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전도자학교(76)] 창세부터 인류 구속 사역은 진행형

등록날짜 [ 2013-10-29 10:43:10 ]

성경은 시작부터 영혼 구원에 초점이 맞춰져
부분적인 것에 매이지 말고 본질에 충실해야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고 있다. 창세기 1장 1절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씀했고, 히브리서 1장 2절에는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말씀했다. 다시 말해, 천지 만물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어졌다는 뜻이다.

또 창세기 2장 17절에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도 그 속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아담이 마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는 순간, 그 죗값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그의 후손인 전 인류에게 죽음이 왔으나 먼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죗값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잔인하게 못 박혀 정녕 죽으셔서 인류를 구원하셨다. 이처럼 성경은 창세기 맨 앞부분부터 인류가 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록하여 인류의 구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어디를 읽어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일관된 주제가 흐르고 있다. 그래서 예수를 중심으로 성경을 읽을 때 비로소 성경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곧 인류 구속 사역의 스케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 아들 한 사람의 고유명사(固有名詞)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이루실 인류 구속 사역이라는 스케줄 전체의 이름이 바로 ‘예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어느 구절을 읽든 거기서 구원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경을 이런 시각으로 볼 수 있을까. 우선 성경을 제대로 알려면 성경 저자가 가르쳐 주는 바를 따라야 한다. 성경 저자는 성령이시다. 그러니 성령께서 내 안에 오시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신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그러므로 성경은 성령께 배워야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또 성경을 가르치는 자도 성령을 힘입어 그분이 뜻한 바대로 가르쳐야 한다. 성령이 아닌 인간의 생각과 지식으로 성경을 가르칠 때는 저자가 의도한 내용을 일부분만 가르치게 되거나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놓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열왕기상 18장을 살펴보자. 여기에는 갈멜산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우상숭배 하는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총 850명과 맞대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과연 어느 신이 참신이냐를 가리는 대결을 벌인 것이다. 문제는 이 성경구절에 관해 말할 때 대부분이 ‘어느 신이 참신이냐’ 하는 점에만 한정해 언급한다는 점이다. 성령께서 이 구절을 통하여 말씀하시고자 한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신약성경 야고보서 5장 17~18절에도 이 사건에 관해 언급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性情)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즉 엘리야라는 의인의 기도가 역사함이 많아 하나님께서 비를 내린 사건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여기서 문제는 ‘비’라는 것이다.

아합왕은 이방인과 혼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전쟁을 방지할 목적으로 시돈 왕 두로의 딸 이세벨과 정략결혼을 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형통하되,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는 문제가 생긴다. 이방 여인 이세벨은 혼수품으로 비를 주관한다는 바알 신상을 가지고 왔다. 중동지역은 강우량이 적은데 비를 주관한다고 믿는 신을 가져왔다면 이는 왕후로서 최상품 혼수를 해 온 셈이다.

이후 아합왕도 왕비 이세벨과 더불어 바알신을 섬기며 바알신에게 비를 내려달라고 빌었다. 그런 아합왕에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보내셔서 과연 누가 참신인지 가리게 한 사건이 바로 ‘갈멜산 대결’이다. 우상숭배자 850인이 단을 쌓아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알 신을 부르며 응답을 구하였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엘리야가 단을 쌓고 하나님을 부르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기도할 때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분이시다.
 
또 엘리야가 머리를 땅에 묻고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셨다. 비를 오게 하는 신은 바알이 아니라 하나님이란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셨다. 천지를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말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 ‘예수’라는 인류 구속의 스케줄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 보자.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부터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 인류 역사상 모든 영혼은 영적으로 다 메말라 죽어 있었다. 갈멜산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이 가뭄으로 오는 고통 속에서 비를 갈망하듯이, 이 땅에 태어나는 족족 죄로 말미암아 멸망의 행렬에 끼어 지옥으로 향하던 인류는 영혼의 구원자를 목마르게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결국 갈멜산 제단에 불을 내리신 엘리야의 하나님께서 삼 년 육개월간 메마른 그 땅에 비를 내리셨고 그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를 보내시고 예수께서는 자신의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려 “내 살을 받아먹으라, 내 피를 받아 마셔라” 하시며 우리 영혼의 영원한 양식과 음료가 되셨다. 가뭄은 비가 와야 해결될 수 있듯이, 인류 영혼의 가뭄은 생명이신 예수가 오셔야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갈멜산 사건도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고 있다.

이처럼 성령의 가르치심으로 성경을 온전히 알아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본질적인 의미를 바로 알게 된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5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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