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오시는 대로(大路)<19·上>] 다윗, 이스라엘 왕이 되다

등록날짜 [ 2025-10-22 10:38:32 ]

  • <사진설명>공중에서 내려다본 예루살렘 전경. 다윗은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성전산(모리아산) 남쪽의 시온산에 다윗성(노란색 표시)을 건축한다. 기드론 골짜기 같은 계곡에 둘러싸여 방어하기 좋고, 기혼샘이 있어 수자원도 풍부한 예루살렘은 통일왕국의 수도로 삼기 좋은 곳이었다.

  • 다윗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 수도 예루살렘은 정치 중심지요
  •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을 차지해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 다윗을 왕 삼고 이스라엘을 높여


▶윤석전 목사: 사울왕과 요나단이 전사(戰死)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이후 하나님의 지시로 남유다 왕국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이후 다윗은 그 당시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Jerusalem)성을 정복합니다. 이것은 다윗의 뜻인 듯했으나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거룩한 지형으로 쓰고 싶어 하신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 백성을 인도하려고 이루신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하나님이 다윗을 인도하신 여정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며 전성기를 맞았을 당시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해발 750m인 예루살렘 고원지대.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성(City of David)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임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역사 안으로 끌어들였음을 의미한다.


▶윤석전 목사: 예루살렘은 난공불락의 성입니다. 산 위에 우뚝 선 성은 침공하기 어려운 요새인 데다 성 위에서 지키기만 하면 아래에서 감히 쳐들어올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만이 유일하게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다윗성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다윗성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세요.


▶홍순화 교수: 예루살렘은 수도로서 방어하기 좋은 지형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기드론 골짜기(Kidron Valley)를 비롯해, 남쪽과 서쪽에도 힌놈의 골짜기(Hinnom Valley) 등 방어에 용이한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 당시 이곳에 자리한 산성을 공격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삼하5:7) 말씀처럼, 다윗은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시온산(Mount Zion)에 다윗성을 건축합니다. 처음에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해서 다윗성이라고 불렀고, 이후 솔로몬 시대에 북쪽의 성전산(Temple Mount), 즉 모리아산(Mount Moriah)까지 성을 늘려 솔로몬 성전을 건축했습니다(왕상9:15).


다윗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이유는 다윗성이 있는 예루살렘이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남북을 관통하는 족장들의 길(Patriachs’ Road)이 예루살렘을 지나고, 동쪽의 여리고(Jericho)로 내려가는 길과 서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예루살렘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또 예루살렘은 특정 지파에 속하지 않은 새로운 지역이어서 수도로 삼기 좋았습니다.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의 경계선 부근에 있어서 어느 한 지파의 영역에 속해 있다고 하기 애매한 곳이었는데, 다윗이 그 경계선에 있던 새로운 땅을 확보해서 자기 성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지 않던 여부스 사람들의 시온 산성을 차지하여 통일왕국의 수도로 삼은 것입니다.


<사진설명>모형으로 제작한 다윗성 모습. 헤롯 성전 시대의 다윗성을 재현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은 수원지 확보에 좋았습니다. 전쟁이 잦은 시대에 양식 몇 년 치는 쉽게 보관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매일 마시고 써야 하는 물은 부피도 큰 데다 보관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윗성 가까이에 기혼샘(Gihon Spring)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전부터 여부스 사람들이 이미 지하로 연결된 곳에서 물을 끌어 쓰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루살렘은 해발 700~800m인 고지대이면서도 1년 내내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수자원이 풍부하여 수도로서 완벽한 기능을 했습니다. 다윗은 위치, 지형, 교통, 수자원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가장 좋은 곳에 다윗성을 세웠습니다.


▶윤석전 목사: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을 정복했겠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시온 산성을 정복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를 알려 주세요.


▶차준희 교수: 다윗이 원래 유다 사람이었기 때문에 유다 헤브론(Hebron) 지역에서 왕으로 즉위합니다. 그런데 이후 북쪽의 리더십이 와해되자 북쪽의 11개 지파 장로들이 내려와서 북쪽까지 다스려 줄 것을 요청합니다.


예루살렘은 다윗 시대에 어느 지파에도 속하지 않고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난공불락인 요새입니다. 누가 쳐들어와도 쉽게 함락하기 어려운 곳이어서 여부스 족속도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삼하5:6)라며 어떠한 침공도 막을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난공불락의 예루살렘을 다윗이 정복합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장면은 사무엘하 5장 8절에 “수구로 올라가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수구(Water Shaft)’란 기혼샘의 물을 얻기 위한 통로였습니다. 고지대인 예루살렘까지 물을 끌어올릴 수 없으므로 성 안에서 땅굴을 파서 지하로 내려가는 터널을 만든 후 그 길 끝에 수직으로 13m가량 수구를 내서 이곳을 통해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린 것입니다.


<사진설명>기혼샘에 연결된 수구. 다윗은 개인 군대를 동원하여 수구를 통해 성 안쪽으로 침투하여 예루살렘을 정복했다.


다윗은 이 수구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개인 군대를 동원하여 수구를 통해 성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결국 다윗이 개인 용병을 부려 다윗 개인의 힘으로 정복했기에 ‘다윗에게 속한 성’이라는 뜻으로 다윗성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역사에 편입되는 순간입니다. 예루살렘은 다윗 시대 때부터 이스라엘 역사에 들어왔습니다. 이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치 중심지가 됩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하시므로(삼하5:10) 가능한 일이었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성경은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것과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아니라”(삼하5:12)라며 다윗이 그 사실을 알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적 인도하심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역사 속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이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산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여호와 신앙의 중심이 모세의 시내산이었는데 이제는 다윗의 시온산과 예루살렘으로 바뀌게 됩니다. 신앙의 중심이 시내산에서 시온산으로 바뀌는 중요한 지점이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에 담겨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다음 시간에도 마태복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족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고자 하신 역사를 탐색해 보겠습니다. <계속>



<사진설명>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영토.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역사에 편입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이스라엘의 중심이 예루살렘의 시온산이 되었다.


예수가 오시는 대로<19회>시청


위 글은 교회신문 <920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