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전도자학교(69)] 율법과 복음으로 조화를 이루라

등록날짜 [ 2013-08-27 11:44:41 ]

율법은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가르치고
복음은 예수 피가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함을 알게 한다

율법을 잘 지키라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지금은 율법이 끝난 시대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우상숭배 하지 말라 등은 전부 율법인데, 지금이 율법이 끝난 시대라면 이 율법들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들 율법을 소중히 지켜야 한다.

율법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없어지거나 폐하여지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5장 17~18절에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7~18).

율법의 두 가지 큰 역할
율법은 두 가지 큰 역할을 한다.

첫째,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요구한다. 즉 예수는 율법의 요구에 따라 죽으셨다. 율법의 요구는 ‘죗값은 사망’이니 ‘죄인은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이 안 죽으려고 자기들이 죽을 대신 소나 양 등 짐승을 잡아 죽임으로 죄를 용서받았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는 죄인인 우리 인류가 죽어야 할 대신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율법의 요구대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어떻게 율법을 완전케 하셨는가? 율법으로는 마음으로 남을 미워한 죄, 마음으로 음욕을 품은 죄를 잡아낼 수 없었으나 예수께서는 마음으로 미워하면 살인이다,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간음이라고 하시면서 마음으로 지은 죄도 다 찾아내서 율법을 보완하셨다. 그렇게 마음으로 지은 죄까지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죽으셨으니 이 사실을 믿으면 우리는 죄 사함받아 양심의 자유를 완전히 누리게 된다.
 
둘째, 율법은 선한 법이라 우리 인간에게 이 세상 끝 날까지 죄가 무엇인지 알려 주고, 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버텨 주는 가드레일(guard-rail), 즉 방어책이나 보호막과 같은 역할을 한다.

율법은 위와 같은 두 가지 일을 하니, 율법이 얼마나 소중한 법인가. 다시 말하면, 율법의 요구에 따라 예수가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우리가 다시는 율법이 쳐 놓은 가드레일을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율법은 우리가 망하지 말라고 가드레일을 친 것과 같다. 이처럼 율법은 우리에게 엄청나게 소중하다.

율법은 우리의 신앙 인격을 잘 다듬게 해 준다. 왜냐하면 율법은 인간이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행동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윤리 도덕적, 종교적 차원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그런 행동으로 말미암은 죄로  예수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그 죄의 결과가 영육 간에 인간을 저주와 고통으로 결박하기 때문에, 그 죄가 나를 영육 간에 망하게 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준다. 예수의 피가 헛되지 않게 하려면 다시는 그런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를 안내한다. 

어떤 사람이 남의 집에 가서 도둑질을 했다고 하자. 집 앞에 갈 때까지 마음속으로 도둑질 하면 안 된다, 안 된다 하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나 결국 도둑질이라는 행동을 해서 경찰에 붙들렸다고 하자. 마음속에서 안 된다고 경고할 때 안 했으면 양심이 자유로울 텐데, 왜 안 해야 될 행동을 저지르고 붙들려서 부자유한 상태가 되는가?

이처럼 하나님 말씀인 율법도 지키면 자유하고 안 지키면 부자유하니, 우리는 지켜서 자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

죄를 이기는 자유
어떤 사람은 죄짓고 회개하면 그만이라며 거듭 죄를 짓는 사람이 있다. 고의성을 가지고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의 복음을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고 경고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

너희가 죄에서 자유, 저주에서 자유, 멸망에서 자유, 지옥에서 자유를 얻었다면, ‘내 육체가 죄를 범하고 정욕으로 어떠한 짓을 해도 예수의 피가 용서할 텐데 뭘 그렇게 절제하며 사느냐’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고귀하다. 하나님의 아들이 목숨 바쳐 죽어서 내게 자유를 주었다면, 이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죄를 이겨야 한다. 그것이 자유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내 신앙 인격이 계속 다듬어지고 복음으로는 내 영혼이 살찌고 복되게 된다.

만약 내가 율법에서 자유하다며 율법을 마음대로 범한다면, 영혼이 얼마나 고달프겠는가? 죄는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였다. 진리를 알면 진리대로 사는 것이 자유하다. 우리는 진리를 가진 자다. 진리가 무엇인가. 예수께서 이 땅에 와서 내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셔서 나를 죄에서 자유케 했다는 것이 진리다. 이 진리를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믿기만 하면 그 진리를 믿는 순간에 나는 자유하다.

또 예수께서 하신 말씀 자체가 진리다. 하지 말라면 안 해야 복이요, 하라면 해야 복이다. 그것이 진리요, 영원한 복이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자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 죄에서 자유, 행동에서 자유하여, 우리 모두 복 받는 자유로 충만하기를 바란다. <끝>

위 글은 교회신문 <35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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