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4-08 14:04:11 ]
구원의 복음을 알고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 줄 깨달아야
예수께서 바리새인에게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완전케 하려 왔다”고 하셨는데 도대체 율법의 어떤 점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는 것인가? 율법의 약점은 첫째, 인간의 영혼을 지옥 보내는 죄를 다 찾아낼 수 없으며, 둘째, 속죄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두 가지 약점을 보완하여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 이야기가 나온다. 모세의 법에는 간음한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명했으니 마땅히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레20:10;신22:22). 율법이라는 하나님의 의로운 법을 범한 죄인은 절대로 살아날 길이 없다. 율법이라는 거울로 보면 인류는 아무도 살아날 길이 없다(롬3:10). 율법 앞에 범죄한 자는 절대로 속죄가 없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율법 앞에 의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예수께서 행위 이전에 마음속에 육신의 소욕으로 나타나는 죄를 찾아내는 순간, 그들이 죄인인 사실이 확연히 드러났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 우상숭배요(엡5:5;빌3:19;골3:5;딤후3:2),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어도 간음이요(마5:28), 남을 미워만 해도 살인이요(마5:21~22), 남의 물건을 보고 탐내면 도둑이요 우상숭배니(골3:5), 율법에 걸리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예수께서 바리새인을 향해 질책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의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예수께서 보실 때는 욕심쟁이요 거짓말쟁이요 살인자라고 했다. 바리새인은 율법으로는 행동하지 않고 마음으로 지은 죄를 찾지 못하니 스스로 의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처럼 율법으로는 영원히 멸망할 죄를 다 찾아내지 못하고, 속죄가 없다는 약점이 있다. 하지만 복음은 마음속에 있는 죄까지 모조리 찾아내며, 그 죄를 들고 예수께로 나와 살고자 회개하면 예수의 십자가 피 공로로 사해 주어 ‘죗값은 사망’인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준다. 율법의 요구는 죄 있는 자는 그 죗값으로 죽으라는 것인데, 예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이 찾지 못한 마음으로 품은 죄까지 모조리 다 찾아 율법을 보완하러 오셨다. 또 율법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 불완전한 법이기에 예수께서 친히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으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구원해 주셨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절에는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선포하였다. 이처럼 복음은 은혜의 법이요, 속죄의 법이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
그런데 복음을 가리킬 때 ‘은혜의 법’ ‘속죄의 법’과 같이 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죗값은 사망’이니(창2:16-17;롬6:23;롬5:12) 율법은 이미 사망이라는 법을 가지고 있다. 사망의 법인 율법은 속죄가 없다. 이 사망의 법을 예수가 십자가의 사망으로 담당하고 죄를 속해 주셨으니 인류에게 구원이 임했다. 사망의 법을 예수께서 담당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신 증거로 인간의 심령에 성령 하나님이 임하셨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완성이다.
이처럼 복음은 행동으로 옮긴 죄와 마음으로 품은 죄까지 율법에 포함시켜 율법의 용도를 온전하게 했고, 또 인간의 죄를 해결할 수 없는 율법의 약점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으로 보완하여 인류를 구원하므로 율법을 완전케 했다.
율법의 용도는 죄를 발견하는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니, 시대와 인종을 불문하고 누구라도 죄지은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점에서 율법은 진리다. 또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담당하고 죽으셨으니 이를 믿는 자마다 누구든지 죄사함받고 구원을 얻으니 이 또한 진리다. 율법도 진리요,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신 구원의 복음도 진리이나, 율법은 구원의 진리를 위해서 존재한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할 때, 어디서 자유하라는 말인가? 바로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 죄에서 자유하라는 것이다.
‘죄에서 자유’란 말은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란 말과 같다. 죗값은 사망이니 어떻게 자유할 수 있는가? ‘죗값은 사망’인 그 ‘사망’을 예수께서 친히 담당하셨으니 자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율법의 정죄로 내게 적용한 사망의 법이 없어졌다. 예수의 피 공로로 말미암아 이제는 자유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선포하셨다.
아담 이후 모든 인류는 죄로 말미암아 반드시 죽는 것이 진리였다(롬5:12). 꼭 죽어야 할 우리가 살길은 우리 대신 죽어 주신 예수를 믿는 길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다. 율법의 정죄에서, 곧 죗값은 사망이라고 하는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려고 대신 죽어 주신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것이다. ‘죗값은 사망’이라는 법을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기에 예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죽으시고 우리의 사망 문제를 해결하셨다. 이 사실을 믿는 자는 누구나 자유를 얻는다.
로마서 8장 1~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율법에서 ‘죗값은 사망’이라 했으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우리의 죗값을 갚아 주셨으니 우리가 사망하여 지옥 갈 모든 죄도 해결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얼마나 행복한가. 이것이 바로 율법이요, 율법의 완성이요, 율법의 요구로 죽어야 할 사망의 법을 예수로 이루신 진리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할렐루야! <계속>
*윤석전 목사의 ‘무보수전도자학교’ 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38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