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1-15 11:24:32 ]
마귀는 그 특성과 본질을 인간을 통해 그대로 나타내
사소한 감정이나 오해 때문에 올무에 걸리지 말아야
이번 호부터는 마귀의 속성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마귀는 시험하는 자’라고 하는 주제로 살펴보겠다.
마귀는 시험하는 일을 한다
성경은 마귀를 시험하는 자라고 했다. 성경 곳곳에는 시험하는 자 마귀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마태복음 4장 1~3절에 보면, 마귀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까지도 시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귀가 하는 일 자체가 바로 시험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시험에 들었다면, 그는 이미 마귀역사에 속했다. 시험에 든 사람은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 말씀에 은혜 받지 못하여 이미 그 속에 영적인 기쁨이 사라져버린 상태다. 그러니 교회에 와도 그저 종교적인 행위로 온다. ‘시험 들었다’고 하는 말은 ‘마귀의 지배 아래 있다’는 말이니,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절대로 시험에 들지 말자’라는 말은 ‘시험하는 자인 마귀의 일에 걸려들지 말자’라는 말이다.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공생애를 출발하실 때에, 마귀가 앞길을 가로막고 시험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때에, 마귀는 우리를 시험한다. 그때 우리는 그 시험을 넉넉히 이길 수 있어야 한다. 마귀는 시험하는 자이기에 우리를 시험하려 하나, 우리는 반드시 그 시험을 이겨야 한다.
예수께서는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라고 기도하라고 일러 주셨다. 이 시험에서 이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본인이 시험에 들었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마귀는 아무도 모르게 시험에 들게 하는 어둠의 주관자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가기 싫다’ ‘설교에 은혜가 안 된다’ ‘저 사람이 밉다’ 등등, 시험하는 자에게 걸리면 시험하는 자의 특성과 근성이 그대로 나온다. 사람마다 자신의 특성과 근성이 있다. 이같이 마귀도 시험하는 자기의 특성과 본질을 우리 인간을 통해서 그대로 나타낸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통해 마귀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도록 시험에 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
어떤 사람은 타인이 하지도 않은 말, 하지도 않은 행동을 마치 자신이 듣고 본 것처럼 제3자에게 이야기한다. 즉 중상모략하는 불의한 행동을 한다. 이런 사람을 바라보면 ‘시험하는 자에게 당했구나! 어찌 다 똑같은 눈으로 보면서도 아닌 것을 진짜인 것처럼, 진짜인 것을 아닌 것처럼 볼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처럼 마귀는 인간이 항상 불의한 눈을 갖게 하는 존재다.
마귀는 밤낮 시험에 들게 하는 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하나님의 지식을 받아들여 먹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하와에게 마귀가 다가와 시험했다.
선악과를 먹는 순간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게 된다고 속이는 마귀의 말에 미혹(迷惑)한 하와가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그렇게 절대적으로 신뢰하던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마귀의 거짓말이 진실처럼 믿어졌다. 그래서 선악과를 자기도 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줘서 먹게 했다. 그래서 인류에게 사망이 들어오게 하는 불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처럼 마귀는 인간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는 악한 존재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마귀는 조금만 틈만 생기면 택한 자라도 미혹하여 시험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혼을 멸망에 빠뜨린다. 마귀가 하는 일이 시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담임 목회자가 어떤 성도는 특별히 사랑하면서도 자기에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사자(使者)요, 주의 종인 담임 목회자는 모든 성도를 사랑하는 주님의 심정을 지녔다.
만약 목회자가 성도를 편벽되게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절대 그 목회자에게 많은 성도를 맡기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성도를 맡기신 목회자라면, 분명 편벽됨이 없이 성도를 사랑하는 목회자인 것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담임 목회자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시험에 들어서는 안 된다. 담임 목회자가 자신의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생각지 않고 생애를 바쳐 목회하고 있다면, 그 자체가 바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목숨처럼 사랑하고 관심을 두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내에서 절대로 자신의 사소한 감정이나 오해 때문에 시험에 들어서는 안 된다. 만약 시험에 들었다면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마귀의 올무에 걸렸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시험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마귀는 밤낮 시험에 들게 하는 자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계속>
*윤석전 목사 ‘무보수전도자학교’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32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