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6-05 19:26:01 ]
순종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믿는 것
하나님 말씀은 이치와 모순을 뛰어넘는 차원이다
사람이 병들어 죽는 것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순리(順理)다. 암으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사람이 더 살고 싶어서 의학적인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서 2년을 더 살았다고 하자. 그래도 죽는다. 죽이는 병 앞에 죽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도다”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했다. 진리(眞理)가 왔다. 진리를 알고만 있지 말고 당신 자신에게 적용하라. 받아들여라. 예수 믿는 것은 순리로 할 수 없는 일을 진리로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신 예수의 말씀은 순리로 되지 않는 인간의 불가능을 진리로 해결해 주시겠다는 간절한 외침이다.
영원히 죽지 않는 진리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나서야 찾아오신 예수께 그의 누이 마르다가 말하기를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마르다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영원히 죽지 않는 진리가 왔다는 것이다.
“아담아, 동산 중앙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 그대로 선악과를 먹으니 정녕 죽음이 왔다. 그런데 인간이 영영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을 예수가 와서 십자가에 달려 대신 죽으셨으니, 그가 죽으심으로 영영 죽으리라는 말이 이루어지는 순간, 우리는 살아났다. 이것이 바로 진리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이것이 진리다. 우리 인간의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절대 안 된다는 거기서 절망하려고 예수 믿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불가능한 문제, 절대 안 된다는 문제가 있을 그때 방법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진리다. 그가 누구냐? 하나님이시다. 그는 전능한 분이시다. 그분은 모든 것을 해내실 수 있다.
진리의 사람은 불가능 앞에서 하나님만 붙든다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가서 무덤 막은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시자 마르다가 말하기를,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고 했다. 이 말은 순리다. 이 말을 들으신 주님은 믿음 없음을 통분히 여기시면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다.
“하나님 아버지여, 항상 나의 기도를 들으심을 감사합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러자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요11:44)고 했다. 이것이 진리다. 인간이 개입하는 부분은 모두 순리고, 주님이 개입하는 부분은 모두 진리다. 인본주의, 합리주의는 전부 순리고, 신본주의, 이적이 나타나는 능력은 전부 진리다. 우리는 순리로 살려고 예수 믿는 것이 아니요, 진리로 살려고 믿는다. 진리로 살아가기를 작정하자.
“모세야,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지금 앞은 홍해 바다요, 뒤는 애굽 군사의 칼날이 다가오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 섞인 소리는 분명 순리다. 그러나 그때 모세는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나 진리의 움직임을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라 하셨고, 내미는 순간 바람이 불어 바다를 갈라놓아 육지가 되게 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진리의 사람임을 명심하자. 순리의 사람은 불가능한 일이 있을 때 포기하지만, 진리의 사람은 전능자이신 주님의 도움으로 불가능을 해결한다.
순리는 이치에 맞아야 한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다. 둘 곱하기 셋은 여섯이다. 이것은 순리다. “주님, 여기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할 때, “이건 작은 소년 하나가 먹을 양이잖아” 하고 말하는 것은 순리다. 순리는 200데나리온은 가져야 오천 명이나 되는 군중이 먹는다는 것이요, 또 순리는 200데나리온이 있어도 이 저녁에 어디 가서 그 많은 사람이 먹을 음식을 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 제자들은 순리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완전히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나누어주니 5000명이 먹고도 남는 이적을 만난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평생 순리로 살아야 하지만,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평생 진리로 살 수 있으니 우리 모두 진리로 살기로 작정하자.
주님 말씀에 순종만 하면 진리의 능력 만난다
진리는 사람이 볼 때 모순(矛盾)이 많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지금 예수와 제자 열둘이 먹을 것도 없다. 그러니 이런 비논리가 어디 있는가? 그것도 광야에서. 그때 “주님, 언제 우리에게 먹을 것을 맡겨 놓으셨나요?” 하고 말했다면 이것 역시 순리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이치에 맞지 않아도 순종만 하면 그대로 된다. 우리가 그것을 못해서 계속 순리로 산다. 능력이 무엇인가? 진리로 사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이적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진리의 사람임을 잊지 말자. 불가능한 문제가 생기면 “나는 진리의 사람이다” 하고 외쳐 보자. 내가 왜 예수 믿는가? 예수 믿는 궁극의 목적이 무엇인가? 의학, 과학, 돈, 인간의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할 수 없는 문제를 예수로 해결하려고 믿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에 해결하는, 주님을 믿는 진리의 사람이다. 이런 자부심을 지녀야 한다. <계속>
*윤석전 목사의 ‘무보수전도자학교’ 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9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