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4-15 16:30:01 ]
예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5:17)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율법에 명시한바 행위로 저지른 죄는 물론 행위 이전에 마음으로 지은 죄까지 샅샅이 다 찾아서 죄를 찾는 율법의 기능을 완전케 하셨다.
또 예수께서는 율법에는 없는 속죄의 은총을 베푸시려고 인류가 저지른 죄를 모조리 짊어지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셔서 ‘죗값인 사망’을 갚으시고 우리 인류를 구원하셨으니, 이것이 곧 복음이요 진리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율법과 복음으로 이루신 구원의 진리를 믿는다’는 뜻이다.
율법도, 예수 그리스도도 진리다
‘죗값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요구는 진리다. 죄를 지으면 누구라도 꼭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와서 우리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구원받는 것도 진리다. 이처럼 율법도 진리요, 예수 그리스도도 진리이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의 진리를 위해서 존재한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할 때, 자유는 바로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된 것을 말한다.
‘죄에서 자유’라는 말은 곧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라는 말과 같다. ‘죗값은 사망’인데 어떻게 자유할 수 있는가? 우리가 죗값으로 사망할 것을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이루셨기에 이를 믿는 자는 누구나 죄에서 자유하다. 율법의 정죄로 인간에게 적용된 사망을 예수께서 사망으로 해결하셨으니 이제 그 자유를 내 몫으로 소유하면 된다.
예수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율법으로는 살길이 없다는 강력한 선포다. 율법의 정죄에서 오는 사망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예수께로 죄를 가지고 나오라는 말이다. 예수께로 나와 회개하고 그의 피 공로로 죄 사함받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다. 이 땅에서 율법의 정죄 아래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예외 없이 어떤 죄를 짓든 그 죄로 꼭 죽어야 한다.
하지만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셨으니 인간이 살길은 예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죗값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정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해방된 사실을 믿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바리새인의 생각처럼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신 것을 이루어 율법이 완전해지므로, 그 완전한 율법이 찾아낸 인간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죗값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4).
또 율법이 정죄해 죽게 된 인간에게 합법적으로 해방의 자유를 주러 오셨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우리 인간을 해방해 주러 오셨다(롬8:1~2).
다시 말해서, 죄를 찾아내는 ‘율법의 기능’을 완성시키고, 죗값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요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셔서 이루심과 동시에, 인간이 짊어진 모든 죄 문제도 해결하셨다. 이처럼 율법의 기능과 요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이 모든 것을 이루셨기에 예수는 율법보다 뛰어난 진리요, 그 진리가 우리를 죄에서 영원히 자유케 한다.
진리로 말미암은 자유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에 수많은 이적과 표적을 보이셨다. 그중 예수께서 물 위를 걷는 장면이 나온다(마14:24). 육신을 입은 분이 어떻게 물 위를 걸어가셨을까?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자요 전능자시니 당연히 물 위를 걸어갈 수 있으시다. 또 율법과 죄라는 측면에서 살펴봐도,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 하나님으로서 죄가 없는 의로운 분이시니 사망이 그분을 다스리지 못하기에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도 자유하시다.
이처럼 최고의 능력은 거룩함과 의(義)다. 광풍이 일어나 예수와 제자가 탄 배가 침몰 위기에 처했을 때, 예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순간에 잔잔해졌다(마8:26). 율법을 완성하고 율법의 요구를 능히 이루실 절대 창조자의 명령, 곧 그 진리의 법 앞에 자연 현상일지라도 즉시 순종했다.
예수께서 이천 년 전에 행하셨던 이적과 표적이 지금도 그분을 믿음으로 일하시게 하는 사람에게 동일하게 나타난다. 예수께서 피 흘려 죽으시고 구원하신 후에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서 우리에게 주님의 의가 있을 때, 즉 죄에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진리로 말미암아 자유를 얻었을 때,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라”(막16:17) 하신 말씀에 의지하여 귀신을 쫓으면 즉시 귀신이 떠나간다. 예수 이름의 거룩함이 나타날 때 질병도 떠나가고, 예수 이름의 의가 있을 때 기도도 응답을 받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이 믿는 자에게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능력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진리이신 예수가 없는 탓이다.
여호수아가 아모리 족속과 전투할 때 “태양을 중천에 멈추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태양이 종일토록 중천에 머물러서 전쟁에 승리했다(수10:12~14). 여호수아 자신의 권한과 능력으로 그런 이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의로우신 창조자 하나님께서 태양을 중천에 머물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다. 진리는 모든 것에 자유하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다(출14:21).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가라”고 말씀하시니 바다가 갈라진 것이다.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에게도 이 같은 능력이 있다. 예수라고 하는 진리가 있으면 그런 능력이 나타난다.
예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라” “병을 고쳐라”(마10:8;막16:17~18)고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진리라고 하는 ‘의’가 있을 때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칠 능력이 나타난다. 악한 영의 역사는 죄로부터 나타나므로, 예수의 의가 나타날 때 회개하면 죄는 사라지고 죄로부터 온 귀신이나 질병은 당연히 떠나가야 한다. 능력은 진리가 있을 때, 의가 있을 때만 나타난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가감하지도 않는다. 수정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리이신 예수께서 가라 하면 가고, 되라 하면 되고, 고침받으라 하면 고침받고 죽은 자라도 일어나라 하면 일어난다. 이와 같은 진리가 내 안에 있다면 내게도 동일한 역사가 진리로 나타난다.
기독교인 중에는 능력을 받으려고 금식하고, 산에 가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금식보다, 기도보다 나의 죄를 갚아 주시려고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를 붙잡고 회개하면 회개한 분량만큼 의가 충만해지고, 의가 충만해진 만큼 진리가 충만해지고 성령이 충만해져서 능력은 저절로 나타난다. <계속>
*윤석전 목사의 ‘무보수전도자학교’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381호> 기사입니다.