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전도자학교(25)] 겉과 속이 다른 행위를 책망하신다

등록날짜 [ 2012-09-19 13:22:49 ]

죄를 멀리하고 성별한 삶을 살아야 함에도
스스로 거룩한 체하는 외식으로 가득 차

‘바리새인(Pharisees)’은 ‘분리된 자’ ‘성별(聖別)한 자’란 뜻을 담고 있다. 즉 자기들은 죄인과 분리된 사람들, 성별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그러면 그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바리새인’이었는가? 바리새인이란 말이 부정적 이미지를 띠게 된 이유는, 명칭 그대로 죄인과 분리되고 성별한 삶을 살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이 ‘바리새인’으로 살고 있다고 착각했을뿐더러 외식(外飾)까지 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착각하고 외식하는 바리새인을 향해 마태복음 23장에서 “화 있을찐저” 하고 외치며 일곱 번이나 혹독하게 나무라셨다.

바리새인이 외식한 사례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마23:16).

하나님이 명한 말씀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인간의 판단 기준에 따라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를 결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바라새인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라고 말하니, 이 얼마나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소리인가?

한마디로 바리새인은 율법을 자기들의 신념(信念)에 따라 지키는 법으로 생각했다. 율법을 신앙(信仰)의 법으로, 믿음의 법으로 생각해야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죄를 씻어줄 예수를 만날 수 있는데, 바리새인은 율법을 신념의 법을 만들어서 지켜라 마라 하니, 이것이 다 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은 파 뿌리까지 정확히 헤아려 십일조를 드렸다고 자기들의 정직성을 자랑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니 당연히 하나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마치 자기 것을 인심 쓰듯 하나님께 십일조로 드렸기에 주님께 강력히 책망을 받았다.

우리도 바리새인처럼 외식하는 점이 있거든 빨리 버리고 진실하자. 하나님 앞에 드리는 우리의 모든 삶의 행위가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다. 주님은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하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내가 할 수 있는 분량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요구하는 분량대로 신령과 진정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분량대로 하지 않고도 내가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 외식이다. 바리새인은 속으로는 탐욕과 거짓과 방탕과 죄악이 가득한데도, 겉으로는 거룩한 척한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이 얼마나 가증한 일인가?

그래서 회개하라는 말은 겉만 거룩한 척하는 위선자가 되지 말고, 속부터 바꾸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껍데기만 거룩한 척하면서, 본인들은 자기들이 거룩하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바로 외식이다. 그래서 죄는 바로 ‘속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이방종교인이 예수 믿지 않고 자기들끼리 거룩해지려고 온갖 수단을 다 부려도, 수단으로, 능력으로, 인간의 노력과 수고로 정성들인다고 구원받는가? 만약 그렇게 해서 구원받는다면 무엇하러 예수가 이 땅에 오셨겠는가?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을 도전하는 죄를 범한 때부터 이미 다 죽었다. 죽은 자 속에서는 죽을죄만 나온다.

그래서 율법을 보내서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예수를 보내서 인간의 죄를 해결해 주었으니, 오직 믿음으로만 의로워진다. 그러기에 로마서 8장 1~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하고 말씀하셨다.

종식을 고할 수밖에 없는 바리새파 운동
그런데도 바리새인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워진다고 생각하여 겉으로 거룩한 체했다. 특히 길거리나 회당에서 크게 소리 내어 자기들이 거룩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공포하고 다녔다. “나는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나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우상숭배 하지 않았습니다” “이웃을 사랑했습니다” “구제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했습니다” 등등. 자기들의 속은 더럽거나 말거나 취급하지 않고, 겉만 깨끗하게 보이려고 했다. 그러나 주님은 겉이 아니라 속을 중요하게 여기니 바리새인을 강력하게 책망하셨다.

모든 행동과 삶의 본질은 겉에서 나오지 않고 생각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생각의 본질이 신령하고 의(義)로워야 한다. 하나님은 육신의 정욕, 육신의 생각 등 모든 육신의 요구는 본질이 거룩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아시기에 성령을 보내서 육신의 소욕을 몰아내고, 성령의 거룩한 소욕으로 우리를 이끌어내서 거룩하게 만들고, 의롭게 만들고,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살게 하신다. 그러므로 바리새파 운동은 결국 종식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 자신의 노력으로 의로워지려 한 데는 당연히 한계가 따른다.

율법을 모르면 복음이 어디서 왔는지를 모른다. 율법을 알아보니 내가 죄인인 것을 알고, 내가 죄인인 것을 아니까 영원히 지옥 간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면 살려줄 예수가 필요한데, 이미 예수가 내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나를 살려줬으니 우리는 구원받았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러니 율법을 모르면 구원이 어디서 왔는지를 모른다. 간단하게 예수로부터 왔다고 소개해도 되지만, 율법을 알아야 하나님의 구원 섭리가 구체적으로 인류 속에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안다. 그러니 율법이 얼마나 중요한 법인가. 율법은 기초이고, 시작하는 법이다. 그래서 ‘회개하라’, 이것은 정말로 인간에게 들려와야 할 소리다. <계속>

*윤석전 목사 ‘무보수전도자학교’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306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