에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성전을 지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모리아산이 성전산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번제를 드리러 도착한 곳이 모리아산이며, 솔로몬 성전이 있던 성전산 자리에 스룹바벨 성전과 헤롯 성전이 있다가 이후 아랍 사람들이 황금 돔 사원을 세워 놓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성전산을 보면서 역사의 신비를 느낀다고 하는데 저는 장소의 신비를 느낍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리아산이,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성전산이라고 정확하게 기록된 것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윤석전 목사: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속죄의 은총을 주신 후 그분이 우리 안에 직접 계셔서 우리 자신이 성전이 되었다는 아름다운 축복의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통해 미리 보게 됩니다. 모리아산 사건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예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권혁승 교수: 솔로몬이 모리아산에 성전을 지었다고 할 때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죗값을 해결해 주시고자 번제물이 되셨다는 것과 관련해 그 의미와 그 장소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나, 이 땅에 오셔서 30년을 사신 것이나, 최후에 골고다 언덕에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나 모두가 하나님 말씀을 이루기 위한 순종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삭의 순종 또한 의미가 있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고 한 것에는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 부활 신앙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우리가 그 뒤를 이어 예수님의 부활의 열매가 될 텐데 그런 부활 신앙이라는 관점에서도 예수님의 예표가 그 안에 담겨 있다고 봅니다.


▶윤석전 목사: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라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는데(마16:25) 이처럼 하나님 말씀에 나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고 살아갈 때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기에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그 생명은 끊어지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에는 이삭에 대한 내용이 짧게 나오는데, 이삭의 성품이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권혁승 교수: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이삭의 생애를 기록한 내용이 제일 적습니다. 그것은 이삭의 성품이 그만큼 온화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브라함이나 야곱을 보면 실수가 많지 않습니까? 실수가 사건을 만들다 보니 그 사건을 기록할 수밖에 없는데, 이삭은 실수가 적은 인물이어서 기록할 내용이 많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삭의 성품과 신앙을 두 가지로 소개할 수 있는데 하나는 평화주의자였습니다. 그가 우물을 두 번이나 파는데 주변 사람들이 우물을 자기 것이라며 억지주장을 펼칩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자기가 판 우물을 넘겨줍니다. 그 당시에 우물 하나를 판다고 하는 것은 오늘날 큰 회사를 하나 차린 것과 마찬가지인데도 그냥 넘겨줍니다. 그렇게 해서 세 번째 우물을 파자 더는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 평화주의자로서 승리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삭은 다른 사람들과 다툼을 벌이지 않는 평화주의자였습니다.


또 하나는 기도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 역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데 이삭이 기도해서 리브가의 태가 열립니다. 이삭은 평화주의자이면서 하나님과 사이에서 깊은 기도를 드렸다는 것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그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삭이 40세가 넘도록 아버지 품에 있다가 나이 들어서 결혼하는 모습을 보면 그만큼 그는 자의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입에서 나오는 말씀과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려는 모습을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구하려고 자신의 종들을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보냅니다. 가나안 지역이 아닌 자신의 친족 중에서 며느리를 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 종이 도착한 곳이 나홀(Nahor)입니다. 나홀은 어떤 성이기에 리브가가 그곳에 있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나홀의 성(Town of Nahor)’이라는 말은 지명이라기보다는 나홀이 사는 성이었다고 보는 게 정확할 듯합니다. 방금 말씀하신 메소포타미아도 성경에는 메소보다미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역시 메소포타미아 지방이라고 하는 넓은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메소포타미아는 ‘동방 사람의 땅’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동방 사람의 땅’은 어떤 지명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에서 보면 동쪽에 있는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밧단 아람(Paddan Aram)이라고도 하지만 결국 하란(Haran) 부근에 있습니다. 밧단 아람에 사는 이들이 아람 족속입니다. 그리고 아시는 대로 나홀은 아브라함의 형제이며 아브라함은 자기 친척들이 사는 곳으로 종들을 보냈습니다. 즉 나홀의 성은 우리가 잘 아는 지금의 튀르키예, 시리아 국경 가까이에 있는 하란 부근에 있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데리고 온 곳이 나홀이며, 리브가가 생산을 해야 예수님의 족보가 이어지고 대를 이어 갑니다. 예수님의 족보 속에서 예수님의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 것처럼 예수님이 어떤 발자국을 통해 어떤 모습으로 오시느냐를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계속>



<사진설명> 하란에 있는 성벽 유적. 아브라함은 하란 부근의 나홀의 성으로 종을 보내 아들 이삭의 아내를 찾으려고 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6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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