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5-29 10:13:16 ]
인간의 생각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역에 반기를
합리적 사고에서 벗어나 주의 능력 나타내야
우리가 비전(Vision)을 가질 때도 진리(眞理)로 시작된 비전인가, 순리(順理)로 시작된 비전인가를 잘 분별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자기 계획과, 자기 지혜와, 자기 스스로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되겠다는 자기 구상을 내놓고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은 순리의 비전이다. 그러나 진리의 비전은 하나님이 내 안에서 ‘내가 너를 어떻게 사용하겠다, 너를 통해 어떻게 역사하겠다’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만든 순리의 비전은 그 비전이 이루어진다 해도 목숨이 끝나면 내 영혼을 살릴 길이 없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비전은 남이 볼 때 미련하게 보이고, 힘들게 보이고, 어리석게 보여도, 이 땅에서 육신이 사라지는 날 큰 영광이 있다. 순리의 비전이 절대 할 수 없는 것을 진리의 비전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낼 수 있다.
진리의 비전은 영혼 구원
그러면 하나님의 비전, 곧 진리의 비전은 무엇인가? 성경 전체의 내용은 죄와 마귀를 다루고 있다. 인간이 마귀로 죄를 짓고 영원히 지옥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다루고 있다. 성경은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옥 갈 인류를 살릴 것인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성경은 인간을 살리는 유일한 비결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진리를 보내야 한다는 것, 그분이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했다는 것,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에 대해 강력히 말하고 있다. 영원히 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진 사람은, 비전을 가질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영혼을 살리는 일이다.
그러면 예수께서 가장 크게 여기시는 것은 무엇인가? 역시 죽기까지 영혼을 살리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이 가장 크게 여기시는 일은 무엇인가? 땅끝까지 이르러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다 구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신령한 비전의 동역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비전, 곧 진리의 비전을 성취하는 일일 것이다.
순리는 수정하나 진리는 영원한 것
순리(順理)는 항상 수정된다. 우리나라 산업화 초기만 해도 땀 흘려 일하는 것이 미덕이었고 그것이 순리였다. 그러나 50여 년이 지난 지금 선진화 대열에 들어서는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많은 사람이 땀 흘려 일하려 하지 않고 적게 일하고도 많은 돈을 받으려는 상당히 모순적 생각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핵무기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핵무기의 개발은 2차 세계대전을 하루속히 종전시키려는 세계 평화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핵무기가 도리어 세계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최고의 골칫덩이가 되어 어느 순간에 인류가 자멸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인간의 순리로 만든 것은 변하고 수정하다가 최후에는 다 망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진리는 다 죽게 된 자가, 지옥 가기로 작정된 자가, 병들어서 의사가 죽는다고 완전히 내던진 자가 살아나고 구원 받는 능력이 있다. 순리의 사람의 결국은 망하고, 진리의 사람의 결국은 영원히 살며 불가능을 해결한다. 그러니 우리가 진리의 사람이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기가 만든 피조물인 인간 앞에 잔인한 십자가 고통을 당하고 피 흘려 죽으셨다. 그런데 우리는 눈이 오고 비바람이 분다고 예배드리러 가는 일에 머뭇거려서야 되겠는가? 순리는 “비가 많이 오니 교회 못 가겠다”는 것이지만, 진리는 “가다 죽어도 가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이 교회까지 가는 데 지켜 주실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이다.
주일에 몸살이 심하게 나면 아픈 몸을 핑계로 계속 눕고 싶은 것은 육신의 요구다. 그러나 그 육신의 요구를 이기고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다 보면 힘이 난다. 교회에 가서 설교 듣고 기도하고 성령이 충만해져서 집에 올 때는 언제 몸살 앓던 사람인가 싶게 건강해져 있다. 그래서 주님의 일이고 진리라면 결국은 주님이 보장하신다.
진리는 하나님의 뜻, 순리는 사람의 뜻
우리가 설교나 강의를 들으면서도 저것이 진리의 설교냐, 순리의 설교냐 하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순리의 설교는 인간이, 인간의 한계 안에서, 인간이 편한 대로 하라는 것이요, 진리의 설교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한계 안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하시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순리는 인간의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합법적이고, 가장 이성적이고,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이다.
“교회 가지 말라”고 하는 불신자 부모의 말을 놓고 생각해보자. 부모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것이 윤리요, 도덕이요, 이치요, 정도(正道)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부모보다 크다. 육의 것보다 영의 것이 더 큰 것이다. 도리를 어겨 가면서, 불순종해 가면서 교회 갔다 오면 미움받고 핍박받는 것은 부모의 말씀을 거역했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이것이 진정한 영적인 도리요, 진리다. 그러니 진리의 사람과 순리의 사람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진리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순리의 사람은 사람의 뜻대로 산다. 이것이 바로 신본주의냐, 인본주의냐의 차이다. <계속>
*윤석전 목사의 ‘무보수전도자학교’ 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9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