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전도자학교(27)] ‘아담’은 곧 ‘영적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뜻

등록날짜 [ 2012-10-09 10:22:19 ]

영혼을 갖고 태어나 육신으로 사는 것은 크나큰 무지
말씀대로 사는 삶이야말로 창조의 정체성을 찾는 길

무보수전도자학교 공부를 하되 경험으로 하기를 바란다. 이번 주부터는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라는 제목으로 공부한다.

첫 아담
첫 아담은 창세기 2장 7절에 그 창조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지라”

이 사람이 첫 아담이다. 첫 아담의 육체는 흙으로 만들었고, 영혼은 하나님께서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만들었다.

육체는 죽는 순간에 인격이 없다. 이처럼 인격은, 육체에서 나오지 않고 영혼에서 나온다. 하나님 자신이 지닌 인격을 축소하여 창조하긴 했지만, 첫 아담을 인격적인 존재로서 모든 기능을 온전하게 갖추게 하셨다. 영적 존재인 하나님께서 인격을 부어 주셨기에 인간도 영적 존재가 됐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든 피조물이자 아담으로서 엄청난 축복과 기업을 물려받았다.

아담, 영적 존재인 인간의 정체성
그렇다면 마지막 아담은 누구이며, 첫 아담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자.

고린도전서 15장 15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첫 아담이 죄를 짓고 죽게 되었으므로 또 하나의 아담이 오지 않으면 첫 아담은 살 길이 없다. 죄를 지어 죽은 영혼은 자신이 지은 죗값으로 지옥에 간다. 영적인 빚은 영적인 것으로만 해결할 수 있어서, 영적 존재인 또 하나의 아담(예수)이 와야 그가 첫 아담을 살려낼 수 있다.

첫 아담도 ‘아담’이요, 예수 그리스도도 ‘아담’이다. ‘아담’은 ‘영적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우리 인간을 아담이라고 할 때, 인간의 정체성은 바로 ‘영적으로 사는 사람’이다. 이처럼 ‘아담’이라는 말 한마디 속에서 ‘내가 영적 존재로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존재이기에 우리가 사는 삶도 영적이어야 한다.

마태복음 4장 1절 이하에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가셨을 때, 마귀가 말하기를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할 때 예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말씀하셨다. ‘떡으로만’이라는 말에는 인간이 육신을 입고 있기에 떡도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영원히 살아야 할 하나님 말씀의 양식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아담이라는 측면에서 잘 이해해야 한다.

세상 수많은 사람이 정욕으로 욕심을 부리고 온갖 죄를 짓는 것은 모든 생각과 인격이 육신의 편에 서 있어서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아담이라고 할 때, 영적 존재인 인간은 평생 내 영혼의 편에 서서 영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담’이라는 말을 ‘에덴동산에 처음 지은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첫 아담의 고유명사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아담’이라는 말은 최초에 만든 사람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종류, 그 사람의 존재,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아담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피곤을 못 이겨 새벽 기도에 못 나간다면 자신이 ‘아담’이라는 존재의식이 부족한 것이며, 삼일예배에 잘 참석하지 못하는 것도, 십일조를 안 하는 것도 다 자신이 ‘아담’이라는 존재의식이 부족한 탓이다. 우리의 모든 삶을 이끄는 절대 주관자(主管者)는 ‘아담’이어야 하고, 영적 존재로서 영혼의 때를 위해 살아야 한다.

아담은 무엇으로 사는가
히브리어 ‘아담’이라는 말은 ‘사는 영’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사는 영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아담’이라고 말할 때는, 직장에 다니고, 사업하고, 가정을 꾸리는 등 모든 삶이 아담, 즉 내 영혼을 위해서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담’이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강력하게 말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했다. 그러나 마귀는 하와에게 “네가 선악과를 먹는 날이면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과 같이 되고 선악을 알게 될 것이다” 하고 속였다. 마귀의 말에 미혹(迷惑)한 하와는 자기도 선악과를 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먹게 했다.

만약 아담이 영적으로 살았더라면, “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 말씀을 자기의 생명(生命)처럼 알았을 텐데, 육으로 살았기에 하나님이 되려는 근성으로 선악과를 먹고 망하고 말았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 아담은 항상 하나님 말씀을 우선하여 살아야 한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광야에서 사십 년간 지냈다. 곧장 가면 넉넉잡고 20일 안팎, 쉬며 가도 한 달 안팎이면 갈 거리인데 왜 40여 년이나 걸렸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가나안 땅을 향해 전진하게 하시고, 불순종하면 그 자리에 멈추게 하셨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40년간 광야에서 훈련한 것은 하나님 말씀만이 그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육신의 요구가 아니라 영적인 요구대로 살아야 하고, 영혼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왜 그런가? 인간이 ‘아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아담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자는 육신이 아니라 자기 영혼을 우선한다. 육신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거나 안 살거나 70~80년 살면 죽는다. 그러나 내 영혼은, 하나님 말씀이 영원한 생명이기에 그 말씀이 내게 공급되는 한 그 생명은 계속 내게서 넘쳐난다. 그래서 아담이라고 할 때, 우리 인간은 하나님 말씀으로 살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계속>

 *윤석전 목사 ‘무보수전도자학교’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30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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