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전도자학교(5)] 믿음의 증거를 가진 증인의 사역은 엄청나다

등록날짜 [ 2012-04-17 13:41:49 ]

영의 세계는 보는 것보다 체험에 젖은 자가 더 위대해
예수에 젖은 사람은 예수의 생애를 재현할 수밖에 없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라고 했다. 구약시대 믿음의 선진들은 다 이렇게 믿음만 가졌다. 아직 실상을 갖지 못하고 실상을 바라만 보고 기다렸다. 그들은 믿음의 실상인 예수를 보지 못했지만, 그 실상의 증거를 지니고 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신약 성경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라”고 했다. 옛날 선진이 바라보던 믿음, 증거만 갖던 믿음을 확실히 경험함으로써 증인이 되라는 것이다. 증인은 모세와 선지자보다 엄청난 자다. 얼마나 엄청난 자인가 앞으로 공부해보자.

증인은 실상을 지닌 자
증인(證人)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소리로 들은 것에 관한 증인, 둘째, 눈으로 본 것에 관한 증인, 셋째, 체험해서 자기 안에 젖은 것에 관한 증인이다. 소리로 들은 사실과 눈으로 본 사실을 증거하려고 나선 사람은, 자기 목숨에 위협이 올 때는 자기가 듣고 본 사실을 잘못 들었다고, 잘못 보았다고 부인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실이 자기 안에 체험돼 경험으로 젖은 증인은 목숨이 끊어질지라도 절대로 그 사건을 부인할 수 없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공생애 삼 년 사 개월 동안 쫓아다녔으니 눈으로 본 증인에 해당한다. 특히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고 대답하여 칭찬받았고, 예수 덕택에 지구에서 물 위로 걸어간 최초의 사람이 됐다. 또 예수께서 행하시던 이적과 표적을 다 눈으로 본 자다. 그럼에도 가야바의 안뜰에서, 그것도 비자(婢子: 여자 종) 앞에서 “저주하고 맹세하노니 그를 모른다”며 세 번씩이나 예수를 부인했다. 죽음의 위협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여 자기 속에서 예수를 체험하고 나니까 기회만 있으면 “예수가 너 위해 죽었다. 그는 사흘 만에 부활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외치는 예수의 증인이 된 것이다. 이같이 성경의 기록이 증거하듯이 최고의 증인은 경험자다. 경험이 없는 증인은 언제 변할지 알 수 없다.

성령 받은 자만이 예수의 증인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내가 죽을 죄를 대신 짊어지고 그가 죽으셨기에 나는 살아나야 하고, 나는 이제 죽음에서 거듭난 자가 되었다. 죽음에서 거듭났으니 나는 진짜 예수로 다시 산 경험자다. 이 경험자라는 증거로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보증하시고 인 치셨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 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1:21~22).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면, 우리가 예수의 증인이라는 데 아무도 반론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성령 받았다는 것은 예수의 피로 거듭나서 거룩해졌다는 증거요, 그를 믿고 구원받았다는 증거요, 그 증거로 성령이 내 안에 오셨다. 그래서 베드로가 성령 받는 순간 예수의 증인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성령 받은 우리도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성령 받은 증인은 예수의 일을 재현한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가 구걸한다. 미문은 제사장, 서기관, 장로, 바리새인, 랍비 등이 다니는 문이다. 하나님이 구제를 선하게 보시니 거기는 구걸하기에 요지다. 거기 앉아서 한 푼 두 푼 구걸하는데, 제 구시에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가다가 거지를 보았다. 그리고는 “나를 보라”고 하니 굉장한 것을 줄줄 알고 쳐다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했다. 이어 베드로가 그 거지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일어서서 걸었다. 많은 사람이 앉은뱅이가 뛰고 걷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소동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놀라서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고 솔로몬 행각이라는 곳에 모여들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으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3장).

그 예수가 이 앉은뱅이를 성하게 했다는 것이다. 예수가 일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자기는 그 일에 증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증인은 예수에게 젖으면 예수가 하셨던 일을 그대로 재현(再現)한다. 그래서 능력 있는 자가 증인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3년 4개월 동안 따라다니면서 보았으니 내 증인 되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직 증인은 확실하게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것을 증거하는 자들이 바로 증인이다. <계속>   *윤석전 목사의 ‘무보수전도자학교’ 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8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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